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9)
지옥에서 독식-19화(19/346)
19화. 능력자 시험 (2)
현무는 급히 손을 빼냈다. 하지만 공무원은 현무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가 손짓을 하자 다른 공무원 몇 명이 달려와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다른 대기자들도 무슨 일인가 하며 고개를 빼 내밀고 힐긋거렸다.
“고장인가? 난 숫자 이렇게 뜨는 거 처음 봤어.”
“야, 난 이지태가 재는 것도 봤어. 그때도 이렇게 나오지 않았어. 고장이겠지.”
“오늘 등록 판정 받으러 온 사람이잖아? 그러면 레벨 1이잖아.”
공무원들이 한참을 속닥거리자 현무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빼 내밀었다.
“어, 저기. 죄송한데 제가 기계를 망가뜨린 것 같은데요.”
“어, 어? 아, 아아! 네. 괜찮아요. 자주 있는 일이니까. 능력자들 상대로 하다 보면 고장이 흔해요. 어차피 소모품이니까. 죄송한데 한 번만 더 해 볼 수 있을까요?”
“네.”
다른 공무원들이 스테이터스 체크를 열고 안에 부품 몇 개를 갈아 끼웠다.
준비가 끝난 뒤 현무는 다시 손을 넣고 구슬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대비하자 보이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구슬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듯했다.
‘이걸 어쩐다.’
또 무심결에 움켜쥐었다간 박살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꽉 움켜쥐세요.”
그때 공무원이 옆에서 말했다. 현무는 미련 없이 구슬을 잡아챘다.
삑.
이번에는 부서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적당히 힘 조절을 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측정이 끝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무는 이제 된 건가 싶어서 옆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공무원들 모두 말을 잊은 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문제인가? 그거겠지?”
“이거 어떻게 해? 일단 보고해야겠지?”
“아까 그게 최고 아니었어?”
‘또 뭐가 문제야.’
현무는 쯧 혀를 차며 공무원들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기도 힘들었다.
“끝났어요?”
공무원들은 고개를 들고 현무를 바라보았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한 번 더 검사했으면 하는데…….”
***
그렇게 세 번의 검사 끝에 현무가 받은 검사 결과는 ‘심의 보류’였다.
“아니, 부수지 않게 조심했는데도 왜 저래?”
의외로 부서지는 일은 많다고 하니 힘 조절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현무는 투덜거리면서 검사지를 반으로 접었다.
능력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도 상관없지만 이렇게 일이 귀찮아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심의 보류라니, 이래서야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스킬을 테스트하기 위해 안내받은 곳은 커다란 체육관이었다. 사실상 능력자 관리국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곳이었다.
꽤 커다란 공간 안에는 트랙과 잔뜩 할퀴고 타거나 부서진 흔적이 있는 커다란 벽이 보였다. 가운데에는 몇 번이나 덧칠되어 그려진 듯한 커다란 과녁도 있었다.
현무를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체육관 한가운데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이윽고 한 사람이 그들 앞에 섰다.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색깔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건 남자였다. 현무는 그가 능력자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현무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 모인 능력자들 중 가장 강했다.
“지금부터 세 줄로 나누겠습니다. 각자 자기 스킬이 ‘공격계’다 하는 분은 이쪽, ‘방어계’다 하는 분은 이쪽, 혹은 버프, 디버프, 힐,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분은 이쪽으로 서 주세요!”
사람들은 머뭇거리다 어수선하게 각자 줄을 나눠 섰다. 애매모호한 능력도 있는 듯했지만, 공격계가 가장 많고 방어계가 그다음, 이도 저도 아닌 쪽이 가장 적었다. 현무는 그중에서도 제일 고르기 어려운 쪽이었다.
‘스킬이 하나가 아닌데 어쩌라고?’
다른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고르는 걸 보니 하나거나 비슷한 계열인 것 같았다. 스킬이 없는 사람은 아예 들어오지도 못했다.
현무가 가진 스킬은 독혈과 배틀 헬퍼, 그리고 장악이었다. 희귀 스킬 하나에 전설 스킬이 두 개니 어떤 걸 꺼내 들어도 소란이 일 법했다.
현무는 망설이다가 일단 이도 저도 아닌 줄에 섰다.
공격계인 사람들은 벽 앞으로 가서 각자 자기 능력을 쏟아 냈고, 방어계인 사람들은 반대로 투구 머신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현무는 느릿하게 날아드는 야구공을 힘겹게 쳐 내는 능력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저 정도는 능력자가 아니어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때 아까 그 공무원이 다가왔다.
