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60)
지옥에서 독식-160화(160/346)
160화. 거미줄에 걸린 달 (4)
현무의 동공이 보랏빛으로 물든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하현 거미가 흠칫한 순간 현무는 거미의 다리를 꽉 움켜쥐었다.
안으로 무언가가 파고들어오는 감촉에 하현 거미는 재빨리 현무의 목에서 손을 떼내고 물러섰다.
현무의 손은 떨어졌지만, 무언가가 길게 늘어졌다.
거미줄이었다.
“성가신 것을!”
하현 거미는 고함치며 거미줄을 바로 잘라내려 했다. 하지만 거미줄은 끊어지는 대신 탄력 있게 늘어나며 다른 손에도 옮겨 붙었다.
예상치 못한 강도에 당황했지만, 하현 거미는 그것에 더 신경 쓸 수 없었다.
현무가 그녀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하현 거미는 반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현무는 그녀와 부딪치는 대신 허공으로 도약했다.
골목을 가득 메우다시피 한 수천 가닥의 거미줄.
현무는 그것을 딛고 뛰어오르고 있었다. 하현 거미는 코웃음 쳤다.
공중전에서는 더더욱 현무의 승산이 없다.
“거미 앞에서 거미줄을 타고 도망치겠다고?”
하현 거미와 상현 거미는 현무를 향해 빠르게 도약했다.
설상가상으로 현무는 거미줄에 발을 딛다가 줄이 끊어져 휘청거렸다.
하현 거미는 이를 드러냈다.
같은 거미줄처럼 보이지만 현무가 친 거미줄과 인면거미들이 친 거미줄은 완전히 다르다.
진짜 거미조차도 다른 거미가 친 거미줄에 걸리기도 한다.
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강도와 통제력, 어느 면을 디뎌야 안전한지 정도는 본인이 아니면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부터 배워와!”
하현 거미가 호통을 치며 현무의 발에 다리를 꽂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휘청거리며 다리가 크게 빗나갔다. 그녀가 딛고 있던 거미줄이 끊어진 것이다.
하현 거미는 휘청이다 간신히 다른 거미줄에 매달렸다.
상현 거미는 괜찮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멈춰 섰다.
하현 거미가 거미줄에서 떨어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상현 거미는 현무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현 거미는 눈을 부릅뜨고 하현 거미를 향해 소리쳤다.
“동생, 인간이 꽂아 넣은 그 거미줄을 끊어!”
하현 거미는 왜냐고 묻는 대신 곧장 시키는 대로 거미줄을 잡아 뜯어냈다. 거미줄이 뜯어낼 때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깊숙이 박혀있었다.
하현 거미는 거기에 현무의 피가 묻어있음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순간 하현 거미가 매달려 있던 거미줄마저도 끊어졌다.
하현 거미는 서둘러 벽에 달라붙어 재빠르게 기어 올라갔다.
거미줄이 없어도 그녀는 입체 기동에 능숙했다. 상현 거미도 맞춰서 거미줄을 타고 올라갔다.
하지만 현무는 아까 떨어질 뻔 했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능숙하게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신의 것 마냥 가볍게 몸을 튕기면서.
“언니, 이 녀석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리들이 친 거미줄의 패턴을 완전히 알고 있어!”
“그건 알겠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친 거미줄을 못 쓰고 되려 저 인간이 자기 것처럼 쓰는 거야? 이건 우리가 친 거미줄이잖아?”
그건 상현 거미도 설명할 수 없었다. 거미줄의 패턴은 지문만큼이나 복잡하지만, 시간을 들여 분석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다른 거미들이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하현에게 거미줄을 꽂아 넣었을 때 뭔가를 했나?’
독성이 그녀에게 무언가 혼란을 주었나?
상현 거미는 불안감을 느꼈다.
현무를 먼저 따라잡은 것은 거미줄을 타고 올라간 상현 거미였다. 하지만 현무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팔을 휘둘렀다.
순간 폐허의 거미줄 전체가 크게 출렁였다. 상현 거미는 떨어지지 않고 간신히 매달렸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담겼다.
현무는 이곳의 거미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친 거미줄이 전부 자신의 것인 것 마냥.
현무는 허공에 매달려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점점 거미줄이 흔들리는 진폭은 커지고 있었다.
이러다 거미줄이 끊어지거나 상현 거미가 먼저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언니!”
거미줄이 이 모양이니 하현 거미도 타고 올라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현 거미는 아예 현무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했다.
진폭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상현 거미도 아예 반동을 이용하기로 했다.
상현 거미가 뛰어오르기 위해 거미줄 하나에 몸을 싣는 순간, 현무의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아차.’
순간 상현 거미가 무게를 실은 거미줄이 맥없이 툭 끊어졌다.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현 거미는 맥없이 허공을 차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현무는 하현 거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뭔가를 한 것처럼 느끼게 했을 뿐이다.
