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81)
지옥에서 독식-181화(181/346)
181화. 전쟁이 앞서니 (2)
“알아서…… 하신다구요?”
서지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현무에게 ‘알아서 한다’는 표현은 결코 법정다툼 따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박도령.
이지태 이전의 대한민국 최강이었으며, 현재도 호환마마 클랜의 단장이다.
서지후의 얼굴을 본 유민은 깔깔 웃는 소리를 냈다.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오빠가 무슨 사람 잡는 백정인 줄 아세요?”
“아, 물론 아닙니다. 강현무 님이 얼마나 상냥하신 분인데.”
자기 사람들에 한해서이지만.
서지후가 뒤에 숨긴 말은 유민도 알고 있었다. 유민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문제될 방법은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들키지 않고 처리할 방법이라는 걸로 들리는 건 착각입니까?”
유민은 대답하지 않고 스산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서지후는 더 이상 깊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굳이 알아서 뭐하겠는가. 강현무 님이 하신다면 아무튼 옳은 일이겠지.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현무 님을 뵌 지 좀 오래된 것 같군요. 혹시 그…… ‘알아서 하시는’ 것 때문입니까?”
“잠깐 출장 갔어요.”
“아, 혹시 예의 그?”
서지후는 난이도: 지옥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하지만 현무가 어딘가를 갔다 올 때마다 월등히 강해져서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아마 최상급 수정이끼의 출처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두죠. 그보다 헌터들 좀 모아주세요. 출장 가기 전에 오빠가 부탁한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걸 좀 분배할까 해요.”
“분배요?”
“평양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측 전력 파악이 전혀 안될 정도로 아이템들을 싹 업그레이드 시켜놓으라더군요.”
“업그레이드라 하시면…….”
유민은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 비밀이라는 듯 속삭였다.
“팀장급은 전원 무등록 국보, 전설급 장비로 무장하고, 나머지는 전부 상급 희귀 장비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
쩌어어억.
현무의 손 아래서 밝은 빛과 함께 열기가 퍼져나갔다. 이내 손안에서 전설급 장비 하나가 나타났다.
아이템의 상태를 살펴보던 현무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옆으로 밀어 던졌다.
방 옆에는 전설급 무구가 현무의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제작실 안은 전설급 장비를 만들어낸 열기로 사우나처럼 후끈거렸다.
“대체 얼마나 만들 생각인거야, 집사야?”
레니안이 현무의 머리 위에서 물었다.
“쓸모 있는 게 나올 때까지.”
현무는 담담히 대답했다.
현무는 다시 재료들을 손에 끌어 모으고 ‘제작’을 시전했다.
손안에 재료들이 녹아내렸다가 하나로 뭉쳤다. 조금의 시간 뒤 전설급 장비가 또 하나 나왔다.
만족스러운 퀄리티는 아니었다. 현무의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벌써 8개째.
온몸이 뻐근했지만 몇 번 더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틈나는 대로 전설 장비를 제조한 덕분에 엄청나게 끌어모았던 수정석은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 전설급 장비는 상당량 쌓여있었다. 전능련 헌터 팀 전원에게 제공하고 노예계약 비슷한 것을 제시해도 충분할 만큼.
“흠…… 같은 전설급 장비라도 질적 차이가 상당하단 말이지.”
현무는 쌓여있는 장비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했다.
이지태의 무기, 파천검과 방금 만들어낸 검은 같은 전설급이라도 성능이나 특수능력 면에서 차이가 컸다.
물론 다루는 사람의 수준차이도 있겠지만, 상질의 전설 무구를 만들어내려면 뭔가 특이한 조건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수정화 같은.
현무는 인벤토리에 있는 수정화를 확인했다.
애초에 수정화를 찾아낸 것도 희귀 재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걸로 뭔가 그럴싸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디에 쓰는 게 좋을지 모르니 섣불리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끼다 똥 된다는 말도 있다. 현무는 이걸 더 이상 인벤토리에서 놀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탐으로 만족하기는 어려운가?”
레니안이 물었다.
“탐…… 은 애매해. 일단 성능이 나쁘지 않아서 쓰고는 있지만, 그 기능을 내가 제대로 못 살리고 있는 느낌이야.”
이지태와 가장 큰 격차를 느꼈던 것이 바로 무장이었다.
구속자 야율도 쓸모 있긴 하지만 탐은 가진 능력에 비해 무기의 힘을 너무 못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인은 단순했다. 능력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진 능력만을 개발해 단련하는 대신, 다른 능력으로 대안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현무는 전투보다 생존을 위해 임기응변과 잔머리로 목적을 달성해왔다.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현무는 이지태를 죽여야 한다면 충분히 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지태와 정면에서 싸워야 한다면? 현무는 십중팔구 자신이 질 것이라고 봤다.
