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12)
지옥에서 독식-212화(212/346)
212화. 착한 경찰, 나쁜 경찰 (2)
“진정하십시오. 강현무 씨.”
현무가 당장 발작할 것처럼 보이자 박휘소는 일단 그를 진정시켰다.
물론 진정하라고 한다고 현무가 진정할 리도 없었기 때문에 그럴듯한 떡밥도 던져줘야만 했다.
“로버트 리는 아직 미국에 체류 중입니다. 극도로 통제된 동선과 보안이 철저한 환경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죠. 한국에 입국했던 사실부터가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의 연계점도 쉽게 찾아낸 것이구요.”
“꽤 있는 집안들이랑만 얽힌 모양입니다?”
“미 서부 연안에서 활동하는 만큼 한국계 다국적자와 부유층과 친분이 깊습니다. 상속법 외에도 각종 이민 관련 입법 로비 관련해서 활동 중인 듯하더군요.”
한국의 가난한 흙수저였던 자신과 결코 얽힐 리 없는 관계였다.
즉, 지금 이 상황이 동맹의 설계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박휘소는 채근하듯 현무에게 물었다.
“애초에 왜 연락을 안 했던 겁니까? 명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까?”
“기억하고 있었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귀환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상황이…… 좀 지나치게 극적이어서.”
만약 혼자서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면 명함을 떠올리고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욕설을 퍼붓던가, 아니면 찾아가서 죽일 생각으로.
하지만 그때 현무는 직후 유민을 만났고, 유민을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현무는 서서히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로버트 리가 명함을 준 것은 확실하게 연락을 하라고 준 것이다. 하지 말라고 줬을 리는 없으니까.
연락을 취했다면? 쥐어터지든 설득당하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무는 그들의 세력권에 포섭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단계에서부터 계획은 파투가 났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실패한 이상, 동맹은 이 상황에 더 깊이 개입하는 것을 꺼린 것이 분명했다.
동맹원들이 여러 차례 당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인지 교수님인지는 멀리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으니까.
심지어 박휘소나 류수아는 자신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 채로 그 사이에서 갈려나갔다.
‘자신이 장기말인 줄도 모르는 장기말이라니.’
새삼 동맹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박휘소에 대한 동정심이 일었다.
결국 조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숭고한 목적과 그럴싸한 정의를 내세우는 조직일수록 어딜 가나 하나같이 썩어있다.
조직의 청결을 보장하는 것은 투명한 절차뿐이다. 비밀 집단은 그걸 절대로 못 한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즉…… 로버트 리라는 놈은 선생님의 직속 명령을 받거나 선생님 본인일 확률이 크겠군.’
귀환석 같은 물건을 아무나 취급하게 둘리는 없다. 자신에게 귀환석을 준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거야 고문을 하든 세뇌를 걸든 차차 알아내면 될 일이다.
지금은 그 정보를 가진 놈을 대가리 멀쩡하게 잡아오는 것이 중요했다.
“당장 그 놈을 잡…….”
잡아오라고 하려던 현무는 잠깐 말을 멈췄다. 현무가 명령을 내리다말고 멈추자 박휘소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무의 눈은 갈등에 휩싸여있었다.
‘이 새끼를 정말 잡아오는 게 정말 맞는 일인가?’
물론 난이도: 지옥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와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놈과 접촉하는 것은 어떤 거대한 설계에 엮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만약의, 만약의 만약일 때의 일이지만.’
애초부터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것부터가 거짓말이었다면.
그래서 귀환석을 보내준 사람이 그 인간이라면.
현무는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을 만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을지도.
그러나 생각이 복잡해지려던 순간, 잠시 미뤄뒀던 감정이 갑작스럽게 솟구쳐 올랐다. 애초부터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었다. 망설일 것도 없다.
원칙은 간단하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에게 엿을 먹인 상대는 반드시 갚아준다.
“당장 그놈 잡아와요. 팔다리 네댓 개 정도는 없어도 되니까 목숨만 붙여서.”
