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
지옥에서 독식-15화(15/346)
15화. 별들의 속삭임 (1)
현무는 난처한 얼굴로 보자기를 펼쳐 보았다.
손실된 신체를 완벽하게 재생시킨다는 것은 직관적이라 바로 알 수 있는데, 성장을 촉진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손실된 신체를 재생시킨다는 옵션은 사실 굉장히 유용한 효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무는 죽으면 온몸이 완벽한 상태로 부활하니 그렇게 사용하기도 애매했다.
‘혹시 머리에 두르면 똑똑해지는 건가?’
현무는 천상의 요람을 일단 머리에 둘러 보았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기대했던 현무는 머쓱해졌다.
성장이라는 게 현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탈모라면 어쩌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치는 얕잡아 볼 수 없었다.
현무에게는 사용하기 미묘한 물건이지만 현실에서라면 몇 백 억을 주고서라도 구하고 싶어 할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
인벤토리에 천상의 요람을 넣으려던 현무는 문득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천상의 요람과 마찬가지로 살짝 미묘하다고 생각하던 물건.
[정체불명의 알(전설)]모기의 사체를 조립해서 만들어 낸 전설 아이템. 이후로도 현무는 지옥 다트를 틈만 나면 만들어 냈지만 같은 물건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잠깐, 성장을 촉진한다는 게 알에도 포함되나?’
현무는 알을 꺼냈다. 천상의 요람을 그 위에 덮으려던 순간 현무는 망설여졌다.
이렇게 막강한 효과를 가진 물건에 페널티가 없을 리가 없다. 따지고 보자면 무한 포션이나 다름없으니까.
아마 소모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정체도 모르는 아이템에 쓰는 게 옳은가 싶어졌다.
“아니, 그래도 미묘한 물건을 두 개나 짊어지고 다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나 쓸 만한 게 나오는 게 낫겠지.”
현무는 정체불명의 알 위에 천상의 요람을 덮었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설마 이대로 계속 품고 있게 해야 하나?”
현무가 투덜거리며 천상의 요람을 다시 걷어 내려 한 순간, 손끝이 허무하게 허공을 스쳤다.
천상의 요람이 손끝에서 안개처럼 부서져 내렸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흩어지는 모습에 현무는 당황했다.
“어…… 어?”
그리고 천상의 요람이 사라진 자리 밑에서 알이 빛나고 있었다.
빛은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알은 반투명하게 빛나며 내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현무는 잠깐 <에일리언>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몸을 긴장시켰다.
소리도 없이 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주먹보다 작은 알의 파편이 깨져 나가는 것인데도 현무의 몸은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긴장되어 있었다.
‘설마 전설급 아이템을 두 개나 쏟아부었는데 날 죽이려 드는 미친 식인 괴물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그 안에서 자그마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손가락보다 작은 손과 팔이었다. 적어도 인간의 얼굴을 덮친 다음 목구멍 안에 애벌레를 싸지르는 미친 식인 괴물은 아니었다.
가느다랗고 하얀 무언가는 힘겹게 알의 파편을 파헤치며 기어가나왔다. 하얗고 작고 가냘프고 날개 달린 무언가. 작고 아기자기한 얼굴에 손에는 조그마한 피리가 들려 있었다.
현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요정이었다.
요정은 축 처진 날개로 현무를 힘없이 올려다보았다. 현무는 머뭇거리며 요정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어 보았다. 요정은 현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득달같이 달려들어 손가락을 야무지게 깨물었다.
“으아아아! 미친 식인 괴물이다!!”
현무는 그대로 손을 휘둘러 요정을 내동댕이쳤다. 야구공처럼 내던져진 요정은 꽥 형편없는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현무의 비명은 엄살이 아니었다. 요정이 깨문 자리는 조그마한 이빨 자국 모양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니, 무슨 보상이 이따위야?”
이러니까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는 것 아닌가. 현무는 씩씩거리면서도 힘없이 널브러진 요정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도 전설급 아이템을 두 개나 털어 만든 무언가다. 이렇게 헛되게 날려 먹는 것은 아까웠다.
