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22)
지옥에서 독식-222화(222/346)
222화. 별이 그늘을 드리울 때 (7)
현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천장을 노려보았다가, 벽을 째려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축…… 축하해야 하는 게 맞겠지?”
누가 뭐래도 새 생명이 탄생하는 거라면 축하하는 게 맞다. 하지만 하현이 직접 낳는 게 아니니까 새 생명이라고 하기도 미묘하다.
게다가 언니를 낳는 동생이라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문장이기는 한 건가?
‘몽스트릴, 이 망할 년이.’
몽스트릴이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현무는 몽스트릴에게 깊은 빡침을 느끼면서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저기, 현무. 싸움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한동안 푹 쉬어서 거미의 양도 많고, 유사시를 대비해 20% 정도의 잉여 거미가 있어. 그걸로 충당하면 충분할거야.”
하현은 자신의 전력이 약해져서 싸움에 지장이 될까봐 걱정하는 줄 아는 듯 했다. 하지만 현무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하현은 강력한 전력이지만 핵심 전력은 아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거…… 상현이 다시 살아나는 건가?”
“그러면 좋겠지만…….”
하현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언니가 남긴 것은 골격뿐이야. 새로 태어나는 상현은 내 거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라 기억도 능력도 나를 따라갈 거야. 외모는 언니랑 똑같겠지만 언니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
말 그대로 하현에게 주는 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유령이 되살아나서 살인범을 고발하는 상황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무는 그 점에 있어서는 그나마 안도했다.
물론 살인범은 유령의 얼굴을 계속 보고 살아야 하겠지만.
‘빌어먹을, 퀘스트였는데 어떻게 해? 하현이라도 죽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현무는 속으로 몽스트릴을 욕했다. 당장 상황으로 봐서는 현무를 놀리려는 의도 외에는 없어보였다.
막 태어난 상현이 강력한 전력이 될 거라고 기대되지는 않고.
“그 외에는 몽스트릴이 뭐 보낸 거 없나? 그냥 지켜보고만 있나?”
“글쎄. 거미들이 평소보다 많이 보인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걸.”
현무는 한 번 더 열이 오를 뻔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당장 몽스트릴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보다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
위협이 전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자기들끼리 치고받을 테니까.
‘아니, 기본적으로 도움 따윈 없다고 생각해야 해.’
자력갱생…… 이 아니라 의도를 모르는 상대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몽스트릴은 그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결국 그녀의 권속이 될 생각이 없는 한 거리를 두는 편이 좋았다.
“알겠어. 일단 두고 보자고.”
***
퀴리에와 람펠은 백인대를 절반으로 나눠 오십 명씩 끌고 갔다.
백 명을 한꺼번에 같은 경로로 끌고 가는 것은 전력 낭비였다. 하지만 많은 숫자도 아니니, 나뉘어져 접근하는 편이 나았다.
지하는 천장이 낮은 탓에 그들의 자랑이기도 한 전마를 끌고 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좁고 낮은 천장이 그들에게 불리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리했다.
“대기!”
하수구 끝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들이 들려오자 퀴리에는 곧장 멈춰서 소리쳤다.
그녀의 명령에 철혈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대형을 만들었다.
이윽고 불타는 철혈병들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달려오는 구울들이 보였다.
“방패!”
퀴리에의 고함과 동시에 최전열의 철혈병들이 동시에 방패를 들어올렸다. 강철 장벽이 세워지고, 2열에 서있던 철혈병들이 방패 위로 창을 겨눴다.
갑자기 나타난 강철 장벽에 구울들은 당황하며 멈춰 섰다.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달려들겠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벽뿐이었다.
하지만 퀴리에는 덤비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 생각 없었다.
“전진!”
쿵, 쿵, 쿵.
단일대오로 한걸음씩 전진해오는 발걸음 소리가 위압적으로 들이닥쳤다.
구울들은 머뭇거렸지만 등 뒤에서 밀려오는 구울들에 의해 뒤로 빠져 나갈 수도 없었다. 창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뜨거운 열기가 밀려왔다.
“끼에에에!”
오십 명의 철혈병들이 내뿜는 열기는 천장마저도 벌겋게 달굴 지경이었다. 좁은 터널은 그 자체로 오븐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평범한 살은 순식간에 익어버렸다. 구울들은 싸우기도 전부터 타들어가며 몸부림쳤다.
