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87)
지옥에서 독식-187화(187/346)
187화. 하나의 목표, 각자의 길 (2)
쿠르르르르.
탱크가 개천을 건너는 소리가 요란했다.
중대 하나가 탱크를 앞세우고 행군하며 걷고 있었다.
평양에 가까워질수록 인프라는 열악해지고 몬스터가 많아져, 진격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느려지고 있었다.
도로도 엉망이라 움직이는 차량은 탱크뿐이었다. 어지간하면 보병차량에 타던 부대도 이젠 걸을 수밖에 없었다.
3성급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탱크로도 못 잡지만, 앞쪽에서 시선을 끌며 대신 맞아주는 걸로 충분했다.
“정지!”
탱크가 우뚝 멈춰 섬과 동시에 선두 쪽에서 신호가 왔다.
병사들은 멈춰서 주변을 경계했다.
헌터가 앞서 나가고, 그 뒤로 군인들이 뒤따르면서 주변을 정리하는 게 기본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헌터들의 수가 적어 몬스터를 전부 해치우지 못한 경우도 꽤 있었다.
“뭐야? 몬스터 나온 거야?”
“아직 얘기가 없습니다.”
소대장이 앞쪽으로 무전을 날려봤지만 마땅한 대답은 없었다.
긴장되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맥이 풀리는 대답이 들려왔다.
“중국군이랍니다.”
“뭐? 또?”
“그 새끼들은 무슨 사방에 다 있네.”
병사들은 투덜거리며 짜증을 냈지만 내심 속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다.
중국군과 마주쳤다는 것은 전방이 안전하다는 뜻이다.
남의 땅에 멋대로 들어왔다는 불만이 있지만, 동시에 몬스터라는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운다는 동질감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그들이 투덜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또 다시 먼 거리를 행군해야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평양에 가까워지면서 평양 인근의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이거 저쪽이랑 협조며 정보공유가 전혀 안되니 문제가 자꾸 생기는데요.”
“윗대가리들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는데, 미천한 아랫것들은 까라면 까야지.”
중대장은 대대망에 무전을 날리며 상황을 보고했다.
시간이 지나자 병사들 눈에도 중국군이 앞쪽에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대 규모의 작은 무리였다.
느긋한 모습을 보아하니 주변에 몬스터는 없는 듯 했다. 병사 중 몇은 눈에 띄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야…… 중국군, 장비 개쩌네.”
“거의 미군급인데?”
중국군은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상당히 뛰어난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외골격에서부터 방탄패널, 심지어 아이템까지 소지하고 있는 병사들도 보였다.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아이템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급량이 항상 부족하고, 가격은 천정부지였다.
일개 병사들까지도 포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들이 평범한 부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상완에 붙인 왼쪽을 보고 있는 해골 마크가 눈에 띄었다.
“특수부대 같은 건가?”
병사들은 수근거리다 중국어를 아는 병사 몇이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중국군은 말없이 스쳐지나갔다. 소대장이 중대장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뭐하는 애들이랍니까? 이 지역은 아직 중국군 전선하곤 거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예상보다 빠른 모양이지. 뭘 좀 찾고 있다고 하긴 하던데. 떼놈들이 말해줄 리도 없고.”
중대장도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중국군을 보내주었다.
이미 평양 근처에서는 중국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른 지역도 밑밥을 뿌리고 있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병사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미 헌터들이 공략한 곳이고, 중국군까지 지나쳐간 경로니 몬스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꼼꼼하게 수색을 마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언젠가는 이곳에 민간인이 들어와 살아야 할 테니까.
***
얼마나 지났을까. 길을 걷던 병사들은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아직 꽃샘추위가 매서울 때라지만 이상할 정도로 싸늘한 공기는 몸을 긴장시키게 했다.
어느 틈인지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비록 헌터는 아니지만 몬스터와의 전투를 적지 않게 치러온 병사들이었다.
“중대 정지.”
중대장도 이상을 파악하고 중대를 정지시켰다.
산이고, 초봄이니 괜히 예민한 반응일수도 있겠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예민하게 구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주변을 경계 중이던 병사 하나가 안개 너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실루엣을 발견했다.
“우측에 몬스터!”
“전방 좌측……!”
“후방에…….”
