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52)
지옥에서 독식-252화(252/346)
252화. 유토피아 (7)
‘종말의 짐승’ 스킬을 얻었다는 유민의 말에 현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유민도 마찬가지였다.
유민은 현무가 ‘종말의 짐승’이라는 이름의 궁극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가끔 현무가 사용하는 검은 기운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들었다.
현무는 가장 먼저 걸린 부분을 물었다.
“잠깐, 그건 궁극기인데?! 유민, 너는 레벨이 낮잖아.”
유민의 레벨은 현재 12밖에 되지 않는다. 던전을 출입할 생각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했다.
이마저도 실험실에서 지옥 특산물 몬스터를 베고 찌르고 해체하느라 자연스럽게 오른 레벨이었다.
그렇다 해도 12는 12.
궁극기를 배울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음, 그게 다른 것 같네요. 제 스킬은 궁극기가 아니에요.”
현무는 렌 제독의 외알안경으로 유민의 스킬을 살펴보았다.
[종말의 짐승(신화)] [특수능력: 발동 시, 종말에 약속된 짐승의 일부를 불러낸다. 검은 안개가 지배하는 영역 안에서 모든 능력치가 증폭되며, 별과 그 권속에 대한 막대한 추가 공격력이 부여된다.]현무가 가진 궁극기와는 달리 많은 설명이 생략되었고, 일부가 달랐다.
뭣보다 가장 다른 점은 ‘짐승의 일부’를 소환한다는 점이었다.
이게 어떤 형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현무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저기, 여기서 한 가지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유민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게 스킬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건 알고 있죠?”
“응.”
“그 스킬 이름은 ‘백지’에요. 제가 개조한 스킬은 저절로 ‘백지’에 기록돼요. 그리고 다른 새로운 스킬을 백지에 덧씌우기 전까지는 그 스킬을 제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스킬을 ‘변환’ 할 때마다 자동으로 복사해 사용하는 것이다.
현무는 알고 있었다.
렌 제독의 외알안경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유민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도 알고 있었다.
능력자들은 자신의 스킬에 대단히 민감하다.
만약 유민이 스킬을 복사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함부로 스킬 개조를 맡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음. 아마도 제가 오빠의 ‘종말의 짐승’을 ‘백지’에 옮겨 적은 것 같아요. 그런데 궁극기에서 일반 스킬로 열화 된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제 능력이 부족해서?”
“아니면 여백이 부족해서라던가.”
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는 전설 등급의 스킬이었다.
유민은 전설등급 스킬이 어떻게 자신에게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현무가 잔뜩 싸들고 온 수정이끼 덕분에 각성했으니 그 영향 아닐까 싶긴 했다.
그렇다 해도 신화등급의 궁극기를 옮겨 적는 것은 당연히 무리일 것이다.
“아마 제가 새로운 스킬을 개조한다면 덧씌워 지워질 거예요. 제대로 쓸 수 있을 지도 모르겠고. 정 뭐하면 그냥 지금 지울 수도 있구요.”
“음, 아냐. 당분간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
현무는 유민이 종말의 짐승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민의 무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최근 한국의 상황을 보면 해외의 사도가 끼어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면 유민도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종말의 짐승’ 스킬은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번 사안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좋겠어.”
“음…… 그러죠, 뭐. 이거, 제가 오빠를 도와드리려다가 엉겁결에 다른 스킬을 얻는 걸로 끝났네요.”
유민은 현무의 심상 속에서 봤던 레니안의 모습을 설명할까 생각했다.
잠깐 만난 것뿐이지만 레니안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레니안도 그녀에게 악의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았고, 현무를 괜히 불안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음, 어쨌거나 잘됐어요. 이렇게 됐으니 한층 더 전략을 유동성 있게 실행할 수 있겠어요.”
유민은 침대 위에서 털고 일어섰다.
“일단 이 축축한 옷부터 갈아입고 지인들한테 연락 돌릴게요. 오빠는 제가 뽑아준 명단의 사람들 좀 방문해주세요.”