독을 넣고, 거미줄을 박고, 거미줄에서 떨어뜨림으로서.
하지만 실제로 현무가 해낸 것은 하나뿐이었다.
거미줄의 패턴을 분석하고, 그 이상으로 장악까지 할 수 있었던 것.
타인의 거미줄을 자기 것처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현무의 장악 능력이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상현 거미는 떨어지는 자신을 보고, 분노한 표정으로 현무를 향해 도약하는 하현 거미를 발견했다.
그제야 상현 거미는 현무의 의도를 눈치 챘다.
“녀석은 나와 너를 떨어뜨릴 생각이야!”
상현 거미의 경고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었다.
하현 거미가 현무를 물어채기 위해 도약한 순간 현무는 몸을 홱 틀었다.
하현 거미의 눈동자가 커졌다.
골목길의 경주에서 자신이 했던 것처럼, 골목 전체의 거미줄을 그물처럼 홱 걷어내는 기술이었다.
‘벌써 이 정도로 단련했다고?’
심지어 이번에는 쇠사슬로 변화시키지도 않았다. 하현 거미는 뒤늦게 다시 튕겨내려 했지만 거미줄은 끈적하게 몸에 들러붙었다.
하현 거미의 거미줄이 아니었다. 현무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동안 사방에 뿌려놓은 거미줄이었다.
하현 거미는 이빨을 빠득 갈았다.
“웃기지 마!”
촤악! 부드러운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현무의 거미줄이 산산이 흩어졌다. 현무가 딛고 있던 거미줄도 함께 찢겨나갔다.
무게 중심을 잃은 현무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현 거미는 현무의 가슴에 다리를 꽂아 넣기 위해 몸을 크게 젖혔다.
현무는 손을 뻗었다.
하현 거미는 한순간, 골목 일대에 보랏빛 실들이 가득해지는 것을 보았다.
거미 자매들의 거미줄이었다.
그녀들의 거미줄이 현무의 명령에 순응하듯 일제히 덮쳐왔다.
마치 뱀이 먹이를 물어 삼키듯, 수천가닥의 거미줄들이 하현 거미를 휘감았다.
현무가 날카롭게 속삭였다.
“잡았다.”
말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현무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지금 이 기술은 스킬도 뭣도 아니다. 거미줄 통제에 마나를 통한 강화, 의식 분리까지 거미 자매에게 배운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서 해낼 수 있던 기술이었다.
동물의 사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두뇌 사용량을 많이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기능이 복잡한 인간의 손은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런데 현무는 이 무수한 거미줄들을 일제히 통제하기 위해서 손이 여덟 개쯤 되는 감각으로 의식을 나눠야 했다.
하현 거미가 조금만 더 늦게 잡혔으면 현무는 공중에서 그대로 졸도 할 수도 있었다.
쿵! 거미줄에 휘감긴 하현 거미가 바닥에 떨어졌다. 현무는 재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다가갔다.
상현 거미가 방해하기 전에 완전히 제압하고, 그녀를 상대해야 했다. 그때 현무는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하현 거미가 붙잡혔는데 그 주둥이가 가만히 있다고?’
쌔한 느낌을 받은 순간, 현무는 뒷덜미에 날카로운 발톱이 닿는 것을 느꼈다.
“……설마하니 실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등 뒤에서 들려온 하현 거미의 목소리에 현무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너도 마찬가지잖아? 왜 이런 기술은 알려주지 않았어?”
현무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하현 거미를 걷어찼다.
하지만 그가 건드린 것은 내부가 텅 비어있는 거미집뿐이었다. 형태가 무너지자 하현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미집은 흩어져 사라졌다.
“이건 네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온 몸에서 거미줄을 뱉어낼 수 있어야하니까.”
“실력은 왜 숨겼지?”
현무 앞에 상현 거미가 나타나 물었다. 현무는 어깨를 으쓱였다.
“최대한 많이 배우고 싶어서. 여기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거든.”
하지만 상현 거미에게는 대답이 시원치 않은 듯 했다.
현무는 상현 거미와 하현 거미, 둘 모두의 거미줄 패턴을 완전히 분석하고 있었다.
마나를 통해 장악까지 가능할 정도로.
이건 하루 이틀 연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현무가 처음 만났던 날부터 연구해왔다고 봐도 좋았다.
그게 단순히 배움에 대한 욕구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상현 거미는 자신의 발톱에 힘을 주었다. 이 인간과 엮인 게 실수였을까?
하현 거미가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현 거미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었다. 여기서 현무를 해치는 것은 관계를 끊겠다는 뜻이 되니까.
상현 거미는 현무를 이해해보려 했다.
“납득 못 할 것도 아니군.”
상현 거미의 말에 하현 거미는 안도한 표정으로 발톱을 거둬들였다.
