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16)
지옥에서 독식-216화(216/346)
216화. 별이 그늘을 드리울 때 (1)
쿵, 쿵.
현무는 궁극기가 풀린 뒤에도 주먹을 휘둘러 상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이미 수차례 내려친 상대의 모습은 원형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꿈틀거리며 재생을 거듭하려 애썼다.
현무는 간신히 이어져있는 팔다리를 잡아 찢어 사방에 흩어놓고서야 겨우 멈췄다.
놈은 이제 자잘한 경련만을 보일 뿐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불타는 무기는 산산조각 나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고, 몸 전체에 부서진 갑옷 조각이 박혀 있었다.
현무의 온몸은 땀과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물론 상처투성이긴 했지만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다.
지칠 만큼 지친 현무는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았다.
‘아슬아슬했군.’
궁극기를 사용했는데도 아슬아슬 했다는 느낌이었다.
만약 궁극기가 조금만 더 일찍 끝났다면 기회를 놓칠 뻔했다. 하지만 현무는 그전에 압도하는데 성공했고, 상대방을 찍어누를 수 있었다.
‘아니, 아니면…… 내가 약하거나.’
현무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생각했다.
탐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시련을 받았을 때, 처음 궁극기를 사용한 현무는 정말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힘을 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강제로 궁극기를 중단 당한 이후, 언제 궁극기를 사용해도 그만큼 강한 것 같지가 않았다.
전처럼 형태를 통제하기 위해 참는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전력을 다했는데도 그랬다.
무언가가 날뛰려는 짐승에게 족쇄를 걸어놓은 것 같았다.
거슬리는 감각이었다.
‘뭐, 기초 능력이 대신 그만큼 강해지고 있지만.’
현무는 손끝에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생각했다.
이제 강기를 다루는 능력은 배틀 헬퍼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다.
강기를 두른 부위는 근력, 공격력, 방어력 모두 강해진다는 걸 생각하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셈이었다.
전체적으로 단순히 궁극기에 불과했던 것을, 온몸에 체화시켜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에도 깃들만큼 능숙해졌다.
‘그동안 난이도: 쉬움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이 정도라면 북벌 당시의 박도령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은 좀 풀리셨수? 보스.”
그때 키르손과 하현이 때맞춰 나타났다. 하현은 어째선지 대단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어, 오랜만에 땀 흘리니까 좋네. 저쪽에서는 상대가 죄다 밋밋해서.”
아무리 봐도 땀보다 피를 더 많이 흘린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저쪽’이라고 말하는 난이도: 쉬움에서는 그 땀을 내게 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무는 전투광이나 호승심 넘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서 싸움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요한건 이기는 거지 싸움 그 자체가 아니다.
때문에 오늘의 싸움을 키르손이나 하현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현무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일어섰다.
궁극기를 한계까지 쥐어짜 썼기 때문에 온몸이 뻐근했다.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이었다.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없었다. 다행히 적은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였다.
“너…….”
그때 쓰러져있던 적이 입을 열었다. 재생력을 끌어올려 간신히 입과 폐를 만든 듯 했다.
놈을 쑤셔 박았다가 통째로 내리찍은 건물이 가루가 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아직도 살아있다는 건 놀라웠지만, 그래도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뭐…….”
“그냥 자라.”
현무는 겨우 재생된 적의 입을 밟아 뭉개버렸다. 입을 딱히 튼튼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푸딩처럼 으깨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
“그 녀석 뭐하는 녀석이었어?”
“몰라. 돌아다니는데 신경 거슬리게 쳐다보고 있더라고.”
“레벨도 모르고?”
“몰라.”
그때 키르손이 나섰다.
“알후긴. 정복하는 별의 사도 중 하나입니다. 전부터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습니다.”
***
“별의 사도? 그건 뭔데?”
현무는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샤오지에였던가. 평양에서 10만 명을 죽이고 사도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했었지.
그때는 샤오지에가 정신병자 같기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키르손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니 뭔가 있는 존재 같았다.
