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55)
지옥에서 독식-255화(255/346)
255화. 유토피아 (10)
“으하하, 자유다!”
청평병원에 6년째 수감 중이던 강력범 이강용은 미친 듯이 환호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청평병원 플루드 발생 시 절차대로, 수감된 능력자들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수감자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감옥 밖으로 나왔다.
물론 여기서 잘못 뛰어나가면 병원을 둘러싼 벽마다 설치된 총에 벌집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머뭇거리던 사이,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좀비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강용은 운이 좋았다.
수감자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사이 그는 간수용 비상계단으로 숨어들었다. 다른 죄수들도 계단으로 오려고 했지만 재빨리 문을 틀어막고 잠가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고 뛰쳐나갔다.
등 뒤에서는 아직도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이강용은 등 뒤에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소리쳤다.
“망할 돼지 같은 새끼들! 다 거기서 죽어버리라지!”
정신병자나 정치범도 있지만, 청평 병원에 수감된 대부분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능력자들이다.
간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시끄럽게 한다고 사람이 타죽을 때까지 고압전류를 흘려보내기도 하는 놈도 있었다.
이강용 눈에는 청평병원의 지옥 같은 모습이 당연한 응징처럼 보였다.
물론 이강용도 죄를 짓고 오긴 했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을 뿐이다. 다른 범죄자들과는 달랐다.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처럼 빠져나온 죄수들이 몇몇 보였다.
다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눈치들이었다. 다른 죄수들과 어울리는 것은 싫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뭉쳐야 살 확률이 높았다.
“이봐!”
죄수들이 이강용을 돌아보았다.
“일단 어디든 민가가 있는 곳으로 가자구. 거기서 택시를 부르든 연락을 하든 해서 여기서 빠져나가자.”
이강용의 말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살피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길을 따라 갈수는 없었다. 이제 난리가 난 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테니까.
“민가가 어느 방향인지 아나?”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겠지.”
이강용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숲 한쪽에서 빛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후레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긴장감 없는 모습을 보니 간수나 군인은 아닌 것 같았다.
‘낚시꾼인가?’
이강용은 잘됐다고 생각했다. 낚시꾼이라면 가진 돈도 있을 테고, 운이 좋다면 가까운 곳에 차가 있을 수도 있다.
이강용은 죄수들에게 신호를 주고 은밀하게 빛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척에 접근해 이강용이 막 후레쉬를 든 사람을 덮치려던 순간, 갑자기 후레쉬의 빛이 그의 얼굴로 향했다.
강렬한 빛이 눈을 찌르자 이강용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이강용.”
갑자기 상대가 입을 열었다.
이강용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간수였나?
그는 한 템포 늦게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발을 떼기도 전에, 퍽 소리와 함께 배에서 북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강용은 갈빗대가 너댓개는 부러진 것을 느끼며 바닥에 엎드렸다.
일방적인 타격에 죄수들도 모두 단숨에 얼어붙었다.
“아, 이놈 압니다. ‘클럽 블러드 드릴’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어요.”
남자 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별 특이한 별명이 붙어있네. 어디보자, 살인? 와, 17명이나 죽였네.”
여자 쪽에서 서류 한 다발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이강용은 후레쉬 불빛아래 비춰진 서류가 자신들의 신상명세와 죄목이 적힌 서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강용은 신음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건…… 정당방위…….”
“클럽에 갔다가 여자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17명을 살해한 게 정당방위라고? 세상에, 게다가 일면식도 없는 여자를 여자친구라고 거짓말 치다가 걸리기까지 했네. 아니, 이건 별로 상관도 없는데 뭐 하러 그런 변명을 하지? 여자친구가 없는 게 부끄러웠나?”
“어쩔까요? 송여운 팀장.”
“고민하는 것도 사치스러운걸요. 서지후 팀장.”
이강용은 서둘러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송여운이 그의 머리를 움켜쥐는 것이 빨랐다.
이강용은 서지후가 자신과 같은 수감복을 입고 있는 것을 깨닫고 소리쳤다.
“너도 수감자잖아! 그런데 왜…….”
그 순간 손 안에서 생겨난 강력한 압력이 이강용의 머리를 짓눌렀다.
송여운의 손이 총열이 되고, 이강용의 두개골과 이빨들이 산탄총이 되어 비산했다.
막 달아나려던 죄수들의 등에 파편들이 꽂혔다.
