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50)
지옥에서 독식-250화(250/346)
250화. 유토피아 (5)
현무와 송여운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매달려있는 브로커를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었다.
머리에 피가 쏠린 브로커는 신음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게 뭔 말이야? 한국 정부에서 자기 나라 능력자들을 해외로 빼돌린다고? 그게 말이 되나? 능력자들이 무슨 무기야?”
능력자는 흔히 무기와 비교되고, 용병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무기나 용병과는 다르다.
이민은 용병처럼 잠깐 일하고 돌아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헌터는 무기처럼 공장에서 생산할 수도 없다.
숙련된 고위급 능력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받은 의뢰입니다.”
“자세히.”
“으, 저, 저도 자세한 사항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정부의 모 고위급 인사가 남중국에 제안을 했습니다. 조만간 능력자들을 그쪽에 이민 보낼 테니 두 당 수수료를 챙겨달라고.”
“두 당 수수료? 허, 진짜 노예 경매하듯이 하네.”
“저, 저는 표면상 남중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사실 의뢰주는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저를 눈감아주고, 남중국으로 넘기도록 중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갑자기 다른 나라 정부들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매국노네요.”
송여운이 담백하게 말했다.
적당한 비유였다.
브로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에 매국노가 있는 셈이었다.
던전에서 플루드라도 터지면 국방력만으로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 기를 쓰고 능력자들의 이민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되려 그걸 장려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다니.
말 그대로 나라의 살과 피를 파는 셈이었다.
“그런 게 가능하려면 보통 고위급이 아니어야 할 텐데…….”
“어지간히 높으신 분이 아니겠지. 아마 한두 명도 아닐 테고.”
현무의 말에 브로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맞습니다. 이 일에 연계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남중국과 한국은 물론이고, 수많은 해외 클랜과 국가들까지 여기에 매여 있습니다. 아마 방해받으면 발작할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겁니다! 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감히 감내할…… 으악!”
“내 걱정까지 대신해주시고, 역시 브로커야.”
현무는 브로커의 남은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브로커의 비명을 뒤로하고 송여운이 현무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가 만드는 탄을 믿고 있는 걸까요?”
지금 군은 전능련에서 만들어낸 마탄을 사용하고 있다. 그걸로 어느 정도 헌터의 공백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한계가 올게 뻔했다. 4성급부터는 탄이 잘 통하지 않는 몬스터도 수두룩했으니까.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닐 것 같고, 정말 나라를 팔아먹을 생각인 것 같다.”
나라를 파는 것도 능력이 돼야 한다. 멍청하고 그릇이 작으면 나라는커녕 시장 통에서 상품 무게나 속이는 게 고작이다.
“일단은 누굴 조져야하는지 명료해지는 것 같군.”
현무는 브로커를 매달아 놓은 줄에서 풀어주었다.
브로커는 흐느끼며 일어서려 했지만, 부러진 손가락 때문에 제대로 땅을 짚고 설 수가 없었다.
현무는 브로커 앞에 핸드폰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핸드폰은 우리가 가지고 있을 거야. 여기 아저씨 가족들 번호랑 중요한 정보는 다 들어있겠지? 내가 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려면 당신이 뭘 해야 할까?”
브로커는 즉각 현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머리가 땅을 박으면서 열심히 빌었다.
“한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쓸데없이 떠드는 일도 절대로 없을 겁니다!”
브로커는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다.
이 바닥에서 헌터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다시피 한 일이다.
각국 정부의 정보부에서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저지하려는 것은 물론이고, 이적하려던 헌터가 수틀리면 브로커를 살해해 입막음을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좋아.”
현무는 브로커의 턱을 쥐고 들어 올려 눈앞에서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순간 브로커는 자신도 모르게 부러진 손가락 중 하나를 입에 가져갔다.
브로커는 곧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고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움직임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으적, 하는 소리와 함께 브로커의 약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오열과 함께 으적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송여운마저 질색하는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네 정신에 속박을 심어 놨다. 만약 쓸데없이 떠드는 일 있으면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될 거야.”
***
브로커를 두고 지하실을 빠져나온 뒤, 송여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지부장님, 그런 것도 할 줄 아셨어요? 속박이라니, 처음 봤네.”
“아니, 그런 편한 게 있을 리가. 그냥 놈이 그렇게 믿게 해둔 거야. 우리가 누군지 짐작하더라도 누설할 일은 없겠지.”
송여운은 입을 벌리고 현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가 서둘러 다시 따라갔다.