“권속은 별을 추종하는 자들 전체를 일컫지만 가장 낮은 단위를 말하기도 합니다. 사도는 권속 중에서도 특별한 자들입죠. 그 수는 많아야 다섯을 넘지 않고, 모두 인간이었던 자들입니다. 가까이는 과부여왕거미 같은 자가 있슴다.”
“하현하고는 다른 건가?”
“이 아가씨는 권속임다. 꼭 사도와 권속이 힘과 비례하는 건 아니라서 사도보다 강한 권속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별의 권능을 많이 받은 만큼 평균 이상은 합니다.”
“사도가 권속보다 약할 수도 있다고? 뭐 그래?”
“개 주인이 사냥개보다 강하란 법은 없잖습니까. 하지만 개는 주인에게 복종하죠. 당연함다.”
현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알…… 뭐라고 하는 사도를 내려다보았다.
약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녀석은 강했다. 적어도 하현보다는 강했다.
궁극기를 써서 내려쳤는데도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는 걸 보니 확실하다.
탐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시련을 받았을 때 철혈백부장을 손쉽게 죽였던 걸 생각하면 녀석이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사도인지 뭔지 그 이상도 있나?”
“그 이상은 대리인이라고 불리죠. 말 그대로 별의 대리인임다. 단 하나뿐이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별이 가진 권속 중 가장 강함다. 애초에 별의 가호가 없으면 거기까지 올라가기도 힘들고 말이죠. 그뿐입니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사도급이 아니면 직접 보기도 힘듭니다.”
현무는 카와로를 떠올렸다.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했지만, 굶주리는 별의 시련을 받았을 때 끌고 왔던 호사스러운 가마와 기괴한 행렬 하나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 정도 되면 사도 중 가장 높은 놈이나 대리인 쯤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현무는 기가 찬 표정으로 키르손을 보면서 말했다.
“너…… 생긴 거랑 다르게 아는 게 많구나.”
“약하면 아는 거라도 많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보스의 잘난 부하 키르손은 정찰대장이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 알고 있어야지.”
키르손은 늘 그랬지만 유난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바뀐 것은 육체 말고도 여러 가지인 듯했다.
현무는 바닥에 누워있는 알후긴을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그럼 이거 어떻게 하냐? 네 말대로면 이대로 두고 가면 안 되겠는데. 잘 죽지도 않네.”
“정복하는 별의 사도가 어슬렁거리는 건 전쟁 냄새가 날 때뿐임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검다.”
“그럼 고문하나? 고문이 통할 것 같지도 않은데.”
현무는 늦긴 했지만 놈의 레벨을 확인했다.
레벨 83.
현무가 잡아본 몬스터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놈이었다.
과부여왕거미가 비슷했던 것 같지만, 그녀는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 예외로 두기로 했다.
레벨이 높은데다 다른 별의 권속이라 하니 함부로 권속으로 들일수도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군.’
현무는 이놈과 싸웠던 전투를 돌이켜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만나자마자 대뜸 궁극기를 쓰고 달려든 탓에 놈이 제대로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궁극기를 쓰고 달려든 상태에서도 몇 번인가 현무를 뿌리칠만한 강력한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만약 신중하게 싸움을 걸어왔다면 대등하거나 상대방의 우세였을지도 모른다.
“뭐, 별이 언짢아하겠지만 시간을 들여서라도 죽이는 게 낫겠죠. 사도 정도 되는 놈이 떡이 된 걸 알면 다른 놈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키르손은 자신의 낫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현무는 알후긴을 내려다보다가 손날을 세웠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그의 손이 단숨에 알후긴의 심장 쪽 부위로 파고들었다.
덜덜 떨리며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야, 정신 좀 차려봐. 대화하자.”
알후긴은 파들파들 떨다가 간신히 뭉개졌던 입을 다시 재생시켰다.
이정도 재생력이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금방일 것 같은데, 온몸에 박힌 갑옷 파편들이 재생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뭐하는 놈이야? 왜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던 거지?”
알후긴은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현무가 알후긴의 심장에 박혀있는 갑옷 파편들을 꽉 눌러 찔러 넣자 놈은 간신히 떨리는 입을 열었다.
“전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쟁 회의?”