“지금 거미나 지네가 아니라 인간 얘기인 거 맞습니까?”
“맞아요.”
받은 은혜는 잠깐 잊을 수 있어도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다.
설계든 함정이든 통째로 씹어먹어주면 그만이다.
***
미 서부연안, 샌프란시스코.
초여름이지만 샌프란시스코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온을 겪고 있었다.
치솟는 온도에 사람들은 더위에 허덕이고 볕을 피해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럴 수도 없었다.
“테디베어, 테디베어, 여기는 세라자드. 생각보다 견딜만하다고 알림.”
[……그거 방금 붙인 이름입니까? 덥다고 징징댈 줄 알았는데, 웬일입니까?]옥상에서 반대편 건물을 지켜보고 있던 송여운이 무전을 날리자 서지후가 대답했다.
애초에 그들이 쓰는 무선장비는 도청 염려가 없는 체계였기 때문에 암호명을 크게 필요로 하진 않았다.
하지만 임무 목적을 생각해보면 진작에 설정해두는 편이 좋았겠다 싶었다.
“아니, 샌프란시스코 하면 여름의 도시라는 이미지잖아요. 따뜻한 휴양지고. 그런데 이상 기온이라면서도 26도밖에 안된다니. 뭔가 좀 꼴사납네요. 너희는 조선의 매운맛을 봐야 한다…… 그런 느낌이 든달까.”
[따뜻한 나라인건 맞습니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으니까요.]“천국이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이 바로 여기였잖아?!”
[임무에 집중하십시오.]“아직 미팅 진행 중이에요. 오래도 하네. 거기 경치는 어때요?”
[뭐가 말입니까?]“해변 도로에서 대기 중이면 좋은 경치들 보일 거 아녜요. 좋겠다앙.”
[엄한 소리 하지 마시고…….]“단장님한테 임무 마친 다음 휴가 겸해서 복귀 며칠만 늦게 하면 안 되냐고 좀 물어봐줘요. 할 수 있죠? 테디베어는 단장님의 귀염둥이잖아.”
[송여운 씨야 말로…….]“쉿, 테디베어. 음어 써야죠!”
[……세라자드의 누님은 단장님으로부터 직접 후원을 받고 있잖습니까. 누님이 뭘 만들어도 단장님이 부르는 가격에 다 사들이시는 바람에 수입이 저희들 연봉 합친 것보다 많다면서요.]“저희 언니가 좀 재능인이죠. 아, 자스민, 라벤더, 민트, 타겟 이동 중. 반복. 대머리 나가신다.”
[자스민 확인.] [라벤더 확인.] [민트 확인.] [……테디베어 확인. 저 빼고 언제 암호명 통일해둔 겁니까? 목소리로 대충 누가 누군지는 알겠지만.]“그냥 다들 눈치 있게 대답하는 거예요.”
서지후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대머리가 이번 타겟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서지후는 신호에 맞춰 움직일 채비를 했고, 송여운은 포획 포인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 옥상위로 질주해 달릴 수 있다면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 도시에서는 차보다 인간이 더 빠를 수 있다.
“적응이 빠르시네요. 테디베어.”
[지금 시간 이후로 잡담은 금지합니다.]송여운은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전은 서지후의 몫이고, 행동은 자신의 몫이다.
칼은 칼잡이가 겨누는 방향대로 휘둘러져야겠지.
송여운은 서지후보다 훨씬 빠르게 약속된 A포인트에 도달했다.
예정대로 도로에는 정체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지후는 느긋하게 로버트 리와 거리를 맞춰 따라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5분 후에 로버트 리의 차가 골목길에 들어선다.
“라벤더, 가발 준비 됐어요?”
[준비 완료.]때 맞춰 로버트 리는 차를 돌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체증이 발생해서 들어선 샛길이었다.
그리고 이곳이 A포인트였다.
그곳에서 로버트 리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냉동차량이었다.
