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6)
지옥에서 독식-156화(156/346)
156화. 붉은 과육 (5)
“집사야.”
어느새 레니안이 현무의 머리 위에 앉아있었다.
“지금 이게 뭐하는 거야? 왜 불쌍한 우리 쥐돌이를 괴롭히는 거지?”
“요정이 보기에 집사가 조금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레니안이 까딱 손짓하자 카자트는 히익 신음하면서도 지팡이를 휘둘렀다.
딱 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현무의 이마를 강타했다.
아프지도 않았지만 카자트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았다.
카자트는 지팡이까지 내려놓고 바싹 엎드렸다.
그렇지. 레니안은 현무가 쓸 수 있는 스킬도 쓸 수 있다.
권속을 조종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응.”
“자꾸 죽으려고 들어서? 아직 10번도 안 죽었어. 키르손을 상대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도 점점 더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응. 그게 문제인 것 같아.”
레니안은 현무의 머리 위에 엎드려 머리를 쑥 내렸다. 현무의 눈에 거꾸로 선 레니안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 집사는 제정신이 아니야.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던지고 있잖아. 최대한 주의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하던 때랑은 다르지. 지금 집사의 목적이 뭔지 알아?”
“그야 수정화를…….”
현무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문제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최대한 수정화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레니안이 배실배실 웃으면서 물었다.
“과부여왕거미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한 적도 없었지?”
“과부여왕거미가 거기 있는 건 확실해. 거미줄이 거기 있었고, 흔적도 분명해.”
“애초에 다른 곳은 찾아보지도 않았잖아?”
“……정황상.”
“그래. 거기 있다 치자. 그런데 집사는 무작정 건물 안으로 몸을 들이밀고만 있잖아. 집사가 정상이라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과부여왕거미랑 싸워야겠다고 생각했겠어?”
아니다.
레니안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지금 현무는 정상이 아니었다.
무언가…… 정확히는 수정화에 강제로 몰입당하고 있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부분은 현무가 그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그 꼴로 과부여왕거미를 마주쳐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구나. 그리고 집사는 정작 과부여왕거미를 만나기도 전에 매우…… 큰일 날 것 같거든.”
현무는 레니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현무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동시에 레니안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감정과 당장이라도 수정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레니안은 현무가 수정화에 불필요하게 집착하고 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현무가 노리던 물건이었다.
수정화 주변에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있다. 점점 더 많은 몬스터들을 꼬여내고 있다.
중심부로 향할수록 위험해진다면, 수정화 가장 가까이에는 과부여왕거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얻을 물건이라면 과부여왕거미도 처치하고 수정화도 얻는다면 일석이조 아닌가?
“레니안, 하지만…….”
그 순간 카자트가 다시 지팡이로 현무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언제 주워든 건지도 모르겠다.
카자트는 이제 아주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하지만’ 어쩌구 하는 건 집사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거야.”
현무는 좀 더 숙고하기로 했다.
전투라면 학을 떼고 도망치는 레니안이 이정도로 퀘스트에 깊숙이 관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레니안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본 거겠지. 현무는 거부감을 억누르고 레니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과부여왕거미가 있을 정황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불확실함에 현무는 몇 번이나 목숨을 걸었다.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현무는 자신이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집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직접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것 이상으로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수정화에서 나오는 달콤한 냄새가 문제인 건가?”
다른 벌레들이 수정화 근처에 꼬이는 것처럼 현무도 거기에 매혹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었다 되살아났을 때에도 효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도 적당한 해답이 있었다.
“저주.”
퀘스트가 처음 시작했을 때 부여받은 ‘저주: 거미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이 당신을 향해 점점 조여 옵니다.]당시에는 발을 댈 수 있는 지역이 점점 줄어들거나, 아니면 육체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 표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관념적인 것이었던 모양이다.
저주는 현무의 머릿속에 수정화라는 목적을 심어두고, 그걸 도저히 머릿속에서 치울 수 없게 만든 것 같았다.
거미줄은 몸부림칠수록 점점 엉키고, 마침내 자승자박하는 꼴이 된다.
지금 현무가 그런 꼴이었다.
현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 세 번째로 얻어맞았다.
