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80)
지옥에서 독식-180화(180/346)
180화. 전쟁이 앞서니 (1)
개성 캠프 HQ.
한국군의 북벌을 진두지휘중인 사령부이기도 한 이곳에,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박도령에게 아무런 징계도 없었다니, 무슨 말입니까!”
쾅.
이지태가 회의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지태는 방금 던전에서 달려 나온 것처럼 온몸이 몬스터들의 잔해로 가득했다.
헌병들이 그를 말리기 위해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무의미했다.
회의실 안에는 북벌을 지휘하던 고위급 장성이란 장성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중요 작전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지, 이지태 군?”
그중 회의실 테이블 상석에 앉은 노년의 여성이 물었다.
이지태는 다시 화를 내려 했지만, 그전에 앞서, 일단 살아있는 전설에게 경의를 표했다.
“민소하 사령관님.”
이지태는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대신 그는 다른 장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민소하 군단장은 아직 몬스터며 던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지도 않았을 때부터,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던 장교였다.
2성급 능력자이기도 한 그녀는 지금도 야전에서 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북벌의 군측 최고 지휘자이기도 했다.
“박규 비서실장이 와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 따져 물을게 있습니다만.”
“뭐하는 거야, 일반인이 멋대로 들어왔는데 끌어내지 않고!”
장군들은 가만히 있는 헌터들을 향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회의실에는 경호를 위해 대기 중이던 헌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미동도 않고 가만히 그 장군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부에서 경호를 맡고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태성에서 파견된 헌터들이다.
태성 소속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이지태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경호나 서고 있을 리도 없었다.
지휘권이 충돌할 때 그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분명했다.
소리 친 장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민소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가봐.”
하지만 이지태가 아닌 장군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장군들은 언짢은 시선을 이지태에게 던지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일개 헌터 한명 때문에 작전 회의가 취소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투였지만 이지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앉게, 이지태 군. 박규 비서실장은 20분 전에 헬기를 타고 돌아갔네.”
“그럼 제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앉으라고 말했네.”
이지태는 민소하를 노려보다가 회의 테이블 끝 의자 아무거나 잡아당겨 앉았다. 민소하는 바로 용건을 꺼내들었다.
“박도령의 살인미수혐의에 대한 조사와 징계 절차는 내가 중지시켰네.”
이지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박도령은 던전에서 동료 헌터를 살해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일은 아닐 텐데요.”
“자세히 듣게. 조사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중지’니까. 우선 박도령이 실제로 살해 시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증명할 수 없으며, 명확한 증거도 없거니와, 박도령이 자네와 원한 관계에 있는데다, 동반 목격자인 적나비는 자네의 하급자라는 점에서 증언의 신빙성도 떨어진다는 것은 둘째 치도록 하지.”
“단 네 명밖에 없던 던전에서 분신스킬로 공격을 당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분신 스킬을 보유중인 헌터가 박도령 뿐이라는 점도 둘째 칠겁니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야.”
현실적으로 박도령의 유죄를 증명해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이지태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지태는 자신의 권력과 힘을 동원해 짜 맞춰진 진실을 만들어낼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응당 이지태가 추구하는 미래이자 정의였다.
하지만 그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영역이 있었다.
민소하는 등 뒤에 있던 화이트 스크린에 한국 지도를 띄웠다. 지도에는 현재 군의 진격상황과 배치, 정리된 구역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북벌을 시작하고 한 달 반. 이대로면 일주일 안에 평양에 도착하지. 모든 게 예상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왜라고 생각하지?”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한가지로 요약 할 수 있었다.
“……전능련과 호환마마의 적극적인 참전 덕분 아닙니까?”
“겸손할 줄 아는군. 애시당초 계획은 태성의 참전만을 염두에 두고 짜여 졌었어. 그런데 전능련과 호환마마가 예상치 못한 선전을 보여주었지. 특히 전능련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졌고, 호환마마는 언데드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네.”
“그래서입니까? 호환마마의 반발을 사고 싶지 않아서?”
이지태는 불만 어린 기색으로 쏘아붙였다. 공이 아무리 높다 해도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치루는 게 당연하다.
그러자 민소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언제는 안 그랬던 것처럼 얘기하지 말게. 자네는 자네만 깨끗하면 다인 줄 알겠지. 하지만 태성의 솥밥을 먹고 지낸 자네가 어디 깨끗할 것 같나? 자네 부친이나 형님도 응당 치러야 할 죗값이 있지만 유야무야 넘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
“…….”
