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21)
지옥에서 독식-221화(221/346)
221화. 별이 그늘을 드리울 때 (6)
이트왈로는 즉시 경직해 멈춰 섰다.
리치 자체는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통곡하는 별, 베르드의 권속이 와있다면 다르다.
어딘가에서는 사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블린들은 이트왈로가 멈춰 선 사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트왈로는 놈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디 보자…….’
리치는 한참 지켜봤지만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트왈로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유연하고 거대한 몸이 터널을 빠져나와 지하철 역사 안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트왈로의 몸은 인간이라기보다 도마뱀에 가까웠다.
귀밑까지 찢어진 거대한 입에서는 갈라진 혀가 연신 날름거렸다.
공기 중의 냄새 분자를 흡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시체뿐이네. 당연하지만.’
이트왈로의 발아래 오래된 사체들이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이트왈로는 사도가 없거나, 최소한 근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트왈로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맴돌다가, 전조 없이 단숨에 리치를 덮쳤다.
가만히 굳어져 있던 리치는 단숨에 박살나 흩어졌다. 허무하게 리치가 부서져 사라지자 이트왈로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놈은 이미 죽어있었다.
언데드 특성상 죽은 것과 산 것을 구분하기 힘들어 헷갈렸지만, 박살을 내고서야 깨달았다.
‘뭐지?’
그때였다.
이트왈로는 리치의 척추 뼈 아래 심겨져 있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검보라빛의 수정이끼 같은 것이었다.
언데드가 대량 발생할 때 일대에 부정적인 마나를 흡수하고 나타나는 수정석이었다. 그걸 본 순간 이트왈로는 아차 싶었다.
그녀가 대응할 틈도 없이 수정석에서 일시에 어두운 빛을 발하며 주변의 사체들에 스며들었다.
그오오오오.
쓰레기 방치장처럼 쌓여있던 언데드들이 한꺼번에 일어서기 시작했다.
언데드 군집체였다.
놈들은 눈을 뜨자마자 바로 가까이 있던 이트왈로를 향해 칼과 손톱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이트왈로는 고함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언데드 군집체의 한 귀퉁이를 박살냈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되려 이트왈로의 손을 마구 찔러댔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않는 언데드만큼 재미없는 장난감도 없다.
이트왈로는 날뛰면서 언데드 군집체를 공격했다.
하지만 바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시체들이 한꺼번에 일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함정이냐!”
언데드 군집체는 흡수한 언데드의 숫자와 질에 따라 그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그녀가 들어왔던 통로도 이미 시체에 가로막혀 있었다.
이트왈로는 실소를 터뜨렸다.
“히히, 그래. 좋아. 재미없어도 한번 놀아보자.”
이트왈로는 이게 통곡하는 별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확신했다. 혹은 현무가 이미 통곡하는 별에게 붙었거나.
후자인 경우 이미 그들은 늦은 거지만, 통곡하는 별의 함정이라면 이런 같잖은 함정을 파놓은 것이 우스울 뿐이었다.
이트왈로는 몸을 꽉 수축시켰다.
그녀의 거대한 체구가 순식간에 작은 아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적들에게 이렇게 거대한 몸을 둘러싸인 상태에서 큰 체구는 약점을 노출시킬 뿐이다.
몸이 응축되면서 무거워진 무게가 언데드 군집체를 짓눌렀다.
이트왈로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저 뛰고 박차는 것만으로도 언데드 군집체는 닿을 때마다 박살나며 사방에 흩어졌다.
“히히히! 두 번 죽으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한데 애들이 말을 못하네?”
이트왈로의 광소 속에서 언데드 군집체가 반쯤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언데드 군집체는 절반으로 토막 나 양 옆으로 갈라져 꿈틀거렸다
몸의 절반 가까이를 잃어버린 언데드 군집체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트왈로는 몸을 크게 늘려서 남은 잔챙이들을 짓눌러 터뜨렸다.
“이런 같잖은 장난을 치다니, 통곡하는 별은 놀이 재주가 없는걸.”
이트왈로는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권속들을 노렸다기에는 너무 정성을 들였고, 사도를 죽이기에는 너무 약한 함정이다.
물론 이트왈로의 몸도 멀쩡하진 않았다. 온몸 곳곳이 날뛴 흔적으로 상처투성이였다.
