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4)
지옥에서 독식-154화(154/346)
154화. 붉은 과육 (3)
‘시련?’
현무는 요굴렘이 내렸던 시련에 대한 악몽이 떠올랐다.
가마솥 밑바닥. 구울과 가스트, 좀비, 허기진 자들로 뒤덮였던 사거리.
서로 먹고 먹히는 아비규환 속에서 들끓어 올랐던 기억들. 처참하고 끔찍했던 기억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무는 순식간에 기대감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난이도: 지옥에서 필사적으로 쉘터를 짓고 세력을 부풀려간 끝에 겨우 살 만하다 싶은 안식처를 마련했다.
적어도 이 근방에 있어서만큼은 까다로운 적이 없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시간도 상당했다.
현무는 자신이 슬슬 정체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시련 퀘스트가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현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받아들이겠다.”
진창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승리의 포효를 터뜨릴 수 있는 쾌감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통곡하는 별, 베르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부서지는 별, 가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굶주리는 별, 요굴렘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정복하는 별, 아르단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포효하는 별, 히르마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오랜만에 별들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무수한 시선 속에 현무는 새로운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퀘스트 발생!] [‘붉은 과육’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과부여왕거미를 처치하십시오.] [저주: 거미줄이 부여됩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이 당신을 향해 점점 조여 옵니다.]과부여왕거미?
현무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당황했다.
과부여왕거미라면 요굴렘이 내린 시련을 받았을 때 현무를 도와주었던 몬스터다.
모기떼가 습격하지 못하게 막아주고, 현무가 가지고 있던 장비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그것도 물론 몽스트릴의 명령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설마 퀘스트의 목표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몽스트릴은 대체 무슨 의도인거지?’
몽스트릴은 별들 중에서 유일하게 현무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는 별이라고 했다.
할 말이 있다면 분명 직접 말을 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직접 시련을 부여하고, 자신의 권속인 과부여왕거미를 처치하라는 퀘스트를 내렸다.
의도가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시험이거나, 선물이거나.
‘어느 쪽이든 과부여왕거미를 처치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군. 그 다음으로는 ‘저주’인데…….’
요굴렘 때는 저주의 내용이 비교적 직관적이었다.
몬스터들이 자신에게 강한 식욕을 느끼게 된다는 것.
치명적인 저주였지만, 동시에 승리를 위한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저주는 의미가 약간 애매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이 조여 온다고?’
당장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몸을 조이는 건지 아니면 특정 장소에 속박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저주: 맛있음’보다는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주’인 이상 만만히 볼 수는 없겠지만.
‘우선 과부여왕거미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자.’
***
과부여왕거미는 예전에 있던 공터에 더 이상 없었다.
현무가 그 지역을 주의하도록 지시하면서, 먹잇감이 줄어든 게 원인인 듯 했다. 하지만 행방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과부여왕거미는 좀 더 먹잇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바로 수정화가 피어있는 빌딩으로.
현무는 수정화가 핀 빌딩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멀리서 볼 때는 알 수 없었지만, 수정이끼 사이사이로 거미줄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날아다니는 벌레들은 먼 거리인데도 보이는 걸 보면 대충 현무보다 크면 컸지 작진 않을 것 같았다.
“카자트, 저기 벌레가 얼마나 많을 것 같냐?”
“벌레들의 숫자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대부분의 날개달린 벌레들은 하늘 위에 머무르고, 때때로 내려올 뿐입니다. 수정화는 그런 벌레들이 계속 땅에 머무르게 하는, 꿀단지 같은 존재입니다.”
수정화라.
현무는 자신이 수정화를 포착하기 무섭게 몽스트릴이 시련을 부여한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어차피 슬슬 퀘스트가 시작될 타이밍이기는 했지만 수정화를 찾으려던 시점에서 시작된 게 뭔가 의미가 있는 걸까 싶었다.
‘몽스트릴의 의도라면…… 뭐, 뻔하군.’
몽스트릴은 대놓고 자신을 유혹했다.