“말했지만 당장 박도령을 어떻게 해서 불필요한 희생을 낳는 것보다, 이걸 빌미로 얌전하게 써먹을 수 있으면 그게 더 이득이라는 거야. 당장 호환마마가 빠져서 공백이 생기는 상황을 생각해보게. 그럼 병들의 희생은 얼마나 클 것 같나?”
틀린 말은 아니다.
이지태가 박도령을 붙잡아 넘긴 뒤, 호환마마는 반정부단체라는 딱지가 붙어있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적극 협력하고 있었다.
이지태의 시선이 아직 박도령을 향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진격 속도는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지금은 박도령을 구속하거나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쓰임새가 있다는 말일세.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빨리 진격할 수 있었던 원인은 한 가지 더 있지. 전능련과 호환마마보다도 이쪽 원인이 더 클지도.”
민소하는 지도를 위로 끌어올렸다.
붉은 색의 군대가 압록강에서부터 남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이지태는 그 숫자에 할 말을 잃었다. 아래서 표시된 한국군의 숫자에 비하면 붉은색은 거의 8배에 가까웠다.
“……중국군입니까?”
“진격속도가 엄청나. 준비 기간도 짧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군. 듣자하니 중국 쪽에서도 마탄을 대량 납품하는 업체가 생겼다던데, 어떻게 그새 그렇게 빨리 복제품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네. 전능련 마탄보다는 비싸다고 들었지만, 중국 입장에서 별로 신경 쓸 정도는 아니겠지.”
한국이 받고 있는 마탄의 납품가는 싼 편이었다.
물론 현무가 받는 세금이나 기타 부수적인 이득을 생각한다면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중국에서 대량 생산 가능한 마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가면 중국군이 우리보다 빨리 평양에 도착할 수도 있네. 알겠지만, 사실 북벌 전체는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아. 진짜는 평양부터지. 그래서 자네가 5성급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 기다려왔던 거고. 크롬도 그렇게 생각하더군.”
민소하는 짜증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전력만으로도 평양을 수복할 수 있다고 크롬에 전했지만 크롬은 중국군과 함께 자체전력으로 작전을 수행하겠다더군. 확실히 그쪽에서 몬스터들의 압력을 분산시켜준 덕분에 우리 작전이 쉬워졌어. 하지만 평양을 빼앗아가는 건 아니지.”
“그래서 박도령을 붙잡아두려는 거군요. 어떻게든 평양에 빨리 도착하려고.”
“선점이 안 된다면 동반 입장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나?”
이지태는 잇소리를 내며 민소하를 노려보았다.
“사병의 목숨이 어쩌니 하더니 다 거짓말이었군요. 다 공을 차지할 속셈 아닙니까?”
“공은 중요하네. 이지태 군. 사람들은 성과밖에 보지 못해. 우리가 얼마나 피 땀을 흘렸건 평양을 빼앗기면 사람들은 그렇게 난리 치더니 결국 알맹이는 빼앗겼다고 비웃을 걸세. 그리고 내 공은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자네의 공이야.”
“제 공이라뇨?”
“사람들은 태성이 북벌을 주도하고, 전능련과 호환마마는 그 뒤를 받쳐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군대 역시 사실상 점령한 땅이 망가지지 않게 보조하는 역할에 가깝고. 하지만 평양을 중국에 빼앗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게. 자네가 얼마나 큰 망신을 당할지.”
“저는 망신을 당하는 것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자네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될 사람들도 있거든.”
순간 이지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누님입니까?”
민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길게 둘러말하긴 했지만 결국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지태의 누나, 태성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인 이서연이 박도령에 대한 조사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보낸 것이다.
평양을 중국에 빼앗겨서 이지태가 망신당하는 일이 없도록.
이지태의 체면은 곧 태성의 체면이기도 하니까.
정부와 태성의 득실이 서로 맞아떨어져 박도령을 빼돌린 것이었다.
이지태는 말을 잃었다.
자신의 힘을 동원한다면 시스템 안에서라도 그를 심판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던전에서 그를 비웃던 강현무와 박도령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중국 쪽 판매는 순조로운 상황입니다.”
“필리핀이랑 유고슬라비아 쪽에서도 문의가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능력자 해외 유출이 심한 나라일수록 마탄이 인기인 것 같네요.”
“북벌로 인한 광고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고 말이죠.”
전능련 북벌 캠프.
유민은 북벌에 참여한 헌터들의 장비와 아이템을 분석하고 정리하면서 동시에 전능련 공단의 수익을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경영 부분은 서지후가 폭증하는 업무 상당부분을 맡아주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부하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문서들을 들여다보았다.
문제는 하나였다.
“너무 많은 돈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걸 다 세탁할 시간도 자원도 없어요!”
현무는 마탄을 한국군에게만 팔지 않았다. 애초부터 마탄은 세계를 겨냥한 상품이었다.
