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39)
지옥에서 독식-139화(139/346)
139화. 불공평한 협상 (2)
박휘소는 호텔 스위트룸 소파에 앉아있던 마지막 남자를 침묵시켰다.
류수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보안요원들이었다.
원래는 평범한 보안업체 직원들이었지만, 류수아를 만나고 그녀의 설득에 감화되어 밤낮없이 집을 지키는 개가 되었다.
‘류수아는 벌써 빠져나간 건가?’
박휘소는 의아함을 느끼며 둘러보았다. 류수아의 호텔 방은 빈틈없이 감시되고 있었다.
그녀의 집 앞은 취재하려는 기자들과 지지자들의 응원으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류수아는 집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현무에게 위협을 당하던 순간부터 이미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때문에 박휘소는 류수아가 언제 도망치더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고블린 최소 한 마리를 붙여 감시 중이었다. 아직까지 류수아가 빠져나갔다는 보고는 없었다.
‘설마…….’
박휘소는 천천히 침실 문을 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박휘소는 급히 몸을 틀었다.
송곳 같은 손날이 그의 목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팡이를 꺼내듦과 동시에 딱, 하는 단단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장갑을 낀 상대의 손에 지팡이가 잡혀 있었다. 박휘소는 그를 낮게 으르렁거리며 노려보았다.
남자는 지팡이를 붙잡아 채는 동시에 확 끌어당겨 박휘소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박휘소는 지팡이에서 칼을 뽑아들어 방심한 남자의 목을 노렸다.
짧은 공방이 오가고, 남자는 박휘소를 몰아붙여갔다.
박휘소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남자는 특이한 무술을 사용했다.
‘꼭 강현무 님을 상대하는 것 같군.’
하지만 온갖 종류의 실전 무술이 결합되어 그렇게 느꼈을 뿐, 실제로는 중국계 무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박휘소는 상대방의 기량이나 차고 있는 장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밀린다.’
상대방은 마땅한 스킬도 쓰지 않고 있었음에도 박휘소보다 강했다. 박휘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현무에 의해 권속이 되고, 몬스터들에 의해 수술을 당한 뒤 체력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월등하게 강해졌다. 능력치만 놓고 보면 레벨 50대에 이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4성급 이상이라는 건데.’
상대방은 박휘소가 아는 국내 4성급 어느 누구도 닮지 않았다.
답은 둘 중 하나였다. 류수아에게 채무결산을 요구하러 온 누군가. 혹은 동맹.
전자라면 류수아는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다. 박휘소는 후자에 기대를 걸었다.
“동맹이오?”
장갑을 고쳐 쓰던 남자는 놀란 얼굴을 했다.
“뭐야, 당신도 동맹입니까?”
남자는 여전히 경계 어린 기색이었지만 동맹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누그러진 기색이 보였다.
박휘소가 먼저 검을 조심스레 거두자 상대방도 손을 치웠다. 조심스레 방 안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핏자국이 흩어져있지만 류수아의 피 같지는 않았다.
박휘소는 뒤늦게 목이 꺾여있는 고블린의 모습을 발견했다.
박휘소는 혀를 찼다. 류수아를 감시 중이던 고블린이 들킨 듯했다.
류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웬 몬스터가 있길래 잡아 죽였습니다. 거기다 당신도 문을 열 때 기척이 무슨 몬스터마냥 흉흉해서, 저도 모르게 착각해버린 것 같군요. 사과드립니다.”
남자는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사과했다. 억양이 특이하긴 하지만 능숙한 한국어였다.
아무래도 류수아와는 다른 성격의,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동맹원인 듯 했다.
박휘소는 고블린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고블린은 도구에 불과했다. 현무에게도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살해당한 모습을 보자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신 진짜 인간 맞습니까? 아까부터 느껴지는 기세가 아무래도…….”
“류수아는 어디 있소?”
박휘소는 남자의 말을 자르고 덥석 물어들어갔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문제라면서 제 도움도 뿌리치고 가더군요. 아마 당신도 도와주러 온 모양인데,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이 남자에게 다 털어놓진 않은 모양이다. 아마 동맹이 더 이상 말려들게 하려는 걸 막으려는 생각이겠지. 더 이상의 타격을 막기 위해서.
어차피 류수아는 선거에서 패배한 시점부터 동맹에게 더 이상 가치가 없다.
가치가 없는 자신을 위해서 동맹이 힘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선거 때문인 것 같소. 그 외에는 잘 모르겠소만.”
“흐음.”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아시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박휘소 씨.”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휘소가 검을 휘둘렀다. 남자는 장갑 낀 손을 들어 막아냈지만, 막아낸 부위에 똑같은 충격이 한 번 더 전해지면서 장갑의 가죽이 쫙 갈라졌다.
핏줄기가 흘러내리자 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박휘소의 스킬, ‘이중베기’였다. 하지만 박휘소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일격을 위해 ‘은신’ 스킬까지 사용했다. 남자에게 공격의 기척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최소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려 했지만 남자는 눈으로 보고 막아냈다. 그의 공격은 손바닥의 상처밖에 만들지 못했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군.”
“수아가 친하게 지낸다는 남자의 이름을 내가 모를 리가.”
류수아를 친근하게 부르는 어투에 박휘소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둘이 연인이었나?”
“뭐? 설마. 하하.”
쉬빈은 짓궂은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썩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내 이름은 쉬빈이다.”
“뭐?”
