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40)
지옥에서 독식-240화(240/346)
240화. 지옥의 별 (7)
현무가 말을 꺼낸 순간 한순간 별들의 빛이 크게 일렁인 것 같았다.
기묘한 침묵 속에서 현무는 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했다.
이 제안이 통할까?
반쯤은 모험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이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바노브가 마련한 이 자리는 그의 계획을 훨씬 앞당겨 줄 수도 있었다.
미친 소리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대답이 늦자 현무는 다시 한번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이 입을 열었다.
“뭐지? 자신감의 표출인가? 아니면 조롱?”
그렇게 묻는 그녀의 얼굴은 어쩐지 즐거워보였다.
다른 사도들은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이 대신 말하도록 맡기고 있는 것 같았다.
현무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머지는 대화에 익숙해보이진 않았으니까.
“자신감의 표출도, 조롱도 아니야. 나는 너희들에게 내가 별이 되겠다는 ‘제안’을 하는 거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별이 되는 것을 용인하고, 도와주면 되는 거지.”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는 그녀의 미소가 스산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살을 저밀 듯한 냉기가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니?”
“물론.”
“그럼 우리가 너의 미친 소리를 계속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겠구나.”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의 손길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허공이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그의 몸통을 상하로 분리하고도 남을만한 냉기가 엄습하기 전에 현무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내가 이 별을 차지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보다는 약속의 연장선이 되겠다는 거지.”
약속을 언급하자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멈춰 섰다.
“약속의 연장선은 또 무슨 소리야?”
“이 땅에 ‘약속’이라는 것이 걸려있다며? 이 땅의 안식을 지키라고. 그럼 종말이 멈출 거라고. 그렇지?”
“그래. 하지만 종말이 완전히 멈춘 건 아니야. 느리게나마 계속 세상을 갉아먹고 있지. 그리고 우리가 이 약속의 땅에 온갖 난리를 쳐도 별일 없는 걸 보니, 그 약속이라는 것도 영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군.”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약속은 존중할 만하지만, 권위가 없는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더군다나 우리는 세상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결판을 봐야 해. 네가 그 결판을 낼 열쇠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현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약속은 이행 될 거야.”
“뭐, 종말이 더 진행되지 않게 막겠다고?”
“아니.”
현무는 담담히 말했다.
“내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나는 종말의 별이 되겠다. 다 같이 죽는 거야.”
***
대리인들은 침묵했다. 긴장해서 하는 침묵은 아니었다.
한심해하는, 혹은 어이없어하는 침묵이었다.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기다려준 것이 후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개소리였군.”
“계 속 들 을 이 유 가 있 는 건 가?”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당장이라도 현무를 집어삼키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이바노브를 생각해 현무에게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주기로 했다.
“강현무, 여기서 종말의 짐승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 짐승이 너 하나뿐인 것 같나? 세상의 경계 너머에는 너 같은 것은 조그만 고양이처럼 취급할 것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도 아니야. 사도급만 나서도 널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현무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별이 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구나.”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이 혀를 낼름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나선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자였다.
“─────.”
정복하는 별의 대리인이었다. 그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무언가가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사도들과 현무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좀 더 들어보도록 하지.]정복하는 별의 대리인의 말에 놀란 것은 현무만이 아니었다. 다른 대리인들도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정복하는 별의 대리인은 불타는 미소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놈에게서 전쟁의 냄새가 나는구나.]현무는 미소 지었다.
대화가 되는 상대는 통곡하는 별이지만, 본능적으로 현무의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은 정복하는 별이었다.
현무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종말의 별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나약하고, 다른 별에 종속되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지. 여기서 깔끔하게 쫑내고 다 같이 죽는 거야.”
“말했지만, 그건 불가능…….”
“확신할 수 있겠어? ‘약속’이 있는데.”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입을 다물었다. 현무는 그녀의 반응으로 확신을 얻었다.
대리인들은 다른 사도들만큼이나 약속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
조그만 권속들부터 시작해서, 사도를 들여보내고, 마지막까지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닌 분신을 보내서 강림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운 것이다.
가장 큰 증거는 이것이다.
난이도: 지옥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고 있다는 것.
별들은 투쟁을 꺼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약속의 땅 때문이었다.
“내가 일개 종말의 짐승 중 하나가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너희 말대로 나는 나약하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약속’은 이 땅의 안식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이 땅의 안식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네. 이바노브의 말에 의하면, 나는 인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우울증과 치매를 앓는 노인의 헛소리일 뿐이야.”
“그래도 신경 쓰이지? 내가 종말의 별이 된다는 건, 약속이 깨진다는 뜻이고, 중단되었던 종말이 다시 재개될지도 모른다는 거다.”
마지막 희망마저도 종말을 선택했으니까. 그것은 인류 스스로 종언을 고하는 일이었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치마.”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가 무슨 수로 종말의 별이 되겠다는 건진 모르겠다만, 우리가 그걸 내버려둘 것 같으냐? 우리가 그 정도 능력도 없어 보이나?”
현무는 씩 미소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종말을…….”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이 복잡해지다가 일그러졌다.
그녀는 여러 가지로 인간적인 구석이 많이 남아있는 사도였다.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 말대로, 그들은 현무가 종말의 별이 되는 것을 막을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막기 위해 막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무에게는 더 좋은 해답이 있었다.
