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21)
지옥에서 독식-121화(121/346)
121화. 확장과 결별 (3)
수정이끼만 있으면 되느냐는 현무의 말에 아룬은 잠깐 당황했다.
“아이템 산업의 문제점 대부분은 수정이끼만 충분하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수정이끼가 부족해서, 혹은 질이 떨어져서 시장성을 확보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거죠.”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약품이나 스킬을 가진 능력자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핵심인 수정이끼는 제품의 단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D&W는 그걸 해결 할 수 없어서 기껏 기술을 만들어놓고도 썩히고 있었다.
시장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말은 기업가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아룬 씨,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만.”
“예?”
현무는 아룬 앞에서 주먹을 쥐었다가 펼쳤다.
비어있던 그의 손에서 마술처럼 수정이끼 한 덩어리가 나타났다. 아룬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도원경이 와락 달려들었다.
뚫어져라 수정이끼를 바라보던 그녀가 현무를 향해 소리쳤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도원경 박사님, 지금 사업 얘기 중이니까 나중에 좀…….”
현무는 소란이 번지지 않도록 사장실로 둘을 데리고 갔다.
정우현은 기꺼이 셋을 위해 사장실을 내주었다. 사장실에는 다행히 접객용 소파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룬은 소파에 앉아 보석을 감정할 때나 쓰는 안경을 꺼내들고 천천히 수정이끼를 살펴보았다.
도원경은 아룬이 살펴보는 동안 현무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 이 자식, 이때까지 저런 물건을 꿍쳐두고 나한테 말 한마디 없고…….”
어쩜 저렇게 딸과 반응이 비슷한지. 현무에게는 값비싼 돌덩어리처럼 보였었는데, 학자들은 무슨 성배라도 발견한 것처럼 반응한다.
그때 아룬이 천천히 수정이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나학 연구자들에게 있어선…… 성배와도 같은 물건이군요.”
정말 성배 비슷하게 취급하는 모양이다.
“아마 가치를 알아보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의 순도가 실제로 가능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디까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거기다 이 크기도 그렇고, 대체 몇 성급 던전은 되어야 이런 게 나올는지…….”
유민이 처음 수정이끼를 팔기 시작했을 때 보여줬던 반응은 과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이것도 격세지감이었다.
그때는 대놓고 팔면 무슨 사단이 일어날까 싶어서 가치를 낮춰서 몰래 팔았는데, 지금은 뻔뻔하게 팔아도 추궁할 사람이 없다. 물론 조용히 취급하긴 해야겠지만.
“그런데 이거, 실례지만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아룬의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이걸 꼭, 반드시, 기필코 얻어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순도와 밀도가 높은 수정이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물품의 소형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뭘 만들려고 해도 괴물처럼 커지는 탓에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물건도 많았다.
어떤 헌터도 트럭만한 가슴받이를 입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필요한 만큼 있지요.”
현무의 느물느물한 대답에 아룬은 멋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이용해 공장을 돌리려 한다면 그 양도 적지 않을게 분명하다. 공장 규모를 생각하면 준비된 물량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샘플일 뿐, 이정도 크기, 이정도 순도의 수정이끼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있다면 그런 던전은 어떤 지옥일지 상상도 안 되는군.’
아마 강현무 급의 헌터도 목숨을 걸고 갔다 와야 하는 곳일 것이다. 그 양도 자연스레 많이 확보할 수 없을 테고.
아룬은 어쩌면 현무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고성급 던전을 발견해 극비리에 독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판단을 내렸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능력자 군벌이 그런 식으로 던전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 어떤 논문, 어떤 시장에서도 본 적 없는 물건.
현무로서도 D&W에 큰맘 먹고 물건을 보여줬을 것이다.
아마 D&W가 아니라면 이런 제의를 받을 수도 없겠지.
아룬은 자부심을 느꼈다.
“저희 D&W에도 이 물건을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드디어 협조적으로 나오는군. 현무는 미소 지었다.
“그럼 기술 협약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판단하신다는 걸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아룬은 본사에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현무가 요구하는 기술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시장성이 확보되지 않은 애물단지였다.
