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33)
지옥에서 독식-233화(233/346)
233화. 별들의 시련 (9)
퀴리에의 손아귀가 하현의 몸을 압박해오는 순간, 하현이 가장 우려한 것은 고치 안의 상현이었다.
상현이 자신의 몸 안에서 으깨져버릴까 걱정되어 거미 떼로 탈출할 수도 없었다.
속삭이는 별이 그녀에게 준 선물이 결국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물론 고치 안에 있는 게 상현이 아니라는 것은 하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어리석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상현이 되살아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야.’
아주 오래전에 상현이 하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생명은 최소단위의 유기물질이 모여 복잡계를 형성하고, 해당 집단의 연속성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다른 유기물질로 교체해나가는 계속적인 전기신호 형성 장치에 불과해. 감정이라는 건 그런 신경의 복잡함이 만들어낸 호르몬 변화로 인한 오류고. 어떤 오류는 집단에 이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오류는…….’
‘언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차…… 생명이라는 건 네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
상현은 아직 살아있는 고블린의 귀를 뜯어먹으며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거미들의 집단이 상현, 하현이라는 자아로 통제되고 있지. 그럼 이 고블린이라고 다를까?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많은 세포가 각자의 기능을 가지고 결속되어 있는 거야. 자아는 외주를 맡기고.’
‘아니, 그런데 언니. 나는 거미 분신술 같은걸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은 것뿐인데 왜 그렇게 대답이 복잡한 거야?’
‘그리고 그 분신술을 쓰면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덧붙였잖아.’
‘그러니까, 불가능하다는 거지?’
상현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하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답했다.
‘우리 거미들의 수명이 몇 년이지, 하현? 길어야 1년, 짧으면 6개월이야. 즉, 1년이 넘으면 네 몸의 거미들 대부분은 새로운 거미들로 대체 된다는 거지. 그럼 1년 전의 하현은 어떻게 된 거지? 죽었나?’
‘어…… 아니지?’
‘맞아. 아니야. 중요한건 연속성이야. 우리가 자아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거미를 필요로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고. 즉, 거미 분신술을 쓰면 연속성이 해체된다는 거지.’
‘그냥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해주면 안되나?’
그러자 상현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음, 하지만 꼭 안 되리란 법은 없겠지. 그 거미 분신 하나하나에 연속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사도급 정도라면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걸 해낼 수 있다면 더 굉장한 것도 해낼 수 있을 걸.’
‘더 굉장한 거?’
‘거미 분신술은 네가 아닌 다른 존재한테 너의 연속성을 심는다는 거야. 그게 가능하다면…….’
***
하현의 손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니, 이미 그것은 손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수만 가닥의 거미줄 그 자체였다.
퀴리에는 당황하며 하현을 뿌리치려 했지만, 팔이 공중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퀴리에는 그제야 하현의 하얀 손이 이미 자신의 팔 안쪽에 파고들었으며, 신경계 하나하나를 장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언니가 하던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현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물들어있었다.
하현은 사도인 퀴리에를 통제하기 위해 몸 전체의 신경계를 다 동원해야만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뇌가 타버리거나, 미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하현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귀는 수천만 개였다.
몸에 거느리고 있는 무수한 숫자의 거미들이 그녀의 신경계를 대신해 활성화되고 있었다.
하현은 공기의 떨림, 어깨에 내려앉는 먼지의 감각, 수십 년 전에 이곳에 흘러들었던 오물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넘어서, 퀴리에의 감각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갑옷이 얼마나 두터운지, 체온이 얼마나 뜨거운지, 전해져오는 흥분과 당혹, 분노까지도.
이것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는 하현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하현은 상현보다 강하고, 빠르고, 거미줄도 잘 다뤘지만, 정신계통의 능력과 스킬 이해도는 상현이 훨씬 나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상현의 기억과 능력의 이해도가 몸 전체로 스며들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뱃속이 간지러웠다.
하현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속삭이는 별이 무언가를 한 것이 분명했다. 고치 안에 있는 언니의 ‘연속성’이 자신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과부여왕거미만큼이나 강한 힘이 배 안쪽에서부터 힘차게 맥동하고 있었다.
