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1)
지옥에서 독식-21화(21/346)
21화. 능력자 시험 (4)
“항복!”
현무가 덩치 큰 남자의 턱을 쪼개 놓자마자 안현수는 재빨리 손을 들어 올렸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에 현무는 어이없어했지만, 안현수는 절대로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다. 현무는 일단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남자를 발로 굴려 품속에서 금속 패를 꺼내 들었다.
“항복하면 제가 봐줄 것 같아요?”
그러자 안현수는 품속에서 금속 패를 꺼내 재빨리 현무 앞으로 던져 주었다. 현무는 한층 더 어이없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진짜 항복인 모양이다.
“아니, 싸우지도 않고 금속 패를 넘겨주면 아저씨는 뭐 하려고요?”
“금속 패가 없다고 실격 처리된다는 말은 없었지요. 저는 다른 사람이나 몬스터의 패를 빼앗으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당신이랑 싸우면 그대로 전투 불능이 될 것 같아서요.”
현무는 안현수가 이미 헌터로서의 경험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해졌지만, 갑작스레 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장벽을 타고 세 사람이 뛰어내렸다. 견장에는 능력자 관리국 마크가 박혀 있었다. 진행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상처 입은 남자를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응급 처치만 한 뒤 바로 끌고 나갔다. 안현수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렇게 되는 것보다는 사지 멀쩡하게 남아 있는 편이 낫죠.”
“왜, 한바탕 해 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방금 그 남자가 우리 팀 방어군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스킬도 쓰지 않고 한 방에 때려눕혔잖아요. 답이 없죠, 뭐.”
현무는 고개를 돌려 다른 두 명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들 역시 현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재빨리 금속 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역시 내려놓기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이미 덩치 큰 남자가 당한 꼴을 보고도 저항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현무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한도 없고 항복한다는데 패는 것은 명분도 안 서고 마음도 좋지 않다. 현무는 일단 금속 패만 회수했다. 안현수가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저기, 아직 팀원 필요 없습니까? 저희는 셋 중 한 개정도만 주셔도 되는데.”
“일 없습니다.”
현무는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쪽, 뭔가 속이 음흉해 보이기도 하고.”
현무의 말에 안현수는 뻘쭘하다는 듯 웃었다. 현무는 그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벌써 패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군요.”
제3 체육관 천장에는 던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관객석이 있었다.
정확히는 VIP석으로, 능력자에 관심을 갖는 정재계 인사들이나 상당한 후원금을 지불하는 클랜의 헤드헌터들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이지태와 태민수 역시도 그곳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헤드헌터들은 이지태를 힐끔거렸지만 선망보다는 견제의 눈빛이었다. 그들 역시 이지태와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던전을 내려다볼 수 있는 투명 유리창 외에도, 던전 구조를 띄워 놓은 스크린에는 붉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각 붉은 점들에는 소지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금속 패에 내장된 위치 추적기가 각 응시생들의 소지 현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역시 적나비군요. 시작하자마자 다른 사람들 패를 빼앗는걸 보니.”
태민수가 한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적나비의 이니셜이 적힌 점은 시작하자마자 금속 패 세 개를 빼앗고 남은 하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적나비 조는 통상 네 명이 한 팀이지만 시험의 형평성을 위해 모두 흩어 놓았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이미 상당한 실력자니 다시 합류하는 것은 금방일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적나비의 실력이 발군이었다.
“허, 드디어 다섯 개째군요. 쥐어뜯어 내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시작하자마자 금속 패를 빼앗는다는 것은 4:1을 감수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지태는 들고 있던 태블릿에 적나비에게 부여된 번호를 입력했다. 곧 태블릿 위로 적나비의 모습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시험을 지켜보기 위해 던전 안에 설치된 수천 개의 카메라들은 응시생들이 언제 어디에 있든 포착해 냈다.
붉게 그러데이션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적을 추적하는 적나비의 모습은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아쉽게도 그녀의 마스코트 같은 손끝의 붉은 궤적은 아직 활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적나비는 몸을 숨기지도 않고 뛰어다니다가 새로운 응시생을 마주치자마자 거리낌 없이 기습했다. 정확하고 빠른 타격에 상대방은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헤드헌터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번져 갔다. 적나비의 활약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었다.
