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24)
지옥에서 독식-224화(224/346)
224화. 별이 그늘을 드리울 때 (9)
저주받은 자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들 중 일부가 피를 찍어 가볍게 입에 가져가 댔다. 피 맛을 본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독혈이군.”
현무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혼자서 이 많은 피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때 저주받은 자들 중 뒤쪽에 있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다.”
“조건?”
“네놈은 여기서 편안히 쉬는데 우리만 지치면 안 되지. 배알이 꼴려서라도 안 돼. 네놈도 나가서 싸워라.”
정말 배알이 꼴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도가 적나라하게 숨어있었다.
홈 어드밴티지가 붙지 않은 곳이라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좋아.”
하지만 현무는 간단하게 찬성했다.
어차피 처음 듣는 제안도 아니었다. 앞서 찬성한 7그룹도 똑같은 제안을 했었던 것이다.
‘나도 나지만 정말 독창성 없군. 이러다 끌려가면 어쩔 건지.’
“어차피 나도 가서 싸울 생각이었던 마지막 한 그룹만 더 만들고. 더 이상 피를 뽑아 낼 수도 없으니까.”
“그럼 찬성하지.”
질문을 던진 놈이 가장 먼저 찬성표를 던졌다.
일단 찬성하는 자가 나오자 저주받은 자들도 약간 맥이 빠진 느낌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협박에 굴해서가 아니라, 찬성하는 놈이 나온 이상 자기들끼리 치고받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현무는 첫 번째 찬성 의사를 던진 놈을 노려보았다.
가장 뒤편에 서서 관망하다가 현무의 함정을 가장 먼저 눈치 챈 놈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도드라지는 놈이 나오는군.’
16그룹이나 저주받은 자들을 양산해냈지만, 전부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찬성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무시하고 달려드는 놈들이 있는 것처럼, 저주받은 자들 사이에서도 미미하게 차이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탁월한 놈들이 있었다. 능력치와 성정은 똑같지만, 판단력이 남다르다.
그리고 그룹 전체는 알게 모르게 그런 탁월한 놈의 의견을 따라가곤 했다. 현무는 그들이 자신의 다른 갈래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나한테 다섯 개의 별들이 관심을 보이듯이 말이지.’
어떤 별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저주받은 자들은 일찍 죽고, 어떤 놈들은 살아남는다.
현무는 이번에 살아남은 그룹의 리더격인 놈을 8호라고 명명했다.
“좋아. 그러면 무기 한 자루씩 넘겨 줄 테니까 가져가.”
현무는 사각 지대에 미리 준비해둔 무기들을 보여주었다. 취향 껏 가져가라고는 했지만 탐에 비하면 한참 격이 떨어지는 희귀 등급의 무기였다. 포션 몇 개도 포함이었다.
일단 무기를 들자 다시 눈을 빛내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딴 걸로 사도랑 싸우라고?”
“적어도 전설급은 줘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현무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럼 맨손으로 가던가.”
이놈들은 찬성표를 던졌으면서도 언제든지 뒤통수를 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놈들이다.
“놈들을 잡아서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획득해. 그거까지는 내가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지금 몬스터들은 바글거리고 너희들 몇 명이 힘을 합치면 사도급은 못돼도 어지간한 놈은 상대가 될 거다.”
비록 무장이 부족하더라도 저주받은 자들이 전부 사도에 맞서 싸운다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꿈에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저주받은 자들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무기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빠르게 던전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저주받은 자들 대부분이 흩어졌을 때, 마지막 한 놈이 남아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8호라고 명명한 놈이었다.
외면상 특징은 없지만 챙긴 무기는 검은색 단검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질문이 있는데.”
“뭐?”
“어떻게 우리들을 꺾은 거지? 쉽지 않았을 텐데.”
현무는 질문에 피식 웃었다.
“멍청한 질문이군.”
현무는 대답을 얼렁뚱땅 넘겼다. 하지만 놈은 그걸로 만족한 듯 현무를 바라보다가 슬며시 사라졌다.
현무는 언짢음을 느꼈다. 놈은 그걸 이미 알면서도 질문 했을 확률이 높았다.
굳이 저렇게 존재감을 어필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어쩌면 속삭이는 별의 영향을 받는 놈일지도 모르겠다.
‘관종 같으니. 어떻게 꺾었냐고?’
현무가 생략한 대답은 뻔했다.