별 만큼이나 뜨거운 힘이.
“벌레 같은 것!”
키르손만 신경 쓰고 있던 퀴리에는 경악하며 하현에게 손이 없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하현이 팔의 단면에 맞은 순간, 몸이 훅 흩어졌다.
퀴리에는 퍽 터지는 감각을 예상했지만 허무한 감각만이 느껴졌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때린 느낌이었다.
안개처럼 훅 흩어졌던 하현의 몸은 퀴리에의 오른팔마저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이 서서히 장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같잖은 짓을!”
퀴리에는 몸 안의 체온을 끌어올렸다.
그래봤자 벌레, 불에 태워버리면 견딜 수가 없을 터.
그때 키르손이 겨울 추수꾼의 낫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퀴리에는 팔을 휘둘러 막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팔은 이미 하현에게 구속되어 있었다.
키르손의 낫이 퀴리에의 목을 다시 한번 갈랐다.
풀무질이 불가능해지자 퀴리에의 몸은 더 이상 타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하현 역시 팔 이상으로 잠식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퀴리에의 심장은 그 자체로 용암과 같다. 하현이 접근할 수 없는 뜨거운 영역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다르다.
키르손의 낫이 목을 가른 덕분에 열기가 제대로 위로 솟구치지 못하고 있었다.
퀴리에는 하얀 안개와도 같은 거미무리가 자신의 머리를 뒤덮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그녀는 뭐하는 거냐며 소리치려 했지만 목구멍은 바람 빠지는 소리만을 냈다.
거미들을 깨물고, 머리를 바닥에 찍으며 몸부림쳐도 거미줄이 그녀의 얼굴을 뒤덮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너도.’
퀴리에는 익사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너도 우리가 되자.’
***
카와로는 현무의 뺀질뺀질한 태도에 표정을 굳혔다.
현무의 표정은 뻔뻔했지만, 걱정하는 기색이 없는가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현무가 품고 있는 걱정과 우려는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무는 그들을 구하러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같은 사도급이 아닌 이상 사도를 상대하는 것은…….”
“사도급이 없다고 누가 말이나 했지?”
카와로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설마 다른 별들 중 누군가 강현무의 편을 들고 있다고?
속삭이는 별이 강현무를 돕고 있다는 의심은 있었다. 하지만 속삭이는 별은 그가 알기로도 여유가 없는 편이었다.
사도급을, 그것도 대가도 없이 파견하기에는 그녀의 사정이 여의치가 않을 터였다.
“설마 속삭이는 별과 붙어먹기로 한 거냐?”
현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퀴리에가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카와로의 우려가 사실에 근접해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자 막상 초조해진 것은 카와로였다.
‘이미 저놈이 속삭이는 별에게 넘어갔다면 게임은 끝났다.’
강현무는 죽어도 되살아나는 놈이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죽여서 권속으로 만드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사도가 되었다면 아예 불가능하고.
‘하지만 만약 놈이 속삭이는 별에게 조건부로 승낙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하는 조건으로 넘어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잡아야만했다.
수다를 떨 시간은 길지 않았다.
현무는 재차 카와로를 공격했다.
생각이 복잡해지자 카와로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현무를 제압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그를 또 다른 별이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시가 급박했다.
카와로는 어쩔 수 없이 다소 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여기서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카와로는 굳은 표정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가, 팔을 훅 길게 펼쳤다.
현무와 저주받은 자들은 카와로가 갑자기 이상한 자세를 취하자 긴장했다.
그리고 카와로에게서 응축되는 힘을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궁극기.”
카와로의 손이 샛노란 금빛으로 물들었다.
“황금의 시간.”
쫘아아아악.
카와로가 궁극기를 사용한 순간, 시간이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토막 나면서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카와로가 보는 모든 세계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실제로 세계가 황금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을 붙잡아 멈춰 세우면서 빛무리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어떤 사도도 이 정도 힘은 가질 수 없다.