죄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서지후는 쓰러진 죄수의 옆으로 다가가 배를 걷어 차 돌려 눕혔다.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길태.”
“최면, 현혹 기술로 미성년자 약취 및 사기, 자살하도록 유도, 시신 암매장, 자살하도록 최면을 건 것이 죄가 되지 않아 처벌을 모면하다가…….”
“이쪽도 고민이 사치스럽군요. 송여운 팀장.”
“오늘은 삶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네요. 서지후 팀장.”
***
“으랏하!”
오대성이 정권을 지른 순간 좀비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박살이 나며 흩어졌다.
아이템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3성 던전의 잡몹 정도는 오대성에게 위협도 되지 않았다.
오대성은 자신의 손등에 묻은 이빨들을 툭툭 털어내며 문을 두드렸다.
“이제 괜찮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잠시 뒤,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총도 잃어버린 건지 대걸레 막대와 의자를 들고 있는 기간직 직원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오, 오대성 씨?”
이들은 청소나 조리 등의 업무만 맡을 뿐, 청평 병원의 실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어렴풋이 듣거나 느끼는 것은 있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침묵할 뿐이었다.
그랬던 그들이지만, 자신이 외면했던 수감자인 오대성이 자신들을 구해주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가, 감사합니다. 오대성 씨. 오대성 씨가 아니었더라면…….”
비록 민간인이지만 한때 전능련 대표였던 헌터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직원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다,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까지 구한 사람은 하나뿐이오.”
오대성은 자신의 뒤에 있는 병원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플루드인데다, 병원 벽에 구멍까지 났었다고는 해도 이상할 정도로 큰 피해였다.
특히 간수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많았다.
원래대로라면 능력자 죄수들이 시간을 끌었어야 했는데 그들의 활약도 없었던 데다, 보스 몬스터인 가스트가 방어벽을 죄다 뚫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히히, 헤헤헤…….”
“벼, 병원장은 왜 저러십니까?”
병원장은 여전히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오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군.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 숨어있을 만한 곳이 있소?”
“아, 비상사태를 대비한 간수용 쉘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벽이 뚫렸다면 거기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저희가 갔을 때에는 이미 문이 닫혀있었습니다만…….”
“아, 그럼 간수들이 다 거기 있을 확률이 높겠군. 그럼 가봅시다.”
오대성은 직원들을 이끌고 그들이 말한 쉘터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근처에 갔을 때 오대성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서지후 동생, 송여운 동생!”
서지후와 송여운을 본 순간 직원들은 흠칫했다. 둘은 피를 뒤집어 쓴 것처럼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송여운은 오대성을 본 순간 뜨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지후는 표정에 미동도 없이 앞서 나섰다.
오대성은 반갑게 서지후의 손을 쥐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나를 따라 올 거라고 믿었지.”
“당연한 일입니다. 팀장님.”
하지만 직원들은 막 합류한 둘을 보며 수군거렸다.
“세상에, ‘폭살 마녀’랑 ‘루나틱 프릭쇼’잖아?”
“폭살 마녀는 수배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송여운과 서지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오대성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건 우리 동생들 별명인가? 마녀라는 호칭이 붙은 걸 봐서 ‘폭살 마녀’는 송여운 동생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서지후 동생은 왜 ‘루나틱 프릭쇼’인거지? 잠깐, 그러고 보니 나도 별명이 붙어있나?”
“어…….”
직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붙은 별명이라 함부로 말하기 껄끄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있긴 한데…….”
“뭐지?”
“그리즐리 테디베어라고…….”
“…….”
오대성은 말을 잃었지만 송여운은 썩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적어도 폭살 마녀보다는 귀엽고 센스도 좋네요. 저는 제 별명 지은 사람 누군지 꼭 얼굴 보고 싶던데.”
“……뭐, 됐소. 별명이야 아무래도 좋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요? 다른 사람들은?”
“아, 저희는 몬스터 퇴치에 주력했기 때문에 따로 사람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몸이 느려지면 퇴치가 느려질 것 같아서요.”
오대성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런 역할도 있어야겠지. 아마 곁에는 없지만 동생들이 구한 사람들이 많을 거요. 아참, 동생들이 온 복도 쪽에 쉘터가 있다고 하던데, 거기는 살펴봤소?”
“물론입니다. 다만 몬스터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던 건지 생존자는 안 보이더군요.”
“이런…… 유감이군.”
오대성은 착잡한 표정으로 복도 끝 쉘터로 다가갔다.
