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25)
지옥에서 독식-125화(125/346)
125화. 불구덩이 (4)
문영후는 현관에 들어선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집 안에 누군가가 있다.
불도 꺼져있고, 신발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인기척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문영후는 자신이 뭘 놓쳤는지 다시 돌이켜보았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모든 안전 사항들은 체크했다.
미행도 없었고, 집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나갈까?’
안 된다.
그는 집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전부 말소하기 위해 왔다.
누군지 모르는 적이 이미 안에 들어와 있다면, 차라리 놈이 아직 머물고 있는 편이 나았다.
문영후는 초조하게 핸드폰을 열고 번호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이 번호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집 곳곳에 설치해둔 폭탄이 폭발하며 내부는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
증거와 침입자, 둘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신경과민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폭발하고 나면 뒷수습이 어려워질 테니까.
문영후는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걸어 들어갔다.
집안 어디에도 침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자료를 숨겨둔 금고도 열린 흔적이 없었다.
확인하지 않은 곳은 폭탄만 쌓여있는 자신의 작업실뿐이었다. 거기에 중요한 정보는 없었다.
‘신경과민일지도 모르겠군.’
최근에 노렸던 탑 랭크의 능력자 때문에 매사에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문영후는 조심스레 권총을 꺼내들고 문을 열어 살펴보았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유독 검은 실루엣이 두드러졌다. 문영후는 권총으로 그 자를 겨냥했다.
그 순간 툭 하고 불이 켜졌다.
갑작스레 밝아지자 반사적으로 총을 쏠 뻔했지만, 등 뒤에서 누군가 그의 총을 붙잡아 뒤집어 문영후 본인의 턱을 겨눴다.
문영후는 아슬아슬하게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뗄 수 있었다.
“침착하군.”
어느 틈인지 등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문영후는 재빨리 권총을 버리고 몸을 굴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남자는 그를 잡으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문영후는 핸드폰을 남자에게 보이며 소리쳤다.
“멈춰! 조금만 건드리면 이 집이 통째로 날아간다!”
남자는 멈춰 섰다.
이상한 가면을 쓴 남자였다.
시야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것 같은 가면.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뭐,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군.”
남자는 문영후의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영후는 그제야 옆을 돌아보았다.
작업실에 앉아있던 실루엣.
집 안에서 느껴지던 묘한 인기척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있을 리가 없는 자신의 아내였다.
“여, 여보. 당신이야?”
아내는 눈가리개가 씌워진 채 의자에 포박되어 있었다. 문영후가 분노하기 전에 현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문영후. 나이 서른 넷. 서강대 졸. 대한민국 대테러부대 폭발물 처리반 소속. 부업은 테러인가?”
문영후는 움찔했다. 상대가 누군지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강…….”
그때 현무가 조용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붙였다.
문영후는 현무의 의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내에게 안대를 씌운 이유는 그녀가 살아 돌아갈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상대가 강현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내는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문영후는 자신이 여기서 죽게 될 것을 직감했다.
현무는 그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얘기 좀 하지.”
***
문영후는 알몸으로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었다.
손발은 덕트 테이프에 꽉 감겨있었고, 옆에서는 현무가 샤워기를 틀어 수압을 체크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현무는 수압에 충분히 만족한 듯 수건 한 장을 꺼내들고 문영후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찾아낸 거지?”
“잘.”
현무는 성의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문영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려 여섯 단계에 걸쳐 폭탄이 전달되고, 실행범과 문영후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단계에 걸쳐 실행되는 작전은 실패율도 적지 않고 한번 시작되면 멈추기도 힘들지만, 배후에 누가 있는지 들킬 염려가 적다는 게 장점이었다.
“고문해봤자 소용없어! 나는 그냥 폭탄을 만들기만 했을 뿐이야!”
현무는 멈춰 섰다.
“어째 다들 하나같이 의리가 넘치는군.”