굶주리는 별의 최상급 사도인 카와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그저 어마어마한 마나와 제물을 굶주리는 별에게 바치고, 그에게 아부를 떨어 힘 일부를 빌려온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금도 카와로의 금고와 하렘에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와 제물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굶주리는 별의 채무는 가혹하다. 반면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용해 줄지는 순전히 굶주리는 별의 변덕에 달려 있었다.
그걸 아는 카와로는 헐레벌떡 현무를 찾아 나섰다.
궁극기는 당장 끝날 수도 있고, 5분 정도 지속될 수도 있다. 순전히 굶주리는 별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그 정도면 그의 금고는 바닥을 보이고도 남는다. 강현무를 붙잡고도 빈털터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현무는 카와로가 무언가를 벌인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림자 거미줄을 타고 이동한 상태였다.
저주받은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와로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들을 찾아 헤매다 겨우 현무와 저주받은 자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곧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탐을 든 놈이 없었다.
인벤토리에 넣었거나 버린 것 같았다.
카와로는 빠른 판단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세세한 특징─상처와 흠, 피가 튄 방향, 복장의 상태─등을 순식간에 떠올리고 헤아렸다.
그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인 순간, 저주받은 자 네 명의 머리통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남은 셋 중 누가 현무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카와로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간단하다. 고문하면서 답을 얻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카와로의 손이 남은 세 명의 팔다리를 자르기 위해 움직였다.
그때였다.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카와로의 귓전에 들려왔다.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시간이 긁혀나가는 소리였다.
다른 무언가가 굶주리는 별이 멈춰 세운 시공간에 개입하고 있었다.
‘불가능해.’
아니,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별이 개입한 것이라면.
하지만 대체 이 자리에 다른 별에 속해있는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카와로의 그런 억울함과 의문과 상관없이, 황금으로 물들었던 시간이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주변의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할.”
카와로는 급히 달려들어 순식간에 현무들 중 하나를 낚아챘다.
아직 시간 정지의 여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놈이 카와로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또 하나를 잡으려던 순간, 놈의 눈이 번뜩였다.
검은 안개가 불길 같이 솟구쳤다.
이건 위험하다.
카와로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놈이 손을 강하게 후려쳤다. 손이 아니라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카와로는 자신의 왼손이 길게 찢겨져나간 것을 깨달았다.
‘또, 또! 빌어먹을, 또 성장했어!’
속도, 강함, 반사신경.
현무는 ‘황금의 시간’이 펼쳐지기 이전보다 더 강하게 성장했다.
물론 여전히 스펙 차이는 크다. 손등의 상처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 사이에 수포가 자라나고, 독으로 인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솟기 시작했다.
‘긴장을 한다고? 내가? 이런 놈한테?’
그때 또 다른 현무도 그에게 달려들었다. 탐을 들고 있지 않으니 누가 현무인지 알 수 없었다.
카와로는 그때 무언가를 깨달았다.
저주받은 자들은 진짜를 노리게 되어있다. 진짜의 자리를 탐내기 때문이다.
확률은 33%였지만 만약 손에 쥔 것이 진짜 현무라면…….
“오만하고 어리석은 놈들. 나는 너희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카와로는 비어있는 손으로 강하게 저수조의 기둥 하나를 후려쳤다.
기둥이 산산조각 나며 박살 나자 천장이 갈라지며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누가 진짜인지 말해! 그러면 그놈을 죽일 기회를 주겠다!”
현무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어쨌든 진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보장이 있으니까.
하지만 현무들은 히죽 웃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그것도 자신의 적이 베푸는 아량 따위를 받아먹고 진짜의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을 적대한 상대와 타협해서 구원을 적선 받는 것은 애초부터 ‘현무’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글쎄.”
현무 중 한쪽이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뒈지고 나서 우리끼리 결정할 일 같은데?”
카와로는 등에 식은땀이 솟았다.
이 자식들은 미친놈들이다.
카와로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자신의 손에 든 현무에게로 향했다.
이놈을 든 채로 둘과 싸울 수는 없다. 그리고 문득, 등 뒤에서 강력한 기척이 느껴졌다.
또 다른 사도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와로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오래 고민을 하는 대신, 33%의 확률을 믿고 강현무를 쥔 채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