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49)
지옥에서 독식-249화(249/346)
249화. 유토피아 (4)
현무의 긍정적인 답변에도 유성연은 약간 미묘한 뉘앙스를 느꼈다. 하지만 곧 그가 자신과 같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반색했다.
태어난 나라에 돌아선다는 것은 찝찝했지만, 강현무 같은 거물이 함께 움직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당성이 생긴다.
“아, 역시 관심 있으시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기, 기왕 이렇게 된 거 저와 같은 곳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신생 남중국 정부에서 엄청난 연봉을 보장해주기로 했거든요. 그곳 정부직영 클랜인데…….”
“아, 그래? 걔네 이름도 좀 알려줘 봐.”
“물론입니다. 아, 우선 브로커에게 먼저 연락을…….”
“아냐. 연락할게 뭐가 있어. 걔 이름이랑 연락처를 그냥 알려줘.”
“어…… 그게, 브로커는 익명으로 활동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니다. 연락처도 필요 없겠다. 네 핸드폰 내놔.”
유성연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저기, 강현무 헌터님? 이, 이민 생각 있으신 거 맞으시죠?”
현무는 대답 대신 히죽 웃으며 유성연의 어깨를 두들겼다.
“유성연 헌터님.”
“마,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강현무 님.”
“돈 있고 힘 있으면 어느 나라를 가도 살기 좋답니다. 조만간 이민 갈 필요 없는 나라 만들어 드릴 테니 여기 짱박혀 있으세요.”
“어, 하지만…….”
현무는 유성연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유성연은 빼앗겼다는 사실도 뒤늦게 눈치 챘다.
현무는 송여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단숨에 유성연의 다리를 짓밟아 부러뜨렸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깔끔하게 부러졌으니 금방 붙을 거다. 아니면 포션이라도 보내줄게.”
“왜, 왜, 어째서…….”
“너 혼자 부러진 데가 없으면 이상하잖아.”
유성연은 현무가 진심으로 자신을 배려한 건지 아니면 그냥 어딘가 부러뜨리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정도 부러진 상처는 하급 포션만 먹어도 금방 낫긴 한다. 하지만 유성연은 현무가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푹 쉬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고.”
현무는 국가에게 자신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 생각이었다.
***
대한민국 청와대 비서실장, 박규는 믿을 수 없는 정보를 연달아 전달받고 있었다.
현장에서 뛰어야 할 태성 측 헌터들이 하나둘씩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피습당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유성연 팀장이 당했다고?”
“팀장만이 아닙니다. 흑요석 팀 전체가 엉망입니다. 지금 신촌 세브란스 중환자실이 헌터들로 가득 찼습니다.”
긁힌 상처도 포션을 먹어서 치유하는 태성의 헌터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죽은 사람은 없다는 뜻이지만 이쪽이 더 심각했다.
상대방은 죽지 않을 정도로 손속을 봐주면서 태성의 헌터들을 엉망진창으로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태성 측 반응은?”
“아직 상황 파악 중입니다. 청금석 팀의 한현희 팀장도 막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현희 팀장은 이지태의 실종 이후 태성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헌터였다.
말수가 적고 낯을 가려서 해외 수행만 다니길 좋아했는데, 갑작스러운 이지태의 실종으로 전면에 서게 된 것이었다.
아직 실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빠른 대응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서연 부사장한테 연락하고, 상황 계속 보고해. 그리고…….”
“박규 비서실장님!”
비서실 직원 중 한명이 다급하게 비서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태성 측 헌터들이 공격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중환자로, 상태가 위중…….”
“지금 보고받고 있다. 왜 이리 쿵짝이 안 맞아?”
“예? 방금 연락받자마자 바로 달려 온 건데…… 그, 그럼 절두 던전의 경비는 어느 팀으로 대체합니까? 이제 수도권의 잔여 전력은 전능련 쪽 뿐인데.”
“그걸 왜 나한테 물…… 아니, 잠깐. 절두 던전이라고? 설마 경비를 맡고 있던 팀이 당했다는 거냐?”
