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08)
지옥에서 독식-208화(208/346)
208화. 새로운 질서들 (5)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평양으로 출격한 편대로부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건 나도 보면 알아, 자식아! 보고 들어온 게 없냐고!”
“그게…….”
중국군 장교의 호통에도 상황병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그때 그들을 구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통신병이 벌떡 일어나며 외친 것이다.
“귀환중인 폭격기 한 대의 신호가 잡힙니다! 편대장의 신호입니다!”
상황병들은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장교의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서른 대가 출격해서 한 대만 돌아오고 있다고?”
그제야 상황을 눈치 챈 병사들은 재빨리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을 닦달할 시간은 없었다.
한 대라도 돌아온다면 일단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들을 수 있다.
장교는 바로 편대장으로부터 보고를 들을 준비를 하면서 창밖을 보았다.
동쪽 하늘에서 연기를 길게 끌며 날아오는 폭격기가 보였다.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무사히 착륙하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일단 구급대에게 연락하려던 장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교는 부관에게 말을 걸었다.
“야, 저거.”
“예?”
“저거…… 활주로로 날아오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예? 어, 그렇네요. 각도가 꼭…….”
“신호가 더 잡힙니다!”
부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이더병이 또 다시 소리쳤다.
장교는 레이더병에게 다가가면서도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레이더병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편대장을 비롯, 15대가 귀환 중입니다!”
서른 대가 전멸했나 싶다가 겨우 한 대만 남은 것보다는, 절반이라도 살아 돌아오는 편이 낫다. 하지만 장교는 안도하며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의심병에 사로잡힌 그의 눈에는 이제 막 잡힌 레이더 신호도 이상하게 보였다.
“……이것들 어디로 가는 건데?”
편대는 뿔뿔이 흩어져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출격했던 기지가 아니라 중국 곳곳으로.
“어, 상태가 안 좋아서 긴급착륙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마치 흩뿌려진 밀알들처럼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전투기 열다섯 대가 일제히 비슷한 손상을 입고 귀환 중이라는 게 이상했다.
순간 편대들이 비행중인 방향을 본 장교의 등골에 싸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전투기! 전투기를 출격시켜! 지금 귀환중인 편대 전체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내려라! 방공 부대에 연락하고!”
“예?”
“당장…….”
“으아아아악!”
장교의 명령은 비명에 묻혔다. 비명을 지른 병사는 창밖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 폭격기의 굉음과 함께 기지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장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기지를 향해 추락하는 불타는 폭격기와, 조종석에 탄 가죽이 벗겨진 해골이었다.
충돌과 동시에 폭탄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공군 기지는 거대한 불바다에 휩싸였다.
***
“……확실히 범상치 않은 상대인 것은 분명하군.”
크롬의 수장, 마리아 켈러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TV를 보며 말했다.
TV에서는 불타는 중국 시가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폭격기 15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중국 곳곳의 주요 시설들에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
“주석궁, 국방부, 의회, 각종 군사기지…… 뭐지, 이건? 자금성? 여긴 관광지잖아? 대체 여긴 왜 타격한 건지 모르겠군.”
“몬스터 눈에는 그럴듯한 곳으로 보인 모양입니다.”
아담 폴트가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만리장성은 무사한가?”
켈러 교수는 비꼬듯 말했지만 그럴듯하게 여겨지긴 했다.
채널에서는 중국의 내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북한 원정으로 큰 타격을 입은 중국이 무리한 숙청으로 내부 단속을 벌인 탓에 불만이 치솟고 있었다.
설상가상 이번 폭격기 테러로 주석궁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면서 현 중국 주석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당 대표가 직접 나서 주석은 무사하고, 벙커에서 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지휘중이라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장 현 주석에 반발하던 중국 남부와 위구르, 티베트 자치구에서 미묘한 긴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평양을 폭격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자기 나라 중요 시설에 자폭을 감행했다는 건 별로 진지하게 안 비치는 모양이군요.”
“일반인들은 조종사들이 몬스터한테 당해서 자국을 공격했다는 걸 믿기보다 음모론과 내부 분열을 더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거든. 현 상황만 놓고 보자면 정말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군.”
만약 중국이 북한에 폭격기를 발진 시킬 거라는 것을 한스 크루거로부터 미리 듣지 않았다면 켈러 교수도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켈러 교수는 피곤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담, 체페슈 케이스를 막아냈다는 그 괴물이 카자트였나?”
