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90)
지옥에서 독식-190화(190/346)
190화. 하나의 목표, 각자의 길 (5)
‘이거…… 잘만 하면.’
현무는 원래부터 이번 원정 중에 계획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훨씬 더 깔끔하게 진행할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자면 조금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그건 차차 생각하면 그만이다. 현무는 일단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최종수단? 원래 모든 종류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어.”
“그것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껏해야 대학살 가지고 이렇게 말하진 않을 것 같았다. 현무는 아까 보았던 아담 폴트의 상태창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아담 폴트(LV )]레벨이 보이지 않았다.
놀랍긴 했지만 충격적이진 않았다.
분석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그걸 숨기는 아이템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현무가 놀란 것은 아담 폴트가 종족명이 아닌 고유명사로 표시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경우는 단 두 가지 경우밖에 못 봤다.
네임드 몬스터이거나, ‘카와로’처럼 별의 직접적인 권속이거나.
설마 몬스터일리는 없을 테니 아담 폴트는 별에 관련된 자가 분명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그리고 그런 아담을 수족으로 부리고 있는 켈러 교수는 어떤 사람일지 더 궁금해졌다.
그녀는 정말로 ‘최종 수단’이었다.
아미니가 만약 공략에 실패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장낼 것이라고 했던 말은 진심이라고 현무는 확신했다. 그리고 한 가지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중국군 공략은 실패한다.
그리고 결국 아담 폴트는 최종 계획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
“돌아갔습니까?”
“갔습니다.”
이지태는 탐탁잖은 모습으로 크롬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다.
아미니는 그들이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납득하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어차피 현무 일행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일 수 없든, 정부 간에 정해진 일이면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샤오지에도 중국군 장군과 함께 돌아가고, 테라스에는 아담 폴트와 아미니만이 남았다.
“한국 팀이 고집을 부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물론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은 아니지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서 당신이 나서야 하게 되면 강현무 씨나 이지태 씨가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요.”
아담 폴트는 가스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며 아미니에게 말했다.
“이걸로 대동강 이북은 중국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겠군요.”
“물론 그 전에 평양 탈환이 우선이지만요.”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아미니는 평양 시내 한가운데서 보이는 류경 호텔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복잡한 감상과 계산이 스쳤다.
아미니 말고도 특수 감찰부 내에서는 이 사안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샤오지에 팀은 강했다.
한국 팀과 함께 들어가는 것보다 가능성도 높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을 때에도 더 안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미니는 낙관적으로 보기 힘들었다.
“반반이요.”
아담 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점수가 짜시군요.”
“그녀가 중국 최고가 된 건 사다리를 다 차버렸으니까 그런 거죠. 샤오지에는 자신이 최고가 되기 위해 중국의 최고 상한점이 되어버렸어요. 경쟁 상대가 없죠. 덕분에 그녀의 팀은 말할 것도 없이 이번 공략에 있어서 최적의 팀이지만…….”
샤오지에는 크롬의 후원을 받으며 자신만의 팀을 오랫동안 꾸려왔다.
그 팀을 꾸리기 위해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날 선 칼이 필요하지 검집이 필요하진 않았다.
눈 감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샤오지에의 극단적인 행동 방식이 마음에 걸려요. 다양성이라는 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니까요.”
아미니는 아담 폴트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도 ‘만약의 상황’이 닥쳤을 때 샤오지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장점이지만요.”
아미니는 아담 폴트를 돌아보았다.
“크롬이야말로 ‘만약의 상황’을 위해 당신을 보낸 걸 보니 실패 확률이 높다고 본 것 아닙니까? 당신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요.”
아담 폴트는 무표정하게 지켜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미니는 아담 폴트와 켈러 교수를 존경하고, 동경하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 대해 드는 것은 의문뿐이었다.
그리고 마음 언저리에는 두려움까지도 자라고 있었다.
UN특수감찰부는 마리아 켈러의 조언을 구하던 것을 넘어 대부분의 정보를 의지하고 있었다.
크롬의 힘은 알면 알수록 놀라울 지경이었다. 샤오지에 팀만 해도 중소국가의 군사력에 비견할 정도였으니까.
아담 폴트가 입을 열었다.
“켈러 교수님은 언제나 만약을 대비하고 계시지만, 그 순간이 최대한 늦기를 바라십니다.”
“…….”
“하지만 그 때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아담 폴트는 아미니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뒤 등을 돌렸다.
“샤오지에 팀이 성공하기를 비십시오.”
아담 폴트까지 떠나간 테라스에는 아미니 혼자 남았다.
아미니는 가만히 황색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주섬주섬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선임감찰관 한명이 우연히 얻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지금처럼 황토색 하늘이 담겨 있었다.
황량한 사막과 황토색 하늘은 지평선조차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유독 검은 선이 마치 장난처럼 그어져 있었다.
다른 장소, 다른 때였다면 그저 인쇄실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찍은 장소를 알면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사진의 장소는 남수단이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아담 폴트는 남수단에 갔을 때 조용히 말로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실력행사를 했고, 남수단 정부가 행동을 바꾸도록 강요했다.
그 어디에도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여파는 남았다.
남수단 정부는 결국 이후 능력자가 주도한 쿠데타 세력에게 궤멸되었고, 지금도 남수단에선 피를 피로 씻는 내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미니는 남수단에서 ‘체페슈 케이스’라고 불리는 것이 아주 작은 규모로 벌어졌던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인류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평양수복계획을 성공시켜야 해.’
아미니는 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했다.
적은 몬스터만이 아니다.
수면 아래서 인류 문명의 근간이 뒤틀리고 있었다.
어쩌면 평양 수복계획은 거대한 시대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
***
‘흠, 아담 폴트. 아담 폴트라…….’