이트왈로는 상처에 침을 발라 치유하려 했지만 곧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독이라도 바른 건가?’
상처가 가볍게 쓰리고 회복이 더뎠다.
녹슨 칼과 세균투성이 이빨로 물어댔다고는 하지만 이미 더러운 환경에서 사는 굶주리는 별의 권속들에게는 문제 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도급에게는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을 정도의 저항력이 있었다.
그래도 상처 자체는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곧 낫겠거니 하며 이트왈로는 금세 상처에 대해선 잊어버렸다.
‘다시 수색을 재개해야겠어.’
그녀는 혀를 낼름거리며 고블린들이 어디로 빠져나갔을지 가늠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혀는 다른 무언가의 냄새를 먼저 핥았다.
타는 냄새.
썩은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 유황과 쇳물이 끓는 냄새.
“정복하는 별?”
콰가가가각!
이트왈로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반대편에 있던 언데드 군집체를 관통해 불길이 솟구쳐 나왔다.
언데드 군집체는 순식간에 잿덩이가 되어 기괴한 고함 소리를 내고 허우적거렸지만, 이내 거대한 쇠군화발에 짓밟혀 흩어졌다.
“뭐야, 통곡하는 별도 벌써 온 건가?”
쇠를 갈아서 내는 듯한 목소리. 정복하는 별의 사도, 람펠이 분명했다.
둘은 곧 시선이 마주쳤다. 람펠의 불타는 투구가 갈라지며 입가의 불길이 더욱 거칠게 타올랐다. 미소 짓는 것처럼.
“구더기 새끼로군! 심심한 것들만 잡느라 지루했는데 잘 됐어!”
“탄내 나는 전쟁광들.”
이트왈로와 람펠은 서로를 경멸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트왈로는 람펠과 달리 딱히 싸우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정복하는 별의 권속들은 다들 싸움에 미쳐있는 전쟁광일지도 모르지만 굶주리는 별은 다르다.
그중에서 이트왈로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장난감처럼 굴리고 괴롭히며 즐거움을 얻는 타입이었다.
‘카와로 님에게 정복하는 별이 왔다는 것을 알려야겠어.’
그녀는 적당한 핑계를 떠올리며 빠져나갈 틈을 살펴보았다.
그때, 이트왈로는 자신이 놓쳤던 고블린들이 터널 반대편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고블린들은 이트왈로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더니 스위치 같은 것을 눌렀다.
“뭐?”
동시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지하철 터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고블린들의 모습은 먼지구름과 잔해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이트왈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빠져나갈 유일한 터널의 출구가 막혀버린 것을 지켜보았다.
찾아보면 빠져나갈 틈 따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앞에는 결코 쉽지 않은 전쟁광 한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람펠이 무너지는 터널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지? 부실 공사인가?”
게다가 상대방은 설득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해보였다. 이트왈로는 뭔가가 꼬이는 것을 느끼면서도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쇳덩이는 어떤 비명을 지를까요?”
***
천장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폭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천장에서 먼지가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현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현무의 권속들이 급조해 만든 부실한 토굴과 달리 그가 있는 곳은 지하의 거대한 저수조였다.
사거리와 다소 떨어진 위치기는 했지만 별의 사도들은 비스듬하게나마 이쪽을 향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면서 계속해서 좁아지는 통로 속에서 서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정복하는 별의 사도랑 굶주리는 별의 사도가 부딪쳤어.”
하현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던전 곳곳에는 그녀의 몸 일부인 작은 거미들이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현은 키르손의 보고를 통해서 각 사도들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들어둔 상태였다.
그녀는 과부여왕거미와 함께 유유자적 거미줄에서 먹이를 잡아먹으며 농경생활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덕분에 키르손 보다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키르손의 말마따나, 약한 놈은 아는 거라도 많아야 한다는 건지도 모른다.
“역시 용사나 몬스터처럼 위험한 역할은 외주를 맡기는 게 좋아.”
“……지금 이게 그렇게 농담할만한 상황인가?”
“던전에 쳐들어온 용사 역할부터, 몬스터 역할까지 자기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준다니, 즐겁지 않고 배기겠어?”
이게 유열이라는 걸까?