자신을 사랑하고 숭배하라고.
물론 따지자면 현무에게 관심을 가진 다른 별들의 목적도 몽스트릴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몽스트릴은 좀 더 표현에 적극적이었다.
아마 별들의 정체성 탓이겠지.
숭배받고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몽스트릴의 가장 강렬한 염원이니까.
“관심종자 같으니.”
현무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위대한 분이시여?”
“음, 아니. 됐다. 그럼 일단 한 번 정찰 삼아 다녀오는 게 좋겠군.”
키르손을 불러서 정찰을 보내면 좋겠지만 녀석은 지금 박휘소와 움직이고 있다.
퀘스트가 시작한 동안에는 귀환석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키르손을 부르는 것은 자제할 생각이었다.
현무는 카자트와 함께 수정화가 핀 건물로 향했다.
예전에 오크 무리들을 박살낸 곳과 비슷한 방향이었지만 제법 거리가 있었다.
수정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벌레형 몬스터가 많아졌다.
[잿송이 제국 일개미(LV 26)]송아지만 한 거대 개미 무리가 집채만 한 애벌레들을 뒤덮고 실시간으로 분해하고 있었다. 애벌레에게서 흘러나온 체액이 거리를 흥건하게 뒤덮었다.
심지어 다른 개미를 탄 개미가 지휘하는 모습도 보였다.
놈들은 의외로 현무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다.
개미 떼를 시작으로 점점 많은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미 떼도 퍽 기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수정화가 있는 건물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고울 제국 병정개미(LV 41)] [칸타나 왕궁 무사개미(LV 45)]소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적어도 수십, 수백 개의 제국과 왕정임을 자처하는 개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이 돌아다니는 게 이상했다.
현무는 더 이상 지상으로 접근하기 불안해져 건물 위로 올라갔다.
물론 그 위에도 벌레들은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수정화가 핀 건물 주변을 둘러보던 현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다양한 것은 소속만이 아니었다.
수정화가 핀 건물 근처로 갈수록 개미, 벌, 나방, 나방, 모기, 파리 등 다양한 벌레들이 바글거렸다.
아니, 그걸 다양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성의가 없는 것 같다.
그것들은 이상했다. 아니, 기괴했다.
모습이 똑같은 벌레가 하나도 없고, 각양각색 제멋대로 뒤죽박죽 섞인 생명체들의 집단이었다.
더 이상 소속도, 종의 구분조차 의미 없었다. 심지어 이름조차도 엉망이 되어 레벨만이 표시되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종교배…… 아닐까요?”
이종교배? 현무는 카자트를 돌아보았다.
카자트는 대단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건물 아래 벌레들을 내려다보았다.
“원래라면 배가 맞을 리 없는 생물들인데 분명 유전자가 뒤섞인 듯한 흔적이 보입니다. 원본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된 모습이군요.”
“아니,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그만두고. 왜 저 꼴 난 건지 짐작 가는 게 있으면 말해보지 그래?”
“글쎄요, 그건 저도 잘…… 하지만 위대하신 분이시라면 금방 알아내시리라 믿습니다.”
도움이 안 되는 자식이군.
현무는 실수인척 하며 카자트의 꼬리를 밟았다. 카자트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현무는 못 들은 척 하며 벌레들을 유심히 살폈다.
개미의 몸통에 벌의 침, 나방의 무늬와 나비의 눈.
벌레들로만 이루어진 키메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레벨이 심하게 높지는 않지만 행동 패턴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놈들은 죽은 듯이 엎드려 유순하게 있는 반면, 어떤 놈들은 지나가는 벌레들을 족족 공격해 분해해 놓는다. 어떤 놈들은 또 그 시체를 게걸스럽게 잡아먹는다.
혼란 그 자체였다.
현무는 혀를 찼다.
“분석 같은 건 의미가 없겠군. 일단 돌아가서 이것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방법이 있는지 좀 찾아보자. 그리고…….”
