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18)
지옥에서 독식-218화(218/346)
218화. 별이 그늘을 드리울 때 (3)
현무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네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설명할 게 아니라면, 뭔가 있는 척하는 같잖은 태도 취하지 마라.”
현무는 몽스트릴이 누군지 알기 전까지는 그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몽스트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추측되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몽스트릴은 상당히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마음 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애초에 몽스트릴은 그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존재다.
누가 별을 걱정한단 말인가?
그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별 하나를 정복했음을 증명하는 지배자 중의 지배자다.
현무는 이쯤에서 몽스트릴을 떼어내기로 했다.
“그보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까지 내도 괜찮나? 원래 꽤나 조심스럽게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데.”
“누가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냈다고?”
몽스트릴은 깔깔 웃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네가 내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꿈에서 깰 시간이야, 강현무 군. 간만에 재밌게 수다 떨었어.”
그러면서 몽스트릴은 찡긋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조만간에 다시 만날 것 같네. 알지?”
***
“보스.”
현무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몽스트릴이 사라진 자리에는 키르손이 서 있었다. 키르손은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계십니까, 보스. 어울리지 않게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던데요.”
현무는 눈가를 비볐다. 한참 잠들었다가 깬 느낌인데,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도 거울 앞에 선 채였으니까.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키르손?”
“어, 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왼팔을 살펴보고 계셨으니…… 대략 5분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정복하는 별의 사도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시간이 5분 정도 됐었다.
그렇다면 몽스트릴을 만났던 시간은 실제로는 정말 짧았던 게 분명했다. 선 채로 잠들어서 꿈을 꾼 게 아니었다면.
하지만 당연히 꿈은 아닐 것이다.
현무는 한숨을 쉬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알후긴을 잡아 온 순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전쟁이 임박해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키르손, 우리 쉘터 작업이 얼마나 진행됐었지?”
“묻지도 않으시기에 잊어버린 줄 알았슴다. 이미 거의 다 완성됐지요. 마무리 작업뿐인데, 실기능은 다 완성된 거나 다름없슴다.”
쉘터 작업은 한때 사거리를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시련을 수행 중이던 때 현무의 지시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방공호를 구축하고 도주로를 확보해두는 일.
물론 괴물들이 작정하고 밀어닥치면 아무리 땅속에 방공호를 숨겨둔다 해도 무한정 버틸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더 깊은 도주로와 은신처를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 총 수가 어떻게 되지?”
“고블린 112, 랫맨 86, 수인종 8마리임다. 하현이 통솔하는 거미들이 몇 마리 더 있긴 합니다.”
“무장상태는?”
“전원 희귀등급, 십장급 이상은 전설 등급으로 무장 중임다.”
“랫맨 개조 병사들은?”
“카자트 없이도 휘하의 연구원들이 잘 만들었습니다. 대략 30마리 정도가 대기 중임다.”
가장 약한 고블린조차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레벨 30 이상인 것을 생각하면 난이도: 쉬움에서는 중소국 정도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아마 이 정도만으로도 최상위권 클랜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별들의 세력에 비하자면 초라한 편이었다.
“굶주리는 별은 수가 얼마나 될 것 같냐?”
“……가늠하는 게 의미가 있을깝쇼? 좀비며 구울들은 일단 헤아릴 수가 없슴다. 가스트의 숫자만 해도 70마리가 넘고, 뭍초롱아귀와 잠복포식자들도 보였다더군요. 허기진 자들도 몰려오고 있다고 하고.”
“그게 얼마나 센데?”
“뭍초롱아귀 한 마리만 해도 우리 중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보스와 하현 아가씨 뿐임다. 뭍초롱아귀는 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초롱불과 눈이 마주쳐서 버틸 수 있는 자자가 별로 없슴다. 잠복포식자는 가스트를 가볍게 뜯어먹는다고 보면 될 것 같고.”
