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58)
지옥에서 독식-158화(158/346)
158화. 거미줄에 걸린 달 (2)
현무는 상현 거미와 하현 거미와의 훈련을 매일 번갈아가며 반복했다.
둘의 훈련을 요약하자면 상현 거미는 정신력을, 하현 거미는 육체를 단련시킨다고 할 수 있었다.
상현 거미가 첫날 페로몬을 주입했던 것은 맛보기로 보여주었을 뿐, 이후로는 지극히 적은 양만을 투여했다.
그것만으로도 현무는 피폐해질 정도였다. 중독성 또한 굉장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죽어서 초기화를 해야 할 정도였다.
[정신 오염 내성이 상승하였습니다.]좋은 소식은 죽었다 살아 날 때마다 내성이 부쩍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페로몬을 온전히 몸 안에 담은 채로 회복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수정화의 향기는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했으니, 상현 거미의 방법이 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성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현 거미는 단순히 페로몬을 투여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통제하고 명상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의식을 나눠. 수정화에 집착하는 네 자아를 따로 분리하고, 육체를 움직이는데 집중하는 자아들을 따로 둬라. 손을 움직이는 의식, 다리를 움직이는 의식. 근육마다 의식을 나눠서 스스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게 두고 수정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해라.”
“아니, 그게 가능해?”
상현 거미는 말없이 수천만 마리의 거미로 이루어진 자신의 육체를 보여주었다.
“나는 많게는 수만 개에 이르도록 자아를 나눌 수 있다. 물론 쪼갤수록 단순하고 저열해지지만, 네게 그렇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아냐. 딱 사지를 움직일 정도로 단순하더라도 서너 개 정도의 인격을 가져봐라.”
애초부터 여러 마리가 모여서 하나의 육체를 이룬 경우랑은 다르지 않나. 왜 이것들은 태생적으로 무리인 요구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현 거미는 현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현무는 정신분열증이 걱정되더라도 노력이나마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페로몬을 주입받을 때 명상을 통해 최대한 다른 쪽에 의식을 집중해보려 했다.
당혹스럽게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현무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배틀 헬퍼에 추가된 특성인 ‘반응방어’ 특성이었다. 배틀 헬퍼가 발동한 동안 반응 방어는 육체만이 아니라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을 시작했다.
페로몬을 맞고 미쳐 날뛰려는 현무를 억제하고 멈춰 세운 것은 반응방어 특성이었다.
덕분에 대략 2초 정도는 차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뒤의 후폭풍은 적지 않았지만.
“통하긴 통하네.”
현무는 피골이 상접한 표정으로 상현 거미에게 말했다. 상현 거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될 줄 알았다. 너는 너를 좀 더 믿을 필요가 있어.”
“될 줄 알았다고? 나의 뭘 보고?”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고, 이 세계에서 동족 하나 없이 고통 받으며 사는 인간이 제정신일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너는 이미 고통 받는 자아와 적응하려는 자아를 자연스럽게 분리하고 있어. 그건 다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을 분리하는 것보다 고급스러운 방식이다.”
자아가 분리되어 있다고? 현무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딱히 자신이 이중인격이랄 만큼 혼란스러운 행동을 한 적도 없으니까. 현무의 표정을 본 상현 거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두 의식간의 경계는 확고하게 나뉘어져 있지만, 일부러 의식하기는 힘들 거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경계가 옅어 질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때까지 의식조차 못했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된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네 감정의 일부처럼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겠군.”
“흠, 좀 걱정되는데.”
“걱정마라. 그건 대단한 장점이니까.”
상현 거미는 모처럼 미소를 띠며 말했다.
“상시적으로 의식분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정신력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너는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무적일지도.”
대신 상처는 모두 다른 의식이 받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게 더 불안하게 들린다.
“요령은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단순히 진정할게 아니라, 의식을 나눈 상태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법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늘리는 법을 익혀야한다.”
“언제까지 할 건데?”
“내 페로몬에 내성이 생길 때까지. 그다음은 어차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수정화에 접근할 때야.”