회의가 끝난 뒤, 현무는 열사릉 근처의 공터를 배회하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별과 관련된 자라면 가장 가까이는 이지태가 있다.
이지태는 앞서가는 별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지태가 그렇게 눈에 띄게 강하다거나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물론 이지태는 강하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박도령이나 자신과도 비견할 수 있는 힘이다. 혹은 하현이라거나.
하지만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권속이었던 카와로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어쩌면 별의 권속에게도 등급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하현!”
스륵,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하현이 나타났다.
기척을 숨기기 좋은 하현은 다른 능력자들을 만날 때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현무의 배후를 지키고 있었다.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그냥 나오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그렇게 하인 부르듯 부르지 말고.”
“이쪽이 있어 보이잖아.”
현무는 아무데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하현은 힐끔거리며 현무가 앉은 곳을 보며 말했다.
“여기 무슨 혁명 열사릉이라며. 그거 무덤 같은데.”
“그래? 그런데 여기 추모하러 올 사람들은 다 죽었잖아. 괜찮아.”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하현은 따지기를 포기했다.
“너는 속삭이는 별의 권속이라고 했지? 어떻게 별의 권속이 됐는지 말해줄 수 있어?”
이때까지 현무는 별의 권속이 되는 법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애초부터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벨 50을 달성한 뒤에도 별의 속삭임은커녕 존재도 알기 어렵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주변에 별과 관련된 자들이 나타나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경우만 놓고 말하자면 기억이 애매하긴 한데…… 대충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알아.”
하현은 거미줄로 모형을 만들면서 말했다.
“인간 중에 특별한 업적을 쌓거나 두각을 드러내는 자가 있다면 별이 접촉해. 그리고 별과 공통점이 있다면 속삭이기 시작해. 자신의 권속이 되라고.”
“흠, 그래서?”
“일단 권속이 되고나면…… 일단 그 별에 관련된 권능 일부를 물려받지. 능력도 강해지고. 그리고 별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인정을 받다보면 점점 더 강해지고, 별의 권능을 더 많이 받으면서 육체가 별이 원하는 형태에 맞춰 진화해가지.”
현무는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이 원래 송여운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외형은 완전히 다르다. 원본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속삭이는 별의 취향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순간 현무는 입을 살짝 벌렸다.
“잠깐, 그럼 몬스터가 되는 건가?”
“그게 놀랍나? 이미 넌 본 적 있잖아. 몬스터가 된 사람들을.”
하현, 그리고 허기진 자들.
“……그럼 몬스터들은 전부 인간이었다고?”
“아냐. 대부분은 그냥…… 마나가 자아낸 객체들이야. 대체 어디서 원본을 따와서 그런 게 그냥 생겨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수정이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마나가 결집되고 변질되면서 만들어진 거지.”
키르손의 설명과도 틀리지 않았다.
키르손은 고블린들이 번식할 수도 있지만, 자연적으로 자신들 틈 사이에서 생겨나기도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인 셈이다. 뭔가를 먹지 않아도 마나만으로 연명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무는 어쨌거나 한가지만큼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별의 권속이 된다는 건 몬스터가 되어간다는 건가?’
서서히 그렇게 되어간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이지태는 아직 그 수준이 미약한 게 분명했다. ‘인간’으로 표시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담 폴트는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별이라.’
이야기가 복잡해졌다.
난이도: 지옥에서 별들은 강대하고, 인류는 그 아래 휘둘리고 있다.
아니, 인류라 할 만한 자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미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인류를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미 현무는 자신이 그런 가능성에 대해 내심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물 투성이라 해도,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누가 오물에 뛰어들 것인지의 문제였다.
다행히 현무는 이미 오물에 발을 담근 상태였다.
“누가 와.”
그때 하현이 속삭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인기척이 느껴진 순간 하현은 어느새 자리를 비우고 사라진 뒤였다.
공동묘지 저편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은 아까 봤던 중국 측의 여성이었다.
후줄근한 후드티를 입은 여자, 샤오지에.
그냥 우연인가 했지만 그녀는 바로 현무를 향해 다가왔다.
“어딜 갔나 하고 있었더니 이런 우중충한 곳에 있을 줄이야.”
현무는 샤오지에가 왜 친한 척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알 수 없었다.
“용건이라도?”
“아, 단도직입적이군. 좋아. 한국의 강현무. 오성회랑(悟星回廊)을 훔쳐 본 자로서, 제안할게 있다. 네 눈을 본 순간 나와 뜻이 맞을 거라고 직감했지.”
“죄송하지만 제가 아비 없이 산 탓에 조상님은 따로 모시고 살질 않아서…….”
“……사이비 종교가 아니야.”
샤오지에는 짐짓 꾸중하듯 말했다.
“한국의 강현무. 네가 관심을 가질만한 제안이 있다.”
“제안?”
“그래. 나 샤오지에는 네게 동맹을 제안한다.”
“동맹?”
“그래, 동맹이다. 우리 뜻이 맞을 거라고 확신하지.”
“뜻?”
“……자꾸 뒤의 단어만 반복해서 묻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급전개라서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그래. 너는 공동묘지 무덤 위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나 덥석 동맹을 맺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냐?”
샤오지에는 피식 웃었다.
후드 아래 음울한 눈동자는 색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탁했고, 어두웠지만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눈이었다.
그녀는 현무가 자신과 한편에 서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나와 너의 계획이 일치할거라고 확신한다. 한국의 강현무.”
“내 계획이 뭔지 알고?”
샤오지에는 사납게 웃어보였다.
“평양수복계획이 처참하게 실패하는 것이다. 너도, 나도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안 그런가?”
현무는 그만 자신도 마주 웃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말았다.
그렇다.
그것이 인류를 위해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