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13)
지옥에서 독식-113화(113/346)
113화. 암살 (5)
콰가가가가가각!
빛이 휩쓸고 지나간 순간, 수백 미터 높이의 계곡 한쪽 면에 엄청난 흉터가 생겨났다.
긁혀나간 절벽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요란한 소리를 듣고 헌터들과 늑대인간들 마저 기겁할 정도였다.
현무마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세상에. 궁극기라는 게 저런 거였어?’
자신을 죽이고 갈 힘은 있다고 한 게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작해봐야 스킬로 밀쳐 내거나 불로 지지거나 하는 수준의 힘만 쓰다가 갑자기 궁극기라면서 건물도 한 번에 무너뜨릴 힘을 발휘하다니?
괜히 4성과 3성이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후…… 후욱…… 빌어먹을, 내 궁극기를 몬스터 따위에게…… 낭비하다니.”
엔도는 파리하게 지친 모습이었다. 패도적인 위력답게 마나 소모가 극심한 듯, 약한 고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엔도 말대로 예르단은 이미 찾아보기도 힘든 상태였다.
“확실히 대단하군.”
“그걸…… 이제 알겠냐? 크큭…… 좋아. 마음대로 해라.”
“아니 그런데…… 아무리 강한 기술도 사람 눈이랑 손이 못 따라오면 제대로 못 쓰는 것 같은데.”
“뭐?”
엔도가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예르단이 그의 머리를 콰득 씹었다.
엔도의 머리를 문 예르단은 그대로 마구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몸뚱이를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인형처럼 펄럭이다가 바닥에 고장 난 인형처럼 나뒹굴었다. 현무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유언 남길 시간 정도는 주려고 했는데.”
“멍.”
예르단은 현무 앞에 엔도의 머리를 물고 가 내려놓았다.
예르단의 꼬리 끝이 살짝 잘려 있었다.
엔도가 궁극기를 사용한 순간, 예르단은 전력으로 그의 시선과 팔 움직임을 따라 반대편으로 달렸다.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엔도는 예르단이 그저 궁극기에 당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뭐, 됐다. 그건 지지고 볶든 네 마음대로 하고. 남은 건 저쪽인데…….”
현무의 시선이 헌터와 늑대인간들에게로 향했다. 늑대인간들과 싸우느라 등 뒤가 텅 비어버린 헌터들이 애원을 시작했다.
“가, 강현무 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강성규입니다! 강성규! 그 자식이 우릴 꼬드긴 겁니다!”
헌터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고백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애절한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늑대인간들은 라이칸스로프인 예르단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이들을 살리고 죽이고는 온전히 현무 마음이었다.
“음…… 그래. 예르단, 너한테 맡긴다.”
예르단은 헥헥거리며 현무 곁을 지나쳐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헌터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현무는 계곡 밖으로 이미 떠나고 있었다.
***
“헌터들은 찾으셨습니까?”
“응. 다 죽었더라.”
현무가 귀환석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강현무의 팀원들도 도착한 상태였다.
플루드가 터진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라이칸스로프 예르단의 명령에 따라 계곡 쪽에 몰려있었다.
덕분에 팀이 마주친 몬스터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귀환석의 불타는 문양을 본 서지후가 한숨처럼 말했다.
“어째 강현무 지부장님이랑 올 때마다 플루드가 터지는 것 같군요. 플루드를 몰고 다니는 남자라도 되는 겁니까?”
“혹시 너 지금 농담한 거냐?”
“그럼 안 됩니까?”
“내가 너 농담하면 실수로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했지? 네 농담은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 농담이야. 스킬이라도 되는 거냐?”
“다른 헌터들은 좋아하던데…….”
“네 하급자들이니까 그렇겠지.”
현무의 말에 서지후는 할 말을 잃었다.
“음, 어쨌거나 안타깝군요. 그들도 다 자식이며 가족들이 있을 텐데…… 이렇게 던전에서 죽게 되다니.”
“흠…….”
현무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서지후가 이렇게 인간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는데.’
한편, 서지후 역시 현무가 자신의 말을 듣고 감상에 빠진 건가 싶어서 놀랐다.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는데.’
서지후가 생각보다 감정이 풍부하건 어쨌건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헌터들도 그렇게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만약 현무가 그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물론 남들이 실망하거나 말거나 현무는 크게 신경 쓸 타입은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지금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기 직전인데 어딜 가냐는 말을 하려 했지만, 현무는 이미 왔던 방향으로 열심히 다시 달려갔다.
***
“아악! 사, 살려줘!”
“멍청이들아 뭉쳐!”
계곡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현무가 들이닥치면 가둬두기 위해 자리 잡았던 계곡은 이제 그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었다.
“크르르…….”
예르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헌터들의 뒤에 서서 물끄러미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가 다가오자 기겁한 헌터들은 스스로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둘로 양분되어버린 헌터 집단은 늑대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산발적인 전투를 이어갔다. 당연히 그 수는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태반이 죽거나 다치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명인 전능련 간부, 김민도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는 강성규의 직속 라인에 속하는 헌터였다. 한때 태성에 몸을 담은 적 있을 정도로 실력 있었지만 욕심 많고 몸을 사리길 좋아하던 그에게 태성은 맞지 않았다.
김민도는 태성에서 나와 전능련에 몸을 의탁했다. 실력 있는 헌터였던 그는 오대성 라인의 헌터인 동시에 강성규의 수족으로서 능숙하게 활동했다.
