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8)
지옥에서 독식-18화(18/346)
18화. 능력자 시험 (1)
씻고 나오자 그사이에 유민이 와 있었다. 잠깐 외출했었던 모양이다.
유민은 씻고 나오는 현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향했다.
유민은 조용히 씹고 있던 감자칩을 입으로 옮겼다. 현무는 타월을 허리에 두르며 투덜거렸다.
“눈이라도 좀 돌리지 그래.”
“너무 놀라서 눈도 못 돌렸네. 어디 갔다 왔어요? 며칠 동안 안보이던데.”
“운동.”
유민은 빤히 현무를 바라보았다. 이미 현무의 몸을 여러 차례 봤던 그녀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고작 하루 만에 현무의 몸은 어딘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운동선수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고대의 전사 같은 느낌이 풍길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상처도 많았다.
“어…… 오빠 몸이 좋은 줄은 알았는데, 음, 이 정도였나?”
“원래 운동하고 나면 근육이 펌핑돼서 그래.”
“좀 징그러울 정도인데.”
“근육이 듣고 삐진다.”
유민은 헹, 하고 웃으면서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무는 옷을 걸치고 끓일 물을 올렸다. 오랜만에 끼니다운 끼니, 라면을 끓여 먹을 시간이었다.
현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한창이었다.
[야당은 오늘 N모 정치인에 대한 특검 중간 수사 발표에 대해…….] [KDI는 올해 하반기 경제 성장률을 2.3%에서 2.5%로 상향 조정을…….] [태성 클랜의 이지태 단장이 백두 던전 원정 계획을 발표…….]“유민아, 소리 좀 키워 봐.”
유민은 TV 소리를 키웠다. 뉴스에선 이지태의 새로운 원정 계획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이지태가 직접 연단에 서서 내년 이루어질 새로운 원정에 대해 발표 중이었다.
[백두 던전 봉쇄는 저희 태성 클랜의 숙원 사업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저희 태성 클랜은 장기간에 걸친 계획 끝에 충분한 준비를 마쳤으며, 총 2년, 3단계에 걸쳐 백두 던전의 핵심에 접근할 방침입니다. 정부는 이 같은 태성 클랜의 발표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와, 백두 던전 봉쇄라니. 이번에는 진짜 하는 건가?”
유민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현무도 솔직히 동감하는 심정이었다. 던전이 개방된 뒤 개판이 된 나라는 많지만 북한만큼 개판이 된 나라도 없었다.
당시 북한은 대단히 폐쇄적이었으며, 내부에 5성 던전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5성 던전 백두가 드러난 것은 전 세계 최초로 플루드 현상이 일어났을 때였다.
몬스터, 그것도 5성급 던전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전대미문의 현상. 게다가 몬스터 등급은 높으면 높을수록 마나가 깃들지 않은 무기로는 처치하기가 힘들다.
헌터 육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북한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휴전선은 그대로 북한군 대신 북한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을 막는 저지선이 되었다.
북벌 계획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왔다. 하지만 결국 능력자들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당연히 모든 클랜들은 난색을 표했다.
단지 몸을 사리는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5성 던전 클리어도 어려운 판국에 다른 던전에 비해 몇 십, 몇 백 배로 몬스터가 넘쳐나는 곳을 침투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태성 클랜의 이지태가 국내 최초로 5성 던전 공략에 성공했고, 드디어 백두 던전 공략을 발표했다.
“사람들이 좋아하겠네.”
“네? 당연하죠. 이지태를 청와대로 보내자는 청원도 올라왔는데, 서명한 사람이 50만 명 넘었대요.”
투표도 아니고 그걸 청원해서 어쩌자고……. 그만큼 인기를 방증한다는 뜻일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야 조금 미묘하겠지만.
현무는 TV에 나오는 이지태의 얼굴을 보며 복잡한 기분에 젖었다.
‘새끼, 잘생겼네.’
현무는 지옥에서 개처럼 뒹구는 반면, 이지태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쥐고 태어났다. 처음부터 4성급 능력자로 판정받은 데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온갖 희귀 아이템을 쓸어 담고 자신들의 추종자로 채워진 클랜까지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지로 한국 최고의 대학, 관악대를 졸업하고, ROTC로 복무를 마쳤다. 심지어 인간성까지 좋은 데다 애국심까지 투철했다.