“어떤 스킬을 가지고 계시죠? 치명적이지 않은 디버프라면 제게 걸어 보셔도 됩니다.”
능력자 공무원은 왜소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름 능력자를 대하는 데 익숙해 보였다. 현무는 그에게서 흐릿해진 흉터를 발견하고 은퇴한 헌터임을 알 수 있었다. 현무는 어떤 스킬을 드러내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독혈입니다.”
현무가 가장 처음 얻은 것이자 유일하게 공격에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공무원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희귀 스킬이요?”
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원은 운 좋은 놈이라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꼬우면 너도 지옥에서 굴러서 얻어 보든가.’
현무는 꿇릴 게 없는 시선으로 공무원을 마주 바라보았다. 서른 번 가까이 죽어서 겨우 얻어 낸 스킬이었다.
배틀 헬퍼나 장악을 이야기할까도 했지만, 배틀 헬퍼는 그냥 잘 싸우는 건지 아닌지 증명하기도 힘들고, 장악은 무슨 스킬인지도 잘 몰랐다. 그럴 바에야 보기에 확실한 독혈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현무는 잘난 척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라 당당한 경로로 헌터 자격을 취득하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게다가 배틀 헬퍼와 장악, 모두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라야 더 쓸 만해지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기에 활용하면 꽤 강력한 스킬이죠. 생활에 지장 많으실 텐데 불편하시겠어요. 상처도 많이 나실 테고.”
“익숙합니다.”
헌터 출신인 공무원은 피식 웃었다. 다쳐 봤자 흉터 하나 안 보이는 일반인이 상처에 대해 뭘 알겠냐 하는 조소였다. 현무는 그 미소에 마주 웃어 주었다.
“뭐, 독혈 스킬로 유명한 어떤 헌터는 주기적으로 혈액팩에 뽑아서 필요할 때마다 써먹는다고 하니까…… 독혈이면 생물 실험이 필요하겠네요.”
공무원이 어딘가에 손짓을 하자 하급자인 듯한 남자가 작은 플라스틱 수조를 들고 달려왔다. 안에는 작은 슬라임이 들어 있었다.
현무는 슬라임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뺐다. 공무원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걱정할 거 없어요. 이 정도 슬라임은 무해해서 정말 어항에 넣고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머리 위에 떨어져 질식시킬 때가 문제지, 이렇게 머리보다 낮은 곳에 있으면 걱정 없어요.”
“아, 네.”
현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애써 웃었다.
‘침착하자. 여기는 지옥이 아니잖냐.’
현무는 지옥에서도 슬라임을 본 적이 있긴 있었다. 멀리서였지만. 현무가 봤던 놈은 지금 이 수조안에 든 슬라임을 3층 상가만 한 크기로 부풀려 놓은 듯한 놈이었다.
놈은 몬스터가 숨어든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흐물흐물하게 녹여 먹었다. 현무의 눈에는 수조 옆에 있는 두 사람이 벌써 죽은 목숨처럼 보였다.
지옥의 끔찍한 몬스터만 봤으니 현실에선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게 되는 것 같았다. 현무가 긴장한 듯하자 공무원은 아예 수조 안에 손을 집어넣기까지 했다.
슬라임이 흐물흐물 공무원의 손등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지만 가볍게 털어내는 걸로 떨어져 나갔다.
“귀엽죠? 스킬 테스트용으로 포획해 온 겁니다. 먹이만 주면 분열하니까 키우기도 쉽고. 어디 한번, 독혈 스킬을 발동시켜 보실래요?”
현무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수조 앞으로 다가갔다. 공무원은 상처를 낼 칼을 넘겨주려 했지만, 현무는 수조 위에 손을 내밀고 주먹을 꽉 움켜쥐는 걸로 대신했다. 즙을 짜 내는 것처럼 검붉은 피 몇 방울이 수조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걸로 되겠어요? 슬라임이 약하긴 하지만 체액이 많은 몬스터라…….”
그 순간 헌터 출신 공무원은 입을 다물었다. 현무의 체액이 슬라임에 닿기 무섭게 색이 검은색으로 순식간에 물들더니 형태를 무너뜨리고 사방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변질된 슬라임의 사체는 이리저리 뒤틀리며 말라 들어갔고, 동시에 뿜어져 나온 액체는 부글부글 끓었다. 엄청난 악취가 사방에 풍기자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헌터 출신 감독관은 코를 틀어쥐고 황급히 손을 저었다. 하급자 공무원은 서둘러 수조를 덮어 들고 체육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합격인가요?”