기존 마탄보다 저렴한데다, 위력은 훨씬 강하다.
어중간한 1, 2성짜리 몬스터가 아니라 3성, 탄을 좀 많이 쓰면 4성 짜리 몬스터도 잡을 수 있으니, 이전 마탄과 달리 돈이 좀 들더라도 욕심을 내는 국가는 많았다.
헌터들이 쓰기에는 여전히 큰돈이지만 국방예산에서는 별거 아닌 돈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엄청난 시장이었다.
“시바 아미니 씨가 너무…… 홍보를 잘해주신 것 같네요.”
UN특수감찰관 시바 아미니가 저택에 머물렀을 때 유민은 그녀에게 별거 아닌 척 하면서 전능련의 아이템과 마탄을 홍보했다.
역시나 비능력자이면서도 몬스터 사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미니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그대로 중국에 이야기했다.
전능련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다, 마탄은 방위 산업의 일종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수출은 쉽지 않았다.
중국이 북벌에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아는 정부가 그걸 허락할리도 없었다.
현무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대신, 그냥 밀무역을 선택했다.
암시장을 운영하는 박휘소의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중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린 뒤, 중국 내 자체개발인 척하면서 마탄을 마구 팔아넘겼다. 중국 쪽에서는 엄청난 물량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출처를 깊이 따지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전능련에서 개발한 새로운 아이템과 마탄의 실험장이자 홍보관이었다.
그리고 북벌이 시작된 지 2개월이 지날 무렵.
열렬한 영업과 홍보는 감당되지 않을 만큼의 생산량 부족과 현금으로 돌아왔다.
“지금 쌓인 돈이 어느 정도나 되죠?”
“4천억이요.”
“4천억이요? 그럼 생각보다 별로 안 되는 것 같은데…….”
4천억이면 대한민국 백대 기업 순위에 간신히 들락말락 하는 수준이다. 유민은 어이없다는 듯 서지후를 바라보았다.
“현금만요. 현금만! 도저히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현지에 있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기업, 주식, 국채, 귀금속, 보석, 가상화폐,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어요. 컨테이너를 꽉 채워도 감당이 안 되서 해외 창고에 방치해둔 것도 꽤 돼요. 자산으로 따지면 벌써 3조가 넘어가고 있어요.”
“저런.”
3조라니.
서지후는 감이 안 잡히는 표정이었다.
마탄을 팔기 시작한 지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만 해도 전능련의 자산을 뺀 현무의 재산은 5백억을 조금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3조라고?
“대체 얼마나 판 겁니까? 저희가 그 정도 생산량을 따라갈 정도는 됩니까?”
“대부분은 약속하고 선금으로 받았죠.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니까. 그래서 공장을 열배로 증설하고 있어요.”
“그렇게 마구잡이로 증설하면…….”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느냐, 고 지적하려던 서지후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완성된 마탄도 썩 그렇게 질이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전부 재료가 좋으면 그만이다.
강현무가 가져오는 최고급 수정이끼는 질이 떨어져도 충분히 그걸 커버할 만큼 품질이 좋았다.
“불발만 안 나올 정도면 돼요. 그게 아니어도 D&W에서 수정이끼 사용료로 지불하는 양이 어마어마하니까.”
벌어들인 돈은 다시 연구와 재투자로 이어지고, 그게 다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전능련은 급격하게 몸을 부풀려가고 있었다.
말이 전능련이지, 사실상 이제 현무의 독점 사기업이나 다름없었다.
“오대성 팀장이 지금 전능련을 보면 울지도 모르겠군요.”
“왜요. 기뻐서?”
“……그렇겠죠? 지금 소속된 헌터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복지를 누리고 있으니.”
좋은 알맹이만 골라 키우고 대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무는 그렇게 일일이 골라낼 생각이 없었다.
현무가 적극적으로 골라내는 것은 윗대가리들 뿐이었다. 전능련 헌터들 가운데서는 분명 월급도둑도 있겠지만 그런 놈들은 영원히 아래에 머물게 하면 된다.
모두가 딱히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는 게 현무의 생각이기도 했다.
치열하게 노력해, 위로 올라선 자들만 충분히 대접하면 된다.
송여운 팀이나 서지후 팀 같은.
“참, 그러고 보니 박도령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서지후는 박도령과 현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3대 클랜의 단장들이 모두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라에서 소극적이라고 하니, 우리 선 안에서라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체 징벌은 아니더라도 경고의 메시지는 내야 할 것 같은데요.”
서지후의 말에 유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하고 있어요. 이미 한 달 전부터. 시스템이 해결해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 안 하고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