“지금 생각하던 방향이 옳으니까 딴 생각하지 마. 집사야.”
누군가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결국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억지로 잊으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현무는 지금 이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계속해서 핑계를 찾고 합리화 시키려 했다.
“좋아. 이해했어. 지금 이건 몽스트릴이 파놓은 덫이다 이거지.”
“문제의 해결점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잘하고 있어, 집사야. 요정이 칭찬할게.”
“하지만…… 아, 잠깐 때리지 말고 들어봐! 지금 이 저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날 조여 온다고 했다고. 그럼 가만히 있을 수도 없잖아?”
이 저주의 끔찍한 점은 지금 하고 있는 말조차 자기합리화인지, 아니면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내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레니안은 현무를 순식간에 닥치게 만들었다.
“만약 집사가 수정화에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현무는 흠칫했다. 건물 안에 기어들어갔을 때가 수정화 가장 가까이 갔을 때였다.
기억은 멍하고 꿈을 꾼 것처럼 희미했다.
좁은 수정이끼 굴 안에 기어 들어갔을 때, 현무는 온몸이 수정이끼에 깎여나가 수족이 잘려나간 오뚝이 같은 꼴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배를 끌며 기어가며 수정화의 달콤한 향기를 갈망했다.
그때 무언가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독혈은 이제 의미가 없다. 불을 지르기에는 연료가 부족하다.
아예 폭파를 시켜버릴까? 폭약이 조금 있긴 하지만 건물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다.
뭣보다 폭약을 설치할 만큼 가까이 갔을 때 수정화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이건 그냥 죽던가, 깨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수준이다.
현무는 이 시련이라는 것 자체가 거대한 덫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현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 정신력이 부족한 거라고 봐야겠네.”
현무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일단 다 죽여봐야겠어.”
***
불어오는 먼지 폭풍이 하늘을 노랗게 물들였다.
수정화를 품은 빌딩이 비문마저 지워진 비석처럼 폐허 한가운데 서있었다.
현무는 빌딩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향기가 닿지 않는 거리였다. 향기만 닿지 않으면 참을만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머릿속에서 수정화의 존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욱 그랬다.
“망할…….”
몽스트릴이 자신을 골리기 위해 만들어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혹시 몽스트릴이 의도하는 게 이대로 영원히 자신의 퀘스트를 수행하길 바라는 건가?’
물론 현무도 가만히 놀고 있진 않았다.
‘일단 다 죽인다’는 방침은 명쾌하고 단순하고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적당했다.
향기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몬스터를 쳐죽여 가면서 레벨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강해지면 건물을 파괴할만한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재 레벨은 45.
이제 5레벨만 올리면 현무도 궁극기를 습득한다.
하지만 그나마 레벨업도 점점 더뎌지고 있었다.
궁극기를 습득하기 전에 자신이 수정화에 뛰어들던가, 완전히 저주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지금도 싸우다 보면 어느새 빌딩 가까이 가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아오, 어디서 농약이라도 구해올 걸 그랬나?”
‘독혈에 농약 성분을 더하면 벌레들을 더 쉽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발상이 들 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그라목손이라고 해도 독혈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았다.
“과부여왕거미만 끌어낼 수 있다면…….”
“정말 살아났네.”
바로 옆,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 순간 현무는 탐을 들고 붕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상대는 현무가 탐을 휘두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고, 담담히 지켜보고 있었다.
‘빨라.’
정체불명의 여성이었다.
현무는 등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이제 나름 예민해졌다고 느꼈는데 속삭일 때까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상현의 인면 거미(LV 61)] [‘지옥최강자’ 칭호의 효과로 레벨 대비 능력치가 상승합니다.]우아한 인간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인간이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약간 고풍스러운 느낌의 고딕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였다. 하지만 프릴이 달린 부푼 치마 아래로는 여섯 개의 거미 다리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무는 순간 풍겨오는 달콤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인면 거미의 몸에 수정화의 향이 짙게 배어있었다.
급히 코를 막았지만 이미 냄새를 들이킨 뒤였다. 냄새를 맡고나면 실수가 잦아진다. 그런데 상대는 현무보다 빠르고 강한 상대였다.