문의 잠금쇠 부분이 공성추로 친 것처럼 안쪽으로 부러져 있었다.
쉘터 안쪽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안으로 들어간 좀비 몇 마리가 죽어있었다.
오대성이 좀비가 철제 문을 부술 수 있었나?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서지후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아참, 슬슬 군부대에서 도착할 것 같습니다. 길 끝에서 불빛이 보이더군요.”
“흠,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30분만인가? 빠른 건지 느린 건지 모르겠군.”
“보통 좀비들은 벽을 넘을 수 없는데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니 느린 것은 아니겠지요. 우선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구한 것 같으니까, 이제 빠져 나가죠.”
송여운은 쉘터에서 뭘 꺼내 온 건지 서류 한 다발을 짊어진 상태였다. 한시라도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오대성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직원들과, 플루드로 초토화된 청평병원을 바라보았다.
가스트를 잡으면서 플루드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던전 내부를 완전히 정리하지 않으면 몬스터들이 산발적으로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대응 능력을 잃어버린 청평 병원으로 앞으로도 쉽게 대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나는 여기 남겠네. 동생들.”
“아, 그러십니까? 그럼 뒤를 부탁하겠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오대성 팀장님!”
오대성이 말하자마자 송여운과 서지후는 단 한마디 설득도 없이 자리를 떴다.
자신의 각오와 의무에 대해 이야기 하려던 오대성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버리는 둘을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군대가 오고 있으니 아웅다웅 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오대성 씨…….”
반면 직원들은 감동받은 눈치로 그를 보고 있었다.
탈출할 기회가 있는데도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은 것이다. 그것도 군대가 들이닥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대성은 쓰게 웃으며 군대를 맞이하기로 했다.
하지만 군대가 도착했을 때, 오대성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탈옥?”
박규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탈옥이라니, 아니. 도원경 박사가 구치소를 탈출했다고?”
“도원경 박사만이 아닙니다. 그 외 다른 교도소에 있던 다른 전능련 소속 능력자들도 오늘 저녁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잠깐, 다른 능력자들도? 그럼 청평 병원은? 오대성과 서지후는 어떻게 됐지?”
“청평 병원에서는 플루드가 발생해 군부대가 출동했습니다. 군부대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초토화 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일부 유출된 몬스터들은 정밀 수색해 제거하였으나, 살아남은 인원들은 직원 몇 명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럼 오대성과 서지후는?”
“시신들의 상태가 참혹해 신원파악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모른다는 것은 도망쳤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박규는 비서들의 보고에 머리가 아찔해진 듯 이마를 짚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듯 중얼거렸다.
“강현무로군.”
이렇게 신출귀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는 강현무밖에 없다.
강현무가 어째서 바로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고 지인들부터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거의 확실해졌으니 대비할 시간은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보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직원 중 한명이 창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비서실장님.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또 뭔가.”
“그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서울 동부 전력이 일부 끊어졌다가 복구되었습니다. 하지만 수급량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입니다. 또 팔당호 수력발전소가 마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강 상류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물을 오염시켜 구리와 남양주 일대에 수도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또…….”
박규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서류를 넘겼다.
빠르게 수십 장의 서류를 훑어본 박규는 입을 다물었다. 보고서 안에 강현무의 의도가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강현무는 수도권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었다. 아니, 정부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국가기반시설을 지키는 능력자들과 군대가 있겠지만, 지금은 북벌로 인해 공백이 큰 상태였다.
북한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수많은 군대가 위에 올라가 있었고, 능력자들은 정부와 갈등 중이었다.
마땅한 적대 국가가 없어서 해이해진 탓이었다.
박규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자리에서 벌컥 일어섰다.
“감히 국가와 싸우겠다 이거지, 강현무.”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네가 얼마나 오만한 선택을 했는지 똑똑히 알려주마.”
그리고 그 날 자정, 대한민국은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헌터들에 대한 강제 징집이 시작되고, 전능련은 완전히 국가 소유에 들어갔다.
북한에 파견된 군부대가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일제히 남한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계엄사령관으로 발탁된 민소하 대장이 북한에서 군을 이끌고 서울에 진입했다.
박규는 대통령이 연설할 계엄 연설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그곳에 민족의 반역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강현무라는 이름 석 자를 똑똑히 적어 내렸다.
그러나 그 연설문이 발표되는 일은 없었다.
연설문 발표가 예정된 바로 그 날 저녁.
강현무가 청와대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