다행히 요정은 그리 다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힘없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배고파…….”
“…….”
현무는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투자에 실패했다 싶으면 일찌감치 손절하는 게 답이지만 전설급 아이템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쉽사리 손을 뗄 수는 없었다.
현무는 일단 이 미친 요정을 잘 달래 보기로 했다. 현무는 품속에서 캐러멜을 꺼내 조심스레 내밀어 보았다.
요정은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가 킁킁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상식량도 내밀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고프다는 주제에 더럽게 까다롭네. 뭐가 먹고 싶다는 거야?”
현무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요정을 조용히 현무를 가리켰다.
역시 미친 식인 괴물이 맞는 것 같았다.
***
현무는 자신의 팔뚝에 앉아 빨대를 꽂고 피를 쪽쪽 빨아 마시는 요정을 보며 복잡 미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현무가 처음에는 피리라고 생각했던 물건은 빨대였다. 거기다 날개는 아무리 봐도 모기 날개였다.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을 만든 것도 모기의 사체였다.
‘……설마 모기의 요정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현무는 일단 이 녀석을 식인 요정이라는 가칭을 붙여 두었다. 그의 복잡한 기분은 알지도 못하고 피를 신나게 빨아 마시는 식인 요정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창백했던 피부는 현무의 피를 얼마나 빨아 마신 건지 건강한 혈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현무는 식인 요정이 피를 빠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샅샅이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모기 날개와 긴 빨대를 제외하면 조그만 인간 같았다.
머리가 단발 정도로 긴 편이긴 했지만 성별은 전혀 특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데에 비해 가슴이 평평하니 맘 편하게 남자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편이 막 대하기도 맘 편할 것 같고.
현무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등을 툭툭 떠밀었다.
“그만 먹어.”
“엑!”
식인 요정은 갑자기 떠밀리자 빨대를 뽑고 밀려 났다. 구멍 난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식인 요정은 그것도 아깝다는 듯 엎드려 핥아 댔다.
“그만 먹으라니까.”
“지혈하는 거야, 바보야!”
쥐똥만 한 게 뭐라는 거지.
하지만 식인 요정의 목숨은 일단 값어치를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미뤄진 상태였다.
식인 요정은 지혈하는 절차가 정말 중요하다는 듯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핥았다. 정말 피가 멎긴 했다.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미칠 듯이 가려워지긴 했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생긴 모기에 불과했다.
“괜찮은 식사였구나, 노예야. 이제 디저트를 내오렴!”
녀석은 현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현무는 망설임 없이 식인 요정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꺄앙!”
“태도가 건방져.”
“힝…… 시, 식사 고맙구나, 하인아?”
“더 정중하게 말해 봐.”
“읏, 이, 인심 썼다.”
식인 요정은 통 크게 양보한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위엄차게 말했다.
“귀하의 식사 대접에 크나큰 감사를 표합니다, 집사야.”
“……그게 끝이야?”
식인 요정은 그 이상으로 뭐가 있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했다. 상상도 못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현무는 한숨을 쉬었다.
“내 이름은 강현무다.”
“그렇구나. 강현무 집사구나.”
호칭은 집사로 고정되려는 모양이다. 보통 이런 건 주인님 같은 걸로 정해지지 않나? 하지만 현무는 작은 동물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크고 건장한 어른이라면 모르지만.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넌 정체가 뭐냐?”
“나는…….”
식인 요정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머뭇거리며 멈췄다.
“……기억이 안 나.”
그렇지. 그게 상식적이겠지. 방금 태어났으니까.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말은 잘만 하면서 설정이나 별다른 배경 지식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지나치게 편리하다.
어쩌면 식인 요정이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굳이 추궁해 가면서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그럼 쓸모가 없다는 거군.”
어쩔 수 없지만 이쯤에서 손절할까. 이런 녀석이라도 해체하면 뭔가 나올지도 모른다.
“엣? 앗? 자, 잠깐만, 집사야!”
