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30)
지옥에서 독식-130화(130/346)
130화. 오래된 당신에게 (4)
[레드 서펜트 등장 당시 류수아 후보가 현장에서 목격되었다!] [유출 몬스터 목격 현장 분포 충격 발표!] [류수아 후보의 자택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나타난다?] [아직 잡히지 않은 유출 몬스터들…… 민간인 피해 초재기]유튜브와 SNS에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대부분이 몬스터 유출이 류수아와 관련이 있으며, 류수아가 몬스터를 소환하는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유출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이었다.
심지어는 류수아가 신종 몬스터의 일종으로서 인류를 전복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내용까지 있었다.
[진정하고 차분하게 대답하게.]핸드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 비서실장 박규의 말을 듣고 류수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있으면 재떨이로 머리를 찍고 싶지만, 그래도 비서실장이다. 차분하게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헛소문의 주체는 강현무입니다. 아마 전능련 조직을 조금만 털면 단서가 나올 겁니다. 아니면 유령저택에 압수수색을 가하던가요. 어차피 살인 용의자 아닙니까!”
[강현무가 정말 산 사람을 찌른 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아직 있네. 게다가 영상을 감식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피해자는 죽어있었을 확률이 높다더군. 시체가 있으면 확실해질 일이지만,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네. 이 상황에서 압수수색은 못하지. 그리고 강현무는 평범한 살인 용의자가 아니야.]박규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밀어주고 후원하는 살인 용의자인 동시에, 한국 탑클래스의 헌터고, 전능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실세지. 강현무만큼 주목받는 신인은 없어. 정말 그를 적대하길 원하는 건가?]“제가 그쪽을 적대하고 자시고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먼저 공격을 당하고 있단 말입니다!”
[왜지?]박규가 날카롭게 물었다.
“예?”
[일단 이건 강현무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자네의 말이 맞다고 쳐보지. 왜 강현무가 자네를 적대하냐 이 말일세. 뭔가 강현무에게 찔리는 거라도 있나?]류수아는 이를 갈았다.
“지금 강현무를 끌어안으려고 저를 버리겠다는 겁니까? 진심으로?”
[말조심하게. 류수아. 자네가 공천받을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은 건 날세. 그런데 내가 자네를 버리다니? 내가 내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줄 일을 할 것 같나? 내 말은 자네 선거에나 똑바로 하라는 말일세. 쓸데없는 헛소문이 기력 쏟아 붓지 말고. 어차피 그따위 헛소리는 아무도 안 믿잖나?]소문은 아직까지는 비웃음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과 맞닿은 부분이 너무 많았기에, 류수아로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제가 이길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님은 제가 나중에라도 귀찮은 일에 엮이지나 않도록 신경 써달라는 거죠. 비서실장님도 귀찮아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류수아.]박규가 다시 한번 화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참으라고 참으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하는 이유는, 자네를 생각해서 그런거네. 내가 자네를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 강현무는 적대해서 좋을 게 없는 놈이야. 허튼 소리가 아니라, 만약 강현무에게 시비를 건 게 있다면 깔끔하게 사과를 하고, 없다면 납작 엎드려서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게.]류수아는 기가 막혔다.
“진심입니까. 저 류수아입니다. 지금 제 지지율이 55%를 넘기고 있어요. 다른 후보들은 제 절반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한단 말입니다. 서울 시장이 코앞인데 엎드리라구요?”
[시장이 되면 상관없겠지.]박규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선거에서 떨어지면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네. 그러니까 제발 몸 좀 사리게.]류수아는 전화를 끊었다. 박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강현무에게 시비를 걸었고, 강현무는 그녀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박규 말대로 엎드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현무가 그녀의 목을 치기 좋은 자세가 될 뿐이니까.
‘망할.’
검찰 카드가 예상치도 못하게 박규에게 가로막히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들은 헛소문이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도 좋지 않았다.
「헌터 규제론자 선봉, 류수아 후보 궁지에 몰려.」
흔히 류수아는 헌터 규제론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녀는 통제론자에 가깝다.
헌터들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풀어놓을 게 아니라 좀 더 통제력 있는 집단에 묶어 준공무원 대우를 하자는 게 류수아의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국가주의적 국영화 정책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쉬웠다.
공권력이 무능해보이면 사람들은 사적폭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 민간 클랜에 힘이 쏠리고, 국영화 움직임도 흐려지게 된다.
고블린들의 출몰 건은 그녀의 정치적 입지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쳐들어와서 쥐어 패고 협박이나 할 줄 알았지 이런 협잡질이라니.’
류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자신의 지지층은 이정도로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류수아는 비서에게 손짓했다.
“이지태 단장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
“류수아 의원님. 먼저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군요.”
류수아는 반가운 표정으로 일어서려다 들어선 사람을 보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이지태와의 만남을 바랬지만 찾아온 사람은 2인자인 태민수 행정팀장이었다.
“태민수 군. 반가워요. 이지태 단장님은 잘 지냅니까?”
“잘 지내십니다. 바쁘기도 하고요. 피차 시간은 없을 듯한데,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면 좋겠군요.”
통제론자인 류수아는 태민수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태성은 정부의 일에 매우 적극적인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호감도 까지 좋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정부 실세는 박규였으니까.
“일단 차라도 한잔 하면서…….”
“류수아 의원님.”
태민수는 차분한 태도로 류수아의 말을 끊으며 몸을 숙였다. 그의 찌르는 듯한 눈빛에 류수아는 불편함을 느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이지태 단장님이 오시지 않은 이유는, 선거기간에 후보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제가 직접 방문한 이유도 제가 직접 찾아온 이유는 의원님이 혹시라도 동네방네 떠들면서 기자라도 끌고 찾아올까 봐 걱정된다고 단장님이 보내신 겁니다. 박규 비서실장님의 얼굴을 봐서 무슨 용무가 있으시든 가능한 협조할 테니 필요한 말씀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류수아는 생각보다 차가운 태민수의 반응에 화가 나는 대신 의아함을 느꼈다.