단순히 죽이는 것과 정면에서 싸우는 것.
둘은 매우 다르다.
‘박도령이라면 어떨까.’
박도령의 분신은 약했다. 물론 하현과 합작해서 요리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박도령 본인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직접 싸운다면 많이 다를 것이다.
당장 분신들과 같이 싸워야 한다는 것과 정체불명의 단검들, 그리고 궁극기까지. 이지태와 마찬가지로 확언하기 힘들었다.
‘역시 기회가 왔을 때 죽였어야 했다.’
현무는 약간 아쉽긴 했지만, 이지태 핑계는 대지 않기로 했다.
그 상황에서 스스로 납득하고 넘어간 것은 자기 자신의 결정이었다.
그래도 언제든 박도령을 족쳐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조만간 그런 자리는 저절로 마련될 것이다.
그때 현무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그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현무는 자신의 옆에 세워놓은 탐을 바라보았다.
‘사실 정면승부를 보는 경우보다 뒤통수를 치는 때가 더 많아서 이렇게 단련되었는지도 모르지.’
현무에게 맞는 무기는 박도령이 가지고 있던 그 단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숨길 수 있고, 무한정 생산되며, 저격도 가능한 무기.
아쉽지만 손에 맞는 무기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난이도: 지옥은 일단 손에 쥐어지는 대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탐은 그냥 이것저것 한꺼번에 능력을 담을 수 있어서 쓰는 거지, 썩 손에 맞다고 하기는 힘든 무기였다.
‘욕심 그 자체로군.’
탐은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시련을 깨고 받은 보상이다.
현무가 탐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전설급 장비를 다 들고 다닐 수 없으니 하나에 담고 싶은 마음에서 들고 다닌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욕심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모양새였다.
레니안이 현무의 머리 위에서 뒹굴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탐에게 먹일 최고의 무기를 찾아내고 있다고? 집사야, 그건 너무 미련한 짓 같은데. 그냥 저 무기들을 다 탐한테 먹여버리는 건 어때?”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탐에 무기를 먹일 때마다 모양이 변한다고. 이상한 모양새로 변하거나 하면 오히려 다루기만 애매해져. 지금도 손에 안 익는데, 괴악한 꼴로 변하기라도 하면…….”
그때 현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너무 사리는 걸까? 유일 등급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어쩌면 레니안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현무는 안경을 끼고 탐의 상태창을 살폈다.
[주석: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권속 알디마하로가 직접 벼렸다고 알려진 무기. 무기를 먹고 형태를 바꾸는 탓에 어느 누구도 탐의 원래 모습을 알지 못한다. 갑작스레 역사 속에 등장해 패도를 휘두르던 권력자들을 추적해보면 탐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곤 했다.]탐이라는 무기는 닥치는 대로 다른 무기를 집어삼키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시대를 막론하고 영웅과 위인, 무기와 병기들을 집어삼키면서 혼란 속에서 탄생하는 무기다.
정해진 형태란 없고, 그 누구도 탐의 완벽한 형태를 알지 못했다.
혼돈과 탐욕. 그 자체가 탐의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아, 그럼 드디어 요정이랑 놀아줄 시간이 온 건가?”
현무는 수북하게 쌓인 전설급 장비들 앞으로 탐을 가져갔다.
어차피 못쓰면 전능련 헌터들이나 다른 권속들한테 주면 된다고 생각해서 일단 많이 만들긴 했다.
하지만 줄만한 것들은 이미 다 뺀 뒤였고, 남은 건 처치곤란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무는 이것들을 전부 탐에게 먹여보기로 했다.
“뭐, 최악까지야 가겠어?”
***
“집사야, 최악이니?”
“최악이야.”
현무는 넋이 나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레니안은 현무의 이마를 빨대로 쿡쿡 찔렀다.
현무의 옆에는 길이만 4m쯤 되는 기하학적 금속 조형물이 복잡하게 휘어져 있었다.
전설급 무기 수십 개를 먹인 탐이었다.
아직은 손잡이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탐이라는 흔적만 남아있을 뿐, 절대로 쓸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애초에 자기 몸을 찌르기 않고선 휘두를 수 없는 모양새였다.
“뭐, 대신 특수 능력은 많잖아?”
“내가 필요한건 맥가이버 칼이 아니라 무기야…… 아니, 애초에 가슴이랑 허벅지에 칼날을 꽂은 채로 특수 능력을 써야할 만큼 가혹한 상황은 맞이하고 싶지 않아.”
