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7)
지옥에서 독식-157화(157/346)
157화. 거미줄에 걸린 달 (1)
현무는 인면 거미를 따라서 어딘가로 향했다.
붕괴된 건물들의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했기에 가는 길이 험했다.
애초에 거미처럼 입체적인 이동이 가능한 존재들만 고려한 건지 기상천외한 길들이 많았다.
현무는 이때까지 못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폐허에 의외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많을 것 같다고 느꼈다. 다행히 통로는 넓은 편이었다.
현무는 상현 거미의 뒤를 따라가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질문이 있는데.”
“뭐지?”
“왜 그런 라이트노벨에서나 나올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거지?”
인면 거미는 무슨 생뚱맞은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인면 거미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프릴 달린 펑퍼짐한 드레스라는, 지극히 인간, 그것도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듯한 모습이다.
현무는 몬스터가 왜 굳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무슨 상관이지?”
“아니, 혹시 나를 꼬실 생각인가 싶어서 그런 거야.”
농담이 아니라 현무는 이것도 몽스트릴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인면 거미의 입술이 비틀렸다.
“속삭이는 별이 우리의 모습을 이런 형태로 속삭이셨다.”
“몽스트릴이?”
“속삭이는 별, 몽스트릴께서는 애정과 관심만큼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시지.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하나의 정해진 형태가 아니다. 때문에 그분과 그분의 피조물은 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인면 거미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중 우리는 강한 힘을 얻은 대신 이런 형태를 구축해야만 개체로서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기서 모습이 더 흐트러지면 자아는 분열되고 지능은 저열해지겠지. 전투에 효율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최선의 형태다.”
쉽게 얻은 힘에 대한 페널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기괴한 페널티지만, 몽스트릴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싶었다.
적어도 굶주리는 별이나 통곡하는 별이 외형에 신경 쓰진 않을 테니까.
***
마침내 도착한 곳은 무수한 거미줄이 쳐져있는 방이었다.
벌레들의 사체가 말라붙은 채 흩어져있고, 사방에 수정화 향기가 진동을 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창문 너머 골목 사이로는 수정화가 핀 구조물이 보였다.
“정말 데려왔네.”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공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무를 안내한 인면 거미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인면거미가 허공에 앉아있었다. 다만 머리카락이 단발 정도로 짧았다.
자세히 보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하현의 인면 거미(LV 63)]현무를 안내해 데리고 온 거미는 상현이고, 이 녀석은 하현인가.
그 외에 이름은 붙어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일단 편의상 자신을 데리고 온 긴 머리는 상현 거미, 단발은 하현 거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현 거미가 불만어린 표정으로 현무를 내려다보았다.
“언니는 정말 이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사후에도 기억의 연속성과 수정화에 접근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는 이 인간뿐이야. 이 인간이 수정화를 꺾으면 여왕께서도 의식을 찾으실 수 있을 거야.”
“시원찮아 보이는데. 포궁에 접근도 하기 전에 다 죽어가는 꼴이었잖아. 우리가 죽이지 않았으면 그대로 포궁의 양분이 되었을 텐데.”
좋아. 현무는 하현 거미가 자신에게 불만이 많다고 느꼈다.
사실 그게 당연하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상현 거미가 특수한 경우였다.
그만큼이나 이 상황이 특수하다는 뜻이고. 상현 거미는 하현 거미를 달래듯 조근조근 말했다.
“너도 찬성한 일이었잖니.”
“나야 언제나 언니가 하자는 대로 하니까.”
하현 거미는 불만이 있어도 상현 거미의 의견에 순응하는 쪽인 듯 했다.
‘그럼 결국 상현이 하자는 대로 하겠군.’
하현 거미는 현무 앞으로 내려왔다.
상반신은 멀쩡한 여자인데 치마 아래로 다리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얽히는 모습들이 기괴했다.
하현 거미는 현무 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잘 들어. 인간. 나는 세 가지 이유로 널 믿을 수 없어. 하나는…….”
“아, 됐고.”
현무는 하현 거미의 손을 탁 쳐냈다.
“내가 너희들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빌러 온 것도 아냐. 당장 계획이 있으면 그것부터 말해. 나도 너희들을 써먹을 만큼 써먹을 테니 너희들도 날 어떻게 써먹어도 상관없어.”
