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66)
지옥에서 독식-166화(166/346)
166화. 새로운 질서 (2)
송여운은 자신의 혀를 깨물 뻔했다.
4성이라고만 해도 뒤집어 질 판인데 ‘그’ 강현무와 비슷한 형질이라니?
“그,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쵸?”
“진정하세요. 오빠, 아니 강현무 씨 덕분에 주목하기 시작한 형질일 뿐, 이때까지는 주목받지 않았던 것뿐이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주목받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관련 논문이 한 편도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지금도 유민 말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이제 막 연구를 시작했을 확률이 높았다.
송여운이 진정하는 듯하자 유민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4성이 된 것도 이 형질이랑 관련이 있을 확률이…… 송여운 씨, 제발 진정하시라니까요. 이어서 계속할게요. 일단 이 형질은 확장성이 높고 마나의 속성이나 밀도에 영향을 받기가 쉬운 걸로 보여요.”
유민이 이 형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로지 현무 때문이었다. 현무가 없었으면 그냥 고개만 갸웃거리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형질이었다.
“화, 확장성이 높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음, 그러니까 레벨 업이 빠르거나 다른 속성을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건데…….”
유민은 송여운에게 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고민했다.
사실 유민도 별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현무로부터 언뜻 듣기만 했을 뿐이다.
난이도: 지옥에는 별들이 있고, 그 별들이 자신을 탐낸다고.
난이도: 지옥이 미래라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실감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송여운 씨가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한번 해볼게요.”
유민은 송여운의 뒤로 돌아가 양 손을 머리에 얹었다.
그녀의 손끝이 송여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민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스킬: 변환(희귀)]유민이 능력자로서 각성하고 처음 얻은 스킬이었다.
전투나 지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굳이 따지자면 제작이나 해체 같은 부류였다.
너무나 낯선 스킬이었기 때문에 활용법도 알 수 없어서 오랫동안 익숙해지기 위해 애먹었었다.
하지만 전능련 팀의 헌터들은 좋은 실험 대상이 되어주었다.
유민의 눈앞에 송여운의 능력치와 스킬 등이 모호한 형태를 띄고 나타났다.
눈앞의 수치들은 유민이 전혀 모르는 숫자와 단어들이었지만, 그 의미는 알고 있었다.
유민은 그 중 송여운의 스킬, ‘척력’에 집중했다.
‘이걸, 이렇게 약간 틀어서…….’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송여운의 머릿속의 문자들이 순서와 배열을 바꾸며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민은 송여운의 스킬을 변환하는데 성공했다.
“휴우, 끝났어요.”
스킬을 끝낸 유민의 머리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난 작업이었지만 금방이라도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송여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한 거죠?”
유민은 마나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대답했다.
“송여운 씨의 스킬 ‘척력’을 약간 조절했어요. 사정거리를 줄인 대신 좀 더 위력이 강하게요. 어차피 채찍보다 먼 거리에 있는 적에게 척력을 사용할 일은 없으니까요.”
송여운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스킬의 수치를 조정한다니, 들어본 적 없는 스킬이다.
유민은 더 설명하는 대신 실험실 한편을 가리켰다. 실험실 안에 거대한 트롤 사체가 걸려 있었다. 실험해보라는 뜻이었다.
송여운은 실험실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트롤 사체에 손을 얹고 스킬을 사용했다.
‘척력.’
그 순간, 걸려있던 트롤 사체가 뻥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퍼퍼퍽 하면서 실험실 반대편에 고기 파편들이 튀었다.
송여운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트롤 사체를 쫙 반대편 벽까지 밀어내는 정도라야 했다.
그런데 이건 샷건이라도 쏜 모양새였다.
송여운은 기쁜 표정으로 유민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유민도 놀란 얼굴로 마시던 마나 포션을 입에서 줄줄 흘리고 있었다.
유민은 소매로 마나 포션을 닦으며 말했다.
“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알고 고친 거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송여운 씨 형질 때문인 것 같네요. 말씀드렸다시피 확장성이 높고, 마나의 속성이나 밀도에 영향을 받기 쉽다고. 그건 등급 상승 확률도 높다는 뜻이지만 다른 스킬에 영향을 받기도 쉽다는 뜻이에요.”
