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1)
지옥에서 독식-151화(151/346)
151화. 악마가 부른다 (7)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요한은 당황했다.
자신이 제일 세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약하다는 생각 또한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현무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당신뿐만 아니라 이놈도 저놈도 너무 약해빠졌죠. 악해지기를 두려워하고, 실수하기를 두려워하고, 그러면서 희생은 조금도 없길 바라며 안절부절. 그래서 약해지고, 그래서 패배한 겁니다. 그러니 한명이라도 어깨를 기대게 해 둬야 조금이라도 살지 않겠어요? 그런 얄팍한 생각이죠.”
패배하다니, 무엇에 패배했단 말인가?
난이도: 지옥에 대해 모르는 요한은 현무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다. 하지만 유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현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강합니다. 사제님이 할 일은 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뿐입니다. 사제복이나 십자가, 전우애 같은 건 버리세요. 그것들이 사제님을 구원해주지도 않고,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닙니까.”
요한은 입을 꽉 다물었다. 현무의 말은 사실이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린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당신 자신을 먼저 구원하십시오.”
선으로 행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악으로만 행할 수 있는 길이 나타난다.
오직 길은 그것 하나뿐이라는 듯.
요한은 이미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현무가 어두운 장막을 들추고 나타났다.
그 장막 너머에서 이쪽으로 오면 더 빠르고 편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아아, 나는…….’
이지태는 요한이 언젠가 구속을 벗어나고 정갈한 사제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지태는 틀렸다.
안나는 그가 기꺼이 온 세상 사람들을 짊어질 성자라고 믿었다.
안나 역시 틀렸다.
요한은 자신이 모두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도 틀렸다.
현무의 말대로 자신은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걸 인정하고서야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요한은 악마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
현무는 미소를 띠었다.
이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 박휘소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
“박규 비서실장한테서 연락이 왔네요. 태백 던전에 와 달라는데요.”
“키르손이 잘했나 보군요.”
“뭐, 인간을 골탕 먹이는 것은 키르손이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태백 던전에 생겼다는 이상변화는 현무가 의도한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요한이 던전에 들어갈 날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때문에 태백 던전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라는 언제나 5성 던전의 변화에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으니까.
5성 던전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태성이 끼어들고, 태성이 끼어들면 요한도 개입하려 할 것이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요한에게, 5성 던전은 가장 ‘적절한’ 장소였다.
“아, 그리고 이걸 요한의 호텔 방에 갖다 주세요. 직접 전달할 필요는 없고 그냥 눈에 띄는데 아무데나 있으면 돼요.”
박휘소는 현무가 내민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피부에 붙이는 패치였다.
박휘소는 상태를 살펴보다가 이게 뜯었다가 재포장 된 것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뭔가를 추가로 바른 것 같았다.
“뭘 바른 겁니까?”
“제 피요.”
박휘소는 하마터면 약물 패치를 떨어뜨릴 뻔 했다.
“독이 아니라 치료 효과가 있는 거니까 걱정마세요. 지퍼백에 담아 요한의 방에 넣어주시면 알아서 잘 쓸 겁니다. 워낙 의심 없이 천진난만한 친구라서.”
박휘소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했다.
헌터들이 이걸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독혈을 발라서 넘겨줄 줄은 몰랐다.
“여기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네. 제 독혈이 조금 특이한 거라.”
‘탐’에 흡수된 ‘피 흘리는 단검’의 능력이었다.
[탐貪(전설/진품)] [특수 능력: 제물로 바쳐진 무기를 먹어치우고, 그 무기의 능력을 갖는다. 체액을 흘려보내는 능력이 있으며, 아군에게 체액을 보낼 경우 치유 효과를 일으키고, 적에게 체액을 보낼 경우 타격을 입힌다. 마나를 소모해 검에서 열기를 끌어올린다. 온도에 따라 마나 소모량이 상승한다. 소지자는 열기로부터 면역된다.]“그게 독혈일 경우, 독에 대한 치료 효과도 일으키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졸지에 맹독과 맹독치료제를 동시에 가진 몸이 된 거다, 이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독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약물에도 그게 통합니까?”
“통하더라구요.”
박휘소는 무슨 말인가 하다가 곧 의미를 알아차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직접 시험해본 겁니까? 어쩐지 물건이 비었다 했더니.”
“으음, 요한을 치료하기 위해…… 라는 말은 핑계고 솔직히 약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면 좀 효과가 궁금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조금만.”
“조금이라니, 창고의 물건 절반 이상이 사라졌는데요?”
“아, 그게 효과가 없다보니 약간 오기가 생겨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현무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 피를 맞으면 뿅 가는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던거죠.”
“마약을 많이 먹는다고 피에 마약 효과가 생길 것 같습니까? 가끔 보면 강현무 씨, 너무 터무니없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군요.”
“그렇게 터무니없나요?”
박휘소는 무슨 소리냐며 한소리 하려다 현무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 인간에게 상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멍청한 짓이다. 오히려 정말 마약 효과가 생겼냐고 물어보기 가 두려울 정도였다.
박휘소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요한에게 이 정도로 공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요?”
박휘소의 말에 현무는 잠깐 생각에 빠졌다.
강력한 치료사는 찾기 힘들고, 4성급은 말할 것도 없이 귀하다. 하지만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약쟁이보다는 나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난이도: 지옥의 미래를 보고 온 현무는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요한은 패배자지만, 쓸모 있는 패배자다.