‘그게 중요한가? 어쨌든 살아남은 쪽이 진짜가 될 텐데.’
어쨌거나 그 자리에 현무가 있었다.
저주받은 자가 현무를 대체했건, 현무가 정말로 그들을 다 죽였건, 결국 ‘진짜’는 피 뿌리기를 통해 저주받은 자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놈은 찬성한 것이다.
어차피 피 뿌리기를 해야 한다면 상황이 다 끝난 다음 ‘진짜’를 차지하는 게 나으니까.
다른 1호에서 7호까지도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찬성했을 것이다.
지금 진짜를 차지하고 표적이 되느니, 모든 상황이 끝난 뒤 막타를 먹으면 된다고.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고, 별들.”
현무는 마지막 17번째 피그릇을 바닥에 쏟아 부었다.
***
깨끗하던 하수도 벽면이 쿵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반복해서 쿵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균열은 점점 커져갔다.
이윽고 균열의 반경이 사람 머리통 하나의 크기가 된 순간, 뚫린 구멍으로 흐느적거리는 형체가 빠져나왔다.
분명 살점을 가진 생물이지만 동시에 액체 같기도 한 기괴한 질감을 가진 존재였다.
그것은 뱀처럼 몸을 길게 뽑으며 흐느적흐느적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흰 살갗에는 피가 배어나오는 상처와 불에 탄 흉터들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숯덩이 전쟁광들.”
굶주리는 별의 권속, 이트왈로였다.
작은 여자 아이의 머리 크기의 틈만 있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이트왈로였기에 람펠과의 싸움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이트왈로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보며 이를 갈았다. 람펠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였다.
사도 대 사도의 싸움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정복하는 별의 권속들은 전투와 전략에 능하다. 거기다 람펠은 백인대 소속의 엘리트 철혈병들을 50명이나 데리고 있었다.
이트왈로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철혈병들을 네다섯 정도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 역시 상처를 많이 입었다.
‘게다가 통곡하는 별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트왈로는 아직도 지하철 역사에 있는 언데드 군집체가 통곡하는 별이 친 장난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놈이 무슨 그 장난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상처가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곪아가고 있었다.
사도의 회복력을 넘어설 정도의 독이라니, 사실이라면 심각했다.
별들 가운데선 그런 독을 가진 별도 있었다.
굶주리는 별이 그중 하나였다. 통곡하는 별도 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강한 독이 있는지는 몰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시독(屍毒) 이라면 나한테 통할 리가 없는데?’
허기를 참지 못하는 권속들은 특성상 시체를 먹는 일이 많다. 그런 그들을 통해 모은 시독의 종류는 상당했다.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굶주리는 별의 방대한 보물창고에 가면 분명 해독제가 있을 것이다.
이트왈로는 독에 대해 보고하고 치유를 요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땅속으로 헤집고 다니면서 망자의 군세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은 보았다.
여기에는 언데드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꽤 깊은 곳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규칙적인 벽의 진동이 이곳도 곧 점령당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통곡하는 별과는 싸울수록 손해다. 죽은 자가 고스란히 적의 병력이 되니까.
정복하는 별은 열광할지도 모르지만, 굶주리는 별의 권속인 그녀는 달랐다.
서둘러 가질 것을 취하고 빠져나가는 편이 좋았다.
‘어서 카와로 님을 뵈러 나가야겠어.’
이트왈로는 쉽게 들키지 않게끔 천장 위에 붙어 느릿하게 기어갔다.
어둠 속에서 얇고 길쭉한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트왈로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뭐야, 저건?’
모퉁이에 한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매복하듯 서있었다. 놈은 카와로에게서 들은 ‘목표’와 일치했다.
아직 그 어떤 별도 선택하지 않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 강현무.
누군가의 권속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난이도: 지옥에서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은 놈이 상당한 수완과 독성 저항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실력은, 뭐. 그럭저럭 한다지만 결국 인간 혼자선 한계가 있지.’
어떻게 별들의 이쁨을 받아 살아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놈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놈은 지금 이트왈로의 머리 밑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무방비한 모습에 이트왈로는 되려 고민에 빠졌다.
‘……함정인가?’
이트왈로는 한참 동안 현무를 감시했다. 그때 하수도 끝에서 구울 몇이 달려왔다.
현무는 모퉁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에 꺼내들고 있던 장검으로 재빨리 구울을 기습했다.