그와 갈등이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뭔가 화낼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건가?’
태민수는 어디까지나 이지태의 입장을 대행한다. 류수아는 태민수가 이지태로부터 어떤 의사를 전달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류수아는 그걸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몬스터 난동사건, 아시죠. 지금 태성에서는 무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작해야 고블린이니까요. 비능력자도 잡을 수 있을 수준의 몬스터입니다. 굳이 태성이 개입할 이유가 없지요.”
“평범한 고블린이 아닙니다.”
태민수는 류수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류수아는 지도를 펼치고 붉은 색으로 표시된 원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평범한 고블린이었다면 인간을 공격했던가 이미 잡혔겠죠. 하지만 녀석은 약간의 상해 사건이나 놀래키기만 할 뿐, 아직 사망자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찰들을 농락하며 달아나기까지 하고 있죠.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태성이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민수는 지도를 죽 훑어보았다. 몬스터 출몰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나설 필요 없다는 감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류수아가 붉은 원으로 표시한 지점이 모두 그녀와 관련 있는 지역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렵지 않은 부탁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태민수는 지도를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강현무 씨와 문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하.”
류수아는 손사래를 쳤다.
“그 경박한 인간과는 얽히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그 자에게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겠군요.”
소문의 근거라고 해봐야 ‘레드 서펜트는 류수아가 부리는 몬스터였고 강현무를 죽이려 했었다’라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뿐이었다.
터무니없긴 하지만 사실에 맞닿은 그것을, 류수아는 능숙한 거짓말로 받아넘겼다. 동시에 그녀는 과장된 손짓으로 제스쳐를 취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현혹.
희귀 등급의 이 스킬은 그녀를 이 위치까지 끌어올려준 능력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분위기와 상대방의 집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류수아는 가급적이면 자신에게 주목할 수 있는 실내 연설을 즐겨했다.
그녀는 이 능력을 기반으로 탄탄한 지지층을 쌓을 수 있었다.
적어도 선거라는 시스템에서라면, 그녀는 분명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상대의 레벨과 상관없이, 자신을 적대하거나 현혹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지만 않으면 영향을 받았다.
굳이 협조적인 태민수에게 쓸 필요까진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태민수의 호의도 필요했다.
“하지만 듣자하니 강현무도 그쪽의 제안을 걷어차고 전능련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거기다 한국 최고의 능력자 자리까지 빼앗겼으니 조금 서운한 감이 있지 않습니까?”
태민수의 표정이 살짝 미묘하게 바뀌었다. 류수아는 그가 자신의 의견에 확실히 귀를 기울인다고 확신했다.
“저는 강현무에게 별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태가 강현무와 관련 있다면…… 선배로서 경고를 해줘야 할 때 아닐까요?”
“그렇군요,”
태민수는 그녀의 말이 합리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태성이 돕도록 하지요.”
***
현무는 조심스럽게 허수아비를 툭 건드려보았다.
하지만 허수아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현무는 허수아비를 살펴보다가 체육관에 있던 것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네킹 같은 하얀 껍질을 쓴 것은 똑같지만, 표준 마네킹 모형보다는 좀 더 진짜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꼭 인간을 본떠서 만든 것 같군.”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인형들이 수십 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복도를 촘촘히 채우며 세워져 있었다.
현무는 자신도 모르게 진시황릉을 떠올렸다. 무덤에 함께 매장된 수만 개의 토기인형들.
‘설마 이거 실수로라도 공격하면 동시에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현무가 허수아비와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어도 이 숫자만큼의 허수아비라면 몇 번 죽었다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무가 기겁하며 돌아보자 예르단이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앉아있었다.
바닥에는 허수아비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현무는 바짝 긴장한 채 허수아비들의 동태를 살펴봤지만, 움직이는 놈은 없었다.
덩치가 큰 예르단은 이 많은 허수아비 인형들 사이를 비집고 통과할 수 없어보였다.
“거기서 기다려.”
인간으로 변하면 따라올 수 있을 테지만, 혹시라도 이 허수아비들이 갑자기 달려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현무는 일단 혼자 갈 수 있을 만큼 가보다가 안되면 돌아올 생각이었다.
현무는 계속해서 허수아비로 가득 채워진 복도를 걸어 나갔다. 몇 번 휘어지고 꺾이며 걸어갔지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각자 다른 얼굴들로 채워진 허수아비들 사이를 계속해서 지나가기만 하는 것은 기괴하면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마치 시체로 채워진 방을 걷는 것 같았다.
그러다 현무는 문득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응?”
분명 아까 봤던 얼굴이 또 있었다. 코가 이상하게 구부러진 대머리였기 때문에 우습다고 생각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모델링이 정해져 있던 건가?’
하지만 굳이 코가 구부러진 대머리를 모델로 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어쩌면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대머리도 차별받지 않는 인간형을 내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사이, 철컹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현무는 온몸의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복도 전체의 허수아비가 전부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무는 식은땀을 흘리며, 배틀헬퍼를 발동시켰다. 언제든 뛰어오를 준비를 하기 위해.
하지만 허수아비들 중 어느 것 하나도 그에게 달려들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정면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허수아비들이 길을 비켜서고, 현무는 이윽고 나타난 허수아비와 얼굴을 마주했다.
“……대체 뭔데, 여기는?”
현무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허수아비가 앞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