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13)
지옥에서 독식-213화(213/346)
213화. 착한 경찰, 나쁜 경찰 (3)
한적한 국도를 달리던 검은 밴 차량은 외곽의 한 농가에서 멈춰 섰다.
농가 2층 창틀에 앉아있던 사람은 밴이 도착한 걸 확인하고는 사라졌다.
송여운과 서지후는 차 뒷좌석에 앉아있는 로버트 리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머리에 포대자루를 뒤집어쓰고 있던 로버트 리는 투덜거리며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이런, 젠장. 나도 발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냥 좀 걷게 해주지 그래? 아까 그 여자가 내가 못 본 사이 내 다리를 잘라버린 게 아니라면 말이야.”
송여운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로버트 리를 보다가 갈증 나는 표정으로 서지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서지후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요? 다리 네댓 개 정도는 없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항복한 놈 다리를 자를 수는 없습니다. 이따가 은근슬쩍 경계를 느슨하게 해줄 테니까 이놈이 도망가는 거 같으면 그때를 노리세요. 그건 정당방위니까.”
“잠깐, 그런 말은 내가 안 듣고 있을 때 하지 그래?”
로버트 리는 자기 다리를 자르기 적당한 상황을 만들려는 작당모의를 들으며 기겁했다.
사실 도망칠 생각 말라는 경고를 돌려 말한 것이겠지만, 만약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리를 자르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일단 후다닥 끝내고 오늘 밤 안에 뜨죠. 최대한 멀리 오긴 했지만 경찰도 수색범위를 넓힐 겁니다. 능력자가 개입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어요.”
능력자가 범죄에 관련되기 시작하면 미국은 예민해진다. 불필요한 시비에 얽매이기 전에 빠르게 끝내고 빠지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대형 차량을 두 대나 동원했던 것이었다.
서지후는 로버트 리를 질질 끌고 창고 안에 들어섰다.
창고 안은 헛간으로 쓰였던 것인지 마른 똥냄새가 났다. 로버트 리는 그 위에 내팽개쳐졌다.
로버트 리는 입 안에 들어온 지푸라기를 뱉으며 말했다.
“좀 더 손님을 정중하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군. 이래 봬도 비싼 몸인데 말이야.”
“지금 이 이상으로 정중하게 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 뭐 때문에 온 건지부터 말해봐. 인종 조합을 보아하니 김성홍 의원 그 자식인가? 아니면 장흥덕 파? 임페리얼 타워 때문인가?”
“꽤나 찔리는 구석이 많은 모양인데.”
“그만큼 고급스러운 정보들뿐이지. 내 상담비용은 꽤 비싸니까 알아두라고.”
그때 자리를 비웠던 송여운이 다시 돌아왔다.
양손에 수건과 물통, 그리고 자동차 배터리, 집게와 톱 등 온갖 공구들이 가득했다.
그걸 본 로버트 리가 잠깐 침묵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하, 그 여자가 날 심문하고, 네가 날 달래고 위로하면서 정보를 얻어낼 생각인가보군. 착한 경찰 나쁜 경찰 전략이라, 심문을 좀 할 줄 아는 모양인데…….”
“아니, 우리 둘 다 나쁜 경찰이다. 넌 쉬지 않고 고문당할 거야.”
로버트 리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한참 눈알을 굴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비싼 몸이긴 하지만, 우리 한인 지역 사회를 위해서라면 무료 봉사를 할 때도 있지. 궁금한 게 뭐지?”
“뭐에요, 서지후 씨. 벌써 저 없는 사이에 재밌는 부분이 다 끝난 거?”
“아뇨. 고문은 시작도 안했어요. 그냥 자기가 알아서 나불거리는 겁니다.”
송여운이 장비를 세팅하는 사이, 서지후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태블릿 PC를 실행시켰다. 그 사이에서 로버트 리는 뭔가 설득하려는 듯 말을 이어갔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송여운은 로버트 리의 두 발을 물통에 담그고서야 홀가분한 표정으로 서지후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본 세팅 끝났어요. 질문 먼저, 아니면 고문 먼저?”
“아니, 잠깐. 질문이 뭔지 알아야 답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왜 대뜸 고문부터 하려는 건가!”