직접 그 싸움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싸움은 찾아가지 않아도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언데드 군집체가 그 이트왈로라는 사도에게 꽤 타격을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랐어.”
하현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언데드 군집체는 북벌 당시 샤오지에가 숨겨둔 유사 수정석을 사용해 만들었다.
그때 얻은 수정석의 절반 이상을 사용했는데도 사도 한명조차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현무는 이미 예상했다는 태도였다.
“함정이나 덫으로 사도를 한 명이라도 죽일 수 있다면 엄청나게 운이 좋은 거야. 아니, 불가능할걸?”
현무는 자신의 옆에 있는 꽁꽁 싸매여 있는 알후긴을 보며 말했다.
지금도 그는 알후긴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상처를 내고 독혈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럼에도 알후긴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사도들은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해.”
현무는 자신이 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알후긴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또 한 번 감사했다.
덕분에 사도들의 한계와 능력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라야 놈들을 죽일 수 있는지도.
“사도들끼리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현은 기대하듯 말했다.
지금도 람펠과 이트왈로가 싸우고 있다고 했으니, 둘 중 하나가 죽어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결과지만.”
현무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아쉽게도 놈들끼리는 도망쳐도 굳이 잡아 죽일 동기가 없거든. 특히 난이도: 지옥까지 살아남은 놈들이라면 적폐 중의 적폐야. 살아남는 것이라면 도가 텄을 테고, 당연히 남은 쪽도 무리해서까지 죽이려고 하진 않을 거야.”
지나치게 잔인한 놈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오래 살아 남은만큼 서로에 대해 알고 있을 테고, 무리하지 않는 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쪽이 아주 일방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많이 했나본데.”
“이번에는 한 번이라도 죽으면 곤란하니까.”
사도들은 현무를 죽이기 위해 오는 게 아니었다. 사로잡으러 오는 것이다. 죽음의 위기는 곧 포획의 위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시련으로 인해 저주받은 자가 태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무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결코 얕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당장은 놈들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야. 내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달라지겠지.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흐음…… 그래서 몬스터들을 내보내는 건가?”
던전 곳곳에서는 현무의 몬스터들도 상당수 쓰러지고 있었다.
미끼나 유인처럼 각자 맡은 바 역할은 있었지만, 그중 태반은 일방적으로 의미 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최대한 당하는 척 해야 하니까.”
현무는 몬스터들은 몬스터일 뿐, 자신의 권속이 아닌 이상 당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고블린들은 키르손의 부족이라는 점에서 신경 쓰일 뿐이었다.
현무는 변명처럼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일선의 키르손이 일선의 몬스터들을 지휘하고 있잖아?”
“……네 명령으로 죽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내 경험치가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흐음, 그건 그렇네.”
하현은 마지못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무는 그녀의 미묘한 태도가 이해가 안 갔다.
하현은 애초부터 상위 포식자다. 고블린도 적지 않게 잡아먹어봤을 것이다.
난이도: 지옥에서 권속을 아끼는 것은 거미가 파리를 동정하는 꼴이다.
하현은 현무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현무. 사실 속삭이는 별께서 뭘 보내주셨는데.”
“몽스트릴이?”
현무는 의아한 듯 물었다.
자신에게 말도 없이 보내놓다니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러자 하현이 약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몬스터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보이던 미묘한 반응이 강화되고 있었다.
“뭐야, 뭐 이상한 거 보내줬어?”
“으응, 아니, 이상하진 않은데…… 저기, 권속이 아니라고 해도 막 대하진 않을 거지?”
“……불안하니까 빨리 말해봐. 뭔데?”
하현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배를 갈랐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지만 선혈이나 내장 같은 것은 없었다.
얼굴만 한 크기의 하얀 고치가 나타났을 뿐이었다.
현무는 그게 뭔지 바로 알아보았다.
몽스트릴의 시련, 과부여왕거미를 죽이는 퀘스트를 수행 중이었을 때 죽인 하현의 언니, 상현의 가면을 기반으로 만든 고치였다.
그때는 다시 태어날지 기약이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하현이 지금 와서 이걸 꺼내들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했다.
“설마.”
“으음, 속삭이는 별께서 다시 권능을 부여해주셨어. 내 육체를 약간 나눠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주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