일단 묘사만 들어서는 확 와닿지 않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현무의 세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아마 하현이나 예르단 같은 고위급이 없다면 현무의 세력은 종잇장처럼 찢겨나갈 것이다.
“거기다 보스, 이건 굶주리는 별의 전력이 아님다. 여기에 올 것 같은 놈들만 그 정도 된다는 거요. 전력을 동원한다면야 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도 남겠죠.”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현무의 세력은 이게 전부다.
“부족원들을 피신시킬깝쇼?”
키르손이 은근한 태도로 물었다.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도망치거나 숨자고 만든 쉘터니 당연하다.
현무도 열심히 세력을 키우긴 했지만, 이곳은 난이도: 지옥. 별들의 세력이 정면으로 부딪쳐오면 승부가 안 된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셋이나 몰려온다.
현무가 운 좋게 사도 중 하나를 잡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된 호위를 받고 있는 사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대 쪽 사도도 궁극기라는 것을 쓸 수 있을 테니까.
키르손은 당연히 현무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도망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현무가 도망치면 깜짝 놀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대답이 들려왔을 때 오히려 놀라지 않았다. 키르손은 반쯤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아니, 그럼 쉘터는 대체 왜 물어본 겁니까?”
키르손의 질문에 현무는 씨익 웃어 보였다.
“도망이 아니라 전략상 후퇴라고 부르는 거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확실하게 조지기 위해서 물러서는 거다.”
“보스, 그거 정신승리라고 부르는 것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자식아. 가끔 둘을 혼동하기는 하지만 진짜 다르다고. 우리는 우리 쉘터에 발을 딛는 놈들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다 죽여버릴 거다. 애초부터 우리 쉘터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거든.”
쉘터의 건설을 처음부터 주도하고 진행해온 키르손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무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의 쉘터는 살아남기 위한 도피 공간이 아니었다.
적을 집어삼키기 위한 목구멍이었다.
***
사거리는 모기들이 뒤덮어 웅웅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모기떼가 구름처럼 몰려오는 시간대였다. 한참을 머물며 먹어치울 먹잇감을 찾아 헤매던 모기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날개를 털었다.
이내 사거리에서 모기떼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갔다.
사거리가 조용해지자 곧 피리 소리가 사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리와 나팔 소리가 기괴한 음정 박자를 내며 울려 퍼졌다.
모기떼를 피해 인근에 숨어있던 몬스터들은 기이한 소리에 몸을 비틀며 침을 흘렸다.
곧 기묘한 행렬이 사거리에 나타났다.
먼저 등장한 건 먹을 것을 찾아 번들거리는 눈알을 굴리는 무수한 숫자의 구울 떼들이었다. 구울들은 굶주림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허겁지겁 사거리를 점령했다.
육중한 크기의 가스트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윽고 나타난 거대한 가마 앞으로 허공을 부유하는 초롱아귀가 천천히 흘러갔다.
길고 마른 팔다리를 가진 새하얀 거인들이 가마를 짊어진 채 조용히 걸어갔다. 가마의 화려한 비단 천 밖으로는 담뱃대를 쥔 창백한 손이 빠져나와 있었다.
‘모기들이란.’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사도, 포만과 나태의 카와로였다.
그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기떼들을 탐탁잖은 표정으로 주시했다.
모기들은 굶주리는 별의 권속이었지만 부족한 지성 때문인지 받는 명령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그 명령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짧은 시간만 유지될 뿐이었다. 마치 진짜 충성할 대상은 따로 있는 것처럼.
하지만 카와로에게 그 모습은 복종할 대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열한 지성의 상징일 뿐이었다.
“멈춰라.”
적당한 위치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카와로는 행렬에 명령을 내렸다.
익숙한 사거리의 모습을 발견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전에 이곳에서 굴욕을 당한 적 있는 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강현무를 죽이기 직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괴이한 고함 소리에 도망쳐버렸던 기억. 그 꼴사나운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몸은 통제력을 잃고 벌벌 떨며 본능적으로 도망칠 뿐이었다.