비틀릴 대로 비틀린 현무와는 정반대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다음 뉴스로 넘어간 뒤에도 현무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은 충분히 빠르게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너무 늦다.
자신보다 앞서간 사람들은 거인의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현무는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따라잡고 싶었다.
그때 현무의 귓가에 무언가가 꽂혀 들어왔다.
[능력자 등록 시험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지는 이 시험에서는 태성 클랜이 내년 백두 던전 원정 계획에 따라 대규모 채용을 할 것으로 보여…….]능력자 등록 시험. 1성 이상의 능력자들은 모두 이 시험을 통해 민간/던전/군 등의 직업을 추천받는다. 동시에 뉴페이스의 등장을 알리는 데뷔 장소이기도 했다. 능력자라면 당연히 밟고 가야 할 관문.
현무는 캐러멜 하나를 입 안에 던져 넣었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오빠.”
현무는 고개를 내렸다. 유민이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부엌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라면 불어요. 그리고 밥 먹기 전에 간식 먹지 마.”
***
능력자 판정을 내리는 기관, 능력자 관리국은 용산에 있는 커다란 체육관에서 등록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예상외로 많은 능력자들이 몰려 있었다.
태성 클랜에서도 내년 원정에 대비한 신입 공채를 한다고 했기에 많이 올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더운 날씨가 아니라 다행이군.’
현무는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은 싫었지만, 표면상 생초짜나 다름없는 현무로선 어쩔 수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 앞으로 좀 가요!”
현무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이 줄이 줄어들었다. 현무와 그 앞사람과의 간격이 반걸음 정도 벌어지자 뒤에 있던 덩치 큰 남자 하나가 현무에게 시비 투로 말을 걸었다.
현무가 뒤돌아보자 남자는 움찔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우, 아저씨 뒤에서 봤을 때는 안 그래 보였는데 몸 좋으시네. 운동 좀 하셨나 봐요?”
현무는 대답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많으니 짜증이야 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가 거기까지 배려해 줄 필요는 없다. 현무는 일단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아저씨 보아하니 처음 온 것 같은데, 능력자 판정받으러 오셨나 봐요?”
뒤에 있던 남자는 심심한 듯 재차 말을 걸었다. 현무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정확히 따지자면 처음은 아니었다. 한때 능력자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 현무 역시도 보육원에서 유일하게 등급 판정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왜 나만 받았었지?’
들춰 봐야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때 0성 무능력자 판정을 받은 현무는 다른 원생들보다도 매몰찬 대접을 받았다. 기대나 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라면서.
“네.”
현무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지. 아, 솔직히 처음 받는 사람들은 다른 헌터들이랑 좀 구분해서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길.”
현무는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늘어선 줄에는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어쩐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신입은 아닌 것 같았다. 현무가 의아해하자 설명충 기질이 다분한 남자가 알려 주기 시작했다.
“태성 클랜에서 대규모 공채를 한다니까 경력 있는 놈들도 몰려온 거예요. 어중간한 클랜이나 전능련처럼 덩치만 큰 곳에 소속되어 있기보다는 태성이 대우도 잘해 주고 경력도 되니까. 어중간하게 비비다가 온 놈도 태성 클랜에 비비다 왔다고 하면 알아주거든.”
“아저씨도 태성 클랜에 가입하려고 왔어요?”
현무가 묻자 남자는 흥 코웃음을 쳤다.
“저는 등록 레벨 갱신하러 왔어요. 자기 레벨은 자기만 알 수 있으니까 이렇게 능력자 관리국에서 판정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거든. 평가가 높아지면 시장에서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태성 클랜에 비비겠다는 놈들이랑 겹쳐선.”
현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레벨 등록이라. 점수 매기기로군.’
능력자들은 어떻게 보면 총기 소지자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총은 숨기기도 힘드니까.
하지만 국가가 이렇게 능력자들에게 점수를 매기면 능력자들은 그 점수에 목을 매고 자연스럽게 통제에 응하게 된다. 현무는 그게 재밌게 느껴졌다.
‘누군지 몰라도 시스템을 잘 짰어.’
통제 방식이 뭔지 아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만약 현무가 눈에 띄는 짓을 한다면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현무는 몸을 사릴 생각이 없었다.
‘단숨에 도약하려면 느긋하게 갈 시간이 없지.’
물론 실력을 다 드러낼 생각은 없다.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발목을 잡으려는 놈들이 있을 테니까.
“다음 조 들어오세요!”
