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74)
지옥에서 독식-174화(174/346)
174화 검은 옷을 입은 자 (1)
‘강해지는 법?’
현무는 마치 애 같은 요청에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적나비, 이 녀석은 어딘가 이상하다.
현무는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좋아.”
적나비가 반색하는 표정을 짓기도 전에 현무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런데 따라올 순 있겠어?”
***
마을 중심부의 던전에 들어서자 바로 독한 연기 냄새가 났다.
사방에 타다 남은 불씨와 재가 흩날리고 있었다. 대화재라도 스쳐 지나간 듯 했다.
바닥에 검게 탄 나뭇가지가 파삭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나무들은 은은하게 타오르며 열을 뿜어냈다.
현무는 가까이 있던 나무에 손대보았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던 나무는 현무가 떠미는 손길에 파삭거리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흩날리는 재에 적나비는 소매로 입가를 가렸다.
“불이라도 난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불같은 건 나지 않았었는데.”
던전 입구의 형상은 그저 검게 말라붙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었다.
화재가 일어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던전 자체에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기믹인지도 모르지만, 경험상 던전의 이변은 헌터들에게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언덕 위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해골 병사였다.
녹슬다 못해 여기저기 걸레처럼 부서진 갑옷을 입고 있는 해골 병사는, 현무를 보자마자 칼을 들고 괴성을 내질렀다.
[해골 기수(LV 45)]늑대인간과 레벨이 비슷한 몬스터였다.
설마 기대했는데 겨우 4성 밖에 안 되나 싶어 실망한 순간, 해골 기수가 깃발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잿덩이가 된 나무들 사이로 새로운 기척들이 스멀스멀 나타났다.
무수한 숫자의 해골 병사들이었다.
[해골 병사(LV 35)]전원 갑옷에 무장까지 갖추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해골 병사들은 절그럭거리며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왔다. 적나비는 굳은 표정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보통 헌터들이라면 창백해질 만한 풍경이었지만 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것 같군.”
“예?”
“일단 여기부터 정리해봐. 그 다음 얘기하자.”
적나비가 뭐라 하기도 전에 현무는 훌쩍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현무는 적나비를 두고 언덕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적나비는 꼼짝 못하고 해골 병사들 무더기 한가운데 둘러싸이게 되었다.
“강현무 씨!”
적나비의 외침은 공허했다.
하지만 이미 현무는 사라지고, 해골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적나비는 굳은 표정으로 손발을 붉은 오러로 둘렀다.
***
현무는 먼 곳에서 기척을 숨긴 채 적나비를 바라보았다.
실력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는 환경이다.
현무가 파악한 적나비의 레벨은 30. 해골병사 한 마리도 상대하기 힘든 레벨이었다.
그녀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냥 개죽음을 당하겠지.’
하지만 현무는 적나비가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일단 동맹의 일원인데다, 저렇게 레벨이 빨리 오르고 있는 핫한 신입 헌터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난이도: 지옥을 들락거리는 현무와 비견할 만한 속도였다.
‘적나비, 강해지고 싶다고 했지. 그럼 우선 네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줘야 할 거다.’
현무는 적나비가 틀림없이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보았다.
이내 해골 병사 하나가 적나비에게 달려들었다. 적나비는 붉은 오러를 두른 손으로 민첩하게 해골 병사를 후려쳤다.
재빠르고 강력한 타격.
무술을 기반으로 한 적나비의 공격은 해골 병사의 장갑을 순식간에 깨뜨리고 내부에 효과적인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해골 병사 하나를 쓰러뜨리는데 거의 30초 이상이 걸렸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를 부상하나 없이 해치운 건 놀라운 솜씨였지만, 그 사이 해골 병사들이 적나비에게 달라붙었다.
두 번째까지도 적나비는 분전했지만, 이내 선혈이 튀어 올랐다.
적나비의 표정에 고통이 떠올랐다.
‘설령 숨기고 있는 게 없었다고 해도, 제 발로 따라온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미개척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적나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목숨을 걸 각오도 없이 들어오지는 않았겠지.
적나비는 두 번째 해골 병사에 이어 세 번째 해골 병사까지도 쓰러뜨렸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담담한 분노와 전의가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생명의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본 실력을 보이는 게 좋을 텐데.’