“우릴 해칠 의도가 있었으면 하현 거미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재빨리 처치했겠지. 하지만 네게선 딱히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알아봐주니 고맙네.”
현무의 대답에 상현 거미는 쓰게 웃었다.
괜한 걱정일 것이다. 현무의 재능이 너무나 놀랍고 경이로웠기 때문에 자신이 경계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합격이다. 인간. 이제 더 가르칠 필요 없을 것 같군.”
드디어 마지막 과정이었다. 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제 포궁에 들어갈 계획을 시작하자.”
이제 마지막이다.
현무는 상현 거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
어젯밤.
현무는 폐허에서 구해온 하현 거미의 거미줄을 잡아당겨보고 있었다.
현무의 마나가 들어간 거미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되려 의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손을 놓았음에도 짧은 시간 현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도 했다.
하현 거미는 이런 짓을 수시로 할 수 있다. 만약 전투가 발생한다면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하현 거미다.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한다.
상현 거미도 매우 강하긴 하지만, 둘을 동시에 상대한다면 현무에게는 전혀 가능성이 없었다.
때문에 하현 거미의 거미줄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자신에게는 기동성 강화를, 상대에게는 기동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는 장치니까.
필요 죽일는 없겠지
‘그래도 필요를 굳이 죽일리는 없겠지.’
현무는 곰곰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지금 한 생각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생각을 문법에 맞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이 그것을 똑똑히 인식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라기에는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한 생각.
현무는 거미줄을 내려놓고 한숨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몽스트릴.’
[속삭이는 별, 몽스트릴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이번에는 제법 반응이 빠른걸. 귀염성이 없어졌구나.’
‘네 퀘스트인데 네가 나대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대체 언제 나타나나 했다.’
현무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몽스트릴과의 대화가 즐겁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화조차 불가능한 다른 별들에 비하면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무슨 용무지?’
‘네가 먼저 말해봐. 뭐가 궁금한지.’
몽스트릴은 즐겁다는 듯 말했다.
‘대신 나는 네 질문에 대한 대답 하나당 묻지 않은 것을 추가로 알려주마.’
질문에 대한 대답 하나당 묻지 않은 것에 대한 답변을 추가로 하나 더, 라니. 현무는 몽스트릴이 당최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많이 알면 알수록 좋은 거 아닌가?
‘무슨 변태적인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좋아. 궁금했던 건 많으니까.’
현무는 몸을 기울이고 질문을 시작했다.
‘첫 번째. 왜 네 권속을 내 손으로 살해하라고 한 거야? 죄책감이라도 심어주고 싶었나?’
‘별 이유 아니야. 과부여왕거미는 내가 내린 명령의 수행에 실패했고, 수정화의 포궁 안에 갇혀버렸다. 흔히 있는 일이지. 연인의 부탁으로 절벽의 꽃을 꺾으러 간 젊은이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
‘생각보다 재미없는 이유인데.’
‘나는 꾸준히 나의 애인들로부터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한단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 또한 확실해. 하지만 이제 과부여왕거미는 스스로를 잃고 죽어가고 있어. 그렇다면 옛 애인된 도리로, 마무리 지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인면거미 자매에게 들었던 대로라면 포궁 안에 들어선 순간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몽스트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면거미 자매는 상관없이 구하고 싶은 듯하니 몽스트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듯 했다.
‘두 번째. 수정화는? 날 수정화에 질 좋은 생물비료로 쑤셔 넣을 생각 아니었어? 네가 틀림없이 수정화와 관계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수정화를 무척이나 좋아해. 나의 속성과 밀접하게 닿아있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야생화보다 꽃병 안에서 시들시들 죽어가는 모습을 좋아하거든. 물론 강현무, 당신까지 수정화의 양분이 되는 건 바라지 않아. 그러니까 그 애들이 있었지.’
‘그 애들?’
‘달의 거미들 말이야. 재미있는 아이들이지. 단순히 과부여왕거미를 보필하는 역할을 맡은 것 치고는.’
인면거미 자매를 말하는 건가? 그것도 몽스트릴의 안배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어쨌든 도우미 역할을 남겨놓은 걸 보니, 몽스트릴은 퀘스트를 영원히 깨지 못하게 만든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몽스트릴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이어갔다.
‘그 애들이 사실 인간이었던 걸 아나? 네가 만났던 허기진 자들처럼 말이야.’
‘뭐?’
‘네가 마주쳤던 허기진 자들처럼 저열한 권속들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게 충성을 바친 아이들이지. 뭐, 지금은 단순한 몬스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네겐 큰 차이가 없겠구나.’
상관없다.
몬스터는 몬스터다.
현무는 허기진 자들을 베고, 자르고, 부수고 씹어 먹기까지 했지만 인간을 해쳤다는 기분은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몽스트릴은 현무를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그 애들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