거대한 냉동차가 길을 막고 있자 로버트 리의 차는 속도를 급히 줄였다. 그때 텅 소리와 함께 냉동차량 문이 열리고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냉동 창고 안으로 초대하는 듯한 강철 비탈길이었다.
이변을 깨달은 로버트 리는 전속으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육중한 크기의 트럭이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안전띠를 맨 서지후는 망설임 없이 후진과 전진 사이에서 망설이던 로버트 리의 차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그리곤 차를 통째로 냉동 차량 안에 쑤셔 넣다시피 했다.
로버트 리의 값비싼 마세라티의 양쪽 사이드 미러가 양옆은 완벽하게 긁혀나갔다.
차문과 냉동차 창고 옆이 딱 맞게 일그러질 정도였다. 이걸로 로버트 리는 탈출할 방법도 잃어버렸다.
“대머리에 가발이 씌워졌다! 세라자드 진입!”
서지후가 차량을 뺌과 동시에 송여운은 냉동차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긁히고 박살 나있는 마세라티를 본 송여운은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잠깐 죄책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앞으로 저지를 짓이 덜 미안해지기도 했다.
‘이미 이만큼이나 망가졌는데 뭘.’
그녀의 손이 유리창에 닿은 순간, 스킬 ‘척력’을 발동시켰다. 굉음과 함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 비산했다.
잘못 맞으면 산탄총처럼 구멍 투성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즉사하지만 않으면 된다.
송여운은 구멍 난 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나와, 대머리! 도망 못 치니…….”
하지만 송여운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녀는 분노에 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없어!”
“뭐라고?”
송여운의 고함에 막 차에서 뛰어내린 서지후가 대답했다.
“대머리가 도망쳤다고! 이런 망할. 골목길에 들어올 때까지는 있었으니까 테디베어가 대머리를 들이받기 직전까지는 여기 있었어. 민트, 자스민, 너희들 중 한 쪽에 갔을 거야! 라벤더, 차 버리고 수색에 합류해!”
***
그러나 기척도 없이 차에서 빠져나간 상대답게 로버트 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빠져나갈 길을 차단하고 있던 민트와 자스민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무전에선 거의 10초 간격으로 송여운이 내뱉는 욕설이 들려왔다.
서지후는 혀를 찼다. 경찰이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고 빠져야 했다.
만약 현무가 직접 왔다면 일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냥 자택 기습을 해도 먹힐 테니까.
하지만 미국은 능력자들의 입국 절차가 까다롭다. 특히 강현무처럼 톱랭커에 속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입국을 막거나 하진 않지만, 어딜 이동하든 내내 감시받았을 것이다.
“세라자드, 들으세요.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이 접근중이에요.”
하지만 송여운으로부터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서지후는 재차 무전을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송여운이 너무 빡친 나머지 무전기를 박살냈거나…….
서지후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민트, 라벤더, 자스민. 세라자드의 위치 확인됩니까?”
[아까 동남 방향 옥상 위로 달려가던 걸 봤습니다.]서지후는 바로 말한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부디 별일 없기를 바랐지만, 이런 불법적인 종류의 임무에서는 온갖 상황이 발생한다.
자신들이 발견조차 못한 로버트 리의 협력자나 보호자가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런 상황을 최대한 막기 위해 속전속결을 내려한 것이었지만…….
턱.
그때 서지후는 골목 한 편에 서있는 피투성이 남자를 발견했다.
피곤한 표정에 반회색 머리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남자.
서지후는 그에게서 풍겨오는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타겟인 로버트 리였다.
우아하고 고상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상처 입은 짐승 같은 모습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송여운은 어디 갔지?”
“송여운? 그 단발머리 계집을 말하는 건가?”
로버트 리는 비스듬히 고개를 꺾으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미 너무 늦었어. 큭큭큭…….”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계집이 날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패서 겨우 도망쳐온 참이다.”
“……뭐?”
“너희들 날 잡을 생각 아니었냐? 아니면 생사불문이다 이건가? 이대로 잘못 맞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패더군.”
로버트 리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됐다. 얌전히 항복할 테니까 제발 더 때리지만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