목소리는 연달아 터져 나왔다. 병사들 사이로 당혹감 어린 시선이 오갔다.
어느 틈인지 그들은 포위당한 상태였다.
안개 때문이라지만 몬스터들이 이렇게 소리 없이, 정교한 포위망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격 지시 없이 발포음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급박하다는 의미였다.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자 중대장은 다급히 전투 대형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탱크를 선두에 세웠다. 탱크가 불을 뿜자 그 열기가 안개를 훅 걷어냈다.
하지만 걷혀진 안개에 드러난 무수한 해골 병사들을 본 병사들은 오히려 패닉에 빠졌다.
“아니, 왜 이렇게 몬스터들이 많아? 아까 그 떼놈 새끼들이 몬스터 없다고 했었잖아!”
상황이 이상했다.
헌터가 이미 지나간 지역이니만큼 이정도로 몬스터가 많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 방금 중국군이 지나간 길이었다.
중대장은 다급히 무전을 날려 헌터들의 지원을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무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언가에 방해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플루드라도 터진 건가?’
비명과 고함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탄으로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만, 마탄의 양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들이 받은 마탄은 어디까지나 정리용이지 진압용이 아니다. 중대장은 자신들이 여기 이대로 묻히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뭐야, 이건.”
갑자기 탱크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반신을 탈의한 맨발의 남자였다.
해괴한 모습이었지만, 중대장은 곧장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 강현무 씨!”
중대장이 다가가려 하자 현무는 재빨리 손을 들어 막았다.
그의 몸에는 아직 난이도: 지옥에서 묻어온 먼지가 남아있을 수 있었다.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어서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왔는데, 설마 국군이 몬스터에 포위당해있을 줄은 몰랐다.
“사정은 나중에 들읍시다.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구요.”
현무는 탐을 꺼내들었다.
해골 병사들의 숫자는 플루드라도 터진 것처럼 많았지만, 문제가 되는 숫자는 아니었다.
현무는 훌쩍 뛰어내리며 탐을 비탈 아래쪽에 있는 몬스터를 향해 휘둘렀다. 그 순간 탐이 수십 갈래로 쪼개지면서 채찍마냥 전방 수십 미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엄청난 풍압이 한 순간 주변의 안개를 쓸어냈다.
병사들은 놀라 총을 쏘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놀란 것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현무 역시 예상치 못한 탐의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분열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현무는 재차 탐을 휘두르거나 찔러보았다. 탐의 조각난 파편들은 해골 병사들과 나무들을 마치 두부라도 되는 듯이 매끈하게 잘라냈다.
좁게 찌르면 최고 수백 미터까지 뻗어나갈 것 같았다.
사정거리에 대해서는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보였지만, 사람이 휘두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정확도는 보장하기 힘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건 박도령이 가진 무기의 완벽한 상위호환인데?’
명중률은 아쉽지만 베고, 찌르고, 심지어 수십 개의 파편으로 동시 공격도 가능하다.
공격력은 말할 것도 없이 월등했다. 대략 10미터까지는 밀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최고의 위력을 발휘했다.
현무가 날뛰기 시작하자 병사들은 총을 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현무는 안개 속에서도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단숨에 도륙했다.
‘안개부터 걷어내는 게 좋겠군.’
자신은 상관없지만 병사들이 기습당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현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갈라져 있던 파편들 사이로 불꽃이 튀어 오르며 번져나갔다.
솟구쳐 오른 불길은 남아있던 안개를 순식간에 증발시켜 날려버렸다.
헬부르크의 어긋난 열정에 담긴 능력이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내장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현무가 날뛴 자리는 잘려나가고 그을리며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몬스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안개가 사라진 하늘은 맑았다. 정리가 끝난 현무는 탐을 다시 수납하려다가 탐의 균열된 틈바귀 사이로 검은 실 가닥이 넘실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수정화로 아이템을 만들어서 먹였을 때 탐을 휘감았던 그 검은 실이었다.
딱히 꺼낼 생각이 없었는데 나타나 있는 것을 집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뭐지?’
그러고 보니 현무는 자신이 탐에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먹였는지도 알지 못했다.
탐에 너무 많은 무기를 먹여서인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려주질 않았다.