현무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문영후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안색이 창백해져선 헛구역질을 했다.
현무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의리 있는 놈일수록 이런 꼴을 당한다니 정말 안타까워. 사실 반 정도는 내 분풀이긴 했지만, 그래도 수고를 던다면 굳이 고문할 필요는 없겠지.”
문영후는 강현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원하는 정보를 뜯어낼 것임을 알아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리든.
현무는 둥글게 만 수건으로 문영후의 턱을 툭툭 쳤다.
“너는 제작 파트라고 했지. 그러면 시작 지점에 꽤 가깝겠네. 말해봐. 누구 명령인지.”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문영후는 대답을 망설였다.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현무는 문영후의 입에 수건을 쑤셔 넣었다.
문영후는 당황해 아무 말이나 하려 했지만 이미 현무의 손가락이 그의 입안에 들어온 뒤였다.
“읍, 으읍!”
현무는 우선 이빨을 하나 뽑아냈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던 순간, 현무는 이빨이 뽑힌 자리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문영후의 눈이 뒤집혔다.
겨우 한 개에서 기절하다니. 현무는 문영후의 입에 수건을 물려둔 채로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을 뒤집어쓰자 문영후는 다시 몸서리치며 눈을 떴다. 미칠 듯한 고통이 아직도 몸에 선하게 남아있었다.
“대답은 3초 안에 나와야 한다. 알겠지?”
문영후는 핏발 선 눈을 치뜨며 현무를 노려보았다. 현무는 다시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기 전에, 한 가지 알려주기로 했다.
“네 의료기록 보니까 이빨이 29개더라. 이제 28개지만. 앞으로 28번 버틸 수 있어?”
“꺼…… 져…….”
“의지는 높이 사지. 그런데 네 이빨 다 뽑았다고 의지력에 감탄하면서 내가 그냥 집에 갈 것도 아니야. 나는 어떻게든 너에게서 답을 뽑아낼 건데, 내가 저 문 밖의 대기자를 왜 데리고 왔을 것 같아?”
문영후는 움찔했다.
내 아내.
현무는 차가운 눈으로 문영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뽑을 수 있는 이빨의 총 개수는 56개다. 알겠지?”
문영후의 눈동자가 떨렸다. 자신은 어떻게 버티더라도 아내가 그렇게 되게 둘 수는 없었다.
망설임 끝에 문영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는 문영후의 입에서 수건을 뽑아냈다.
“내가…… 다 내가 세운 계획이다.”
“네가? 대한민국 공무원이 나한테 원한 질 일이 있었나?”
문영후는 핏발 선 눈으로 현무를 노려보다가 쏘아 뱉듯이 말했다.
“네 놈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해악이 될 놈이야. 원한? 나는 잡초를 뿌리 뽑으려 했을 뿐이다. 나는 정원사다. 잡초가 뿌리내리기 전에 뽑아 던질 정원사. 원래대로라면 네 놈이 죽었어야 했는데…….”
“나?”
현무의 반문에 문영후가 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그래. 다 너를 죽이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하필 거기서 차를 바꿔 탈 줄이야.”
현무는 놀라지 않았다. 예측했던 일이니까.
현무는 자신을 노린 적이 엔도처럼 수정이끼에 대해 알거나, 전능련의 정리 못한 찌꺼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부 요인 중 박규에 반대하는 극단주의자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지태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너무 많지만, 그냥 능력자에게 불만이 많은 놈은 순위권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당연히 현무는 문영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럼 류수아 의원은?”
문영후는 흠칫했지만 가까스로 기척을 드러내는 것은 참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 무슨 말이지?”
“내가 너만 심문한 것 같냐? 너만 네 배후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냐? 널 고문하는 건 그냥 확인절차에 불과해. 이미 네게 지령을 내렸던 사람까지 포함해서 다 심문을 마친 상태야. 네 바로 직전에는 네 아내를 심문했지.”