“예? 예. 절두 던전 경계를 맡은 청금석 4팀의 헌터들이 공격당했습니다.”
그때 박규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두서없이 터져 나오는 보고에 무시하려 했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화면의 글자를 읽고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금석 2팀, 정체불명 괴인에게 피습. 현재 인근 병원으로 후송 중.]국회 경호를 맡고 있던 청금석 2팀까지 공격당했다는 메시지였다.
청금석 팀의 말단인 4팀이나 신진을 주로 키우는 흑요석 팀이 당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식이었다.
동시다발적인 피습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대한민국이 공격당하고 있었다.
***
“상황은 괜찮은 겁니까?”
중년 남자의 말에 박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정도 반발은 예상했습니다.”
“청금석 팀은 이지태와 함께 뛰던 실전조직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쉽게 당하다뇨.”
“방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듣자하니 모두 휴식 중에 당했다고 하더군요. 소식이 전파되고 경계태세를 강화했으니 더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비서실장.”
중년 남자는 고개를 돌려 박규를 돌아보았다.
“자꾸 상황을 축소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라고 눈이 없고 귀가 없는 게 아닙니다. 비서실장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잠시 침묵하던 박규는 고개를 들고 중년 남자를 응시했다.
청와대의 주인,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 김시후.
30여 년 전 던전이 막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국난을 극복한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영웅적으로 희생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덕분에 박규의 지원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고, 대통령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세력도 경력도 마땅치 않은 김시후는 사실상 박규의 허수아비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2팀 이후로 피습 소식은 더 이상 없습니다. 한현희 팀장도 직접 비상경계에 나섰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마 전능련 측 인사 중 하나겠지요.”
박규는 송여운을 생각했다. 전능련 소속 수뇌부급 헌터 중 잡히지 않은 사람은 송여운 뿐이었다. 하지만 김시후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강현무라던가?”
박규는 흠칫했다.
박규는 아직도 사우나에 있을 때 홀연히 찾아왔던 현무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힘과 세력, 알지도 못했던 사이 넘어간 국가의 힘들까지도 떠올렸다.
“이렇게 신출귀몰하며 태성 헌터를 때려잡을 능력은 사실 강현무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강현무가 종종 실종된다는 것은 박규도 알고 있었다. 길 때는 3개월까지도 사라진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2주 정도로, 그 기간이 아직 짧긴 했다. 하지만 박규는 이 짧은 시간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현무는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아니, 멀리해야 할 사람입니다. 지금 일 년 사이에 강현무가 쥔 예산과 권력이 어마어마해요. 일개 민간인이 군의 통솔권까지 쥐고 있습니다. 정신 못 차리면 나라가 홀라당 넘어갈 겁니다.”
그리고 박규는 김시후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목 뒤로 삼켰다.
박규는 이미 모 처의 중요 인물과 대화를 마쳐둔 상태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강현무는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대화를 마치고 박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강현무를 배척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현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떻게든 상황을 처리해야만 했다.
“강현무를 막을 방법은 있습니까?”
김시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그를 고립무원으로 만들어놔야 합니다.”
박규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일개 개인이 주먹으로 다 때려잡는다고 지배자가 될 수는 없어요. 소속을 빼앗고 계좌를 동결시키면 아무리 특출난 개인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단호하군요.”
이미 주먹은 날렸다. 현무는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상대가 아니었다.
때문에 청와대 경비는 준전시상황 수준으로 삼엄한 상태였다.
전능련 헌터들의 저항을 대비한 것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현무를 염두에 둔 조치였다.
“만약 강현무가 나타난 게 맞다면 비상 계엄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비상 계엄?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말마따나 특출난 일개 개인인데, 나라 전체를 들쑤셔 놓다니요. 야당에서 난리를 칠겁니다.”
“나라 전체가 상대해야 할 공적 수준으로 만들어놓지 않으면 모든 일이 다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일단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김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를 구한다. 그의 선친도 그런 마음으로 국난에 임했다.
전국 곳곳에 던전이 열리던 상황과, 일개 헌터 한명이 나라를 위협하는 상황은 어딘가 비교하기에 초라해보였지만 그래도 위기는 위기였다.