유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분야는 아직 그녀에게도 초보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송여운은 어쨌거나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뚜렷한 공격 스킬이 없다는 것은 그녀의 큰 고민이기도 했다.
근접형이라도 공격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생겼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저 같은 형질이 얼마나 희귀한 거죠?”
“케이스들을 확인해보니까 드물긴 해도 엄청 희귀하거나 한건 아니에요. 대충 능력자 만 명당 한 명 정도?”
전세계 능력자 수는 7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거기서 만 명 당 한 명이라면, 7천 명 정도라는 뜻이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마 등급 상승하는 비율에 개인차가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싶어요. 물론 그중에서 송여운 씨처럼 대뜸 4성에 올라서거나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겠지만요.”
“이런 게 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죠?”
“이때까지는 이 특징이 뚜렷이 의미 있을 만큼 마나 농도가 높거나 속성이 강했던 공간이 없었으니까요.”
유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난이도: 지옥을 떠올렸다.
송여운은 5성 던전에서 한계돌파를 겪은 것만으로도 4성까지 뛰어올랐다.
그렇다면 비슷한 형질을 가진 현무는 대체 난이도: 지옥에서 몇 단계까지 올랐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송여운은 상당히 기분 좋아보였다.
등급의 상승과 썩 마음에 드는 형질에 대해 알게 된 것, 그리고 스킬의 강화가 동시에 이뤄졌으니 당연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에요! 유민 박사님.”
“박사 아니에요.”
“앗, 아아! 네, 네! 그, 그런데 제 스킬을 바꾼 건 유민 님의 스킬인가요?”
“네.”
“남의 스킬을 바꾸는 스킬이라니, 대단하네요!”
송여운의 말에 유민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약간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뿐이었다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괜히 하나가 더 딸려와서…….”
하나 더? 유민에게 스킬이 하나 더 있단 말인가?
송여운이 호기심에 질문하려 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유민의 핸드폰이 붉은 빛을 내며 날카로운 신호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유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침입자네요.”
송여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요?”
***
유령 저택을 둘러싼 무성한 숲에는 아직도 나무 그늘 때문에 눈이 쌓인 곳이 흔했다.
그 가파른 경사를 따라 쌓인 눈 위로 갑작스럽게 발자국이 새겨졌다.
대략 열 명 정도 되는 검은 인영들이 바람과 함께 유령 저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유령 저택 곳곳을 둘러싸듯 설치된 CCTV에 고스란히 잡히고 있었지만 전신이 그저 시커멓게 보이기만 할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속도 그대로면 유령 저택까지 도착하는 것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땅 속에서 무언가가 픽 튀어나왔다. 검은 인영은 그것을 보자마자 몸을 던졌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퍼퍼퍼퍼퍼펑!
공중도약지뢰가 사방에 파편을 흩날렸다.
쇠구슬과 함께 마탄이 잔뜩 들어간 공중도약지뢰는 그대로 주변에 있던 검은 인영 둘을 ‘찢어’ 놓았다.
재빠르게 사각으로 피한 검은 인영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그런 은, 엄폐까지 고려한 덫들이 더 설치되어 있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각을 겨냥하고 있던 크레모어가 폭발했다.
순식간에 또 하나의 검은 인영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폭발이 연달아 이어졌다.
순식간에 검은 인영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피해가 큰데다, 폭발까지 있었으니 잠입은 틀린 셈이다.
정상적인 인간들이라면 여기선 빠질 생각을 했겠지만, 검은 인영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검은 인영들은 둘로 나뉘어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두 명이 조를 이룬 쪽에서 또 한 번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 뒤로 더 이상 폭발은 없었다.
남은 세 인영은 드디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유령 저택을 향해 꾸준히 달려갔다.
“산에다가 저런 폭발물 설치해도 되는 거야? 여기 군사지역도 아닌데.”
갑자기 앞에서 들린 목소리에 검은 인영들은 몸을 숨겼다. 전능련 헌터 둘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군사지역 맞대. 청계 던전 경계지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포함시킨 거겠지.”