“이미 실력은 2성……. 팀원 전부라면 3성급 던전에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군요.”
“3성까지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긴 합니다만…….”
“장비만 주어지면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적나비에게 부족한 건 지원이니까.”
모든 것이 이지태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적나비 외에도 금속 패 여러 개를 가지고 시작하는 자들이 몇몇 보였다. 적나비 조의 일원이거나 던전 경험자로 추측되었다.
“어차피 초반 성적은 쓸모없습니다. 결국 계속 독주할 수는 없으니까요.”
적나비 조라 해도 완전히 합류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초기와 달리, 슬슬 합을 맞추는 시점부터는 다수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개중에는 실력을 갖추고도 팀플레이를 하는 실력자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지태는 마지막까지 적나비 조 전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낮게 보았다.
“게다가…… 저희가 던전에 투입한 것들과 맞닥뜨리면 적나비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지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들은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경고를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
현무는 폐허 사이를 걸으며 조용히 벽을 짚었다. 벽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소음이 손끝을 향해 꽂히듯 들어왔다.
지옥에서 예민해질 만큼 예민해진 감각을 가진 현무는 집중을 시작하자 주변의 구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옥에 비하면 아늑하게 느껴지는걸.’
조금이라도 그늘진 곳에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유독한 공기가 감각을 흩어 놓는데다가, 밀도 높은 마나가 기척을 교란시키고, 요란한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가 뇌를 후벼 파는 듯한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평화로운 정원 같았다.
지옥에서 머문 시간도 이제 고작 한 달 될까 말까 했지만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중 현무는 눈에 띄는 기척을 느꼈다. 오른쪽 모퉁이, 두 발짝 뒤쪽에 꼼짝도 않고 서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움직임이 크지 않기에 기척은 미약했지만 현무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인간 정도의 크기에 움직임은 경직되어 있고, 호흡이 거의 없군. 생물이긴 한 것 같은데 확실히 인간은 아니야.’
이게 던전에 풀어 놓았다는 몬스터의 정체인가?
일단 지옥에서도 마주친 적 없는 유형임은 분명했다.
현무는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슬쩍 모퉁이 너머를 살펴보았다.
“……뭐야?”
현무의 기대는 상대를 포착하자마자 무참하게 무너졌다. 그의 얼굴에 징그럽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미세한 태엽 소리를 내며 되다 만 마네킹의 형태로 움직이는 그것.
초보자용 허수아비였다.
***
헤드헌터들 중 몇몇은 적나비와 맞닥뜨린 몬스터의 모습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마네킹 같은데 이음매가 없고, 하얀 표피로 뒤덮여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 기괴한 인상을 풍겼다. 헤드헌터 중 이지태와 안면이 있는 사람 한명이 다가와 슬쩍 물었다.
“저건…… 대체 뭡니까?”
“D&W 인더스트리에서 개발한 독립 학습형 골격 장갑에 체르노빌 던전에서 포획한 버섯 괴물의 소재를 응용해 만들어 놓은 작품이지요. 저 하얀 살갗은 사실 버섯 같은 건데, 질기고 튼튼해서 내부를 보호하기 좋다고 합니다. D&W에서는 ‘머시룸 드로이드’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붙여 놨던데, 저는 그냥 허수아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외골격에 몬스터 소재를요?”
“최첨단 기술이지요. 외골격은 착용자의 움직임을 미세한 동작까지 학습하니 전투용으로 사용하기도 좋고, 거기다 포자가 기기 표면에 완전히 자리 잡으면 내구력과 마나 반발력이 강해지는데, 이점을 활용해 대능력자 포획 장비로 사용할 생각인 것 같더군요.”
이지태는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동시에 마나 관련 사업의 재벌 후계자인 만큼, 대능력자 장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드헌터들은 스크린을 통해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보았다.
저마다 자신들의 스킬로 어떻게든 이 기이한 몬스터를 제압하려 했지만, 특수 처리가 된 허수아비는 어중간한 스킬은 그냥 튕겨 내 버렸다. 싸우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물러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순수 육탄전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는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습니다. 실전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고, 5인 합동 공격이라면 금방 특수 처리된 표면을 벗겨 낼 수 있지요. 아마 혼자 다니는 사람들은 좀 곤혹스러울 겁니다.”