김시후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다른 나라에 강현무를 빼앗긴다던가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차라리 환영할 일입니다.”
김시후의 질문에 박규는 단호하게 말했다.
“강현무는 독입니다. 강현무를 품는다는 건 독을 삼키는 짓이죠. 아무리 달다 해도 독은 독입니다.”
***
“자, 셋 셀 때까지 아는 거 다 말해봐. 하나, 둘, 셋.”
현무는 지하실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브로커의 손가락을 뒤로 꺾었다.
브로커는 비명을 지르지 못 했다.
애초부터 현무가 그의 넥타이를 입 안 가득 쑤셔 넣어놨기 때문이었다.
현무는 같은 말을 세 번 더 반복한 뒤 입에서 넥타이를 꺼내주었다.
“으아아! 아! 대, 대체 왜! 왜 이러는 겁니까! 입이나 막지 말고 심문을…….”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닌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군.”
현무는 다시 브로커의 입안에 넥타이를 쑤셔 넣으려고 했다.
거꾸로 매달려있던 브로커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면서 서둘러 온갖 이름들을 내뱉었다.
송여운은 브로커의 핸드폰으로 그 이름들을 검색했다.
“이민 신청한 헌터들이네요. 어라, 전능련 쪽도 있네.”
“야, 너 손가락 열 개보다 많나 보다? 아직 여유 있는 모양이지?”
“다, 당신들 뭡니까. 이민 신청한 헌터들 빼앗으러 온 거 아닙니까? 어, 어딥니까? 일본? 러시아? 필리핀? 마, 말씀만 하십쇼. 제가 가진 명단 다 넘겨드리겠습니다!”
브로커는 필사적으로 상대방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고, 남자는 기이한 가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현무는 고개를 까딱하다가 대답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면 너 죽어야 해.”
“넵. 묻지 않겠습니다.”
“그럼 일단 네가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지 말해봐.”
“저, 저는 신생남중국 정부의 의뢰로 한국의 능력자들을 빼돌리러 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상황이 극도로 혼란에 빠져서 헌터들이 불만이 많더군요. 덕분에 온갖 곳에서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어.”
유성연만 심문해도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애초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 외국 놈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대응했는지다. 정부가 전능련을 공격한 건 일주일도 안 됐을 텐데, 바로 브로커들이 달려들어서 단체로 들쑤셨다고?”
국가라는 조직은 비대해서,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난리가 벌어지자마자 군사작전을 하듯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것은 모종의 음모가 스며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브로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남중국 정보국의 의뢰를 받았을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플루드가 터지고 난이도가 상승할 조짐이 보이니 헌터들의 행방에 촉각을 세우는 거죠. 그거야 당연…….”
현무는 브로커의 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접었다.
아홉 개를 접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을 때 현무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너 손가락 열 개밖에 없는 거 알지? 열 개 다 접고 나면 다음에 접힐 게 뭐일 것 같아?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브로커는 비명과 욕설을 내뱉으며 숨을 헐떡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였다. 송여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모르나본데요. 다른 브로커를 찾아서 조져볼까요?”
그러자 현무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송여운을 돌아보았다.
“송여운, 얘 핸드폰 몇 개냐?”
“4개요.”
“그 중에 가족 번호 적힌 핸드폰 찾아봐.”
“앗, 과연.”
브로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브로커는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현무는 처음부터 그랬듯이, 그에게 지배를 걸어 잠금을 풀었다.
마지막 남은 손가락 하나는 여기에 쓰라고 남겨둔 것이었다.
지배 스킬은 암시를 걸거나 육체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아는 것을 털어놓게 하거나 거짓말을 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 문제였다.
송여운이 핸드폰을 뒤지는 사이, 현무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할래, 아니면 여기서 손가락 몇 세트 더 추가할까?”
브로커는 숨을 헐떡였다.
이 자는 틀림없이 한다. 망설임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그는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던 정보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뭐?”
“대한민국 정부에서 의뢰했습니다. 다른 나라로 헌터들을 빼돌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