하나하나 시험해보는 수밖에.
“끄, 끝났습니까?”
중대장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한데 뭉쳐 있는 지역 빼고는 지옥불에 담갔다 뺀 것처럼 초토화되어 있었다.
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대장은 혀를 내둘렀다.
“이건…… 놀랍군요. 다른 단장들도 당신만큼 강합니까?”
“제가 좀 특별하긴 하죠.”
현무는 조금의 겸양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장교들이며 병사들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몇몇은 단장 급이 싸우는 것도 본 적 있다. 하지만 단장 급이라고 해서 늘 화려하게 싸우는 것은 아니다.
대개 지상에 있는 몬스터들은 약하니 힘을 아껴서 싸우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그들 눈에는 강현무가 최고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된 거죠?”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여긴 헌터들에 의해 정리가 끝난 구역이고, 중국군도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나타나다니…… 이 근처에는 던전도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중국군이요?”
“예.”
현무는 문득 생각에 빠졌다. 중국군은 현무의 관심 밖이었다.
뒤 구린 중국군이 뭘 하든 상관없지만 다른 자들이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크롬.
그들은 중국군을 움직여 동행하고 있었다.
만약 중국군이 특별 임무를 수행한다면, 크롬의 지시일 확률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세한건 알아봐야 알겠지만, 그걸 알아보기 전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배가 고픈데, 혹시 가까운 전능련 캠프 어딨는지 아십니까?”
***
북벌군 사령관 민소하는 평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대성산 혁명열사릉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누가, 왜 묻혔는지는 관심도 없으니 참배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만날 누군가를 위해서 온 것뿐이었다.
그녀는 얼굴 왼쪽 위부터 아래 입술까지 내려오는 긴 흉터를 더듬거리며 만졌다.
아슬아슬하게 눈을 빗겨나간 흉터였지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술까지 갈라놓은 흉터였다.
이젠 감각이 마비되어 느낌도 없지만, 가끔 그 자리에서 환각통이 느껴지곤 했다.
“민소하 사령관님.”
등 뒤에서 이지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젊고 재능 있는 친구.
이번에 자신에게 실망한 것 같았지만, 민소하에게 중요한 것은 치기어린 정의나 인과응보가 아니었다.
이지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안 왔나보군요.”
“자네에겐 약속 시간을 조금 일찍 알려줬네.”
“예?”
민소하는 휘파람을 날카롭게 불었다. 개라도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계단 끝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조용히 일어섰다.
기척을 죽이고 있던 남자를 발견한 이지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루마기를 입고 탈을 쓴 남자.
박도령이었다.
“이제 곧 중국군 측과 회의가 있을 텐데, 거기서 자네들 둘이 소란 일으키는 건 원치 않아. 미리 만나서 풀게 있으면 풀고 들어가게. 주먹질을 하든, 말씨름을 하든 상관없어. 죽이지만 않으면.”
이지태는 말없이 박도령을 노려보았다.
그는 현무에게 자신이 박도령을 심판할 수 있다고 공언했고, 그렇게 현무가 박도령을 죽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박도령은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받아야 했다.
이지태의 자존심과 신념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이게 무슨 애들 다툼인줄 아십니까? 전 그동안 민소하 사령관님을 영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렇게 수습되고 화해할 수 있는 문제인 줄 아신다면 실망스럽…….”
“애들 다툼이지. 왜 아니겠어, 이 빌어먹을 자식아!”
민소하는 이지태의 멱살을 확 움켜쥐었다.
이지태는 언제든 그 손을 피할 수 있었지만 가만히 잡혀주었다. 민소하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내 눈에는 레벨이며 능력자며, 아이템이며! 전부 애들 게임으로 보여! 그런데 그게 사람을 잡는다고, 사람을!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냐?”
민소하는 으르렁거리며 쏘아붙였다.
“내가 영웅이라고? 나는 내 동료랑 상관들을 다 잡아먹고 살아남은 것뿐이야! 우연히 빌어먹을 능력자라서!”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영웅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민소하는 자신보다 그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들을 셀 수도 없이 보았다.
“나는 언젠가 이 빌어먹을 게임이 최대한 인명 손실 없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야. 그러니까 당장 화해를 하든 토라져서 집에 가든 마음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