“방문?”
“원래 역적질은 혼자 못해요.”
유민은 씩 웃으며 말했다.
“기왕 나라를 바꾸려면 뒤탈 없이 확실하게 해야죠.”
***
“지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야당 대표 정철민은 거칠게 소리쳤다.
여의도에 위치한 고급 한식집.
찾아오는 손님마다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는 만큼, 룸마다 방음 설비가 마련된 곳이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도 조금씩 새어나오는 소리를 묻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정철민의 목소리는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사람의 표정을 굳게 할 만큼 충분히 컸다.
“흥분 가라앉히시죠. 정철민 대표.”
여당 대표 신수영은 잘 달래듯 속삭였다. 하지만 정철민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가 합의한 것은 능력자들에 대한 행동권 제한뿐이었잖습니까! 그런데 지금 시장에 돌아다니는 브로커들은 뭡니까? 지금 제가 아는 헌터만 해도 네 곳이 넘는 곳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상당수 정치인들은 헌터들에게 무관심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도 있었다.
특히 능력자들에게 강압적인 여당에 비해 야당은 능력자들에게 호의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호의와는 반대로, 그들이 국가에 좀 더 묶여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감했다.
때문에 이번에 전능련을 상대로 대통령이 무리한 짓을 벌였을 때 침묵했다.
그런데 이후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었다.
신수영은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저는 모르는…….”
“모른다고 잡아떼지 마십시오! 저도 지인이 없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능력자들이 국적을 옮기는 것은 예민한 문제였다. 이적 행위에 준할 정도로 까다롭게 심사하는 사항이기도 했다. 당연히 헌터도, 브로커들도 조용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브로커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국정원 눈에 안 띌 리가 없어요. 이건 정부가 일부러 침묵하는 겁니다! 당신들 때문에 나도 졸지에 매국노가 되게 생겼다고!”
신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철민이 이렇게 흥분한 걸 보니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처음 계획에 대해 들었을 때 신수영도 비슷한 반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신수영 혼자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심지어 잘못 반대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판이었다.
반면 침묵하는 대가로 받을 막대한 이익은 선택을 쉽게 만들었다.
어려운 선택지는 아니었다.
“제가 그것만 들은 것 같습니까? 당신들이 전능련을 집어삼키려고 벌이는 그 계획…….”
그때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철민은 입을 다물었다.
이내 문이 열리고 요리와 술이 상위에 놓였다. 신수영은 재빨리 정철민의 잔을 채워주었다.
정철민은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숨에 훌쩍 술을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전능련을 집어삼키려고 벌이는 그 계획은 이 나라의 시계를 30년은 뒤로 돌릴 겁니다. 제정신입니까? 나라가 좀 흔들린다고 미쳐버리기라도 한 거요?”
신수영도 쓰게 웃었다. 그 역시 동감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다.
“정철민 대표. 대표는 너무 보수적입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흐름은 저희 둘이 어쩐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하, 그래서 댁은 진보적으로 국가를 전체주의시대로 돌려 버리시겠다? 너무 진보적이다 못해서 360도 돌아버린 거요?”
“조만간 한두 명 죽어나가는 것은 그렇게 대수롭지도 않은 시대가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이 일이 어디 기억에나 남을 것 같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더 나은 안보와 평화를 위해…….”
“안보와 평화를 위해 능력자를 팔아 먹, 허억…… 쿨럭.”
갑작스레, 정철민이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순간 사레가 들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손을 흥건하게 적시는 핏줄기를 보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맞은 편 자리에 앉아있는 신수영을 노려보았다.
“너, 이 새끼…….”
신수영의 안색도 창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이봐요! 밖에 아무도 없…….”
신수영이 외치는 소리에 문이 벌컥 열렸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아무도 예상 못했던 사람이었다.
“아, 때마침 둘 다 모여 있군.”
고급 한식집에 어울리지 않는 러프한 차림새를 한 남자였다.