***
상현 거미와의 훈련이 정적이었다면, 하현 거미와의 훈련은 상당히 격렬했다.
물론 육체의 격렬함이 아닌 머리에 핏대를 세우는 방향으로.
“아니, 대체 왜 천장을 걷질 못하겠다는 건데!”
“내가 무슨 거미남자인 줄 아냐? 대체 거미줄로 몸을 어떻게 천장에 붙여? 거미줄이 나오는 건 오셰트의 육손 손아귀뿐이고, 거미줄이 그렇게 강력하지도 않거든?”
“거미줄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니까. 이미 거미줄을 쳐둔 상태라면 응용하기에 따라 부착해서 이동할 수 있다고!”
하현 거미는 걷기도 전부터 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가르침에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전혀 이해 안 되니까 네가 한번 해봐라.”
“그래! 자, 봐라! 자!”
하현 거미는 탁탁탁 허공을 몇 번 딛고 뛰어오르더니 천장에 바싹 붙어 섰다.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긴 했지만, 치마의 흐트러짐 하나 없이 지상에 있는 것처럼 차분한 모양새였다.
하현 거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현무를 내려다보았다.
“봐라, 이 무식쟁이 인간아!”
“그러니까 인간은 그렇게 가볍지도 않고 거미줄이 접착력이 강한 것도 아니라…….”
“네 거미줄이라면 무게는 상관없다니까, 멍청한 인간아! 내가 가벼워 보이냐? 너 강기 다룰 줄 알잖아? 마나를 거미줄에 잘 흘려보낸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네 마나를, 그러니까, 음, 이렇게 오오옷, 하다가 흐으으음 하고 흘려보내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오죽하면 모든 것에 대한 이해 +1 효과도 소용없는 것 같다.
심지어 현무는 하현 거미가 가르치는 방식이 너무 답답해서 상현 거미를 불러 차라리 대신 가르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미줄을 다루는 방법만큼은 동생이 낫다.”
상현 거미는 하현 거미처럼 허공에 가만히 앉아있을 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하현 거미는 숨 쉬듯이 해내고, 자유자재로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었다.
육체적 재능은 주었지만 지성은 빼앗아갔으니, 밸런스가 맞는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무는 오만한 자세를 포기했다. 상대가 수준을 낮추지 않는다면 자신이라도 태도를 낮춰야했다.
“네 재주가 실뜨기랑 자수보다 낫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나는 멍청하고 무능한 인간이라서 못하겠거든.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않을래?”
“하, 인간. 내 덕분에 겸손한 태도도 배우는구나. 좋아, 할 수 없이 가장 어린 거미도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보여주도록 하지.”
겸손한 태도를 배워야 할 사람이 또 한명 여기 있는 것 같다.
하현 거미는 ‘기초’라고 일컫는 것부터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가르침이 매우 신묘하고 기괴했기 때문에 현무는 제정신인 상태로 해낼 수가 없었다.
혹시 이러다가 정신 오염 내성이 상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현 거미가 대뜸 3, 4, 7, 9를 알려주고, 현무는 거기서 알아서 1, 2, 5, 6, 8을 찾아내야 하는 식으로 터득해나갔다.
모든 것에 대한 이해 +1과 배틀 헬퍼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걸음마도 못 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침내 벽에 붙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상에서 딱 30cm 정도 높은 위치에서, 10초정도 붙어있었을 뿐이지만.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인간. 그래서 언제 나처럼 할 수 있겠어?”
하현 거미는 허공에 걸터앉은 채 한숨처럼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천장을 기어 다니는 놈들과 어떻게 비교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현무는 지금 태어난 지 3일 차에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포궁까지 닿는 시간을 단축하려면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뛰고 도약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해. 인간, 좀 더 노오오오력을 해라. 노오오오력을!”
현재로선 하현 거미가 하듯이 허공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벽이나 천장처럼 단단히 딛을게 있어야 가능할 뿐이었다.