“영감님, 휴거라고 아세요?”
“기독교식 종말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시네. 거기 그런 말 있잖아요. ‘그날이 오면 산자와 죽은 자의 신분이 명확하게 가려지리니.’ 누구는 지옥인 지상에 남고 누구는 천국으로 가고.”
“정확히 그런 말은 아닙니다만 비슷한 어감이었던 것 같군요. 요한이 그 날이 왔을 때 좋은 말씀이라도 전할 분이라도 됩니까?”
현무는 피식 웃었다.
“설마요. 요한은 그럴 깜냥이 안 됩니다. 너무 나약해서요.”
난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요한은 누굴 살리고 누굴 죽일지 선택에 시달리게 된다.
요한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지금 전우 몇 명이 죽은 것에도 수년째 발목을 잡혀 있는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리가.
그래서 요한은 자살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인류 멸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나라면.’
현무는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로 요한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라면 할 수 있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누가 도움이 될지 도움이 안 될지.
누가 죽을지 누가 살지.
요한은 현무에게 모든 죄책감과 선택권을 떠넘기고 숨어버리면 된다.
“훌륭하고 경건한 사제님은 무슨, 속으로는 그렇게 패배주의와 마약에 찌들어서…… 경건한 척, 고고한 척. 다 쓸모없습니다. 저는 요한에게 굴레를 씌우고, 온갖 방법으로 더럽힐 겁니다. 그 사제님은 좀 더 타락할 필요가 있어요. 저를 통해서 생명에도 경중이 있고, 가치를 판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게 될 거예요.”
현무는 웃으며 말했다.
“요한은 마약보다 제게 더 의존하게 될 겁니다. 판단과 고뇌라는 건 꽤나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판단력을 외주로 주곤 하죠. 그래서 독재자가 탄생하는 거고.”
박휘소는 쓰게 웃었다.
“강현무 씨. 전부터 했던 말이지만…… 단어 선정 좀 신중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듣는 사람은 조금 오싹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래요?”
***
전능련이 5성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은 그날로 바로 뉴스를 휩쓸었다. 한국 전체가 다시 한번 그 뉴스로 시끌벅적했다.
현무가 퍼뜨리진 않았지만 워낙에 목격자가 많았기에 전파가 빨랐다.
온갖 사람들 입에 강현무에 대한, 그리고 전능련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것도 있었다.
대한민국 클랜 순위였다.
[박도령인지 뭔지가 4성이라지만, 모습도 안 드러내고 활동도 안하는데 의미가 있나?] [오히려 전능련에는 쉴새없이 연승중인 우리 ★★★★★급 강현무가 있다.] [5성이라고 하지 마라. 갓성급이라고 해야 옳다.] [전능련 평균 퀄이 떨어진다지만, 강현무 들어온 뒤로 완전 달라지고 있다는데? 쪽수도 힘인데 그럼 순위 좀 올려줘도 되지 않나?]전능련보다는 사실상 강현무의 팬들이 여론을 선동하고 있었다. 물론 반박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무인지 혐무인지가 아무리 잘났어도 태성이 만든 공략 아니었으면 그렇게 못 뚫었거든? 혼자 잘나서 되는 줄 아냐?] [호환마마 클랜은 한때 대한민국 1위였던 루나틱 타이거의 정식 계승자다! 국가의 개가 된 태성이나 전능련보다 몇 배는 낫지!] [강혐무 그 인간 뒤가 구린 인간이라던데? 여기저기 막 지저분한데 얽혀있고 과거도 불투명하고…… 좀 수상하지 않냐?] [넌 뭐하는 놈인데 갓현무님에 대해 아는 척이냐? 갓현무보다 잘났냐?] [요리사보다 요리 잘해야 욕할 수 있냐? 남들 다 아는 얘기인데 모르는 척이야.]“강현무 지부장님.”
‘뒤질래? 너 어디 사냐.’까지 적었던 현무는 핸드폰을 껐다.
어두운 밤, 현무가 사는 저택을 향해 걸어 올라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번 태백 던전 원정 때 팀을 서포트 해 큰 주목을 받게 된 팀 매니저, 서지후였다.
강현무가 적극적으로 사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팀 이름도 서지후 팀, 혹은 송여운 팀으로 불릴 정도였다.
“서지후, 요즘 몸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예. 이 추세만 이어간다면 연말 연봉협상 때 다소 큰 인상폭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지후는 농담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현무는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연봉 협상 안 해주면? 다른 데로 옮길 거야?”
“연봉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순식간에 나를 쓰레기로 만들었군.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리고 오늘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다른 데로 옮길 생각은 없는 거겠지.”
서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석같은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남다른 긴장이 서려있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곳만큼 성장 가능성 높은 직장은 없을 것 같더군요.”
“너 모험 별로 안 좋아하지 않냐?”
서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적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요한 사제님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여기라면 과감한 배팅을 해도 딸 수 있는 판이라고. 사방이 미쳐 돌아간다면 폭풍의 중심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이죠.”
현무의 입가가 길게 올라갔다. 녀석은 역시 게이머다.
안정적인 전략을 선호하지만, 과감한 수가 필요할 때면 망설임 없이 내지른다.
판단력도 능력도 다 좋지만, 헌터로서의 성장성이 낮다는 점이 그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오늘, 서지후는 그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
그는 단단히 결심한 눈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권속이 되겠습니다. 강현무 지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