이젠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무기로 변해버렸다.
특수능력은 다 셀 수도 없고, 애초에 이게 무기인지도 애매했다.
현무는 몸을 돌려 바닥에 엎드렸다. 마치 레니안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내 뇌수는 마음대로 해도 좋아, 레니안…… 어차피 쓸모도 없는 것 같으니까…….”
현무는 자괴감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레니안이 정말로 머리에 빨대를 꽂기 직전에 재빨리 일어섰다. 레니안의 빨대는 바닥에 꽂히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거, 될 때까지 해봐야겠다.”
“더? 이제 수정석도 전설급 장비도 없잖아?”
“하나 남았지.”
현무는 수정화를 꺼내들었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레니안은 우려스러운 표정을 했다.
“자포자기는 좋지 않아. 집사야.”
“아직 더 있어.”
현무는 구속자 야율에서 거미줄을 뽑아냈다.
어둠속성의 거미줄. 이것도 희귀 재료로 취급되었다. 한 움큼의 거미줄 실타래와 수정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과부여왕거미의 부서진 가면이었다.
가면에 새겨져 있던 별의 파편은 현무에게 빼앗기고 아무런 문양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부 몽스트릴의 시련을 통과했을 때 한꺼번에 얻은 것들이었다.
“이거라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제작이라기보다는 사악한 이교도의 의식 같긴 한데…….”
레니안은 현무의 상태를 의심했다. 여전히 현무는 자포자기한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현무 역시 여기서 뭘 더한다고 해서 탐이 제대로 복구될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었다. 현명하다면 여기서 매몰비용을 감수하고 그만두는 게 맞을 것이다.
“재밌을 것 같으니까 해보자!”
하지만 레니안은 자신의 흥미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레니안이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라’ 라고 믿는 현무의 마음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향해 달려갔다.
현무는 재료들 위에 손을 얹고 제작을 시전했다.
“제작.”
***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4일 7시간 21분 1초.]***
“……어? 뭐야? 뭔데?”
사거리 한복판에서 눈을 뜬 현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죽었다는 메시지는 들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제작을 시전한 순간 눈앞이 암전된 것처럼 시커멓게 변했고, 자신은 사거리에 나타났다.
현무는 급히 인벤토리를 확인해보았다.
수정화와 과부여왕거미의 가면, 둘 다 없었다. 제작을 시전하자마자 죽은 것은 확실했다.
‘전설급 아이템을 처음 제작했을 때에도 죽을 뻔 했었지.’
이번에도 그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를 해두기는 했다.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 부활 특전을 사용할 준비까지.
그런 것들을 사용할 틈도 찾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현무는 희귀 재료들을 싸그리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현무는 급히 쉘터로 달려갔다.
쉘터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것은 거대하고 기괴한 검은 실 뭉치였다.
고양이가 잘못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린 실 뭉치 같은 것이 쉘터의 중앙부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이상 퍼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보스! 이게 대체 뭐요?”
“위대한 분이시여!”
들어서자마자 키르손과 카자트가 당황하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나도 묻고 싶은데. 이게 대체 뭐냐?”
“보스가 한참 장난감 가지고 놀던 방에서 튀어나온 거잖습니까! 랫맨 두 마리랑 고블린 하나가 저기 뒤엉켰다가 그대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구요!”
현무는 즉시 자신을 죽인 것의 정체가 저 검은 실 뭉치임을 깨달았다.
검은 기운을 흩뿌려서 두터워 보였을 뿐, 무게감 없이 나풀거리는 모습이 한 가닥 한 가닥 전부 거미줄임이 분명했다.
끌려갔다는 고블린과 랫맨은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설마 과부여왕거미가 부활하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보스, 이것 좀 어떻게 해봐요. 이런 위험한 거 근처에서 살수는 없잖습니까.”
나라고 방법이 있겠냐고 대답하려던 현무는 문득 바닥에 고블린이 끌려간 흔적을 발견했다. 흔적이 꽤 처절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고블린이 끌려간 흔적은 지금 검은 거미줄들이 꿈틀거리는 곳보다 훨씬 바깥쪽에 있었다.
‘처음보다 크기가 줄었나 보군.’
현무는 거미줄 안쪽, 방 안을 눈여겨 들여다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거미줄은 탐도 시커멓게 휘어감고 있었다.
그리고 탐은, 검은 거미줄을 맹렬하게 씹어먹고 있었다.
탐은 현무가 죽기 직전과 비교해 상당히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제대로 되어가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전보다는 더 나빠질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자리에 있어야 할 또 한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니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