상현 거미가 보기에도 현무가 포궁 진입 때까지 그게 가능할 거란 기대는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현무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어차피 감은 익혔으니까 그 다음은 순식간이야.”
“매미처럼 벽에 찰싹 달라붙은 꼴로 뭐라는 건지.”
하현 거미는 현무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무너지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이러한 과정이 만들어낸 생각지 못한 성과는, 현무의 수정화에 대한 집착이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정화는 코끼리다.
코끼리에 대해 상상하지 말라고 말하면 머릿속에서 코끼리는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법이다.
저주: 거미줄은 그런 효과를 거는 저주였다. 의식할수록, 발버둥 칠수록 집착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현무는 거미들과의 훈련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노곤노곤하게 만든 탓에 수정화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퀘스트가 시작되고 42일째.
상현 거미는 현무의 손목에 페로몬을 놓았다. 그리고 현무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현무의 얼굴이 꿈틀하긴 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무는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이 생겼군.”
상현 거미의 말에 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상현 거미의 말만큼 상황이 단순하지는 않았다.
현무는 페로몬에 대한 내성을 습득함과 동시에, 새로운 특성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독혈에 ‘페로몬’ 특성이 추가됩니다.]페로몬을 잔뜩 투여 받을 때부터 기대했던 것이기는 했지만 정말로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상현 거미는 현무의 피가 묻은 자신의 송곳니를 더듬어보다가 말했다.
“네 몸 안에도 페로몬이 흐르게 되었군.”
“아, 그게 느껴지나?”
“그래. 다만 참고로 알려주는 건데, 이 페로몬은 남자에게만 통한다.”
“…….”
“뭔가 기대한 것이라도?”
“아니…… 딱히…… 없어.”
상현 거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너는 훌륭하게 배웠다. 솔직히 감탄스럽군. 네게 거는 기대가 크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다. 분명 인간 문명이 건재했다면 너는 대단한 지성인이거나 탁월한 리더였겠지.”
미천한 고졸입니다만, 이라는 말은 뒤로 씹어 삼켰다.
“문제는 동생과 하는 수련이군. 이쪽은 상당히 빠르게 따라잡았는데, 하현과의 수련은 다소 부진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현 거미가 그렇게 말하든?”
“다소 격하게 말하긴 했지만, 비슷하게 말하더군.”
현무는 조소했다.
“아, 그래? 어지간히 속상했던 모양이네.”
***
현무는 붕괴된 골목 안쪽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동시에 하현 거미가 뒤쪽에 무섭게 따라 붙어 다리를 휘둘렀다.
등 뒤가 아슬아슬하게 베이는 감각과 함께 현무는 허공으로 도약했다. 허공을 밟은 현무는 재차 한 번 더 뛰고, 연달아 위로 뛰어올랐다.
현무가 허공을 밟을 때마다 골목에 미세하게 쳐둔 거미줄이 보랏빛으로 타오르며 흔들렸다.
하현 거미는 눈에 불을 켜고 현무를 향해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둘은 그 어떤 거미줄도 끊지 않고, 사이사이로 도약하고 회피하며 골목의 끝을 향해 질주했다.
마침내 골목의 끝에 다다르기 직전, 하현 거미는 놔줄 수 없다는 듯 몸을 회전 시켰다.
순간 골목에 있던 거미줄들이 일제히 풀려나며 현무를 향해 그물처럼 달려들었다.
거미줄이 붕괴되자 현무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발 디딜 곳을 잃어버렸다.
그대로 포획당하는가 싶던 순간, 현무는 거미줄들을 ‘맹약의 구속’으로 변화시켰다.
“야!”
현무는 하현 거미의 고함을 무시하고 그대로 하현 거미가 했던 것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쇠사슬들이 다시 사방에 흩뿌려진 순간, 다시 거미줄로 변화했다. 새롭게 짜인 거미줄을 딛고 현무는 마침내 골목 끝에 안착했다.
현무는 벽 끝에 손을 짚고 승리를 선언했다.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