몇몇은 견디다 못해 달려들었지만 그래봤자 달궈진 쇠방패에 들러붙게 될 뿐이었다.
철혈병이 바닥에 방패를 쿵 내리찍자 검게 탄 구울이 바닥에 떨어진 뒤 짓밟혔다.
“칼, 쿨룩!”
구울들이 도망치거나 어수선하게 흩어지는 사이 가스트들이 도착했다.
가스트들은 철혈병과 대등하거나 더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지만 이렇다 할 지성도, 단합력도 없었다.
가스트 중 하나가 고함을 내지르며 불길을 뚫고 훅 달려들었다. 그대로 방패벽에 부딪쳐 대열을 무너뜨리려는가 싶던 순간, 불쑥 튀어나온 창이 단숨에 머리를 꿰뚫으며 멈춰 세웠다.
그걸 시작으로 창 수십 개가 동시에 심장, 폐, 간, 목 등의 주요 부위들을 찢어발겼다.
해체된 가스트들이 철혈병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명령 때문에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던 가스트들도 차례차례 도살당했다.
하나의 생물처럼 일사분란하게 통제되는 철혈병들의 전투력은 아득할 만큼 강력했다.
이내 가스트와 구울들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적들이 도망치는 순간은 최대의 성과를 올릴 타이밍이다. 철혈병들은 이내 벌어질 도륙을 기대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정지!”
하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퀴리에는 불현듯 정지명령을 내렸다.
욕망이라곤 적을 도륙하는 것밖에 없는 철혈병들은 실망했다. 하지만 상관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곧장 멈춰 섰다.
퀴리에는 눈을 번뜩이며 앞을 살폈다. 낌새가 이상했다. 예감뿐이지만 함부로 앞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너, 너. 앞으로 가라.”
퀴리에는 찍은 철혈병 둘을 선봉에 앞장 세웠다. 그리고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평범한 하수도였다. 구울들이 도망치며 내는 기괴한 신음소리들 말고는 특별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퀴리에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연녹빛 불빛을 발견했다. 그녀가 재빨리 고함을 내질렀다.
“물러나!”
하지만 그녀의 고함은 늦은 감이 있었다. 평범해보였던 하수도에서 갑작스럽게 이빨이 돋아나더니 순식간에 선봉에 서있던 철혈병들을 집어삼켰다.
하나는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오른쪽 상반신이 삭제되듯 잘려나갔다.
“뭍초롱아귀다! 궁수!”
거대한 강철 장궁을 든 철혈병들이 불타는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공성추로 때려 박는 듯한 소리와 함께 뭍초롱아귀의 몸 곳곳의 살이 패여 나갔다.
뭍초롱아귀는 비명을 내지르며 하수구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남은 것은 오른팔을 잃은 철혈병뿐이었다.
선봉에 섰던 다른 철혈병의 구조는 기대 할 수 없었다.
퀴리에는 다친 철혈병을 부축해 후방으로 보냈다.
치료는 소속 대장장이가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전력이 되지 못할 것이다.
퀴리에는 언짢음을 느꼈다.
‘뭍초롱아귀를 상대로 이정도 손해로 그친 게 다행인가.’
뭍초롱아귀는 하수도 전체로 위장할 수도 있다.
아무런 주의도 하지 않았다면 50인의 철혈병들을 고스란히 놈의 입안으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명의 손해도 퀴리에에게는 아까웠다.
‘전체적으로 굶주리는 별 권속들은 우리의 상대가 못돼. 하지만…….’
전력이 꾸준히 마모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신중한 자신도 하나 둘 이렇게 잃고 있는데 람펠은 어떤 꼴일지 알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합류해서 가는 게 좋았나?’
그럼 람펠에게 조금이라도 주의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빠른 순간 판단력에 몸을 맡기는 람펠이 지금 상황에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버릴 수 없었다. 둘은 그런 식으로 서로를 보조하곤 했으니까.
‘아니, 하다못해 알후긴이라도 있었더라면.’
알후긴은 재수 없는 놈이지만 사도는 사도다. 퀴리에는 점점 그 빈자리가 아쉬워졌다.
‘여기서 통곡하는 별까지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겠군.’
***
달그락, 달그락.
지하철 철로 위로 장신의 남자가 걷고 있었다. 지하철 철로 위에는 토막나고 탄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남자는 시체들을 밟고 넘으면서 시체들의 상태를 살펴보거나 집어 올려보기도 했다.