검은 인영들은 아직 헌터들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보고 손짓과 눈짓을 교환했다.
이내 두 인영이 헌터들의 배후 쪽으로 은밀하게 이동해 기습을 준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등산객들은 길이나 사유지 구분도 없이 막 들어오잖아. 괜히 휘말리면 어떻게 하려고?”
“CCTV는 괜히 설치했겠냐? 동작감지 카메라만 수백 대라는데. 적이라고 판단될 때만 폭발하도록 설정했대. 믿음직스럽죠, 아저씨들?”
헌터들은 배후로 접근해오는 검은 인영들을 향해 돌아서는 동시에 스킬을 퍼부었다.
검은 인영은 갑작스러운 대응에 당황하며 간신히 막았지만, 등 뒤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검은 인영들 배후로 또 다른 헌터들이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들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던 CCTV화면을 숲 한쪽을 향해 들어올렸다.
“다 보여요. 아저씨.”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한명의 검은 인영은 재빨리 몸을 던져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공격이 스쳐지나갔다.
헌터들은 쓸데없는 경고를 해준 헌터를 욕하고 구박하며 서둘러 검은 인영의 뒤를 쫓아갔다.
“너는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선!”
“아니, 이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지! 다른 놈들보다 훨씬 빠른데?”
헌터의 말대로 마지막 남은 검은 인영은 다른 검은 인영들의 몇 배는 빨랐다. 헌터들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유령 저택 앞에는 헌터들이 몇 명 더 기다리고 있었다.
“멈춰!”
대략 셋.
그리 레벨이 높지는 않지만 검은 인영은 이 헌터들을 다 처치하고 지나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 상대하다가 다른 헌터들이 도착하고 말테니까.
검은 인영은 망설임 없이 헌터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헌터들이 무기를 휘두른 순간, 순식간에 검은 인영이 둘로 갈라졌다.
둘로 갈라진 인영 중 하나가 헌터들을 상대하는 사이, 남은 하나는 바로 문 안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문 안쪽에는 예상치 못한 난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쾅! 송여운의 ‘척력’ 스킬에 검은 인영은 팔다리가 비틀린 채 그대로 문 밖으로 튕겨나갔다.
송여운은 이를 드러내며 튕겨나간 적을 찾았다. 좁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그녀를 지나쳐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곧 당혹스러워졌다. 문 앞을 지키던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상대하던 검은 인영이 쓰러뜨리자마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송여운의 머릿속에 안 좋은 예감이 스쳤다.
CCTV로 봤던 녀석은 모습을 나누는 능력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스킬을 쓰기 직전, 놈이 모습을 또 나눈 것이라면?
“유민 박사님!”
송여운은 서둘러 연구실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연구실에서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송여운은 창백한 표정으로 달려갔다.
유민처럼 가느다랗고 여린 학구파에게 적에 대항할 능력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그녀의 스킬은 변환이라는 애매한 것뿐이다.
쾅, 콰직!
그 순간, 문 밖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얼굴이 뭉개지고 있는 중인 검은 인영이었다.
그 위로 무언가가 올라타서는 마구 두들겨 패며 뭉개놓고 있었다.
검은 인영은 힘겹게 모습을 나누려 했지만, 결국 또 붙잡혀 뭉개지고 말았다.
“그만해.”
검은 인영이 완전히 멈추고서야 흰 가운을 입은 유민이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송여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민과 검은 인영 위에 올라탄 ‘그것’을 바라보았다.
“유민 박사님, 저거…….”
“박사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저거 제가 아는 그거 맞나요?”
“맞아요. 외골격.”
검은 인영 위에 올라탄 것은 현무가 입고 다니던 외골격이었다.
현무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멋이 안 난다는 이유로 결국 버린 물건이지만, 유민은 외골격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는 유민의 스킬 덕분에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안에 오빠 전투 데이터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이럴 때 쓸만하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배터리로 쓸 수정이끼야 이미 충분하니까. 그건 그렇고.”
유민은 현무의 외골격을 치우고, 검은 인영의 목을 꾹 밟으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얘, 전에 왔던 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