이내 적나비는 완전히 해골병사들에 둘러싸였다. 현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기서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
“이런 젠장.”
현무는 박휘소의 얼굴이 떠올라 버렸다.
적나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며 걱정하던 그의 얼굴을.
현무는 아직도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있는 해골 기수의 머리를 향해 냅다 지옥 다트를 집어 던졌다.
해골 기수는 뭐에 당하는지도 모르고 지옥 다트에 닿는 순간 펑 머리가 터져나갔다.
“적나비!”
현무는 쇠사슬을 뽑아 주변을 일시에 확 쓸어버렸다. 허리 이상 높이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한순간에 추수되듯 날아가 버렸다.
적나비가 휘말릴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그녀가 아직도 두 발로 서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현무는 쓰러져 있는 적나비에게 칼을 꽂아 넣고 있던 해골 병사의 상반신을 걷어차 날려버렸다.
그리곤 여전히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적나비에게 상급 회복 포션을 꺼내들었다.
수정석으로 만들 수 있게 된 포션 중 하나였다.
“끅, 커억.”
적나비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것은 핏물뿐이었다.
현무는 그 입에 포션 병을 꽂아 넣었다.
제대로 삼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몸에 꽂힌 칼도 뽑아 대충 세 군데 쯤 포션 병 주둥이를 쑤셔 박았다.
적나비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상 대부분은 아물었다.
장기 손상도 어느 정도 있을 법 했지만, 능력자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상급 포션의 힘 덕분에 금방 움직일 수는 있었다.
아마 의사는 며칠 요양하라고 말하겠지만…….
“삼도천 구경 좀 했냐?”
적나비는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처럼’ 강해지는 과정의 체험판 쯤 겪은 거야. 아직도 강해지고 싶냐?”
“네.”
대답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왔다.
“방금 죽을 뻔 했으면, 조금 고민하는 표정이라도 하지 그래?”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살았으니 다시 노력해야죠.”
현무는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주제에 용케도 아직 살아있군.’
솔직히 말하자면, 적나비는 현무가 헌터팀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던 가장 이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전능련에서 헌터 팀을 막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운이 좋아 송여운이나 서지후 같은 인재를 찾긴 했지만, 실제로 후보들 중 끝까지 팀원이 되는 비율은 20%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현무가 희귀 아이템과 포션을 퍼주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남았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적나비는 달랐다.
마냥 강해지고 싶다는 곧고 직선적인 욕망과 그 과정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
‘문제는 그 동기가 뭐냐는 거지만…….’
현무에게 그 동기는 분노였다. 하지만 적나비는 여전히 고요했다.
현무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섶 아래에 있을 귀환석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적나비가 난이도: 지옥에 갔을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마 난이도: 지옥에서 귀신같이 적응했을 인재였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성장 속도가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현무는 전능련의 무수한 능력자들 중에서 그런 인재를 찾아보려 했지만, 실제로 보게 되자 어딘가 오싹해졌다.
현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뭐 해, 계속 누워있을 거야?”
적나비에게 잠깐 당황하는 표정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환각통이 남아있을 뿐, 신체의 대부분은 치유된 상태였다.
위장과 폐에는 피가 아직 남아있었는지 일어서자마자 구토와 기침을 반복했다.
하지만 현무는 그녀의 상태를 무시하며 말했다.
“단련 한번 빡세게 해보자고.”
***
해골 숲. 현무는 이 잿덩이 숲에 해골 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뭐라고 부르긴 불러야 하니까.
적나비를 단련시켜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현무가 가르친 것은 그녀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현무는 난이도: 지옥에서 얻은 생존법과 팁, 전략을 주로 가르쳤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던전 자체가 5성급으로 추측되는데, 고작 30레벨 초반대인 적나비는 개죽음 당하기 쉬운 환경이다.
거기다 적나비는 우직한 무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강해지는 데는 최적인 성격이지만 죽으면 강해져봤자 아무 소용없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도 가르쳐야 했다. 적나비의 방식은 좀 꽉 막힌 감이 있었으니까.
“일단 살아남아. 그 다음은 다음에 얘기하자.”
