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26)
지옥에서 독식-126화(126/346)
126화. 불구덩이 (5)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인 주택을 보며 현무는 혀를 찼다.
“아파트가 아니라 다행이군요. 아파트였으면 이런 식으로 간보지도 않았겠지만.”
문영후는 물론 문영후의 아내까지도 동맹의 일원이고, 류수아의 측근이다.
살려둘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문영후가 류수아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현무가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영후가 서둘러 전화를 건 탓에 명줄을 앞당겼다.
현무는 차에 올라타 소방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주변에서 폭발음을 듣고 사람들이 놀라 나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박휘소가 폭발이 주변 민간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치해둔 탓에 깔끔하게 집만 타고 있었다.
“이걸로 류수아도 우리가 눈치챘다는 걸 알겠죠?”
“어차피 시간 문제일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폭발물을 만든 사람도, 폭발물을 터뜨린 사람도 모두 문영후였기 때문에 현무가 걸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경찰에게는 치정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쏠릴 것이다. 그렇게 환경을 조작해두었으니까.
하지만 류수아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룻밤사이에 자기 측근 일곱이 날아갔으니 당연하다.
“류수아는 어떤 사람이라고 했었죠?”
박휘소는 진물이 배어나오는 붕대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서초 갑 3선 의원입니다. 서른 살에 박규의 후원을 받아 정치계로 뛰어들었죠.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는데도 어떤 이슈든 시원시원하게 잘 해결해서 영향력이 상당히 강합니다. 지지층도 탄탄하구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서울 시장 선거 후보에 나왔으니, 의원직은 내려놨겠군요.”
“서울 시장요?”
“지방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잖습니까. 젊고 카리스마 있는 후보라서 차기나 차차기 대선주자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생각 없다고 하지만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향력이 강하다는 뜻이죠.”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배경이 따로 있나요?”
“박규는 본인이 류수아를 정계로 끌어들였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동맹이 그렇게 만들었지요.”
현무는 박휘소의 말에 의아해졌다.
“동맹의 힘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구요? 그럼 전에는 뭐였는데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보다 먼저 동맹에 발을 담갔었으니까요. 평범한 정치학과 대학생이었다고만 알고 있습니다만, 선생님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봤는지도 모르죠. 잘못 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 3선이나 할 수 없으니까.”
“흠, 동맹이라는 게 뭔가 허술한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느껴지네요. 아무것도 없는 대학생은 동맹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지태 같은 실력자는 정식 동맹원으로 받지 않고, 그저 배후에서 조종만 하려고 했었다는 게.”
박휘소는 현무가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나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류수아와 대화를 나눌 때 현무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정도는 추론할 수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동맹은 수평적인 집단입니다. 총 구성원은 오직 선생님께서만 아시고, 선생님께서 직접 끌어들인 사람만이 동맹원이 될 수 있어요.”
“전혀 수평적인 집단 같지 않은데요. 영감님만 해도 류수아를 빼면 누가 동맹이고 아닌지 잘 모르잖아요. 정보독점은 가장 쉬운 통제 방법이라구요.”
현무는 비웃었지만 박휘소는 납득하려는 것 같지 않았다.
시스템 안에 있으면 시스템이 어떤 구조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아니면 현무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이 있다거나.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건 선생님인지 나발인지가 아니었다.
“류수아가 능력자인건 알고 있었어요?”
“기색으로 추정만 했을 뿐 능력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으니까요.”
동맹끼리도 상당히 불투명한 모양이다. 하기사, 박휘소도 현무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한 눈치였으니까.
“그럼 절 죽이려던 건 류수아 독단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동맹은 뚜렷한 지령보다는 선생님이 정한 방향성 아래서 행동하는 느슨한 집단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류수아의 독단 행동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만.”
“그래야 할 거예요.”
현무는 입꼬리를 비틀며 중얼거렸다.
“저는 이번 일에 꼬인 놈들은 다 제 명에, 혹은 제 몸을 가지고 살게 할 생각 없으니까.”
그게 설령 박휘소가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라 하더라도.
현무의 분노는 현무 자신을 노렸다는 것보다 ‘자신의 것’을 상하게 했다는 것에서 더 컸다.