“영원히 이렇게 살 건가? 평생 서로 깔짝깔짝 건드리면서 결말을 미룰 건가? 어느 날 더 이상은 막을 수 없게 된 종말에 전율하며, 그래도 애썼다고 자위할건가?”
“하, 이 귀여운 녀석이.”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은 낄낄거리며 현무를 쏘아보았다. 현무 역시 마주 웃으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나는 너희들에게 결말을 선물하겠다는 거다! 나는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 그리고 유일한 계승자다! 나는 약속의 계승자가 되겠다. 인류를 위한 별이 되겠다는 거다.”
현무는 사도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도와준다면 말이지.”
인류를 위한 별.
현무가 이 개념을 생각한 것은 이 모든 게임의 ‘결말’을 생각하면서부터였다.
별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파편을 모두 그러모은 최후의 승자가 별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별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게임을 통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업을 지고 정복해 마침내 별을 움켜쥐게 된 자들이다.
즉,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전에 별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빛을 반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촛불처럼 태워서 마침내 우주에 스스로를 증명해낸 자들.
그리고 현무는 바로 그것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 금 그 말 이 무 슨 뜻 인 지 알 고 있 나.”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이 불현 듯 입을 열었다.
“네 가 인 류 의 유 일 한 계 승 자 가 되 고, 너 자 체 가 약 속 이 되 겠 다 는 것 은, 더 이 상 약 속 에 보 호 받 지 못 한 다 는 뜻 이 다.”
“알아듣기 힘든 말투로군. 그 턱 좀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귀찮다는 듯 간신히 매달려 있던 카와로의 턱을 움켜쥐더니, 잡아 뜯어내버렸다.
카와로는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내질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별 이 된 다 고 강 해 지 는 것 도 아 냐. 네 수 준 으 로 는 사 도 보 다 좀 낫 겠 군.”
카와로의 턱이 무의미하게도, 말투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도 맞장구를 쳤다.
“거기다 너는 약속의 보호도 없이 스스로 별이 된 셈이니, 우리의 권속으로 들일 수도 없지. 즉, 너는 우리의 맛좋은 먹잇감에 불과하게 되는 거다.”
정복하는 별의 대리인도 기이하게 불타는 소리를 내며 메시지를 전했다.
[약속의 땅은 우리의 완충지대였다. 우리는 약속을 보며 싸움을 망설이고, 가운데 끼어있는 땅을 불편해했지. 하지만 네가 인류의 계승자로서 약속에 대한 권한을 파기한다면, 다시 전쟁이 시작될 거다. 대전쟁이.]정복하는 별의 대리인은 그 단어를 읊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전쟁이다. 풋내기야. 너는 그 틈바귀 안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나?]현무가 종말을 일으킬 이유가 없고, 약속이 사라진다면, 당연히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
대리인들도 이 느린 종말에서 벗어나 나름의 결말이 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이 승리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무의 존재는 단지 촉발제에 불과했다.
“까보면 알겠지.”
[좋다.]정복하는 별의 대리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 풋내기를 별로 승격시키는 것에 찬성한다.]“다 른 녀 석 이 먹 어 치 우 는 것 보 다 는 낫 겠 지. 나 도 찬 성 하 겠 다.”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도 찬성표를 던졌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종말은 가까워지고 있으니…… 시간이 내 편이 아닌 전장에서는 여유부릴 수 없겠지. 나도 찬성하겠다.”
통곡하는 별의 대리인도 탐탁찮은 모습으로 찬성했다.
그들에게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약속은 파기되고, 종말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강현무가 별이 된다고 했지만, 얼마든지 물어뜯을 수 있는 나약한 상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지금의 시건방진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나았다.
뭣보다 다른 별들에게 넘어갈 걱정이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메리트였다.
“나는 반대한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현무는 누가 말한 건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현무의 정면이 아닌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하현이 현무의 어깨를 꽉 누르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강현무가 별로 승격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녀의 눈에서는 미미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현이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속삭이는 별, 몽스트릴의 음성이었다.
현무는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의 의문을 느꼈다. 대리인들이 별들의 의지를 대신한다지만, 몽스트릴도 대리인이 있었던가?
현무의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사도들 사이로 비웃음 어린 분위기가 흘러갔다.
“속 삭 이 는 별…….”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군.]“있다고 해도 3:1이다. 이미 결정됐어.”
하현은 입술을 깨물며 현무를 노려보았다. 아니, 몽스트릴이 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강현무, 너는 네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아야 해. 지금 네가 약속의 계승자로서 그 업을 진다면, 다음은 없다. 인류에겐 네가 마지막 기회가 되는 거야.”
몽스트릴은 조바심이라도 느끼듯 말했다.
“차라리 내 권속이 되도록 해. 그래도 약속은 유지되니까. 그럼 네가 실패하더라도 다음이…….”
현무는 몽스트릴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현무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써왔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상현에게 사도급의 힘까지 부여해 현무를 도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현무가 갑자기 별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호의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고,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속삭이는 별은 현무가 원하는 결론을 끌어내기 어려웠다.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현무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다음 기회 따윈 필요 없어. 내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어. 인류는 나와 함께 간다. 나랑 같이 살든가, 망하든가 둘 중 하나 뿐이야.”
현무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쪽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