현무는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인면 거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수정화의 냄새를 기억하면서도 바로 들어오지도 않고, 똑똑한 인간이군.”
“뭐야?”
현무는 일단 놈이 덤비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기습할 준비를 시작했다.
놈이 언제든 덤비면 바로 거미줄로 포박한 뒤 탐으로 독혈을 찔러 넣을 생각이었다. 상투적이지만 가장 잘 통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순간 치맛단 아래서 긴 거미 다리가 슥 빠져나오더니 현무가 몰래 흩뿌리던 거미줄들을 순식간에 걷어냈다.
“싸우자고 온 게 아니야.”
거미 앞에서 거미줄로 장난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던 모양이다.
현무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화할 의사가 있다하니 들어보기로 했다.
인면 거미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네 목적은 뭐지? 수정화를 따기 위해 온 건가?”
현무는 잠시 생각했다.
‘역시 과부여왕거미와 관계있는 녀석이겠지.’
하지만 자신을 바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녀석도 몽스트릴의 권속이라면 당연히 자신을 공격해야 할 텐데.
현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잘됐군.”
인면 거미는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수정화가 있는 곳으로…… 가려 하고는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지. 네가 만약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면 우리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군. 대신 우리도 너를 돕겠다.”
“돕는다고?”
인면 거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화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겠지?”
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정화가 막대한 벌레들을 끌어들이는 꿀단지라는 것 외에 현무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현무가 잘 모르는 듯하자 인면 거미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 꺾이지 않은 수정화는 온갖 생명체들의 무덤이자 요람이다.”
생명이자 요람.
현무는 예상치 못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수정화는 달콤한 향을 내뿜어 주변의 생명체들을 현혹시킨다. 수정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자체는 위험하지 않지만, 그 현혹효과 만으로도 매우 치명적이지.”
“그건 나도 알아. 사람을 아주 바보로 만들더구만.”
“수정화의 효과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수정화가 피어난 구조물은 그 자체가 수정화를 위한 세계다.”
인면 거미는 날카롭게 말을 이어갔다.
“수정화에 현혹된 생명체들은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수정화에 접근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단단한 석영과 수정이끼에 날개와 살갗이 찢겨나가고, 심지어 팔다리까지 떨어져 나가면서도 점점 좁아지는 내부로 몸을 깎아가며 들어가지.”
익숙한 묘사였다. 현무도 바로 직전까지 그런 꼴을 겪었으니까.
“그렇게 수정화가 존재하는 ‘포궁’안에 들어서게 되면 생명체는 마침내 수정화를 보게 되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독립된 생명체라고 보기 힘들어진다.”
인면 거미는 한숨을 쉬며 수정화가 빈 구조물을 노려보았다.
“일단 그곳까지 들어가게 되면, 기본적인 생식 기능만 남은 생명체는 그곳에 완전히 정착한다. 그리곤 이미 들어와 있는 생명체들과 정상적으로는 가능할 리 없는 이종간의 관계를 맺고,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였다가 죽어서 양분이 되고, 다시 또 그 자손끼리 짝을 지어 출산과 죽음을 반복하게 된다. 저 거대한 수정이끼 구조물은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작은 세계다.”
“흠…….”
현무는 수정화가 핀 구조물 근처에 돌아다니던 키메라 같은 벌레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수정화가 빚어낸 생명체들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신화 속 이야기 같군.’
경외감이 들 정도로 매혹적인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현무는 어쩐지 몽스트릴이 왜 이 퀘스트를 줬는지 알 것 같았다. 수정화, 그리고 이 퀘스트 자체가 몽스트릴과 같았다.
관심 받고, 사랑받고, 가장 화려하게 빛나려 하는 매혹적인 존재.
‘그래서 퀘스트 이름부터가 붉은 과육인거군.’
“그래서 네게 제안하고 싶다.”
인면 거미는 현무에게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포궁 안으로 들어간 우리 여왕의 구출을 부탁하고 싶다. 몇 번이라도 계속해서 살아나는 너라면 가능할 것 같군.”
인면 거미의 제안에 현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침내 퀘스트를 깰 가닥을 찾아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