“아닙니다.”
아담 폴트는 힘주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담 폴트와 켈러 교수 역시 추모관 준공식 영상에서 카자트의 모습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담 폴트는 카자트가 평양에서 봤던 무언가와는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안개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기세와 보여준 힘만 봐도 완전히 달랐다.
물론 카자트라는 그 몬스터가 정체불명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능력을 쓴다면 모습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담 폴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카자트에게서 그 기이한 힘과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켈러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는 기색이었다.
“놈이 주인 어쩌구를 언급했었지. 네가 봤다는 괴물은 어쩌면 녀석의 배후에 있는 놈일지도 모르겠군.”
켈러 교수는 언짢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애초에 카자트라는 놈도 지금 난이도에서 등장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이런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분명히 별과 관련된 존재일 텐데…….”
켈러 교수는 고민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이게 무슨 엉망진창인지.”
“사제들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담 폴트의 제안에 켈러 교수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안 돼.”
아담 폴트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켈러 교수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러나 켈러 교수는 묻지 않아도 혼잣말을 중얼중얼 말을 이어갔다.
“사제들은 던전 관리 외에는 우리 상황에 무관심한 쪽이 좋아. 놈들이 저번에 이변이 발생했을 때 좋아 죽던 모습이 기억나는군. 놈들은 인류의 영위에 관심이 없어. 지금 이 상황이 문제가 있다면 분명 알아서 나설 거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갖다 바칠 필요는 없지.”
켈러 교수는 미간을 짚으며 평양과 중국, 그리고 남한의 이 모든 기묘한 변화에 모두 한 다리씩 걸친 존재를 주시했다.
“강현무를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할 필요가 있겠어. 일단 강현무를 최대한 띄워줘. 그리고 중요한 요직도 하나씩 안겨주고. 특수감찰부 명예요원 따위로 때우지 말고.”
“그렇게까지요?”
“보는 눈이 많아질수록 강현무가 약점이든 숨기는 점이든 드러낼 확률은 높아져. 함부로 움직이기도 힘들어질 테고. 아예 하는 김에 크롬의 중요 요직에도 앉혀놓지. 샤오지에가 죽었으니 크롬 동아시아 지부장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르겠군.”
“강현무는…… 약간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만.”
강현무를 직접 본 적 있는 아담 폴트는 이례적으로 조심스러워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켈러 교수가 그녀의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꼬집고 때리는 것도 감수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켈러 교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그녀는 강현무라는 이름에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그었다.
“녀석에게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놈이 심상찮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해. 일단 뭔가 찾아내기 전까지는 최대한 주의하면서, 녀석을 인류의 희망으로 만들어놓자고.”
켈러 교수는 희망사항인지, 기도인지 모를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
끼이이익.
강철문이 열리면서 어두운 실내가 드러났다. 곰팡이 냄새와 뒤섞여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왔다.
현무는 문 안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먼지가 흩날렸다.
거대한 지하 공동 가운데 바닥에는 한 여자가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노하을 씨.”
현무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쓰러져 있는 여성의 어깨를 툭툭 쳐 깨웠다.
현무가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갔을 때 그와 동행했던 호환마마 소속 감찰관, 노하을이었다.
노하을은 흠칫 어깨를 떨더니 현무를 보고 허겁지겁 물러섰다. 긴장한 그녀의 얼굴을 본 현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송여운,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왜 이렇게 쫄았어?”
“시키는 대로 밥도 주고 마실 것도 주고 화장실도 제공했는데요.”
“피 냄새는 뭐야? 고문했어?”
“아뇨. 노하을 씨에겐 손 끝 하나 안 건드렸어요. 아, 다른 헌터들을 이 방에서 고문하긴 했죠. 저기서.”
송여운은 노하을로부터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검게 말라붙은 피와 살점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노하을은 경계와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현무를 보고 있었다.
원래 이 방 안에는 호환마마 측의 헌터 다섯 명이 있었다. 전부 평양에서 전능련 헌터들을 기습하기 위해 동원되었다가 사로잡힌 헌터들이었다.
노하을은 강현무와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탐탁지 않았지만, 박도령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능련 헌터들과 마주쳤을 때 만난 것은 예상 밖의 전력들이었다.