현무는 문을 열고 손짓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영후는 멀찍이서부터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탄 냄새.
덜컹. 문영후는 문이 열린 순간 문 밖에 서있는 남자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박휘소……?”
코트에 중절모, 장갑까지 끼고, 눈 빼고는 거의 전부를 붕대로 칭칭 감아 살갗이 드러난 부위가 없었지만 들고 있는 지팡이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또각거리는 특유의 걸음걸이까지.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건 너 자신에게도 물어봐야 할 문제일걸. 박휘소가 살아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네가 아직까지도 목숨을 붙이고 있을 수 있는지 말이야.”
현무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가 류수아 의원의 측근이라는 걸 박휘소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류수아.
그게 이번 일을 저지른 주모자의 이름이었다.
다름 아닌 박휘소를 찾아왔던 동맹 소속의 여성. 현무가 박휘소의 사무실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여성이었다.
문영후를 발견해낸 시점에서 그 이름을 찾아내기는 쉬웠다. 문영후가 류수아 밑에서 일한다는 것을 박휘소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만큼 알고 있어. 이건 그냥 확인절차다. 똑바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문영후는 포기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선의 문제가 아니다.
박휘소가 살아있고, 동맹이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와있는 것이다.
문영후는 동맹은 아니지만 동맹을 위해 일하는 말단 중 하나였다. 문영후는 고개를 떨구고 모든 것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뒤, 현무는 가볍게 혀를 찼다.
“별로 가치 있는 이야기는 없군.”
전부 이미 확인된 것들뿐이다.
류수아는 이미 이전부터 현무를 죽이려고 작정해왔었다는 것. 그런데 현무를 죽이려던 작전에 박휘소가 휘말려든 것.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박휘소 사망을 이용해 현무를 엮어들이려 했던 것.
동맹이, 적어도 동맹원 중 하나인 류수아가 현무를 적대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변북로에 레드 서펜트를 소환했던 바로 그 능력자였다.
현무는 문영후에게서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문영후도 그 사실을 알고 발작적으로 호소했다.
“나는 됐어! 내 아내만이라도 풀어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무것도 모르긴 왜 몰라. 네 아내는 류수아 의원의 비서관이잖아.”
현무는 싸늘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아니라 영감님이 결정할거야.”
“박휘소 씨! 박휘소 씨, 제발 제 아내는 부탁드립니다. 당신과 일을 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을 휘말리게 한 것은 결코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거 시끄럽네. 영감님, 빨리 결정하죠?”
박휘소는 조용히 문영후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나갔다. 문영후는 저게 무슨 신호인지 알 수 없었다.
현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누굴 죽이고 살릴지는 다 영감님한테 맡기기로 했다. 영감님도 옛 동료라고 너무 무르게 구는 것 같은데.”
현무는 문영후를 내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살고 싶으면 류수아인지 뭔지 한테 연락하지 말고, 여기서 나가면 바로 해외로 튀어.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라.”
문영후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물론 자신까지도 목숨을 건질 줄은 몰랐다.
영후는 박휘소에게 가슴 깊이 감사하는 동시에, 현무에게는 이를 악물었다. 곧 현무는 박휘소의 뒤를 따라 나갔다.
문영후는 서둘러 아내를 찾아가려다 문득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끌려오면서 떨어뜨린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을 열자 아까 집 전체를 폭파시킬 수 있던 번호가 아직 찍혀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현무를 날려버려야 하지 않을까, 했지만 아내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류수아…… 류수아 의원님께 알려드려야.’
현무가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게 걸렸지만, 그래도 모시던 사람을 연락 한번 없이 끊을 수는 없었다.
문영후는 서둘러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때 문영후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심문하기도 전부터 모든 정보를 이중 삼중으로 확인했던 강현무가, 이렇게 허술하게 핸드폰을 방치해두고 갈까?
위화감을 느낀 순간, 집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수아 의원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굉음과 함께, 맹렬한 화염이 그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