이지태는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허수아비의 가장 좋은 점은 표피가 시간이 지나면 재생된다는 점이지요. 그러니 수리에 대한 예산 걱정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지태는 적나비가 비치는 화면을 띄웠다. 적나비도 그즈음 약간 고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붉은 궤적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녀가 붉게 물든 손으로 허수아비를 공격하자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전히 꺾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지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사무팀장, 대충 최종 성적은 어느 정도로 예상됩니까?”
“글쎄요…… 적나비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저 속도라면 익숙해진다 해도…… 세 시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서는 이변이 없다면 50개 정도 아니겠습니까? 운이 좋아서 적나비 조가 빠르게 합류한다면 80개를 넘길지도 모르겠군요.”
이지태가 예상한 것과 비슷했다. 적나비가 그만큼 압도적이긴 했지만, 결국 적나비를 견제하기 위해 견제 세력 또한 뭉칠 테니까. 하지만 이지태는 어딘가 그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크린 위로 300개의 점들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어딘가 이지태의 예상을 벗어난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기.”
이지태가 태민수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스크린 한쪽을 가리켰다. 다른 모두의 시선이 적나비의 활약에 쏠려 있었지만, 이지태는 스크린 구석을 주목했다. 태민수는 이지태가 가리킨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저게 대체……?”
“이변이군요.”
이지태는 자못 유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하, 이런 걸 시험용으로 내놓네. 겁은 잔뜩 주더니.”
현무는 바닥에 쌓아 놓은 허수아비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지옥에서 마주쳤던 허수아비들과 달리 이것들은 대사도 없고, 움직임도 단순하고 재미없었다. 게다가 추정되는 능력치조차도 현무보다 낮은 것 같았다. 가늠하자면 레벨 5 정도 될까.
그때 허수아비 하나가 휘적거리며 현무가 있는 복도 쪽으로 걸어나 왔다. 허수아비는 현무를 보자마자 곧장 달려들었다.
현무는 배틀 헬퍼를 실행시킬 것도 없이 가볍게 피하고는 허수아비가 달려오는 속도를 이용해 목에 팔을 걸었다.
관성과 속도, 무게의 엇갈림에 의해 허수아비의 목은 순식간에 뚝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몸이 축 늘어지자 목과 몸을 잇는 가죽이 길게 늘어났다.
“음,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물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이렇게 약한 물건을 내놓은 놈 잘못이다. 현무는 툴툴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허수아비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갈빗대 아래쪽에서 금속 패가 보였다.
악취미적이게도, 금속 패는 살갗 밖으로 살짝 삐져나올 정도로 박혀 있어 꺼내려면 표면을 완전히 갈라내야 했다.
현무의 완력은 특수 처리된 살갗을 잡아 뜯을 정도로 강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무는 둘 다 필요 없었다.
“해체.”
현무가 짧게 스킬을 발동시키자 벗겨진 가죽 사이로 금속 패가 나타났다. 현무는 금속 패를 주워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경기 시작 후 30분밖에 안 지났는데 제법 쌓여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인간으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그래도 세 시간 안에 전부 다 모으기는 무리겠군.’
금속 패를 가진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허수아비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장에 남는 것은 다수의 금속 패를 가진 소수뿐이다.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금속 패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부담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모으고 있었지만 너무 쉽다는 사실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현무는 단 한 번도 쉬운 전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직 공식적인 스킬인 독혈은 물론, 배틀 헬퍼를 실행시킬 일조차 없었다. 단순히 피지컬만으로 상대를 제압해 나갔다.
‘너무 쉽게 끝나는 것도 미묘한데.’
현무는 문득 대기실에서 봤던 그 붉은 머리의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어쩐지 마지막까지 남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경기장에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알려 드립니다. 현재 경기 시간 34분 경과, 금속 패의 이동이 30% 이상 발생하였기에 금속 패 최다소지자를 공지합니다.] [3위. 홍련. 7개.] [2위. 적나비. 9개.]그리고 마지막.
[1위. 강현무. 16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