철벽 방어로 유명한 4성급 능력자 오대성 헌터와 치유계에서는 따라잡을 자가 없는 요한 사제까지.
결과는 호환마마 측 능력자들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4성급 능력자들도 능력자들이지만, 송여운 팀 소속 헌터들의 실력도 상상이상이었다.
요한 사제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다섯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전능련 측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죽이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하을은 그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한 다섯 명 중 하나였다. 이제는 그냥 하나였지만.
“걔네는 왜 죽였어? 뭐 얻은 정보는 있고?”
“음, 솔직하게 말하면 놈들이 아주 질기더라구요.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는데, 그게 정말 몰라서 잡아떼는 건지 아니면 아는데도 숨기는 건지 죽을 때까지 확신할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
“와, 제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지부장님한테 그런 말을 듣는 건…….”
현무는 송여운의 뒤통수를 때려서 쫓아냈다. 현무의 시선은 다시 노하을에게로 향했다.
“노하을 씨. 개인적으로는 사과드리고 싶지만, 이런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쪽이 무슨 용건으로 저희 팀원들을 찾아왔었는지 아니까요.”
노하을은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곳에서만 계셔서 정보가 둔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박도령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지태는 실종 상태구요. 호환마마는 해체되었습니다.”
노하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 몸담고 있던 단체가 사라졌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크게 놀라진 않은 것 같았다.
이때까지 호환마마로부터 움직임이 없다는 것, 그리고 송여운 팀이 지나가듯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내심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리고 저는 특수감찰부 명예특수감찰관으로 임명되었고, 크롬의 동아시아 지부장으로 위촉되었어요. 그리고 북측 영토 임시 총 관리자로 임명되기도 했고요.”
현무는 노하을이 묻지도 않은 정보를 주절주절 이어갔다.
“이게 뭐냐면 북한 지역을 통째로 책임진다는 건데, 일종의 종신 도지사이면서 종신 총독이고, 군사, 사법, 행정 모든 걸 다 맡긴다는 골 때리는 직책이에요. 아무래도 왕을 좀 복잡한 이름으로 붙이고 싶었나 봐요.”
뒤에서 송여운이 큭큭거리는 웃음 소리를 내자 현무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정치권에서도 이게 말이 되냐 아니냐로 말이 많긴 한데, 당장 남한은 북한에 많은 행정력을 쏟아 부을 여력이 없거든요. 평양에서 언제 뛰쳐나올지 모르는 괴물도 불안하고.”
노하을은 힘없이 현무를 바라보았다. 현무가 이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노하을에겐 물러설 구석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노하을 씨를 살려두고 있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에요.”
“……압니다.”
노하을은 마른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모든 동료들이 고문 살해당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멀쩡할 수 있는 이유라곤 현무와의 인연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인성이 나날이 피폐해져 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무는 노하을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살얼음이 낀 맥주 한 병이었다.
노하을은 갈증 나는 표정으로 현무와 맥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하을은 잡아채듯 맥주병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친 손아귀 힘으로 병뚜껑을 딸 수 없자 이빨까지 동원해 따려고 했다. 보다 못한 현무가 직접 비틀어 따주었다.
목이 찢어질 것 같은 청량한 보리 음료가 목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넘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현무는 송여운을 째려보았다. 멀찍이 서있던 송여운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물도 밥도 제때 줬어요. 그냥 저렇게 피폐해진 거예요.”
“……술을 안 줬잖아요.”
노하을은 단숨에 맥주 한 병을 다 들이킨 뒤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알콜이 몸 안을 채우자 알딸딸해진 얼굴이었다. 깊게 숨을 내뱉자 짙은 술 냄새가 풍겨왔다.
“준비 됐습니다.”
“예? 뭐가요?”
“저 죽일 거잖아요. 그렇게 중요하신 분이 되었는데, 저는 강현무 씨 당신의 옛 모습과 악행을 알고 있으니 이제 죽여서 입막음하려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맥주 한 병 주신 건 고맙네요.”
노하을은 몸을 곧게 펴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이번 시즌 야구는 좀 보고 가고 싶었는데…….”
그녀는 이윽고 찾아올 차가운 죽음을 기다렸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편하게 죽는 것은 큰 아량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한참을 기다려도 죽음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인건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그녀 앞에 강현무가 웃음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해하고 계시군요. 노하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