“어, 세상에. 저도 속을 뻔했는데! 아니, 그런데 그렇게 입 다물게 할 거면 그냥 죽이지 왜 굳이 살려두시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정말 순한 맛 지부장님 되신 거예요?”
“너 평소에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현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종의 형평성 문제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 뭐일 것 같아? 그래, 죽을 때까지 고문 살해하는 거 빼고 얘기하자. 뭉뚱그리자면 끝에 죽이는 거잖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로운 과정이…….”
현무는 송여운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최고의 형벌이 사형이라면, 진짜 큰 죄 지은 놈이랑 저 말단 역할 한 놈이랑 똑같은 벌을 받는 셈이잖아. 사실 이민 브로커가 그렇게 나쁜 죄라는 생각도 안 들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다들 여기서 탈출하고 싶겠지.”
“음……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벌이라는 건 위로 향할수록 무거워져야 한단 말이지.”
결국 현무가 향하고 있는 표적이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 대상을 두고 브로커 따위를 죽여 버리는 것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인의 변덕이라고 해도 좋다. 어차피 현무는 원래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그렇게 위로 향하면…… 으음.”
송여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현무한테 충성한다 해도 자기가 사는 나라에 맞선다는 것은 어딘가 꺼림칙한 게 사실이었다.
“왜, 역적이라도 될까 봐 걱정되나?”
송여운은 뜨끔한 표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애국심이 최우선 가치고, 드라마에서는 ‘반역죄’가 세상에서 제일 큰 죄인 양 배워온 사람이라면 당연했다.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겠어요?”
현무는 씩 웃었다. 그는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다.
“매국노 대 역적이라, 역대급 승부가 되겠구만.”
송여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다음은 어디로 가요? 헌터, 브로커도 하나 만났고, 이제 바로 윗대가리를 날리러 가나요?”
“아니.”
현무는 고개를 돌려 이제 막 동트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민이를 좀 만나야겠다.”
***
유민이 피신해있던 ‘임시 피난처’는 다름 아닌 그녀의 예전 오피스텔이었다.
당연히 경찰이 들이닥쳐 뒤집어엎지 않았을까 했음에도 어질러진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현무는 오랜만에 온 오피스텔에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유민은 그다지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역적모의 하느라 바로 안 들어오고 다른 여자랑 있다가 오셨다 이거죠?”
“아, 저기.”
그때 송여운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여자 좋아하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지부장님이 솔직히 여자다운 면은 없으니까.”
“…….”
갑자기 폭탄선언을 들은 느낌이었다. 애초에 농담 삼아 말했던 유민은 속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송여운의 말대로라면 이번에는 현무 쪽에서 유민한테 ‘다른 여자랑 뭐하고 있었어?’라고 질문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송여운에게 실례인 것 같았다.
현무는 할 말을 찾으려 애쓰다가 간신히 대화 주제를 찾아냈다.
“너는 뭐하고 있었다고?”
“당연히 오빠가 없는 동안 세력을 규합해서 나라를 엎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죠.”
역시 유민이다.
“브로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겠네?”
“당연하죠. 붙잡힌 건 전능련 뿐이지 박휘소 씨 조직은 무사하니까요. 이미 어느 정부에서 누굴 통해 접선하는 중인지 다 확인해뒀어요. 갑자기 예르단이 없어져서 곤란하긴 한데…… 계획이 약간 미뤄진 것뿐이니까요.”
전부터 생각한 건데 유민은 미묘하게 이런 일에 능숙해보였다. 대학원생이라 머리가 똑똑해서 그런가 했는데, 도원경 박사 밑에서 일하던 다른 조교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브로커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나라를 엎어버리면 당장 있는 헌터들을 붙잡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민이 그렇게 순식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어떻게 엎을 건데?”
“그야 플루드를 터뜨려서죠.”
“……플루드를 뭐?”
“전에 키르손이 가르쳐줬어요. 귀환석에 이러이러한 문양을 새기면 플루드가 발생한다고. 그런데 던전 당 총 발생할 수 있는 몬스터의 양은 정해져있으니까, 너무 남발하면 던전의 지력이 소비된다는 이야기도요.”
학자적 호기심이겠지? 그렇다고 믿어야겠다.
유민은 태블릿 PC 위에 전국 지도를 띄웠다. 거기에는 이미 곳곳에 별 모양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 여기, 여기. 대한민국의 전략적 요충지에요. 여기에 플루드가 터지면 서울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어요. 전부 서울로 통하는 대동맥 같은 곳이니까. 여기가 막히면 당장 내일부터 전력, 수도, 물자 수송이 중단될 거예요”
“너무 서울 쪽에 몰려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지방 몇 군데 폭발해도 신경 안 써요. 서울이 좀 따끔해야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뒤집어지지. 어차피 우리 목적은 한국 궤멸이 아니라 혼을 빼놓는 거니까 이정도면 민간인 피해도 거의 없을 거에요.”