그때 현무는 머리 위로 그림자가 훅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현무는 카자트의 머리를 짓누르는 동시에 바싹 엎드렸다. 아슬아슬한 위치로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스쳐지나갔다.
하늘에서 날아든 것은 현무보다 키가 훌쩍 큰 거대한 사마귀였다.
‘아니, 저걸 사마귀라고 해야 하나?’
[눈 먼 칼바람 사모귀(LV 48)]‘저게 정말 이름이 맞는 건가? 설마 모기랑 사마귀를 합친 건 아니겠지?’
그런 것 치곤 모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쇄애애액!”
하지만 사마귀…… 아니, 사모귀가 고함을 내지른 순간 수백 개의 송곳니로 뒤덮인 둥근 입안에서 모기의 주둥이가 쭈욱 빠져나왔다.
현무는 다시 간발의 차로 뇌에 모기 주둥이가 꽂히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기란 놈들은 내 뇌수밖에 노리질 않는군.”
현무는 레니안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곧 탐을 꺼내들고 전투의욕을 불살랐다.
카자트도 싸울 준비를 했지만 현무는 놈의 궁둥이를 걷어찼다.
“넌 가서 내가 말한 물건들 준비나 하고 있어. 그 개조한 놈들. 이번에 쓸모 있을 것 같으니까 제작 기간을 앞당겨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그럼 저는…….”
현무는 카자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역소환 시켰다.
난이도: 지옥이건 현실이건 현무의 권속들은 역소환되면 현무가 되살아나는 지점, 사거리로 돌아가게 된다.
“자, 그럼 우리 둘만 남았나?”
하지만 사모귀는 매너 있게 기다려줄 것 같지가 않았다. 놈이 날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부르르 떨었다.
그때 또다시 현무 머리 위로 그림자들이 서성이는 것을 느꼈다. 같은 편을 부르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상관없다. 구분하기 힘든 혼돈보단 명확한 폭력이 나으니까.
사모귀가 달려들기 무섭게 현무는 ‘배틀 헬퍼’를 실행시켰다. 눈이 보랏빛으로 물듦과 동시에 확 보랏빛 강기가 일어섰다.
배틀 헬퍼가 유일등급이 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현무가 기억조차도 못하는 무수한 전투의 패턴 속에, 사모귀와 같은 거대 괴수를 상대할 때 유리한 전투 방식이 저절로 몸에 새겨졌다.
현무는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겠다 생각하기도 전에 검을 휘두르는 자신을 느꼈다.
휙, 후욱.
현무는 사모귀의 발톱을 쳐냄과 동시에 그 다리의 관절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갔다.
몸을 둘러싼 강기는 온몸의 완급을 조정하며 정확히 필요한 부분에만 힘을 불어넣었다. 큰 힘을 들일 것도 없이 사모귀의 앞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쩍, 체액이 튀어 오르자 사모귀는 고함을 내질렀다. 모기 주둥이가 현무를 향해 다시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현무는 자신도 모르게 탐에 흡수된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을 통해 불길을 일으켰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벌레들도 현무의 불길에 거리를 벌렸다. 현무는 그 모습을 보며 간단한 상식을 떠올렸다.
“벌레 놈들은 불에 약하지.”
벌레들에게는 불이 쥐약이다. 쉽게 타고, 동물들과 달리 화상이 잘 회복되지 않으니까.
현무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 현무는 달려드는 벌레들을 한걸음 더 크게 내딛으며, 탐을 내질렀다.
강력한 불길이 주변을 휩쓸어대기 시작했다. 불에 붙은 벌레들이 미친 듯이 발광하며 날뛰었다.
그러던 중, 현무는 벌레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대여섯 마리 남짓했는데, 어느새 빼곡하게 벌레들이 자신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하늘에도 무수한 벌레 떼가 몰려들고 있었다.
현무는 그제서야 또 하나의 간단한 상식을 떠올렸다.
‘어…… 그러고 보니 벌레들은 불을 좋아하기도 하던가?’
***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29일 08시간 19분 1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