헌터 출신 공무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어, 음. 스, 스킬이 있는 건 확실한데 기존 케이스와는 조금 달라서…… 사, 상부와 상의해 보고 결정해 드리겠습니다.”
***
“능력치 판정이 심의 보류네요? 뭐, 그 기계는 좀 자주 말썽이라 양해 부탁드릴게요. 나중에 다시 오시고, 등급 판정은 핸드폰으로 통보가 갈 거예요. 그리고 스킬은…… ‘독혈이라는 게 확인되었지만 좀 더 자세한 확인이 필요’라고? 이게 말이야, 소야?”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마무리를 맡은 공무원은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다른 공무원보다 직급이 높아 보였는데, 현무가 보류 판정을 받은 게 많아 최종 심사가 그녀에게까지 넘어온 것 같았다.
“스킬이 있다는 걸 확인만 하면 됐지, 지들이 무슨 세종 연구소 직원인 줄 알아요. 됐습니다. 현무 씨. 일단 기초 판정은 합격이에요. 그리고…… 헌터 능력 시험도 보실 거죠?”
“네.”
현무의 대답에 공무원은 힐긋 현무를 바라보았다.
“그럼 조금 후에 시험 시작하니까 가지 말고 안내 책자 가져가세요. 이번은 태성 클랜이랑 합작해서 치르는 거라 기존 시험이랑은 많이 다를 거예요. 높은 레벨은 아니어도 경험자도 참가할거고. 정부에서도 백두 던전 공략을 꽤나 밀어 주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서.”
공무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꼰대처럼 들리더라도 싫어하지 말아요. 아직 젊어 보이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헌터라는 게 화려하고 멋져 보일지 몰라도 다 목숨 걸고 일하는 거예요. 용병이나 다름없죠. 죽는 사람도 꽤 많아요. 그냥 1성 던전에서 수정이끼 채취하고 고블린 슬라임 부속물 팔아서 생활하실 거면 모르겠는데, 괜히 이지태나 박도령, 오대성 같은 사람들 보고 욕심 부리면 좋을 거 하나 없어요.”
꼰대 같은 말투였지만 지친 목소리 안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능력치 갱신하러 오던 헌터들 갑자기 안 보이면 대개 결말이 네 가지예요. 죽었다. 불구가 되었다. 정신 병원에 갔다. 감옥에 갔다. 정신 차리고 은퇴하는 경우도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경우도 완전히 떠나진 않더라고요.”
“그렇군요.”
“거, 누구냐. 4성 판정 받았는데도 헌터 안 뛰고 학자 한다는 사람도 있었잖아요. 마리아 켈러였나? 아무튼 그거 보고 사람들은 그 아가씨를 비웃던데, 저는 오히려 똑똑하니까 헌터 같은 걸 안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헌터 중에서도 돈 잘 버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데 왜들 그렇게 헌터에 목숨을 거는지.”
“꼭 돈 때문은 아닐 수도 있죠.”
현무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피곤한 눈을 들어 현무를 바라보았다.
“그럼 뭐요? 명예? 권력?”
“인류를 지킨다는 사명감?”
현무는 반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어차피 현무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전부를 움켜쥘 생각으로 만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현무는 이미 막장이 된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현무는 그런 미래에서 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평화롭고 화창한 미래에서 부와 명예를 탐욕스럽게 누리다가 죽을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죠. 언젠가는 던전 난이도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올라갈지도.”
예를 들면 미세먼지가 사람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다거나, 구름으로 착각할 만큼 많은 모기떼가 날아다닌다거나, 인류는 멸망하고 몬스터가 인구를 대신한다거나.
그런 구체적인 예를 들진 않았지만 공무원을 생각에 빠뜨리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때가 되면 헌터들이 바보라고 생각했던 제가 바보가 되겠죠.”
그녀는 도장을 들어 현무의 능력자 등록증에 도장을 쿵쿵 찍어 주었다. 그리고 등록증과 함께, 두툼한 파일을 함께 건넸다.
“헌터 등록 시험 안내 책자랑, 전능련에서 출판한 <던전 서바이벌 가이드>예요. 던전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사냥 팁, 헌터들 간의 예절, 비상 연락처, 몬스터들에 관한 사전적인 정보 같은 게 적혀 있으니까 꼭 읽어 보세요. 살아남는 데 도움 될 거예요. 헌터 능력 시험도 테마가 던전이라고 했고.”
현무는 씩 웃었다.
“정말 궁금하네요. 던전이 어떤 모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