‘시련을 통과한 자는 존중받아야 한다니.’
별들은 가끔 기묘한 것에 집착한다. 심지어 자신들과 상관이 없는 사안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때 끼어들었던 괴물들의 별, 오거스트로도 마찬가지였다.
‘오거스트로는 이름만 높을 뿐이지 이미 떨어져 나간 퇴물 아닌가? 쓸데없이 끼어들기는.’
괴물들의 별, 오거스트로는 이미 세력을 잃고 대리인 하나만을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반폐인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그 대리인이 과거에 얼마나 강한 자였건, 이제 끼어들 수 없는 것은 확실했다.
무려 별들이 셋이나 이 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힘들이 충돌하는 것은 인류가 멸망한 이래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거대한 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이 땅이 ‘약속’에 메인 땅이건, 누군가가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건 상관없었다.
이제 곧 별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그 무엇도 남아날 수 없었다.
카와로는 서두르긴 했지만, 다른 별들보다 먼저 행동한 것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찾아라.”
카와로는 거만하게 비단 천 밖으로 담뱃대를 흔들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구울들이 허기진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고기와 피의 냄새를 찾아 땅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바닥마저도 손톱과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파헤치고, 얼마 되지 않는 구멍들을 찾아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 가스트들은 거대한 몸을 움직여 쿵쿵 바닥을 파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고블린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철 역사와 토굴, 쉘터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와로는 씩 미소 지으며 웃었다. 놈이 지하에서 뭔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너처럼 나약한 놈이 목숨이라도 붙여볼 길은 쥐새끼마냥 땅속에 숨어드는 것뿐이지.”
이미 많은 몬스터들이 지하에 숨어있다. 카와로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지하에도 권속들을 속속들이 들여보내고 있었다.
일전에 현무가 시련을 수행할 때 지하를 적극 활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라, 놈이 가진 것을 다 쥐어 으깨고, 빈자의 공허함을 알려주어라.”
카와로는 비릿한 미소를 띠며 요굴렘의 명령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곤의 고통을 통해서, 탐욕을 일깨워라.”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쌓아 올린 것이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현무는 카와로가 보기에도 탐욕이 넘치는 자다. 그는 자신이 쥐었던 것을 쉽게 놓지 못한다. 틀림없이 굶주리는 별, 요굴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와로는 즐겁게 결과를 기다렸다.
***
지하로 파고 들어간 구울들은 허겁지겁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코를 벌름거려도 산 것들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급박하게 움직였던 흔적은 있지만, 이곳에 놈들은 없었다. 거미들만이 어수선하게 돌아다닐 뿐이었다.
구울들은 싸움에 대비해 카와로가 한참을 굶겨둔 상태였다. 허기진 녀석들은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지르며 사방을 질주했다.
그때 구울들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다 썩어가는 랫맨의 사체였다. 썩어가는 놈이긴 했지만 그래도 구울들은 먹을 것을 가리지 않았다. 놈들은 망설이지 않고 이빨을 들이댔다. 우둑거리며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지하 곳곳에서 그런 구울들의 은밀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썩은 고기치고 괴상한 맛이 나긴 하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
그리고 지하 깊은 곳.
현무는 눈을 감은 채 지하 전역에 깔린 자신의 거미줄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자신의 독혈이 든 사체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카와로가 가장 먼저 도착했군.’
굶주리는 별은 누구보다도 탐욕이 넘치고, 통곡하는 별은 느긋하다. 정복하는 별은 알후긴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와로가 먼저 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함정에 걸리고 있었다.
“나의 거미줄에 어서 와라, 침입자들.”
현무는 초조하게, 긴장된 어조로, 하지만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나의 목구멍에, 나의 함정에, 나의 던전에.”
그렇게 눈을 빛내던 어느 순간, 알림창이 떠올랐다.
[부서지는 별, 가울이 당신에게 시련을 부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