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35)
지옥에서 독식-135화(135/346)
135화. 인류의 적 (3)
‘왜?’
함부로 사고 가속 도중에 깨우면 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위험까지도 감수해가며 자신을 깨울 필요가 발생한 건가?
쾅! 후두부를 쇠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충격이 연달아 전해졌다. 눈이 번쩍 뜨여졌다.
눈앞이 흐릿하게 수증기가 찬 캡슐 유리창이 보였다. 현무는 어지럽게나마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구역질을 시작했다.
“욱, 우웩!”
다행히 뱃속에 남아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것은 위액뿐이었다.
[부서지는 별, 가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오랜만에 듣는 메시지였다. 지금 이 모습을 가울이 관심을 가질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배틀 헬퍼(전설)이 배틀 헬퍼(전설/유일)로 강화되었습니다.]동시에 배틀 헬퍼가 강화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도 떴다.
‘전부 다 끝내지 않았는데 강화되는 건가?’
뭔가 이상했지만 어쨌거나 성공적이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9천명 전부 상대할 필요는 없고 5천명 정도여도 충분했는지도 모르지. 실험 대상이 둘뿐이었다는데 어떻게 알겠나.
현무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어지러움 속에서 억지로 캡슐을 열어젖혔다. 다리가 힘을 잃고 풀썩 무너졌다.
현무는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눈 코 입 할 거 없이 말라붙은 피로 범벅이었다. 옷에는 이미 말라붙은 토사물 흔적이 선명했다.
‘토할게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이미 나와 있었군.’
[네가 데이터 이식을 받으면서 이지태에게 죽었을 때 반동으로 나타난 반응이다.]이브의 목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현무는 힘없이 웃었다.
“안 죽으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 그나저나 깨우면 폐인이 된다더니 왜 갑자기 꺼낸 거야? 지금 며칠이나 지났지?”
[폐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네가 도중에 중단할까봐 한 거짓말이었다. 실제로는 약간의 뇌손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영구적이진 않아. 그리고 시간은 9일 정도 지났다.]이브는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진행 속도를 봤을 때, 정말로 14일 만에 달성했던 선행자보다 먼저 달성할 확률이 높아 보이더군. 놀라워. 역시나라고 할까…….]현무는 자신이 신기록을 달성할 뻔 했는데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대체 왜 깨운 건데? 아니, 배틀 헬퍼가 강화되었으니 그걸로 상관없긴 한데, 대체 왜…… 마지막에 나타난 그 놈은 누구고?”
이브에게서는 답변이 없었다.
“이브?”
현무는 재차 이브를 불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이브의 기계음 대신, 복도에서 격렬하게 달려오는 발소리였다.
현무는 상당수의 허수아비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절대로 호의적인 신호는 아닌 것 같았다.
“예르단!”
현무는 의미도 없는 이브를 다시 불러대는 대신, 예르단을 소환했다. 마나만 있어도 살 수 있는 몬스터답게 예르단은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만약 허수아비들과 싸워야한다면 한꺼번에 붙어선 안 된다. 입구를 막아야했다.
덜컹.
그때 현무는 소름 돋는 정적을 느꼈다.
허수아비들의 발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그보다 작은 소리, 이 시설의 벽 너머에서 끊임없이 공기를 순환시키고 설비들을 움직이던 자잘한 소리들이 일시에 중단되는 소리였다.
[네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존재는 비선형시간 중 자체규격 하 8년 전 기록된 ‘종말의 별’이다. 종말의 별에 관해 기록된 데이터는 오직 그것 하나뿐이지.]갑자기 이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문에……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이브,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허수아비들은 멈춰놓고 이야기하지?”
하지만 이브는 현무를 완전히 무시하며, 증오로 들끓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쩌면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았는지도 모르는 인간이, 사실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간 종말의 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차는 산 중턱의 도로 옆에 만들어진 작은 주차장에서 멈췄다.
후드를 눌러 쓴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어둠 속에서 잘못 그려진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일어섰다. 시커먼 복장 속에서도 새하얀 붕대만이 달빛에 두드러졌다.