현무가 왜 이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를 통해 시장성이 확보된다면, D&W의 이름도 날릴 수 있었다.
“좋습니다! 바로 계약 체결하도록 하지요.”
아룬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현무는 그 손을 마주잡지 않았다.
“강현무 씨?”
“아룬, 아직 저희 조건을 다 듣지 않았잖습니까.”
아룬의 입가에 매달려 있던 미소가 떨떠름하게 떨어졌다.
“그 정도 수정이끼를 매달 협의한 양만큼 보내드리는 대가로, 처음 제시했던 그 기술 외에 5가지 추가 기술 제공과 공장 건설을 보조해줄 인력 파견, 그리고 특허료 면제를 요청합니다. 거기에 추가로, 수정이끼가 사용된 물품에서 판매가의 5% 개런티를 요구합니다.”
아룬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보다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졌다. 그는 도원경에게서 현무가 무슨 기술을 원하는지 전해 듣고는 고심에 빠졌다.
처음 요구했던 기술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D&W를 먹여 살리는 쏠쏠한 수입원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무의 수정이끼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건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지지부진했던 온갖 연구들의 획기적인 진전을 거둘 수도 있었다.
“잠시, 잠시 본사와 통화를 좀 해보겠습니다.”
아룬은 복도로 나가 한참동안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는 화를 내다가도 애걸하고, 눈물로 호소하기까지 하다가 마침내 설득에 성공했다. 아룬은 방긋 웃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음, 한 달에…… 10kg?”
아룬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적게 불렀나?’
너무 좋아하길래 농담이라며 다시 100kg을 부를 준비를 했지만, 그전에 아룬의 말이 먼저 나왔다.
“그렇게…… 그렇게 많이 가지고 계십니까?”
현무는 재빨리 100kg이라는 말을 목 뒤로 삼켰다.
D&W는 신기술 개발기업이다. 대량 생산을 할 필요는 없으니 수정이끼도 연구에 필요한 정도면 충분한 모양이다.
“뭐, 적당히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공장도 돌리려는 거고. 그걸로 괜찮다면 기술 협약이 이뤄져 공장이 돌아가는 날부터 한 달에 10kg으로 하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대로 50kg을 선불로 드리지요.”
아룬의 입꼬리가 헤벌쭉 올라갔다.
도원경이 옆에서 아귀 같은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자기한테도 얼마 주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표정이었다.
현무는 도원경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해서 일단 꺼내놓았던 수정이끼를 그녀에게 완전히 양도했다.
***
호쾌하게 거래를 마친 뒤, 아룬은 귀국행 비행기를 타러 떠났다.
원래는 며칠 더 체류할 생각이었다고 했지만, 귀중한 물건을 얻어 한시라도 바삐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은 듯 했다.
“현무야, 다 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돌아가는 차 안, 도원경은 현무의 차 뒷자리에서 반쯤 누운 채 수정이끼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몇 시간째 보고 있는데 질리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이거…… 진짜로 함부로 시장에 풀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학계 미치광이 오타쿠들 중에서는 약간 미친 장비를 만들려는 놈들도 있어요. 그런 놈들 손에 들어가면 진짜 골 때리는 물건이 나올 수도 있어.”
“그런 게 있어요?”
“작다는 것과 효율이 좋다는 건 엄청 중요한 요소거든. 뭐, 네가 D&W에 달라고 한 그 기술도 골 때리는 물건 중 하나긴 하다만…… 하, 이런 게 있으면 나한테 바로 알려줬어야지. 그럼 끝내주는 물건을 이미 하나 만들었을 텐데!”
“도원경 박사님, 지금 도원경 박사님이 약간 방금 말씀하신 그 미치광이 오타쿠 같았다는 거 아세요?”
“세종 연구소에 있을 때 이게 있었으면 벌써 일반인도 착용 가능한 외골격도 만들었겠다!”
현무는 도원경의 말에 살짝 기겁했다. 외골격은 성능만 개선되면 일반인도 반쯤 능력자처럼 만들 수 있다.
스킬은 없겠지만 능력치 상승과 몬스터 타격 능력은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니까.