“그렇다…… 10년 만에 열리는 회의라…… 일부러 멀리서…… 이곳은 별 볼일 없는 놈들만 있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너 같은 놈이.”
“전쟁 회의라는 게 10년 만에 열린다고? 그건 뭐하는 행사야?”
“아, 이런.”
조그맣게 신음하듯 중얼거린 것은 키르손이었다. 뭔가 아는 게 있는 듯한 눈치였다.
키르손은 급히 현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보스, 이거 아무래도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실은 북쪽 지역에서 죽은 자들의 순례가 방향을 틀어 근처로 모여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종종 있는 회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기적으로 약간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남부에서 허기진 자들이 집단 포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야? 그러니까 몬스터들이 자꾸 한자리로 모여든다는 건가?”
현무가 탐의 시련을 마치고 궁극기를 터득한 이후, 사거리 주변은 조용해졌다.
현무는 그게 자신이 궁극기를 터득함으로써 권속들의 수준이 월등히 강해지고 상위 포식자 격인 존재가 되어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죽은 자들과 허기진 자들은 종종 그런 모임을 갖습니다. 하지만 정복하는 별의 군대가 전쟁 회의를 하는 것은 놀랄 일이군요. 그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갖는 것보다 내전을 치르기 더 바쁩니다.”
현무는 키르손과 알후긴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곧 그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탐과 얽힌 놈들뿐이로군.”
굶주리는 별, 요굴렘.
통곡하는 별, 베르드.
정복하는 별, 아르단.
셋 모두 탐을 두고 내기를 벌이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에는 최근 이변이 일어났다.
베르드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임의 승자가 셋 중 누구도 아닌 다른 사람이 이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실이 그들의 무언가를 자극한 것 같았다.
“이거 왠지 재밌어질 기색이 보이는데.”
“주변에서 가장 강대한 세 세력이 몬스터를 끌어모으면서 전쟁 준비를 한다는 게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그러엄. 재밌지 않으면 어쩌겠어.”
현무는 씩 웃으며 알후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곧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졸지에 적장 중 하나를 잡게 된 셈이었다.
지극히 우연에 기반한 사건이지만, 현무는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했다.
그냥 죽여버리는 것은 재미없을 것 같다.
“이놈은 살려두자.”
“예?”
키르손이 되물었지만 현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호기심과 갈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알후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후긴을 여기서 죽여버리면 그냥 적의 세력을 조금 깎고 마는 결과밖에 안 나온다.
현무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알후긴이라는 약점을 기왕 얻었다면, 그 구멍을 통해 맹독을 쑤셔 넣고, 내장을 찔러대는 정도는 되어야 만족할 수 있지 않겠는가.
***
현무는 알후긴을 쉘터로 데려와 쇠사슬에 포박한 뒤 방치해두었다.
살과 뼈를 통째로 쇠사슬로 꿰어 이어 붙였기 때문에 놈은 재생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죽을 걱정이 없다는 점 때문에 현무는 마음 놓고 무자비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다.
놈과 싸우느라 찢어진 옷을 벗고 갈아입을 옷을 찾던 현무는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약간 거슬리는 것을 발견했다.
구속자 야율이 현무의 몸을 좀 더 잠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박까지만 잠식했던 구속자 야율은 이제 어깨를 넘어 왼쪽 가슴까지 덮고 있었다.
내부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혈관이 막혀서 죽거나 할 것 같진 않았다.
‘최근 들어 유난히 잠식 속도가 빨라진 것 같군.’
현무는 야율에 잠식된 부분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이대로 두면 심장까지 닿겠는데.’
구속자 야율이 심장까지 덮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다.
다른 부위에도 별 일 없으니 아무 일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딱히 나쁜 결과는 없을 테니까.’
그때 현무의 머릿속에 명백히 현무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이 떠올랐다.
현무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몽스트릴.’
‘요새 꽤 유명 인물이 된 것 같더군. 강현무.’
그때 현무는 거울 한편에 낯선 여성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검은 머리 여자가 테이블 위에 앉아있었다. 현무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꿈에서 모르는 사람을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몽스트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