유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도의 한 부분을 확대시켰다.
“특히 여기 근처에는 특수교도소가 있는데, 능력자 전용 수감 시설이에요. 전원 독방인데다 일부러 던전 근처에 세워놨죠. 여기에 플루드를 터뜨리면 죄수들이 석방될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시설이거든요.”
유민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능련 소속 헌터들도 갇혀있죠. 이미 사람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뒀어요. 플루드가 터지면 그게 신호라고. 또, 상황 발생 시 주의 인물과 제거 대상들 목록을 뽑아놨어요.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할 정재계 인사부터 군인, 능력자, 교수들…….”
유민의 계획은 섬찟할 정도로 디테일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오피스텔에 갇힌 일주일 만에 만든 계획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니 밥 먹고 쿠데타 계획만 세운거야? 어떻게 이렇게 자세해?”
“예? 다들 중학교 2학년 때 쿠데타 한번쯤 꿈꿔보지 않나요?”
현무와 송여운은 동시에 침묵했다.
그러자 유민은 되려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아니 정말 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라를 전복시키고 내가 이 나라의 왕이 되어서 철권통치를 하겠다! 주색잡기와 향락을 일삼다가 심복의 배신에 빵빵빵, 비명에 가겠다! 그런 꿈 꿔본 적 없어요?”
“세상에, 쿠데타 계획도 모자라서 말년 계획까지 세워놨네.”
“아 참, 오빠도 나라를 엎을 생각이라고 하셨었죠? 뭔가 계획이 있나요?”
현무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에게도 나름의 계획은 있었다. 유민을 만나기 전에 했던 것도 계획의 일환이었고.
하지만 막상 만나서 유민의 계획을 들어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음…… 일단 정부의 수족을 끊어놓은 다음에 다급해질 때 쯤 박규를 찾아가서 천천히 절규하며 죽어가는 꼴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자세하게 따지고 들려던 유민은 침묵에 빠졌다.
유민은 그녀의 계획에 현무의 존재를 넣어 이런저런 계산을 시작했다.
복잡한 도표와 인물 관계도를 그리던 유민은 1분여 뒤,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힘이 세면 계획이고 뭐고 필요 없네요. 그냥 원하는 걸 가져가면 되니까.”
“아, 가능성 있어 보이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따라붙긴 하는데 그것도 어차피 오빠가 힘으로 어떻게든 할 것 같으니까…… 물론 제 계획이랑 접목시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부수적 피해도 줄일 수 있고.”
유민은 태블릿 PC를 꺼버렸다. 그리곤 현무를 응시하며 말했다.
“물론 이건 실행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예요. 계획을 세우는 건 중학교 2학년짜리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아, 이미 실행했어.”
“……이미 시작했다구요?”
“예. 어젯밤에 태성측 헌터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미 공격받고 있다는 건 알겁니다.”
유민은 핼쑥한 표정을 했다.
“그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당장 지부에 연락을 취하고 박휘소 씨한테도 얘기하고, 바로 움직이고 있어야하는데! 언제 군과 태성 쪽에서 공격해올지 몰라요! 명분이 서면 당장 전능련이 뭉치지 못하게 찢어놓을지도 모르는데!”
“아, 태성은 걱정할 필요 없어.”
현무의 대답에 유민은 당황했다.
“예?”
“청금석 2, 3, 4팀을 부숴놨고 흑요석 팀은 전부 끝났어. 적염석 팀이 있긴 한데, 그쪽은 부산을 위주로 활동하니까 끼어들지 못할 테고. 아, 브로커에 대한 심문도 끝났고.”
“아, 아니, 잠깐만. 그럼 둘이서 청금석 팀 전부를 박살 냈다구요?”
“1팀은 빼고. 걔들은 어딨는지 모르겠더라.”
“사실 지부장님 혼자서 다 하신 겁니다.”
현무의 대답에 송여운이 받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청금석 팀은 대한민국 최강 조직인데? 아니, 잠깐만. 오빠 2주 사이에 대체 얼마나 세진 거예요? 이건 제 계산을 완전히 벗어나는데. 지금 레벨 몇이에요?”
“음.”
현무는 어떻게 대답해야 잘난 척 같지 않게 보일까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 레벨이 71정도 되는데.”
별이 되었다는 것은 조금 나중에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