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94)
지옥에서 독식-194화(194/346)
194화. 지옥이 온다 (4)
벼락이 평양 도심을 가로질렀다.
파천검은 뇌전으로 하얗게 달아올라 창백한 빛을 내뿜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든 뇌전의 격류가 몰아쳤다.
박도령의 나약한 분신들은 사방에 퍼져나가는 번개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소멸하여 사라져버렸다.
박도령은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지태의 뇌전은 분신 속에 진짜 위험한 분신을 숨기는 박도령의 기본 전략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고, 무엇보다 박도령은 이지태를 보호해야 할 처지였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매를 드는 수밖에 없다!”
박도령은 분신들과 동시에 파편을 꺼내들어 쏘았다.
장거리 저격이라면 모를까, 근거리에서라면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지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 차이의 간격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파편을 흘려보냈다.
박도령은 움찔하며 재차 수십 발의 파편을 쏘았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이지태는 마치 바람처럼 파편을 흘려보내고는, 단숨에 분신에 칼을 꽂아 넣었다. 터져 나오는 뇌전이 분신을 하얗게 물들였다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이지태는 등 뒤로 날아온 박도령의 파편 역시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목을 틀어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무는 ‘역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앞서나가는 별의 권능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짧은 순간의 미래까지는 볼 수 있는 게 분명했다.
박도령은 이지태를 봐주고 있지 않았다.
그 역시 이지태 만한 상대를 ‘봐주면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죽일 각오로 싸워야만 무력화라도 노릴 수 있겠지.
하지만 이지태는 박도령을 압도하고 있었다.
“소용없습니다. 박도령.”
이지태는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박도령에게로 향했다.
“저는 지금 수천 갈래의 미래를 동시에 보고 있습니다. 당신과 저는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현무는 이지태의 말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박도령의 팔이라도 하나 잘라낸 다음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좋을 텐데.
하지만 현무야말로 지금 이지태와 힘을 합쳐 박도령을 공격하면 쉽게 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팝콘 각이었기 때문에 구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별의 속삭임을 들은 이지태의 능력을 좀 더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이지태가 차분하게 박도령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박도령은 손가락 사이마다 파편을 꺼내들었다.
매섭게 쏘아붙이는 파편들이 이지태의 코앞에서 조각나며 산탄총처럼 무수한 탄막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아예 피할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지태는 그 파편의 탄막 속에서조차 자신이 빠져나가야 할 틈을 읽어내고 있었다.
한두 조각 정도는 맞아줄 법도 한데, 파천검으로 가볍게 쳐내는 것 외에는 단 한 올의 틈도 주지 않고 있었다.
현무는 마치 이지태가 파편들 속으로 안개처럼 녹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박도령은 마지막 파편을 던지며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리려 시도했지만, 순간 이지태의 칼끝이 번뜩였다.
마지막 파편이 박도령의 코앞에서 쩡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이지태의 칼끝이 박도령의 목젖에 닿았다.
일방적인 결과였다.
***
박도령은 손에서 피를 흘리며 이지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현무는 이지태를 지켜보면서 내심 느끼고 있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완벽했어.’
현무는 이지태의 동작과 검세가 완벽했다는 것을 느꼈다.
워낙에 빨라서 놓친 부분도 있었지만, 현무는 배틀 헬퍼를 업그레이드 했을 때 싸웠던 이지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지태의 움직임은 이미 완벽했다. 파천검을 얻은지 반년도 안됐는데 이렇게 익숙해진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이지태는 배틀 헬퍼 같은 보정 능력도 없다.
‘아니, 능숙해진 게 아니야.’
능숙해진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눈은 최선의 결과로 이지태를 인도한다. 배틀 헬퍼를 통해 최적의 움직임으로 보정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보정이었다.
결국 이지태는 저 눈을 사용한 상태에선 절대로 실수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적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현무가 끼어들 틈도 없이 결판난 지금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지태는 탐탁찮은 모습이었다.
“왜 권능을 쓰지 않는 겁니까, 박도령.”
이지태가 겨눈 칼끝과 박도령의 목 사이에서 전기가 튀어 올랐다.
“궁극기를 쓰십시오. 권능도 쓰십시오. 당신도 별의 속삭임을 듣지 않았습니까.”
박도령의 입술이 달싹이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지태가 칼을 박도령의 뒤쪽을 향해 휘둘렀다. 보이지 않던 거미줄이 툭툭 끊어져 나갔다.