서지후와 송여운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로버트 리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하게 될 텐데…….”
“당신이 너무 멀쩡해보여도 우리가 곤란해서 말입니다.”
“아까 피투성이인 상태 그대로 둘 걸 그랬어요. 한 번 더 팰까?”
“한 대만 때리고, 나머지는 단장님께 맡깁시다.”
송여운과 서지후는 가볍게 대화한 뒤 말했다.
“잠깐, 그러지 말고…….”
“마음 가볍게 먹어요. 상태가 좀 안 좋아보여야 좋으니까. 아저씨도 우리 대빵이 하는 것보다 그냥 우리가 하는 걸 이득이라고 생각할걸?”
로버트 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장 송여운의 주먹이 날아왔다.
이빨 두어 개가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로버트 리는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신음했다. 태블릿 PC를 실행한 서지후는 로버트 리를 향해 화면을 똑바로 비췄다.
“화면 잘 보입니까?”
“……그래.”
태블릿은 영상통화를 틀어놓은 듯, 빈 의자와 방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기다리자, 화면 안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팝콘과 콜라 한 병을 든 남자였다. 남자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로버트 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을 본 로버트 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안녕, 변호사 양반.]강현무는 팝콘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로버트 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신경질적이면서도 허탈한 듯, 정말 우스워서 참을 수 없겠다는 듯한 웃음 같기도 했다.
한참을 이어지던 웃음 끝에 로버트 리는 호흡이 부족해진 듯 또 한참을 콜록거리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로버트 리는 핏발 선 눈으로 현무를 바라보며 외쳤다.
“진작에 당신이라고 알려주던가!”
[나?]“내가 명함은 왜 줬는데! 연락하라고 준 거 아냐! 얘기가 하고 싶으면! 사람이 전화를 해야지! 왜 대뜸 차로 들이받고 두들겨 패고 이런 으슥한 곳에 데려와서 고문하는 건데!”
현무는 로버트 리의 고함을 하나하나 다 듣다가 서지후에게 물었다.
[너네 고문했냐?]“아직 안 했습니다.”
[근데 왜 저래?]“포획 직전에 송여운 헌터에게 좀 맞았는데, 그게 억울한 모양입니다.”
[그래?]현무는 팝콘을 다시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하지도 않은 고문을 했다고 하면 억울하지. 그러니까 고문당한 걸로 만들어줘라.]“뭐? 아니, 잠깐. 잠깐!”
“거봐요. 어차피 다 하게 될 거라니까.”
송여운이 이내 씩 웃더니 자동차 배터리를 들고, 로버트 리의 배후 쪽으로 다가갔다.
***
[아,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고문이 멈춘 것은 현무가 문득 입을 열면서부터였다.
송여운은 드디어 심문이 시작되는 건가 싶어 일단 전기 고문을 멈췄다. 하지만 질문의 방향은 로버트 리가 아니라 송여운을 향했다.
[지금 보니까 얘 대머리가 아니잖아. 그런데 왜 대머리라는 코드명을 붙인 거야?]현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송여운이 했다.
“아, 그것은 행운의 여신은 대머리니까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듯이, 우리도 지정된 타겟을 놓쳐선 안 된다는 의미로…….”
“벌써요? 피곤하신가 봐요?”
[너무 맥없이 당하기만 하니까 뭔가 좀 그렇네. 좀 튼튼해야 때릴 맛도 나는 건데. 사실 녀석이 무슨 죄가 있겠냐? 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걸 텐데.]그 순간 의식을 잃은 건지 잠든 건지 고개를 떨구고 있던 로버트 리는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래, 맞아! 나는 죄가 없어! 시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로버트 리의 외침에 현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아, 그래? 죄가 없다고?]“죄가 없긴 뭐가 없어! 내가 잘못했지! 죄송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조금 다르긴 한데,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상태가 된 것 같긴 하군.]로버트 리는 고문당하는 동안 온갖 말을 떠들었기 때문에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까지도 듣게 되었다.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동맹을 위한 돈줄이 숨겨져 있다던가, 세계 각국에서 동맹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이미 성공한 나라도 있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설명만 들어보면 무슨 그림자 정부 수준이었지만 현무는 그런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 정도 힘을 가진 집단이 있다면 애초에 한국도 어찌 못하고 있을 리가 없고.