‘그땐 좋았는데……!’
전능련에서 헌터들에게 나오는 보조금을 빼돌리고, 강성규의 경쟁자를 협박하거나 묻어버리면서 경영을 도울 때에는 꽤 괜찮았다.
하지만 난이도가 상승하고, 강현무가 나타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나마 신입 트레이닝 캠프의 보조금을 빼돌리는 게 쏠쏠했는데, 그마저도 중단되었다.
김민도는 현무를 제거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 올 거라고 믿었다.
이젠 다 상관없게 됐지만.
“귀환 주문서! 귀환 주문서를 찾아야 해!”
김민도는 하나 남은 희망이 귀환 주문서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뒤지다가 귀환 주문서를 누가 가져갔는지 깨달았다.
“엔도! 엔도 그 새끼가 가지고 있었어! 나갈 타이밍은 자신이 결정한다고!”
헌터들은 허겁지겁 엔도의 시체를 찾아 나섰다.
목이 없는 엔도의 시체를 찾기 위해 또 몇 명의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몇 명의 헌터들이 늑대인간을 막아내는 사이 김민도가 시체에 달려들어 귀환주문서를 찾아 헤맸다.
그때였다.
“가, 강현무다!”
계곡 중간부에 현무가 다시 툭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들은 현무가 그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헌터들은 바로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요청했다.
“가, 강현무 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제 돌아가면 개처럼 따르겠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강성규, 그 새끼를 제 손으로 죽여버리겠습니다!”
저마다 돈을 얼마 내놓겠다느니 얼마나 충성하겠다느니 하며 현무를 향해 절박한 애원이 쏟아졌다.
현무는 절망과 신음으로 애원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싫어.”
헌터들은 다시 얼어붙었다. 현무는 여전히 위에서 내려다볼 뿐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안 헌터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아니, 그럼 대체 왜 다시 돌아온 건데? 우리 죽어가는 꼴 구경하러 왔냐!”
“내가 그렇게 악취미적인 인간처럼 보이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헌터들은 더 따질 힘도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온 건데?!”
“너희들이 혹시라도 살아 나올까봐 걱정 되서 온 거지. 한명이라도 살아 나와서 다른 유가족한테 내가 그랬다고 알리면 너희 아들이 나한테 원한을 품고 힘을 키워서 복수하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빠에 이어 자식까지 죽이는 건 뒷맛이 안 좋거든.”
자신이 당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말투였다.
현무는 로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동소총을 장전했다. 헌터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현무는 그대로 헌터들을 향해 한 발 한 발씩 쏘아 다리를 맞추기 시작했다. 능력자의 고도로 제어된 신체 능력과 시력이면 명사수가 되는 것쯤은 가뿐하다.
간신히 버텨가던 헌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삽시간에 쓰러져갔다.
현무에게 토해내는 원성과 애원이 계곡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잦아들고, 늑대인간들의 광포한 잇소리와 신음만 가득 채워졌다.
김민도는 자신의 몸 위에 동료들의 시체가 하나하나 쌓이는 것을 느꼈다. 우둑우둑 뼈가 씹히는 소리와 피가 그의 머리 위로 흘러내렸다.
김민도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엔도의 품속을 계속해서 뒤졌다.
‘귀환 주문서, 귀환 주문서만 찾을 수 있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서 이 살인마를 고발할 것이다. 이 자가 던전 안에서 저질렀던 세상에 고발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손에 무언가가 붙잡혔다.
김민도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귀환 주문서였다. 김민도는 늦기 전에 재빨리 귀환 주문서를 찢었다.
“응?”
빛무리가 훅 터져 나온 것을 본 현무는 누군가가 귀환주문서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한 놈이 가까스로 빠져나간 듯 했다.
하지만 현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한 놈이 살아서 나갔다면, 찾아갈 사람은 뻔했다.
***
“환자 발생! 응급환자 발생!”
김민도가 던전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병사들이 급히 달려와 상태를 살폈다.
이미 온갖 곳이 부러지고 상처투성이였던 김민도는 서있지도,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민도는 곧장 응급헬기에 실려 포션과 혈액을 수혈 받으며 병원으로 날아갔다.
“민도 군, 정신이 드나?”
“끄으…….”
김민도는 요란한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강성규였다.
김민도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발작하며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부러진 뼈가 폐를 압박하고 있던 탓이었다.
“환자분, 이제 안전합니다! 가만히 계세요!”
의사가 다급히 발작하려던 김민도를 억눌렀다. 이대로 포션을 계속 맞는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영구적인 손상이 몇 군데 남긴 하겠지만.
김민도는 최대한 진정하려 애쓰며 강성규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이 나를 사지로 내몰았다.
움직일 수만 있게 된다면 강현무와 함께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절벽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강현무의 눈이 떠올랐다.
“아, 환자분, 아!”
의사는 갑자기 소변을 지리는 김민도에게 기겁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헬기에선 물러날 곳도 여의치가 않았다.
김민도는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그는 그냥 다신 현무와 마주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 소란스러운 헬기 안에서 강성규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강성규는 물끄러미 김민도를 바라보다가 일어서 수액 줄에 무언가를 꽂아 넣었다.
김민도는 그걸 말리려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민도의 눈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가, 강…… 이, 개, 새…… 끄르르륵…….”
김민도는 거품 섞인 비명을 힘겹게 질렀다.
그것이 바로 유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