구울들을 죽이는 현무의 모습을 보면서 이트왈로는 허탈감을 느꼈다.
‘고작 저런 잔챙이들을 사냥하려고 숨어있었다고?’
물론 자기 아지트 전체가 몬스터에게 점령당했으니 외적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에서 성주가 직접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전부 끝장난 것이 아닌가.
현무를 찾아 헤매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입장에서는 이트왈로 입장에서는 허탈할 뿐이었다.
‘더 볼 것도 없겠어.’
이트왈로는 덮치듯이 천장에서 뛰어내려 현무를 휘감았다.
현무는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무가 칼을 휘두를 틈도 없었다.
이트왈로는 가볍게 힘을 줘 현무의 뼈 몇 개를 부러뜨렸다.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무가 울컥 피를 토해냈다.
“이대로 끌고 가면 되겠군.”
놈은 죽이면 사거리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정도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거리는 지금 망자의 군세에 점령당하다시피 했으므로 통곡하는 별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죽이지 않고 빠져나갈 틈을 찾아야했다.
“일단 카와로 님에게 가야…….”
그 순간이었다. 허리 쪽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트왈로는 고개를 돌린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강현무가 한명 더 있었다.
“뱀 새끼…… 아니, 사도다!”
퍽, 퍼억! 동시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똑같은 외모의 현무들이 나타나 이트왈로의 몸을 꿰뚫었다.
현무와 격 차이는 나지만 지금 이트왈로는 지칠 만큼 지치고 다친 상태였다. 게다가 여러 명의 타겟이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이런 잔챙이 같은 짓을!”
이트왈로는 곧장 이 현무들이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몸 안에 품고 있던 현무를 단숨에 몸의 뼈를 부러뜨려 죽여 버렸다.
그 순간 퍽 터져 나온 핏물이 온몸에 배어들었다. 그 모습은 이트왈로의 의심을 확신시켜주었다.
가짜다.
“이따위 유치한 장난으로 나와 놀이가 될 것 같으냐?”
이트왈로는 매섭게 팔을 휘둘러 현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현무들은 가볍게 피하곤 동시에 순차적으로 이트왈로의 몸에 무기들을 찔러 들어왔다.
구속자 야율로 강화된 완력은 희귀 무기라 해도 이트왈로의 몸에 유효한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이트왈로는 한 놈 한 놈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잡몹들을 쓸어내듯이 아무렇게나 한 공격으로 당할 것들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환각도 아니고, 분신도 아니다. 분신이라면 통제력이 미흡하거나 약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한 놈 한 놈이 수준급이다.
“사도다!”
“죽여!”
문제는 그런 놈들이 그걸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마치 덫을 놓았다가 사냥하는 사냥꾼들처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트왈로는 기가 찼다. 이놈들은 자기들이 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덫으로 이용하고, 함정으로 써먹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한 분신이라면 짤 수 없는 전략.
‘설마 이 전부가 진짜라고?’
현무들의 숫자가 두 자리에 이르면서 이트왈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다. 동시에 몸이 이상할 정도로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독?’
이트왈로는 자신의 몸 안에서 터져나간 현무의 피가 상처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현무들 역시 전부 무기에 붉은 피를 묻히고 있었다.
이트왈로는 강현무라는 놈이 ‘독혈’을 가지고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이 미친 놈은!”
이트왈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 지르며 몸부림쳤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
지하 하수도 어딘가.
현무는 어딘가 멀리서 하수도를 따라 들려오는 고함소리를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
“고생들 하는군.”
[레벨 업!]현무는 또 한 번 들려오는 알림음에 몸을 쭉 폈다.
부서지는 별, 가울은 그에게 시련을 주었다. 하지만 그 시련은 현무에게 무작정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반대급부.
저주받은 자들이 죽을 때마다 그들은 한줌 핏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들은 강현무라는 중심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일 뿐이다.
가지는 부러져 죽기 전까지 본류에서 양분을 흡수한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가지도 가지 나름의 기능이 있다. 잎을 틔우고, 뜨거운 햇살과 비를 직접 맞으며 성장하고, 때가 되면 잎을 떨군다.
뿌리는 잎을 양분 삼아 다시 성장한다.
저주받은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놈들은 본류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저주받은 자들 역시, 그들이 모았던 경험치를 현무에게 환원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놈들이 죽는 순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