신수영은 그를 보고 주춤 물러섰다. 헌터에 무관심한 여당 대표라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전능련의 실질적인 소유주이자, 대한민국 안의 또 다른 대한민국의 왕, 강현무였다.
강현무는 피를 토해내며 쓰러진 정철민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벽에 바짝 붙어선 신수영도 무시했다.
대신 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는 걸어가 상석에 걸터앉았다.
현무는 손가락으로 육회를 휘휘 젓다가 한 점을 집어 올렸다.
“역시 비싼 음식은 비싼 값을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의원님들? 이제 저도 좀 알 것 같아서요.”
“가, 강현무 씨? 여긴 무슨 일로…… 아니, 당신 분명 실종됐다고.”
현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싱긋 웃으면서 신수영을 향해 손가락을 빙글 휘저었다.
신수영은 그 손가락의 궤적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인 순간, 자신이 자신의 턱과 뒤통수를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우두둑 소리와 함께 신수영의 목뼈가 부러져 나갔다.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설치된 벨을 누르지 않는 이상 누군가 찾아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방음시설이 훌륭한 식당이었다.
무엇보다, 소란이 벌어진다고 해서 함부로 들어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정철민은 죽어가면서 현무를 응시했다.
속은 타는 듯이 뜨거운데, 손과 발끝은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구급차를 부르지도, 돕겠다고 말하지도 않는 현무를 보며 정철민은 입술을 달싹였다.
“정철민 의원, 당신은 곧 죽습니다. 매우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었거든요.”
안다.
정철민은 처음에는 신수영이 미쳐서 술에 독을 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신수영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당 대표를 단 둘뿐인 술자리에서, 그것도 목격자가 있는 식당에서 독살한다고?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의식은 흐릿해져가고,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얼마 없었다.
“여기서 당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두 개 있는데요.”
현무는 신수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는 죽어서 매국노가 되는 거고.”
그리고 시선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살아서 명예를 되찾는 겁니다.”
어려운 선택지는 아니었다.
***
정철민과 신수영은 처음 왔을 때 그러했듯이, 다시 조용히 함께 나갔다.
정철민의 옷에 있는 핏자국이라던가 신수영의 목에 남은 파란 멍자국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있었던 술자리에 혼자 남은 강현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현무는 핸드폰으로 유민이 준 명단들을 다시 확인했다.
‘거의 다 끝나가나?’
대략 스무 명 정도가 명단에 올라있었다.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재계 인사부터 사회적 명망이 있는 교수들까지.
현무가 능력자들을 노린 것과 달리 유민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인 지배자들을 겨냥했다.
나쁜 놈들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었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았다. 하지만 명단에는 꼭 악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사회적 평가가 좋은 사람들이 절반가량이었다.
당연했다. 앞으로 현무가 할 일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 많았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한다 해도 과정이 부정적으로 비치기 시작하면 정의롭고 선한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현무는 그 점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유감일 뿐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들은 이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침묵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목소리를 낸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듯한 변화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은 미래에 패배한다.
하지만 현무는 달랐다. 그는 승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어떤 변명도 현무를 정당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현무는 정당성을 포기했다.
변명할 여지도 없이, 현무는 악역이었다.
인류의 미래를 안다는 이유로 모든 합리적인 설명과 절차를 포기한, 그리고 그걸 이용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악역이었다.
현무는 자신이 인류에게 채우는 첫 번째 개 목줄의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유민의 살생부에 적힌 인물들은 오늘 밤 안에 처리될 것이다.
하지만 현무는 유민이 정해둔 스케쥴 일부를 약간 조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원래는 약간 후순위에 밀려있던 일이었지만, 여당 대표 정철민이 알려준 정보 때문에 약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현무는 스케줄이 적힌 표에 한 줄을 더 추가했다.
[전능련 수뇌부 처리 계획]정부는 붙잡힌 전능련 수뇌부들을 단시일 안에 전원 제거할 생각이었다.
이변을 느꼈다면 그들은 더 빨리 행동할 것이다. 현무는 그전에 그들을 구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