박휘소는 자신의 권속이었고, 자신의 소유물이다. 영역을 침범한 들개는 물어뜯어 죽이는 게 마땅하다.
박휘소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류수아는 이번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건드려서 좋을 게 없습니다.”
박규를 협박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때는 박규도 혹할만한 선물을 들고 갔었으니까.
하지만 국회의원까지 지낸 인사를, 그것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사람을 죽여 버리겠다고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게 된다. 거기다 류수아가 동맹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력들까지 생각한다면…….
“알아요.”
그리고 현무는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미소가 진해졌다.
“잘 나가는 정치인인 게 문제인 거잖아요. 그럼 아니게 만들어주면 간단하죠. 제가 이 모든 귀찮은 것들을 왜 했는데.”
문영후를 날려버린 것은 류수아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자 선전포고인 동시에, 그녀를 몰락시키기 위한 첫 단계였다.
“조만간에 류수아의 수족을 다 잘라놓죠. 그다음 아무도 봐주지 않을 외딴곳에서 홀로 쓸쓸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게 해주자구요.”
***
여자는 손을 펼쳤다가, 다시 움켜쥐었다.
오른쪽의 허공을 쥐었던 손은 왼쪽으로 선을 긋듯 움직였다. 끝에 거의 다다를 때쯤, 여자는 다시 손을 확 펼쳤다.
강연장 안의 수많은 군중이 그녀의 손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가열찬 웅변은 귀를 뚫고 뇌에 새겨지는 것처럼 박혔다.
때론 자신의 상식이나 이해와 맞지 않는 말도 있었지만, 의아함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좋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렬하고,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설득당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미친 듯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손짓에 따라 사람들의 동공도 합주를 하듯 움직였다.
“─이것으로 류수아 서울시장 후보님의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순간, 군중은 일제히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들었을 때 떠올린 것은 그 상황의 부자연스러움이 아니라 물밀듯 밀려오는 감동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 여자는 연단에서 내려갔다.
“고생하셨습니다. 류수아 의원님.”
비서가 다가와 류수아에게 텀블러를 내밀었다.
텀블러를 받아들려던 류수아는 비서의 얼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 기억났다는 듯 잔을 들어올렸다.
“문영후 건은 어떻게 되고 있지?”
“경찰은 김수경 비서관이 의자에 묶인 상태로 발견된 것을 봤을 때, 아무래도 문영후가 폭탄으로 동반자살한 것 같다는 쪽에 수사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폭발물도 문영후가 빼돌렸고, 폭파시킨 것도 문영후라더군요. 최근에 문영후가 발기부전 치료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어 부부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 나이가 되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폭발물을 빼돌려 집에서 자폭을 하는 건 흔하지 않지만.
하지만 류수아가 관심을 두고 있는 쪽은 자신의 비서와, 비서의 아내가 벌인 치정극이 아니라 다른 쪽이었다.
비서관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챈 듯 재빨리 말했다.
“의원님께 폐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김수경 비서관 쪽에만 화환을 보내둔 상태입니다. 저, 그런데…….”
“말꼬리 흐리지 말고 빨리 말해.”
“……문영후가 마지막에 의원님께 전화를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의원님의 외부용 핸드폰은 김수경 비서관이 가지고 다니니 현장에서 발견된 게 이상할 건 없지만 마지막에 왜 문영후가 류수아 의원님께 전화를 걸었냐는 의문이 남아있어서…….”
류수아는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문영후는 함께 일하기 좋은 동지였다. 하지만 자신과 결코 접점이 있어선 안 되는 일을 맡기는 자이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러 비서관을 통해 일을 맡기곤 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게 하는 것은 피해왔는데, 마지막에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잘못 걸었겠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류수아의 말에 한 치 의심도 없다는 듯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는 더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야 할 테지만, 어차피 경찰 쪽은 류수아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경찰 쪽에도 그녀의 강력한 지지자가 있으니까.
문제는 문영후를 죽인 배후다.
‘누구냐. 강현무, 설마 네가 벌써 날 찾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문영후는 자신에 대해 입을 열 사람이 아니었다. 류수아는 그것만큼은 자신하고 있었다.
유사시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덮어쓰고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만약 강현무가 문영후를 죽였다면, 거기서 단서는 끊어졌을 것이다.