허세였다.
현무는 막다른 골목에 선 상태였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현 거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죽고 싶은 거냐?”
“해봐.”
현무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딘지 이미 봤고, 오는 길도 알아. 내가 다시 왔을 때 죽는 건 너다. 아니면 너도 나처럼 다시 살아나서 올 수 있나?”
하현 거미는 상현 거미를 돌아보았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무는 탐을 꺼내들 준비를 하면서 자신도 함께 상현 거미를 바라보았다.
상현 거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끼리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말이 통하는 자를 부른 거야. 우리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지. 인간은 수정화를, 우리는 여왕님을 구한다. 그러니 무례하게 굴지 마.”
하현 거미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투덜거렸지만 곧 상현 거미가 하라는 대로 물러섰다. 현무는 그녀가 물러서면서 풍겨오는 수정화의 향기에 미간을 꾹 눌렀다.
“수정화 냄새가 지독하군. 냄새는 너희들한테서 나는 것 같은데, 드나든 적 있나?”
하현 거미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냄새 맡아대지 않으면 좋겠는데.”
상현 거미는 현무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 한 번. 그 뒤로는 구조물 근처에만 접근해보았다. 하지만 건물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럼 냄새는?”
“직접 들어 갈수는 없으니까 대신 작은 우리들을 많이 나눠서 보냈다. 돌아오는 우리는 소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아마 냄새는 그때 배어온 것일 거다.”
“그런데 그 위험한 곳을 과부여왕거미는 왜 들어간 거야?”
현무의 질문에 인면 거미들은 침묵했다.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건…….”
“아, 됐어. 말하기 싫으면 마. 별로 안 중요하니까. 사실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고.”
하현 거미는 조금 자존심 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작은 우리라는 건 뭐야, 다른 녀석들도 있어?”
상현 거미는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곧 손끝이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쏟아지는 것은 무수히 많은 거미 떼였다. 먼지만큼 작은 거미들이었지만 제각각 레벨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상현의 거미들(LV 6)]그제야 현무는 인면 거미들이 무수히 많은 거미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밀착한 거미들이 인간의 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우리들의 힘도 약해지지. 처음 들어갔을 때에도 반 이상이 줄어서 나왔던 탓에 더 이상은 줄이기도 힘들다.”
상현 거미는 현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달라. 여러 차례 시도를 하면서도 전혀 힘을 잃지 않고 다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너의 육체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필요한건 육체뿐이다 이건가? 녀석들은 현무를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만만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상현 거미는 굳이 해명할 생각도 없다는 듯 물었다.
“괜찮겠지?”
현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현 거미의 제안은 현무로서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제안이었다. 오히려 맘에 들지 않는다며 거부할까봐 조바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녀석들은 더 이상 희생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겠지. 현무를 몇 번이고 버릴 수 있는 패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현무는 어차피 퀘스트라는 수렁에 목까지 담근 상태였다. 하지만 인면 거미들은 수렁을 빠져나가기에 적당한 발판이었다.
녀석들은 발목밖에 담그지 않았지만, 현무는 녀석들의 머리를 짓밟고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원치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원한다면야.”
현무는 상냥하게 은혜를 베푼다는 투로 대답했다.
***
가장 큰 문제는 수정화의 향기였다.
수정화의 냄새를 맡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덤벙거리게 된다.
인면 거미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먹이를 사냥할 때에도 냄새는 유용했으니까.
그렇다면 현무를 만나기 전에도 일부러 냄새를 잔뜩 묻히고 왔을 확률이 있겠다 싶었다.
“일단 수정화의 향기를 극복해야 한다.”
어느 폐허의 옥상. 상현 거미가 현무에게 말했다.
“수정화의 향기는 그 어떤 화학 물질보다도 강력한 중독성을 발휘하며, 대상의 순종성을 끌어내지. 그걸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최고의 쾌락은 아니겠지.”
“그렇겠지.”
“그래서 첫 번째로, 수정화의 냄새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지고의 쾌락을 맛보여줄 것이다. 의지력을 키우기 좋을 만큼.”
“살짝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알지?”
“교미 말인가? 교미의 쾌감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교미는 오히려 성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방지하거나 해소시키고자 하는 행위에 더 가깝지. 쾌락 그 자체만을 추구한다면 도박이나 마약을 하는 게 낫다.”