“조심스럽게 취급하고 있어요. 그쪽도 수정이끼 10kg정도로 뭘 하겠어요?”
현무는 새삼 박휘소를 통해 팔아넘긴 1톤의 수정이끼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박휘소의 말에 따르면 능력자의 등급 상승에만 사용된 것 같지만 그걸 전부 다 썼으리란 보장도 없다.
현무는 최대한 동맹에 대한 수정이끼 공급을 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수정이끼 판매량을 줄이시겠다구요?”
“네. 일단 이번 주부터 절반.”
밤. 현무와 박휘소는 주차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강 둔치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만이 켜진 산책로에는 날씨 탓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박휘소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별로 놀라지 않은 눈치네요, 영감님?”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등급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는 요구도 무시했고,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까요. 강현무 씨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쪽도 응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영감님은 그쪽 꽤 좋아하잖아요?”
“좋아하는 거랑 그래도 싸다고 느끼는 것은 다릅니다.”
좋아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군. 그래도 그곳의 선생이라는 자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히 잃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박휘소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동맹에서 탈퇴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예? 왜요.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현무로서도 동맹과의 실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쪽의 정체가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황이니 박휘소라는 끈 하나는 붙여두고 싶었다.
하지만 박휘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강현무 씨와 함께 있는 것은 수정이끼 핑계가 컸습니다. 이전에는 이지태 씨 때문이었지만요. 만약 수정이끼 거래가 중단된다면 동맹에서는 강현무 씨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할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을 붙이겠죠.”
“선생님인가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매몰찹니까?”
“선생님은 침묵하신지 오래 됐습니다. 가끔 대리인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실 뿐이죠.”
“대단한 분이신가 보군요.”
그렇게 가끔 얼굴을 보이는데도 조직 장악력이 이렇게나 투철하다니.
심지어 권속으로 들인 박휘소마저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다.
물론 박휘소는 상대가 선생님이라는 자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가격과 상관없이 수정이끼 공급은 점점 중단될 테니까 준비하라고 하세요. 이때까지 거래한 정을 봐서 미리 통보해드린다고. 지금까지 강현무 표 수정이끼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해주세요.”
“적당히 가려서 전하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현무는 주머니 속에서 키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박휘소의 차키였다.
박휘소가 놀란 표정을 하자 현무는 씩 웃으며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빌리는 거라고 했잖아요. 이제 운전도 익숙해졌고, 차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돌려드리려구요. 애초에 수정이끼 거래를 미끼로 빌렸던 건데 거래도 끝났으니 돌려드려야지.”
“지금 빌렸다고 하셨습니까?”
“말이 그렇다구요, 말이. 아, 싫으면 말고.”
현무가 다시 가져가려하자 박휘소가 재빨리 키를 낚아챘다. 버튼을 누르자 주차장 한 편에서 삑삑거리며 반응하는 자신의 차가 보였다.
“그럼 강현무 씨는 뭘 타고 가려고 하십니까? 지금 타고 온 차라도 드립니까?”
현무는 또 다른 차 키를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박휘소의 차 옆에 세워져 있던 부가티 신형 모델이 깜빡거리며 빛을 냈다.
박휘소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영감님 취향이 너무 올드해서 타고 다니기 창피하더라구요.”
“아직 젊어서 진중한 맛을 모르시는 겁니다.”
“뭐, 진중한 맛은 진중한 나이에 즐기면 되니까요.”
현무의 대답에 박휘소는 웃음을 터뜨렸다.
현무는 박휘소가 이렇게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이 농담이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맞는 말씀이군요. 그럼 저는 오랜만에 제 차를 타고 드라이브나 즐겨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한강 둔치로 불러낸 거예요.”
박휘소는 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탔다. 그가 차를 몰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현무도 갈 채비를 했다.
현재에서 벌려놓은 일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현무는 그동안 지옥에 가서 다음 퀘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현재에서 벌려놓은 일이 많아 자기 자신을 단련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귀환석을 움켜쥐고 난이도: 지옥으로 향하려던 그때,
강변북로 위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현무가 고개를 돌린 순간 불기둥과 함께 산산이 흩어지는 차량의 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웠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박휘소의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