그뿐이었다.
애초에 현무가 이 던전을 방문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자신보다 서너 살 어린 적나비를 돌봐주려고 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과 무골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발목 잡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무는 대개 적나비를 방치해둔 채 떠나곤 했다. 그럴 때면 멀찍이서 하현이 적나비의 감시를 맡았다.
적나비가 숨긴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주안점을 두면서.
하지만 그녀를 가르치는 게 재밌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나비는 꽉 막힌 무골 같던 인상과 달리, 스펀지처럼 빠르고 유연하게 현무의 가르침에 적응했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고, 대련을 할 때마다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이 보였다.
사실 체술 면에서는 크게 가르칠 것도 없지만, 응용력이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적나비가 오러마스터라는 스킬에 집착하기 때문이었다.
장비가 강화되고, 스킬도 늘어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현무는 적나비에게 좋은 장비를 주고 싶은 욕심에 시달렸지만, 적이 될지도 모르는 상대의 전력을 강화시켜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저, 그런데 강현무 씨.”
사흘째.
한바탕 대련을 마치고 숨을 몰아쉬고 있던 적나비가 입을 열었다.
“왜?”
“왜 저를 단련시켜주시고 계십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현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적나비는 빚을 진 사람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본래 이 던전에 저를 앞세워 탐색하는 조건으로 들어오신 걸로 아는데, 저는 탐색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괜히 포션과 식량만 축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아아, 그거.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네가 여기 있는 걸로 목적은 다하고 있으니까.”
“예?”
현무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괜히 적나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가 나가야겠다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적나비의 레벨은 부쩍부쩍 오르고, 특성 하나, 스킬도 하나 생겼다. 죽을 뻔 하긴 했지만.
오러를 장풍처럼 일순간 쏘아내는 특성과 점멸이라는 스킬이었다.
점멸 스킬은 빠른 순간 원하는 방향으로 짧은 거리 이동하는 스킬로, 현무마저 탐낼 정도의 스킬이었다.
공격용으로도 도주용으로도 응용하기 좋은데다, 적나비의 체술과도 호응이 좋았다.
6일째.
적나비는 빠른 성장을 거뒀지만, 이제 단련은 여기까지였다.
“강현무.”
적나비라는 덫이 효과를 다했기 때문이었다.
현무가 적나비의 쉘터를 찾아가자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핏발 선 눈으로 이지태가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나비는 혼이라도 난 건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현무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인사했다.
“여, 이지태 씨.”
현무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반응하자 이지태의 눈썹이 올라갔다.
“……강현무 씨, 당신이 적나비를 붙잡아두고 있던 겁니까?”
“응.”
현무의 말이 짧게 나오자 이지태는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불쾌해하며 따지는 대신 더 중요한 걸 묻기로 했다.
“당신, 적나비가 무슨 임무를 수행 중이었는지 알면서 그렇게 남의 클랜원을 멋대로 붙잡아두다니 제정신입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압니까? 적나비가 죽을 뻔했다는 예감이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예감?”
현무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이지태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유달리 흐트러진 모습을 자주 보이는 걸 보아하니 그 역시도 적나비를 아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야 재밌겠지. 키우는 맛이 있으니까.
“내가 붙잡은 거 아니야. 쟤가 가르쳐달라고 한 거지.”
“설령 그렇다 해도 어른이면 마땅히 돌려보내야지요!”
“쟤도 어른인데? 그리고 이제 됐어.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도 돼. 용건은 끝났으니까.”
“예?”
되돌아온 질문은 이지태가 아니라 적나비에게서였다.
“강현무 씨, 설마 제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건 이지태 단장님을 던전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겁니까?”
이지태의 얼굴에 한순간 긴장이 스며들었다.
던전은 헌터들만의 공간인 동시에, 헌터들이 가장 많은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헌터들 사망원인의 10% 정도는 같은 헌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던전 안에는 법도, 경찰도 없으니까.
하지만 현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기다린 건 이지태가 아니라 다른 놈이야.”
현무는 고개를 돌렸다.
“너 말이야. 시커먼 놈아.”
숲 속에서 검은 인영들이 무수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무의 유령저택을 습격했던 검은 인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