“빨리 왔군요. 박휘소 씨.”
후드를 쓴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는 자신의 것뿐이었다.
“차는 안 타고 오셨습니까?”
“망가졌습니다. 요즘은 그냥 운동삼아 뛰는 것도 괜찮은 것 같더군요.”
야밤에, 그것도 산속 한복판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후드를 쓴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하지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후드를 쓴 남자는 자신의 차 뒤쪽으로 다가가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 온몸이 포박된 고블린이 묶여있었다.
“그럼 이 녀석을 데려가기는 힘들 텐데요.”
박휘소는 다가와 냉막한 눈으로 고블린을 내려다보았다.
고블린은 순간 서늘함을 느꼈다. 이때까지 고블린은 박휘소를 보는 시선이 키르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보스를 제외하곤 유약하고, 나태하다. 하지만 지금 박휘소의 눈빛은…… 키르손보다도 두렵게 느껴졌다.
“알아서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보다.”
박휘소는 후드를 쓴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손수 나서서 연락까지 주신 이유는 뭡니까. 이지태 씨.”
후드를 깊게 눌러 쓴 남자, 이지태는 묵묵히 박휘소를 바라보았다.
“고작 고블린을 막으려는 것이었다면 그냥 그쪽 적당한 실력자 중 하나만 보내도 충분했을 텐데요. 손수 나서서, 심지어 잘 쓰지도 못하는 봉까지 들고 나온 이유를 모르겠군요.”
“취미삼아 이것저것 배워보고 있습니다.”
이지태는 힐긋 고블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보다 설명 좀 해주시죠. 이 고블린은 강현무의 작품입니까? 게다가 죽은 줄 알았던 당신까지 살아있다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거죠? 게다가 류수아며, 암살 시도까지. 강현무는 선거에까지 개입할 생각입니까?”
이지태는 날카로운 눈으로 박휘소를 바라보았다.
“그게 저보다 강현무가 낫다고 생각한 부분인 모양이죠?”
“설명하기가 복잡합니다.”
“할 말이 없으면 그렇게 말하더군요.”
“혹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요.”
이지태는 박휘소의 성격이 조금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박휘소는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일지언정 무례하진 않았다. 박휘소도 그 사실을 느낀 건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최근의 일들 때문에 다소 예민해졌나봅니다.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당신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일일이 모두 설명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간략하게라도 설명해주시죠. 저도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박휘소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이대로 잡아떼고 달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박휘소는 이지태가 이렇게 고블린을 자신에게 연락해 데려온 것만으로도 아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강현무를 이지태에게 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어떨까.
이지태를 강현무에게 붙이는 것이다.
박휘소는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자신이 차를 바꿨던 것부터, 그 차가 폭발했던 것, 강현무가 자신을 구해주었고, 사건의 배후를 더듬어 찾아가다보니 류수아가 나왔던 것, 그리고 강현무는 그 보복을 위한 계획을 준비 중이라는 것까지.
강현무에게 손해될만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지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을 찌르는 듯한 행동을 했던 건 당신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거군요.”
박휘소는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
박휘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태의 시선이 트렁크의 몬스터에게로 다시 향했다.
“그럼 이건 강현무의 스킬 같은 겁니까? 몬스터를 부리는?”
“비슷합니다. 그리고 류수아도 비슷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이지태는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난이도: 쉬움에 접어든 이후로 외국에서 테이밍이라는 희귀 스킬이 보고된 바가 있습니다. 이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두 명이나, 그것도 상당히 숙련된 실력자가 갑자기 나타나는 건…… 납득하긴 힘들군요.”
“자세한건 류수아에게 물어보시죠. 저희도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아뇨. 믿을 수는 있습니다.”
이지태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납득은 못해도 믿을 수는 있다.
박휘소는 이게 신뢰라는 게 아니라 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이지태는 이유 모를 확신에 찬 태도를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그가 확신을 가진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동맹이 이지태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류수아 의원이 그런 짓을 했었군요. 하지만 제 입장도 있으니 고블린들은 이만 물려주셨으면 합니다.”