“강현무 씨, 잠시 시간을 주시죠.”
박도령의 머리를 끌어당겨 그대로 칼에 처박게 하려던 심산이었던 강현무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 때 기회를 놓치면 안 돼. 이지태.”
“맞는 말이다. 이지태.”
박도령은 이지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누가 네 편인지를 알아야 해. 내가 권능도 궁극기도 쓰지 않는 이유? 난 진짜 적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 너와 싸우기 위해 힘을 뺄 수는 없다. 나는 네 편이야. 지금이라도 힘을 합쳐 강현무를 제압해야 한다.”
이지태가 칼을 밀어붙이자 박도령의 턱 끝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말입니까?”
“……그럼 네 인생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되겠지.”
박도령은 정말 포기한 것처럼 눈을 감았다.
이지태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는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서로 끝장낼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은 현무도 마찬가지였다.
현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지태, 너 자신을 믿어라.”
박도령은 피곤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바보 같은 별이나 운명 따위가 아니라, 네 판단과 지성을 믿어라. 저 자가 정말 너를 빛내줄 것으로 보이나? 저놈은 불이야. 널 빛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태워 버리고 말 거다.”
현무 역시도 등 뒤에서 속삭였다.
“이지태.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너는 이미 저 놈을 버리고 나를 선택했어. 누가 네 미래에, 너와 가장 가까이서 빛나고 있지? 저 가면 쓴 괴짜냐, 아니면 네가 미래에서 본 나냐?”
“네가 갖고 싶은 미래가 불탄 잿더미냐? 아니면 낡았을지언정 번영하고 있는 세계냐? 나는 네가 꿈꾸는 세계를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지태! 다른 놈들은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만!”
이지태가 노성을 터뜨린 순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셋은 동시에 이변을 느꼈다.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무리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강력한 기운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란을 부리고도 주의를 끌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언데드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지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
“또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는군.”
“좋아. 더 이상 미룰 필요 없겠지.”
그 순간 이지태를 사이에 두고 있던 박도령과 강현무가 동시에 움직였다.
강현무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탐으로 이지태의 등을 찌르는 동시에, 박도령은 이지태를 향해 파편을 던졌다.
당연하게도, 이지태는 이미 그 사실을 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지태는 박도령의 목을 찌르는 대신 그저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사이에 끼어있던 이지태가 회피하자 흘려보낸 무기들은 정확히 박도령과 강현무, 서로에게로 향했다.
이지태는 잇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박도령, 당신……!”
“어차피 다 피할 테니까 봐줄 필요도 없겠지.”
박도령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도 꽤 큰 결심이 필요했던 것 같았지만 이제 그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박도령은 정말로 이지태가 맞아도 상관없다는 기세로 파편을 집어던졌고, 강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지태는 정면과 등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정신없이 피하기만 해야 했다.
한순간만 실수해도 공중에서 토막이 나게 생긴 상황 속에서, 박도령과 현무의 살기는 살벌하게 서로만을 향해있었다.
“미쳤습니까! 지금 몬스터들이…….”
샤오지에 팀의 실종은 안중에도 없이, 둘은 서로간의 싸움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지태는 어쩔 수 없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박도령을 제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칼날이 박도령의 팔을 베어낼 기세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천검이 날아든 순간 박도령의 팔이 두터운 금속 파편으로 뒤덮인 것이다.
이때까지 박도령이 집어던지던 파편들이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두텁게 몸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박도령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탐마저도 잡아챘다. 현무는 탐을 다시 뽑아들려 했지만 붙잡힌 조각들은 그대로 파편에 잡아먹혀 나오지 않았다.
“궁극기입니다. 강현무 씨, 뒤로……!”
“그오오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해골 기사가 유령마를 끌고 달려들었다.
사방은 순식간에 언데드 대군으로 뒤덮였다. 그들을 그대로 압사시켜버릴 것 같은 숫자였다. 평양에 있던 놈들은 다 몰려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셋은 순식간에 그 무수한 숫자의 언데드들에게 파묻혀버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일대의 언데드들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 중심에 궁극기를 사용한 박도령이 있었다.
박도령의 몸 주변에 금속 파편들이 고슴도치처럼 완벽한 구형으로 둘러싼 채 회전하고 있었다.
언데드들이 다시 좁혀오자 박도령은 소매를 펄럭 흔들었다.