“나 혼자만 네 이름을 알고 있으면 불공평하지. 설마 이번은 동맹끼리의 싸움이었나? 그래서 혼자 해결하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군. 선생님께 면목이 없겠어.”
쉬빈은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핥으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수아가 죽게 둘 수는 없지.”
박휘소는 류수아를 친근하게 부르는 저 말투가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되었다.
쉬빈은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박휘소는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코트 오른팔의 옷자락과 붕대가 한꺼번에 뜯겨나갔다.
그 안에서 덥수룩한 검은 털가죽이 드러났다. 박휘소는 그 털가죽을 가리려 했지만 쉬빈은 휘파람을 불었다.
“괜히 몬스터 냄새가 났던 건 아닌 것 같군.”
쉬빈은 조소하듯 말하자, 박휘소는 너덜거리는 오른팔의 붕대와 옷자락을 쥐고 한꺼번에 찢어버렸다.
찢겨진 코트 아래로, 마치 짐승처럼 털가죽이 가득한 팔과 단검처럼 번들거리는 다섯 개의 손톱이 드러났다.
쉬빈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
유령저택.
본래는 태성에서 현무가 사는 집에 붙인 별칭이었다.
하지만 태성을 통해 정보를 얻은 정부, 정부를 통해 전해들은 이해관계자들과 류수아까지 해서 이젠 거의 고정된 별칭으로 굳어져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외길뿐이고 그 외 산길로 가면 자신이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르는 채 내려와 있다고 한다.
괴물이나 유령을 봤다는 소문도 있다. 고라니 사체가 발견되어 육식성 짐승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소문만 무성하고 직접 가는 건 처음이군.’
류수아는 차를 몰고 유령저택을 오르고 있었다. 정문은 잠겨 있었지만 류수아가 차에서 내려 감시 카메라에 얼굴을 보이자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까지는 류수아의 생각대로였다.
‘날 시험한 거야.’
류수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현무는 박휘소를 얻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류수아는 아직 자신의 존재 가치를 믿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지만, 더 이상 강현무에게 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낙선했다고 해도 자신은 아직 젊고 촉망받는 정치인이다. 인맥도 풍부하니 지지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도 금방이다.
죽은 박휘소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자신을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가치를 낮추는 것뿐이다.
‘네가 이겼다. 강현무.’
류수아는 자신도 박휘소처럼 강현무와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박휘소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워줄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동맹이 엮여 들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되긴 했지만 류수아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박휘소는 이지태 만큼이나 강현무를 동맹에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맹이 강현무의 편에 서는 것 역시 강현무를 동맹에 끌어들이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도로가 끊어질 무렵, 비탈에 반쯤 파묻힌 석조저택이 나타났다.
낮에 봤다면 산 속의 고풍스러운 저택의 모습에 신비로움을 느꼈겠지만, 한밤중에 본 저택은 음산할 뿐이었다.
거기다 류수아는 반쯤 목숨 걸고 온 셈이니 더욱 그랬다. 류수아는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산 속으로 부터 후벼 파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겁먹은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이제부터는 흥정이다. 기왕 항복한다면 최대한 몸값을 높여 받아야만 했다.
류수아는 초인종을 눌렀다.
[네~.]강현무의 목소리나 아예 대답이 없는 것을 생각했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마치 택배라도 받는 듯한 경쾌한 목소리에 류수아는 잠깐 당황했지만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류수아입니다.”
[넵. 잠시만요.]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는 젊은 여성이 간편한 차림으로 류수아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빠는 지금 잠깐 나갔는데, 무슨 일로 오셨죠?”
강현무가 자리를 비웠다고?
류수아는 재빨리 상황판단을 했다. 이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다니?
‘설마 길이 엇갈린 건가?’
생각해보니 강현무라면 자신을 마무리짓던가 흥정하기 위해 집이나 호텔로 향했을 확률이 높다.
류수아도 방금 전까지 해외로 도피할 생각이었으니 강현무도 그걸 예상 못했을 리가 없다.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하면서 기다리시겠어요?”
류수아는 홀린 듯한 기분으로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곤 정말 초대받은 손님처럼 접객실의 테이블에 앉았다. 여자는 차를 타오겠다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환한 조명과 친절한 접대,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무가 없는 접객까지.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류수아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 여자는…… 강현무와 동거한다는 그 여성인가? 유민?’
강현무의 여자친구라.
그 괴물 같은 남자한테도 애인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친절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면 이 저택에는 강현무의 여자친구밖에 없다는 건가?’
그 순간 류수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인질’이었다.
물론 이것이 무덤을 파는 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강현무가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이 모든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오직 류수아의 기대에 불과했다.
자신은 강현무를 죽이려 했으며, 그의 오른팔인 박휘소를 죽였고, 지금 가진 권력은 아무것도 없다. 목숨을 저당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유민, 그녀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지도 몰라.’
류수아는 다소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어머, 앉아서 기다리셔도 되는데.”
그 순간 류수아는 얼어붙은 채 멈춰 섰다.
이 저택에 들어온 뒤로 가장 비현실적인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한민국 제식 소총 K2를 그녀에게 겨눈 유민이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좋은 말 할 때 앉아계세요.”
유민의 자그마한 몸에 비하면 너무 커 보이는 총이었지만, 총을 겨눈 모습이 미숙해보이진 않았다.
그녀의 손 어디에도 끓여온 찻주전자는 보이지 않았다.
류수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민은 류수아의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다. 그리곤 여전히 총을 겨눈 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류수아 의원님. 협상을 시작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