[변호사 양반.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시답잖은 게 아니라…….]현무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귀환석을 옷 위로 끌어올렸다.
[이거의 정체야.]로버트 리는 힐끔 귀환석을 보기만 했을 뿐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의도적인 무관심인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현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질문했다.
[이걸 누가 넘겨줬지?]“그거야 강현무 씨 아버님의 유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유산상속 집행인일 뿐입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구요.”
[우리 아버지가 너희 동맹 놈들과 얽힌 게 우연이라고? 네놈은 미국에서만 활동하고 있잖아. 시답잖은 소리 계속하면 그냥 포기하고 죽여버린다. 왜냐면 솔직히 진실을 몰라도 상관없거든.]“…….”
로버트 리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냥 명함에 연락하지 그러셨소? 그럼 제가 직접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직접 대면 상담할 수도 있었는데. 무료로 말이지.”
[제 발로 기어들어온 상대를 고문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그럼 왜 애초부터 나한테 연락을 안 한 건데? 원래부터 나와 연락하면서 날 통제할 생각 아니었나? 뭐가 달라진 거지?]“달라진 건 없소. 변동사항은 있지만 큰 줄기는 잘 따라가고 있지.”
[큰 줄기?]“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생각 이상으로 잘해내고 있었다는 거요. 선생님께서 통제하시려고 할 때보다도 더욱 더.”
선생님에 대해 언급되자 현무는 심문이 진전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장기판의 말처럼 놀아나고 있다는 식의 언급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현무는 자신의 불쾌감을 바로 해소하는 타입이었다.
현무가 신호를 보내자 송여운은 로버트 리의 얼굴에 수건을 덮어 씌웠다. 서지후가 로버트 리의 발을 담그고 있던 물통을 들어 올려 얼굴 위에 느리게 흘려보냈다.
로버트 리는 발버둥 치려 했지만, 송여운이 팔을 거칠게 비틀어 움직이지 못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고 하지.]물이 바닥을 드러낸 뒤, 현무가 입을 열었다.
[수수께끼처럼 둘러서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봐.]“…….”
[아, 혹시 낯선 사람들뿐이라 겁나나? 네가 알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내줄까?]현무는 다른 핸드폰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창고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섰다.
박휘소였다.
박휘소도 이번 작전에 참가하기는 했었다. 포획작전이 실패하는 경우 나서는 플랜 B였지만.
로버트 리는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누구요?”
“……박휘소라고 하오. 나 역시 선생님의 신세를 진 동맹원이오.”
***
박휘소는 짧게 자기 소개를 마친 뒤 서지후와 송여운에게 물러서도록 부탁했다.
이미 박휘소가 자신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둘은 걱정하지 않고 조용히 창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박휘소는 로버트 리를 묶고 있던 구속 도구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허, 그쪽에도 신사가 있긴 하군. 여튼 마음에 들었소. 그래서, 식사는?”
현무가 낄낄거리며 말했지만 박휘소는 코트 속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들었다.
로버트 리는 허기졌던 모양인지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박휘소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버트. 로버트라고 불러도 되겠지. 그쪽이나 나나, 선생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되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을 배신할 수는 없겠지.”
로버트 리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박휘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선생님을 따르는 이유는 단순한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오. 그가 제시한 인류의 구원상이라고 생각하오.”
박휘소의 말에 로버트 리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선생님께 받은 구원은 그저 채무일 뿐이지만, 인류 전체를 구한다는 것은 한때 쓰레기였던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베푸는 구원이니까.”
“…….”
한동안 침묵하던 로버트 리가 입을 열었다.
“그쪽도 은혜를 입었던 모양이군.”
“동맹 중 그분의 은혜를 받지 않은 자도 있소?”
“없지. 은혜를 입지 않은 자는 동맹이 될 수 없지.”
로버트 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힐끔 현무를 바라보았다.
“최근에 그쪽 덕분에 ‘은혜’를 입은 자가 한 명 더 늘었던 것 같긴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