식인 요정은 기겁하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뭘 할 줄 알고?
“기억났어! 나는 말세에 나타나기로 약속된 요정이야!”
“역시 모기의 요정이냐? 아니면 말세에 세상을 구하러 오기라도 한 거냐?”
“요정들은 세상이 끝날 때 메뚜기 떼처럼 모든 생명체를 갉아먹기로 약속되어 있어!”
“…….”
아까 이 녀석에게 물린 자리가 다시 간지러워졌다.
현무는 부풀어 오른 상처를 긁으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살아남으려고 개소리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진짜라면 식인 요정이라는 가칭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문득 현무는 이 식인 요정이 자신의 피를 빨아 먹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피.
고블린의 손조차도 녹여 버리던 피를.
그렇다고 식인 요정이 딱히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무는 가볍게 투지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능력치도, 내레이터 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
생각해 보면 뭐라 그래도 이놈은 따지고 보면 전설급 펫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면 말이지만.
태도가 시건방지긴 하지만 잘 가르치면 부려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이 식인 요정을 ‘손절’하는 게 가능할까 싶어졌다.
적대하지 않아서 그렇지, 현무보다 약하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좋아. 일단은 넘어가지.”
식인 요정은 안도하는 표정을 했다. 현무의 허세가 통한 것 같았다. 현무는 식인 요정이 자신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기 전에 먼저 선수 치기로 했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고 했지? 네 이름은 다레…… 아니, 레니안으로 하자.”
예전에 읽어본 적 있는 모 소설의 요정 여왕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이려다가 너무하다 싶어서 그만뒀다.
일단 그건 여자 이름이기도 하고.
어째 붙이고 보니 더 여자 같은 이름이었지만 본인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식인 요정, 아니 레니안은 퍽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좋은 이름이구나, 집사야!”
“맘에 들어?”
“요정어로 ‘종말의 앞잡이’라는 말이랑 어감이 비슷한걸.”
요정 세계는 대체 어떻게 돼먹었길래 그런 단어가 있는 걸까. 게다가 그걸 듣고 기뻐하는 정신세계는 어떻게 돼먹은 걸까.
현무는 어쩐지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동심이 조각조각나는 기분을 느꼈다.
“한 가지 약속하자.”
“약속?”
“그래. 하나. 사람을 먹으면 안 돼.”
현무 본인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기도 했다. 레니안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집사도?”
“다른 사람을 다 먹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만큼은 안 돼.”
“정말 너무너무 배고파도? 꼭 먹고 싶어도? 아주 조금, 손가락만 먹는 건?”
“정말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다 먹어 치우는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안 돼. 알겠어? 배고파도 안 되고, 꼭 먹고 싶어도 안 되고, 손가락도 안 돼. 피 정도는 줄 수 있어.”
“요정들은 편식하지 않아.”
편식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좀 가려 먹을 필요가 있을 거야.”
레니안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걸로 최소한의 고삐는 채운 것 같았다.
***
레니안에 대한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현무는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응?”
그때 현무의 눈에 쓰러져 있는 허수아비가 들어왔다.
“뭐야, 저건……. 엥?”
이미 일어서 대기 중인 다른 허수아비와 달리 쓰러져 있는 허수아비는 머리가 없었다. 얼굴을 감싸던 특수 처리된 마네킹 얼굴과 내부에 있던 강철 헤드가 산산이 조각나 부서져 있었다.
현무는 한동안 미운 정까지 들었던 허수아비가 참혹한 몰골을 하고 있자 당황했다.
“……내가 한 건가?”
하지만 현무는 배틀 헬퍼를 실행하고도 수십 번을 강타해야 겨우 외피를 파괴할 정도였다. 이렇게 일격에 머리가 날아갈 리가 없었다.
현무의 머릿속에 허수아비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주먹 끝으로 발현되던 순간을.
현무의 의식이 거기에 다다른 순간 내레이터 음이 들려왔다.
[배틀 헬퍼에 ‘강기’ 특성이 추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