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09)
지옥에서 독식-209화(209/346)
209화. 새로운 질서들 (6)
현무는 아량을 베푼다는 듯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예전에 노하을이 현무에게 준 적 있는 명함이었다.
“저는 당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려는 겁니다.”
현무의 말에 노하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 저를요?”
“네.”
“……저는 딱히 대단한 재능도 없고, 강하지도 않은데요?”
물론 일반 헌터 업계에서는 중견급 이상이다. 호환마마에서 하나의 팀을 맡을 정도니.
하지만 잔뼈가 굵은 것과 별개로, 현무의 팀원들은 그 이상이었다. 현무의 악행까지 봤던 그녀를 살려두면서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이유는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현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우리나라는 실력보다 인맥이 우선이잖아요.”
“능력보다 개인적인 인연을 중요시하다니, 역시 우리 지부장님은 사악하셔.”
송여운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딱히 골라가며 키우진 않거든요. 망캐라고 버리지도 않고, 갓캐라고 우대하지도 않아요.”
현무의 말에 송여운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지금도 그녀의 팀에는 저등급 능력자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현무의 후원과 보조로 태성 흑요석 팀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하을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희롱이라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손바닥 위에 있다고 농락하려 드는 건가? 동료들이 눈앞에서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나갔는데, 내가 넙죽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 줄 아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심각하게 정확한 판단이었다.
순간 노하을은 재빨리 가속 스킬을 사용했다. 그녀가 움직임과 동시에 송여운이 바로 채찍을 꺼내들었다.
송여운의 채찍이 노하을의 목을 움켜쥐는가 싶던 순간,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로 스쳐지나갔다.
노하을은 머리를 바닥에 대고 현무 앞에 넙죽 엎드려 외쳤다.
“살려주시면 잊지 않고 보은하겠습니다!”
휭.
송여운의 채찍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쓸쓸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잠시 굳어 있다가 멋쩍은 모습으로 채찍을 다시 회수했다.
현무는 어이없다는 듯 노하을과 송여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현무는 그녀의 어깨를 쥐고 일으켜 세웠다.
방금 전까지 초연해보였던 노하을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현무는 되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 음. 제가 댁 동료들을 죽였는데 괜찮겠어요?”
“원래 좀 이상한 놈들이었어요! 대뜸 중요한 원정에서 같은 헌터들을 기습하라니, 정상일 리가 없잖아요. 로그도 아니고. 처음 호환마마 들어갔을 때야 와! 루나틱 타이거! 와! 한국 제 2위 클랜! 하면서 좋아했지만 파면 팔수록 어쩐지 쌍팔년도 운동권 느낌이고, 툭하면 정부 욕하면서 부역자들 어떻게 처분할까 하는 이야기나 하고 있고.”
“노하을 씨는 태성이랑도 사이가 안 좋았잖아요.”
“그야 이지태는 저를 태성 면접에서 세 번이나 떨어뜨렸으니까요.”
“…….”
그걸로 그렇게 비장한 모습이 나오나?
하지만 모 기업에서 취업 시장에서 떨어진 인재가 라이벌 기업에 들어가 중견 간부가 되어 만나게 된 느낌이라면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복잡한 느낌이 드는 감상이었다.
생각해보니 노하을은 이지태 탈퇴 이후에 호환마마에 들어갔으니 딱히 깊은 원한을 가질 이유도 없다.
“면접에서는 왜 떨어졌는데요?”
“전날 술을 좀 많이 마셔서…….”
“그런데 용케 호환마마에는 붙었네요.”
“호환마마에서는 그게 가산점 요인이더라구요.”
대체 얼마나 알콜중독자인거야?
현무는 제안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하을을 보고 있으니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일단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닌가?
술고래인 것 치고는 주량이 센 것 같진 않지만.
“면접 때마다 술을 마시는 게 습관인 모양이군요.”
“아…… 그럼 이거 지금 면접 맞는 거죠? 떨어지면 죽습니까?”
“저에 대해서 마구 폭로하고 다닐 겁니까? 원한의 칼을 갈면서 언젠가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나요?”
“그럴 리가요!”
“아니면 됐습니다. 노하을 씨가 클랜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면 조금 곤란해지겠지만 거절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대우는 아쉽지 않게 해드릴 수 있어요. 이젠 돈이 주체 못할 정도로 들어오고 있으니까.”
현무는 조용한 눈동자로 노하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궁금한 건 박도령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노하을은 울상을 지었다.
“할 수 있다면 팬티 사이즈까지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는 게 별로 없는데요.”
“팬티 사이즈까지는 안 궁금하고.”
현무는 노하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동맹이라는 곳에 대해서 듣거나 본 게 있다면 빠짐없이 말씀해주세요.”
***
노하을의 가벼운 심문이 끝난 뒤, 현무는 노하을을 풀어주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지후가 노하을을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노하을은 끝까지 의심스러워하는 눈치기는 했지만 약간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서지후를 따라갔다.
“정리할건가요?”
송여운이 현무에게 물었다.
“응? 아니야. 살려줄 거야. 팀에 넣어줘. 재능 있는 사람이니까 금방 적응할거야.”
“허, 정말로 인맥 때문에 살려주는 거예요?”
“첫 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좋은 사람이고, 재능도 있고, 관록도 있지. 그리고 배신할 것 같지도 않고. 뭣보다, 호환마마 기습 때 노하을이 공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송여운은 호환마마 기습 때를 떠올렸다.
혼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하기는 힘들었지만 노하을은 후방에서 얼쩡거리던 모습만 떠올랐다.