“흠, 이게 왜 벌써 여기에……?”
남자는 장갑을 낀 손으로 사체의 환부를 헤집어 보다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자는 품속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워봤자 의미가 없는 몸이긴 하지만, 그는 흡연이라는 행위 자체로 만족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체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가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누가 앞서든, 누가 뒤처지든.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이 이긴다.
쿵, 쿵.
남자는 터널 반대편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이윽고 철로의 커브를 따라 환한 불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일단 멈춰 섰다.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성큼성큼 선두에서 걷고 있는 불타는 기사.
남자는 상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정복하는 별의 사도, 람펠이었다.
람펠과 철혈병들도 달려오다가 곧 철로 한복판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장신인 남자도 철혈병들에 비하면 왜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혼자였으니.
하지만 람펠은 저 특이한 모습의 남자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이바노브?”
“람펠.”
이바노브라 불린 남자는 새하얀 턱을 쩍 벌리고 대답했다.
뼈뿐인 그의 몸은 폐와 구강구조가 없다. 그저 마법적으로 만들어낸 목소리를 자신이 낸 척 턱을 움직일 뿐이었다.
이바노브는 시가의 재를 툭툭 털어내며 람펠의 몸을 훑어보았다.
“이미 한바탕 한 모양이군.”
람펠의 강철 피부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 큰 타격은 없어보였지만, 대장장이를 통해 수선한 듯한 흔적들이 상당히 남아있었다.
이바노브의 여유있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람펠은 상당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왜…… 그럼 정말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도 움직이는 건가?”
“흐음, 그건 왜?”
“왜냐니, 네놈은 대리인의 시다…… 아니, 비서 같은 놈이잖냐!”
람펠의 말에 이바노브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얼굴근육이 없는 해골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바노브는 다시 시가를 빨아들이는 척했다. 연기를 빨아들일 폐는 없었지만.
“아니, 이번은 나 혼자 움직이고 있다. 이 정도 사안에 대리인께서 굳이 나설 것도 없지.”
“혼자?”
람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바노브의 말대로 다른 권속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 해골인 주제에 담배를 피우고, 몬스터에게는 쓸모도 없는 총을 들고 다니는 컨셉충 변태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혼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꽤 자신 있는 모양이군.”
람펠은 불타는 미소를 보였다. 이바노브는 대리인의 수행원이고, 상당한 강자로 알려져 있지만 혼자라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철혈병들은 람펠의 의지를 눈치 채고 재빨리 대형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바노브는 여전히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목적을 망각한 것 같군. 람펠. 날 사냥하는 게 네 목적은 아닐 텐데?”
“결국 다른 별의 사도라면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두는 편이 낫지.”
“오만하고 또 오만하도다. 어리석은 자야. 그 한심한 입에 죽음을 올리는가.”
이바노브는 람펠을 향해 시가를 툭 튕겨 던졌다. 람펠의 갑옷에 시가가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람펠의 불길이 더욱 거칠게 타올랐다.
“죽여주마.”
람펠은 창을 등에 꽂아 넣고, 대신 거대한 대검을 꺼내들었다.
람펠의 키보다 더 큰 불길이 타오르는 검이었다.
이바노브는 조용히 톰슨 기관총을 들어올렸다.
람펠의 눈에 동정심이 서렸다. 대리인도 괴짜라더니 닮아서 미쳐버린 건가.
“어딜 한심하게 총 따위를…….”
순간 톰슨 기관총의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람펠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발사된 총탄들은 그의 갑옷에 부딪쳤다가 어이없이 녹아내렸다.
총알은 람펠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총알들이 발사된 순간 들린 것은 총성이 아니었다. 끔찍한 비명소리들이었다.
“망자를 부르는 호곡(號哭)은 언제나 소름이 돋지.”
곧 이어 터널 전체에 들끓는 듯한 괴성들이 울려 퍼졌다.
방금 죽이고 도륙내면서 왔던 무수한 몬스터들의 신음소리였다.
총성의 비명을 들은 모든 사체들이, 박살 냈던 언데드들, 심지어 이트왈로와 싸움에서 죽었던 철혈병 몇몇까지도 되살아나 일어서고 있었다.
람펠은 이바노브가 미소 지었다고 생각했다.
해골은 언제나 웃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군대가 우리 주인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굳이 권속들을 끌고 올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