박휘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고블린들은 충분히 활약했고, 슬슬 고블린이나 인간이나 위험해지던 참이었다.
이 고블린만해도 쓸데없는 짓을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킬 뻔 했으니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때 이지태가 입을 열었다.
“다만, 류수아 의원이 한 짓도 용납하기 힘든 짓이지요. 괜찮다면 제가 약간 돕고 싶군요. 그러면 그쪽에서 피를 보거나 불필요한 폭력을 동원할 필요 없을 겁니다.”
박휘소는 살짝 놀랐다.
이지태가 이쪽에 호의를 가져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우려 할 줄은 몰랐다.
류수아 쪽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헌터 진영인 태성이 오히려 류수아로부터 돌아선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
그러나 박휘소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현무 님이 신세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리고 강현무는 ‘불필요한 피’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류수아의 측근을 끌어낼 것이다. 그리고 피를 보던가 핏값에 준하는 대가를 요구하겠지.
이런 점은 굳이 이지태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지태는 미소 지었다.
“굳이 허락을 구하려던 건 아닙니다. 강현무에게 말이나 전해주시죠.”
허락하든 말든 자신이 할 일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박휘소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지태는 트렁크에서 고블린을 끌어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 그리고 저 친구도 좀 치워주십시오.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가워서.”
이지태는 등 뒤의 산속 어딘가를 흘겨보며 말했다.
박휘소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는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지만, 이지태가 지적하자마자 미약한 기운이 느껴졌다.
박휘소는 지팡이로 바닥을 쿵 내려쳤다.
“키르손!”
잠시 산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이내 완전히 기척이 사라졌다.
생각하던 바야 뻔하다. 자신이 한밤중에 나가는 것을 보고 뒤를 밟은 거겠지.
이지태를 죽여 입막음할 것도 생각했을 게 뻔하지만, 이지태가 키르손에게 당할 깜냥도 아니었다.
이지태는 충분하다는 듯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박휘소는 이지태에게 다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왜 강현무에게 그렇게 호의를 보이시는 겁니까?”
박휘소의 질문에 이지태는 미소지었다.
“박휘소 씨. 동맹은 제가 인류의 희망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씀하셨었지요?”
***
‘종말의 별?’
현무는 이브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종말의 별이라면 현무가 지옥에 들어올 때마다 듣는 메시지였다.
난이도: 지옥.
종말의 별에 입장합니다.
[내 권한으로는 인류를 완전히 멸종시킬지도 모르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나는 직접 그를 만나본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인류의 적인 종말의 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이브, 지금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별이고 뭐고 그런 게 아니라…….”
[강현무. 그게 네 이름이지?]현무는 몸이 바싹 굳었다. 현무는 한 번도 이브에게 자신이 강현무라고 한 적 없었다. 숨기려고 했다기보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강현무라는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자신이 강현무라고 하진 않았다. 심지어 이브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건 누구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네가 만났던 그 괴물. 그 자가 강현무, 종말의 별이다.]이미 그때부터 자신을 떠보고 있던 것이었나? 현무는 허수아비와 대련시킨 것부터 배틀 헬퍼를 강화시키는 절차조차 이중 삼중의 확인절차였음을 깨달았다.
이브는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마지막 남은 인류를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닌 척해도 소용없다. 강현무. 아무리 약한 척 해도 날 속일 순 없어. 너는 내가 만들어진 유일한 목적인…….]이브는 증오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류의 적이니까!]***
인류의 희망.
박휘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강현무는 가장 어두운 시기에 저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줄 사람입니다. 이미 별이 제게 속삭여주었습니다. 강현무는 제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되는 동시에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저와 한 팀이 되어, 가장 강력한 결속을 이룰 거라고.”
이지태는 확신이 넘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결국 저와 한 팀이 될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니 더 크게 엇나가기 전에, 저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역시도 인류의 희망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