그녀가 죽지 않고 생포된 것도 수틀린 듯 보이자 바로 도망치다가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명분 없는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야. 막 부려먹을 정도로 못되진 않아도 오대성이랑 요한 팀에 같이 넣어주면 좋은 콤비가 될 걸. 그쪽은 워낙에 묵직하니까 좀 날랜 사람이 필요해.”
“우린 막 부려도 되는 사람인가요?”
송여운의 말에 현무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아쉬운 점은 월급과 장비로 메워주잖아? 너희가 어디 가서 그렇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음, 확실히.”
강현무 라인을 탄 뒤로 4성급 헌터가 된데다, 전설급 장비까지 얻었다.
이전의 전능련 헌터였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국가 데이터베이스에는 아직도 그가 2성급 헌터라고 등록되어 있지만, 어차피 취업 시장에 자신을 다시 내놓을 일도 없으니 상관없었다.
정확한 능력 체크는 유민이나 도원경 박사에게 부탁하면 그만이고.
“그래도 노하을이라는 저 헌터…… 생각보다 뭐 아는 게 많은 모양이네요. 심문하신 뒤로 꽤나 밝은 표정인걸 보면.”
“응? 아.”
현무는 씩 웃었다.
“별거 없었어. 동맹에 대해선 뭐 아는 게 없더라구.”
“그럼 왜…….”
“그런데 그 별거 없는 정보가 나한테 필요한 정보였거든.”
***
남자는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두운 방과 낯선 천장이었다.
방문 쪽에 어두운 취침등이 켜져 있고, 벽에는 녹색 LED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CCTV였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머리가 아직도 어지러웠다.
의식이 깨어나자 몸의 감각도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 위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벌레가 깨문 것처럼 맹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내 전신에 지독한 통증이 찾아왔다.
남자는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누군가 방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성인 듯한 그 자는 서둘러 링거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액체가 몸 안으로 스며들기 무섭게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남자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똑같은 천장과 벽이었다. 여전히 CCTV는 녹색 등을 깜빡이고 있었고, 변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몇 번이나 의식을 되찾았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여자가 뛰쳐 들어와 링거에 주사액을 꽂고, 진정시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남자는 몸에 힘을 주었다.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참을만했다.
바늘로 따끔따끔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남자는 간신히 손을 들어올렸다.
손등은 창백하고 삐쩍 말라있었다. 팔의 근육도 죽어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난건가 싶어서 남자는 숨을 헐떡였다.
“진정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그때 갑자기 병실 구석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대체 언제부터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게 마치 가구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남자는 입을 열어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바람 새는 소리만 나올 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둠 속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 몸 안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몸 안의 피를 전부 교체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회복 포션도 하도 쏟아 부어서 몸 안의 자연 회복력도 바닥난 상태지. 그러니까 네 몸을 잔뜩 쥐어짜서 생명을 연장시켰다 이 말이야.”
회복 포션은 자연치유력을 가속시키기 때문에 면역력 하락과 근손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포션의 질이 좋을수록 그러한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더 좋은 값을 받았다. 하지만 남자는 어째서 자신이 이 상태까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마신 공기는 마셔선 안 될 공기였다. 인류가 마주해서는 안 되는 공기지. 그걸 마셨으니 대가가 클 수밖에.”
남자는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강현무.
그 순간 몸이 파르르 떨렸다. 어둠 속의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비죽이 입술을 올렸다.
“강현무가 떠오르나?”
남자는 경련하듯 몸을 일으켜 세우려했다. 그때 방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섰다.
하지만 여자는 링거에 주삿바늘을 꽂는 대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한 남자를 부축해 바로 눕혀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둠 속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의욕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남자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헐떡이자 여자가 어깨를 꾹 누르며 진정시켰다. 그리곤 머리맡의 스탠드를 켰다.
방 안이 밝아진 순간, 어둠 속에 앉아있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지태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이지태.
그 이름이 불린 순간 이지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야 자신의 이름이 떠오른 기분이었다.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는 여자, 그리고 며칠인지도 모르는 시간동안 간호했던 여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허으…… 어?”
“예, 적나비입니다.”
흑요석 팀과 함께 했었어야 할 헌터, 적나비였다.
이지태는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지만 적나비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그를 다독였다.
“지금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입니다. 최대한 조치를 했지만…… 회복한다 해도 이전 같지는 않으실 겁니다. 몸 안에 파고든 독소가 워낙에 악독해서요.”
이지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적나비가 있다면 이곳은 태성이 관리하는 병원인가? 하지만 척 봐도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창문이라곤 보이지 않는 어딘가 오래된 방공호였다. 벽은 낡고 미미한 지열이 느껴졌다.
상당히 깊은 곳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그를 치료하기 위한 장비들은 최신식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공기정화장치와 감시장비, 치료시설, 보안장치 등, 지상에서도 보기 힘든 최첨단 시설들이 언밸런스하게 방 곳곳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는 이런 독소를 흡입한 사람들을 많이 돌봐 보았습니다. 치료만 잘 받으면 헌터로서 다시 복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적나비의 말에도 이지태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대체 자신이 여기 왜 있는 건지, 여기는 어딘지, 왜 적나비가 자신을 돌보고 있는지, 평양은 어떻게 됐는지. 모든 것들이 알 수 없었다.
“여기는 동맹의 시설입니다.”
적나비는 이지태가 궁금해할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기로 한 듯 설명했다.
“지금 밖은 강현무 헌터의 세상이에요. 어딜 가든 이지태 단장님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동맹의 시설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동맹이라는 말에 이지태는 다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