어느새 차례가 다가왔다. 현무는 첫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첫 능력자 판정에는 총 세 가지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신원 검사, 능력치 검사, 스킬 검사.
현무는 곤혹스럽게도 제일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첫 신원 검사부터 막혔다. 현무가 내민 신분증을 본 공무원이 몇 번이나 신분증 사진과 얼굴을 비교하다가 의심한 것이다.
“이거 동생 사진 아니에요?”
“아닌데요.”
“아니, 그래도 고등학생 때 찍은 사진인데 어째 더 어려진 것 같아? 사람이 거꾸로 나이를 먹진 않을 거 아니에요.”
현무는 복잡한 표정을 했다. 고등학생 때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좀 노안이긴 했다. 적게나마 탈모 조짐도 보였고.
하지만 지금의 현무는 잡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살결에 갓 전성기를 맞이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아니, 지옥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언제부터였을까. 죽었다가 살아날 때마다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다.
단지 근육의 파괴─회복을 통해 몸이 좋아지는 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독혈을 얻은 뒤부터 생긴 변화 같았다. 안 좋은 것들을 전부 독혈이 흡수해버리기 때문일까.
느린 변화였기 때문에 현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한창 채취꾼 일에 시달리던 시절에 찍은 사진과 비교하자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때는 정말 고생하긴 했나 보군.’
무엇보다 탈모의 조짐이 사라진 게 제일 반가웠다. 탈모는 유전이라고 들어서 아버지는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그건 그거고, 당장 심사에서 떨어질 위기였다.
“제가 뭐하러 신원을 속이겠습니까? 뭐 범죄경력이나 정신병 경력이라도 있습니까? 능력자라는 걸 속이는 것도 아닌데.”
현무가 따지고 들자 공무원은 움찔했다. 사실 신원 검사는 큰 문제가 안 된다.
타성에 젖은 관료 사회의 의례적인 행위일 뿐, 결국 실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도태되는 것이 능력자들이었다.
얼굴이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고 조금 젊어 보인다는 것 정도는 그저 공무원의 괜한 시비에 불과했다.
“아니 뭐…… 젊어 보이니까 좋다는 거지. 민증 사진 정도는 자주 갈아요. 부모님도 몰라보시겠네.”
“부모님 안 계시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현무의 대답에 공무원은 쩔쩔매며 통과 도장을 찍어 주었다.
바로 이어진 능력치 등급 판정은 절차가 간단했다. 피를 뽑아 검사지에 찍는 걸로 모든 과정이 끝이었다.
등급이야 능력자 본인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공신력 있는 시스템으로 타인에게도 검증받으려면 몇 주일은 걸린다. 이후 핸드폰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등급 자체만으로는 능력자들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1성 능력자라해도 4성 능력자보다 못하리란 법이 없는 것이다. 다만 한계 레벨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당연히 등급이 높은 능력자에 대한 대우가 좋을 수밖에 없다. 레벨이 오를수록 능력치 상승 폭과 스킬 수준이 가팔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1성이지만…….’
0성에서 1성으로 한 단계 올라갔으니 더 올라가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고밀도의 마나에 노출될수록 등급이 상승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등급 판정 마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그다음 안내를 받아 간 곳에는 혈압계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안에 팔을 넣자 기계가 작동하면서 옆에 있는 공무원의 PC에 무언가가 떴다.
유튜브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스테이터스 체크라고 불리는 기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주로 전투력 측정기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능력치의 총합을 측정하는 기계인데, 디테일하게 나눠서는 확인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오차까지 발생했다.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높게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숫자를 사람들은 모 만화에서 따와 ‘전투력’이라고 불렀다.
‘성인 남자는 보통 100 정도 나온다고 했지.’
현무보다 훨씬 앞에서, 아까 줄에서 말을 걸었던 남자가 먼저 전투력 측정을 받았다.
“140이요.”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 올렸다. 헌터들이 보면 비웃을 일이지만, 레벨 1인 사람이 능력치 140이라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었다.
그걸 입증하듯 그다음 사람들은 104, 110, 87 등, 심지어 일반인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헌터는 능력치만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다. 아쉬워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음 분.”
이윽고 현무의 차례가 다가왔다. 현무는 기계 안에 팔을 넣었다.
“안에 있는 구슬 꽉 쥐세요.”
구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드러운 무언가가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현무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콰직.
“어?”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공무원의 눈동자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