박휘소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이 아니라면.
‘박휘소를 죽이면서 다 꼬였어.’
같은 동맹원을 죽인 것은 그녀로서도 착잡한 일이었다. 특히 그녀는 박휘소를 인간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가 강현무에게 빠지기 전까지는.
‘그 자식은 결국 우리를 다 죽일 거야.’
류수아가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는 상당히 폭넓었다. 좁게는 국가에서 넓게는 인류까지.
박휘소는 강현무가 극독 같은 존재이며, 인류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오히려 류수아의 마음을 굳히는데 일조했다.
무언가를 구할 수 있는 존재는, 다른 말로 하면 그 무언가를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것도 된다. 때문에 구원자는 신중하게, 극도로 조심해서 골라야한다.
강현무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거라곤 생각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당분간은 현무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 급한 건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였다.
설령 강현무가 자신에 대해 알아냈다하더라도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설령 증거가 있더라도 문영후를 죽인 시점에서 다 날아갔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거지, 강현무? 날 공격할건가?’
자신을 공격하거나 죽이기라도 하면 원한관계를 넘어서 바로 정치적 테러가 된다. 그럼 국가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 나라는 웃기게도 사람이 십수 명 씩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하지만 고위급 인사 한 명이 공격당하면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인지도 그 자체가 류수아의 방패였다.
‘이미 지금까지 벌인 일만 해도…… 강현무, 너는 이미 위험해.’
아무리 강현무가 날고기는 헌터라도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
류수아는 일단 문영후의 복수는 선거 뒤로 미루기로 했다. 시장이 되고나면 강현무를 압박할 방법은 많으니까.
류수아는 비서관과 함께 차로 이동했다.
“뭐, 그건 됐어.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됐지?”
“네. 다음 일정은 청계던전 개발 추진위원회입니다.”
“거긴 또 뭐하는 데야?”
“청계 던전 때문에 묶인 땅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곳입니다. 최근에 지하철역도 생기고 해서 한참 집값이 들뜨는 분위기인데 던전 때문에 묶인 땅이 꽤 넓어서요. 청계 던전은 1성급인데다 몬스터 유출도 적으니…….”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렇죠. 제한이 풀려서 개발이 허용된들 던전 옆에 살겠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살던 사람들도 떠나는 판국인데. 하지만 예전부터 주목받던 땅이라 이권이 걸린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서…….”
“땅 가진 놈들은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겠지. 일단 만나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본다고 하고…….”
부아아아앙!
그때였다. 갑작스레 거친 배기음이 울려 퍼지더니 그들의 옆으로 낡은 차 한 대가 따라 붙었다.
류수아가 눈살을 찡그리며 추월하려는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창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의 손이 나타났다.
“저건 뭐…….”
그 순간, 비서가 운전대를 홱 오른쪽으로 꺾었다.
차가 아찔하게 회전하는 동시에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쾅.
진동과 함께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
첨벙.
현무가 개천을 향해 뛰어내렸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일단 박살 난 벤츠 곁으로 다가가 내부를 확인했다. 아마도 비서일 듯한 운전자는 의식을 잃었지만 목숨은 부지한 것 같았다.
하지만 류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무는 문 반대편이 열려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문에는 혈흔이 묻어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밝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하지만 현무는 반대편, 개천의 물이 흘러나오는 어두운 배수구를 들여다보았다.
개천이 통째로 통과하는 배수구는 성인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걸어가도 좁지 않을 정도로 넓고 높았다.
현무는 첨벙거리며 그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서 피 냄새가 풍겨왔다. 얼마 되지 않아, 번쩍이는 붉은 섬광이 배수구 안쪽을 뒤덮었다.
“네가 미쳤구나. 강현무.”
류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무는 어둠 속에 류수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불러낸, 또 다른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능력자라는 것을 숨기고 있다. 밝은 곳에서는 현무와 맞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전직 국회의원이고, 서울시장 후보야. 그런데 벌건 대낮에 공격해? 산채로 매장당하고 싶나?”
현무의 대답은 단출했다.
“나는 네 지역구 투표권자다.”
“……뭐?”
“지역구 투표권자의 이름으로, 사악한 정치인을 심판하러 왔지. 소중한 한 표의 무서움을 맛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