그의 몸을 맴돌던 파편들이 순차적으로 가까이 오는 몬스터들을 요격했다.
개중 해골 기병이 용맹하게 돌진해왔지만, 몸보다 더 많은 양의 파편을 맞고 터져나갔다.
“강현무!”
그 와중에도 박도령은 몬스터나 이지태에겐 관심이 없었다.
“나와라, 강현무! 죽은 척 하는 게 네 장기인가?”
약한 몬스터들은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날카롭게 회전하는 금속 파편에 베여나갔다. 공격과 방어가 조합된 완벽한 궁극기였다.
하지만 궁극기를 사용한 후에는 탈진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당장 결과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강…….”
그때 날카로운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부채꼴 형태의 뇌전에 무수한 양의 언데드들이 터져나갔다.
“이 상황에서도 강현무를 찾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지태가 뇌전으로 쓸어버린 눈앞에 바로 그 언데드 몬스터, ‘리치’가 공중에 떠 있었다.
샤오지에 팀을 고립시킨 바로 그 몬스터였다. 리치는 걸레짝 같은 옷을 걸친 채 흐느적거리며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손을 들어올렸다.
리치의 손끝이 허공을 죽 훑은 순간, 이때까지 터져나가거나 박살났던 언데드들이 모두 재조립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쿵쿵거리며 일어선 것은 이지태도 던전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언데드 군집체였다.
이지태는 한숨을 쉬며 궁극기를 사용했다. 상황이 이러니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보는 편이 좋았다.
광휘의 날개가 뻗어 나오자 주변의 안개와 끼어있던 서리가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지태는 단숨에 도약해 언데드 군집체를 꿰뚫었다.
“그오오오!”
그 모습을 본 리치가 괴성을 내며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양 손에 시커먼 기운이 맺히면서 주변의 바람이 요동쳤다.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지태는 더 늦기 전에 리치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그의 곁으로 무언가 섬광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퍽 소리와 함께 리치의 양손이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강현무!!”
박도령이 길쭉하게 변형된 금속 창을 든 채 소리치고 있었다. 파편 수십 개가 달라붙어 하나의 형태를 갖춘 창이었다.
박도령은 다시 창을 들어 리치를 향해 집어던졌다.
손을 잃고 흔들거리던 리치는 창을 정통으로 맞은 순간, 상반신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강현무!!”
“잃어버렸던 짝사랑도 그렇게 애타게 찾지는 않겠습니다. 박도령.”
이지태는 어이없게 죽어버린 리치를 보면서 할 말을 잃고 중얼거렸다.
너무나 싱겁게 나버린 승패였다. 아니, 너무 약했다. 뭔가 이상했다.
박도령 선에서 정리된 수준 아닌가. 리치가 고작 이 정도라면 샤오지에 팀이 당할 이유가 없었다.
박도령은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 어디 숨은 거야!”
박도령은 사방에 미친 듯이 궁극기를 난사했다. 어디에 숨어있든 맞춰 죽여버리겠다는 심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지태는 주변에 강현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언데드가 나타났을 때 죽었을 리는 없으니 그 순간 바로 피해버린 것 같았다.
“강현무!!”
그렇게 허무하게 시간이 흘렀다.
박도령은 그대로 건물 서너 채를 무너뜨리고, 사방을 금속 파편으로 이루어진 계곡처럼 만들어놓았다.
언데드 중 80%는 박도령 혼자서 죽인 것 같았다.
결국 강현무를 찾지 못하고 박도령의 궁극기 지속시간이 끝났다.
박도령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이제 박도령은 적어도 한나절 이상은 제대로 힘을 못 쓴다.
“수 싸움에서 졌군요. 박도령.”
“…….”
“강현무 씨에게 용서를…….”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박도령의 목이 꿰뚫렸다. 이지태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박도령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관통된 목을 손으로 막으려고 애써보았지만 힘겨워보였다.
피가 목구멍과 손가락 사이로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지태는 급히 달려가 상처에 포션을 부어보았다.
하지만 간신히 연명할 정도로만 만드는 게 전부였다.
이지태는 강현무를 찾으려 했다. 그때 박도령 옆에 생긴 둥근 탄흔을 발견했다.
박도령의 목을 꿰뚫은 것은 총이었다.
그리고 강현무는 총을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구경 잘했습니다. 한국의 이지태 씨. 덕분에 여기까지 왔군요.”
안개 너머에서 샤오지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