“그래서 나랑 도박을 하자는 건 아닐 테고, 약이라도 하려고?”
현무는 요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잔뜩 들여왔던 약물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현무에게 결국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부정적 약물 내성이 증가하긴 했지만, 애초에 요한이 쓰는 약은 뿅 가게 하는 효과라기보단 자신감을 키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때문에 상현 거미가 말하는 ‘쾌락’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보다 조금 더 위험한 거지.”
상현 거미는 현무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감정 없이 현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상현 거미는 현무의 손목을 들어 올렸다. 현무가 재빨리 경고했다.
“잠깐, 참고로 말하는데 내 피는…….”
“독성이 있다고? 우리는 과부여왕거미의 자식들이다. 동생도 나도 독성 내성을 보유하고 있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다행이군.”
“과부여왕거미에게 왜 과부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지 알고 있나?”
“사람을 너무 잘 죽여서?”
“아니.”
그녀의 송곳니가 번뜩였다.
현무는 피하지 않았다.
수정화의 향기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쾌락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페로몬을 온 몸에 받아들인 수컷들이 첫날밤에 모두 죽기 때문이다.”
상현 거미는 부드럽게 입을 맞추듯 손목에 송곳니를 꽂았다. 순간 현무는 뇌가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일 16시간 23분 15초.]***
“쓰레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구나. 인간.”
현무가 상현 거미와의 훈련…… 이것을 훈련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뇌를 불태우는 듯한 훈련을 한 뒤 만난 것은 하현 거미였다.
페로몬은 연달아 맞으면 내성이 급격히 생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기로 했다.
하현 거미는 사방에 거미줄이 쳐진 우중충한 골목에서 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가 너를 위해서 그 아까운 페로몬까지 줬는데 좀 더 좋은 표정을 하고 있어야지. 인간. 건방지게.”
“페로몬…… 그거 대체 뭐냐? 마약 같은 거야?”
“그럴지도. 하지만 네가 대단한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말렴. 원래 우리들은 큰 먹이를 잡으면 다 그 페로몬을 놔. 쾌락에 중독되면 어떤 생명체든 순해지거든. 우린 먹이를 산 채로 먹으니까.”
“그럼 수컷은?”
“수컷은 교미를 마친 뒤 잡아먹으려고 놓는 거고.”
“이 뒤틀린 괴물들 같으니.”
“너도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잡아먹어버리겠다.”
상현 거미는 그나마 자신에게 표면적으로라도 상냥한데, 하현 거미는 그럴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허공에 앉아있던 하현 거미는 움직임 없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거미줄을 다루는 솜씨가 너무 능숙해서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언니는 네 정신을 개조할 거고, 나는 네 육체를 개조할 거야. 인간, 거미줄 을 다룰 줄 알더구나. 그것도 여왕님의 거미줄을.”
“인연이 좀 있지.”
“그런데 인간, 네가 다루는 방식은 너무…… 모욕적이야. 충격적으로.”
“송구스럽게도 쇤네가 태생이 절지동물이 아닌지라…….”
“비아냥대지 마라, 인간. 가진 재능을 다 못쓰고 있다는 건 죄야. 그것도 네가 여왕님의 거미줄을 쓰고 있다면.”
하현 거미는 의기양양하게 두 손을 포갰다가 펼쳐보였다. 순식간에 촘촘한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이 손 안에서 나타났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그게 뭐야, 실뜨기 같은 거야?”
“……실뜨기 따위와 비교하지 마라, 인간!”
아니, 생각해보니까 하현 거미가 직접 짠 것도 아니다. ‘작은 우리’인가 뭔가가 알아서 자글자글 짜준 거 아닌가?
현무는 그런 불만들을 궁시렁궁시렁 떠올렸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생산성 없는 대화다. 하현 거미와 굳이 오래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너랑 하는 건 뭔데?”
“거미줄을 다루는 법과 그걸 응용한 전투법이다. 말했지만 너는 너무 1차원적으로 거미줄을 다루고 있어. 우리에게 배운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다. 움직임이 달라진다면 그럼 구조물 안에 접근하기도 쉬워지겠지.”
현무는 나름대로 이해했다.
“실뜨기 아니면 자수라는 거군.”
“너와 지내는 게 썩 즐거울 것 같지는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