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57)
지옥에서 독식-257화(257/346)
257화. 유토피아 (12)
“그래서, 박규는 어디에 있죠?”
“그건 모르겠군. 그 쥐새끼 같은 놈은 아마 대통령이랑 같이 움직였을 확률이 높은데, 어느 벙커를 고를지 선택하는 건 내가 아니라 경호실장이거든.”
현무는 박규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현무에게 포섭되지 않은 사람들은 상당수 있었다. 특히 군부대 관련자는 민소하 외에는 거의 없었다.
만약 박규가 다른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만약 내전 위험이 있다면 민소하가 자신의 편을 계속 들까?
현무가 힐긋 민소하를 바라보자 그의 생각을 꿰고 있다는 듯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혹시라도 박규를 못 잡아서 우리나라 군대끼리 총질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면 난 바로 상황 접고 빠질 거다. 나중에 내가 모반죄로 법정에 서도 상관없어. 우리 장병들끼리 총부리 겨누는 상황이 되는 건 이미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니까.”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현무는 청와대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소하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막 문이 열리고 나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민소하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 아니?”
원래대로라면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민소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현무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박규의 행방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
박규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강현무를 잡도록 민소하를 지휘하려면 청와대가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숨어있어야만 했으니까.
박규를 찾아낸 것은 청와대 인근의 한 안전가옥이었다.
박규는 그곳에 경호원 몇 명과 숨어 있다가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끌려나왔다.
“놔! 놔라, 이 자식! 내가 누군 줄 알고!”
청와대.
차에서 끌려나와 몸부림치던 박규의 외투가 벗겨졌다.
박규는 팔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자신을 붙잡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곧 입을 쩍 벌리면서 몸을 웅크린 것은 박규 쪽이었다.
오대성은 얻어맞은 광대뼈 쪽이 간지럽다는 듯 긁적거렸다.
“얌전히 따라오시죠. 좀.”
“네놈이 함부로 손댈 몸이 아니다! 감히…….”
오대성은 한숨을 쉬며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단숨에 박규의 발등을 내리 찍었다.
와직하는 소리와 함께 박규는 구두 안의 발가락들이 부러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의 입이 벌어진 순간, 오대성이 입 안으로 손가락들을 쑥 집어넣었다.
“가급적이면 예의 차리고 싶습니다만.”
오대성은 곰 같은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것도 상대가 예의를 차릴 때의 이야기죠.”
오대성은 가급적이면 선하게 행동하려 하고, 옳은 일을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들을 향할 때의 이야기다.
능력자가 아니었으면 운동권에라도 들어갔을 거라는 평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박규 같은 부류에겐 언제든 가차 없이 굴 수 있었다.
박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따르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오대성은 무시하고 그의 입 안쪽과 볼을 움켜쥔 채 끌고 갔다.
박규는 침을 질질 흘리며 개처럼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앞에는 민소하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끌려온 박규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했다.
박규는 애절한 시선으로 민소하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외면하며 시선을 돌렸다.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겠다는 눈치였다.
박규가 개처럼 끌려와 도착한 곳은 대통령 집무실이었다.
그는 집무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늘어난 것 같은 뺨을 만지며 박규는 겁에 질린 시선을 들어올렸다.
집무실 책상 위에 그가 예상했던 남자가 앉아있었다.
“대화는 마주보고 앉아서 해야죠. 비서실장.”
현무는 오대성에게 손짓을 해서 나가라고 지시했다. 곧 집무실에는 현무를 비롯해 이번 사태의 이해관계자들만이 남았다.
“강현무…….”
박규는 뭐라고 입을 열려다가 책상 옆쪽을 보고 흠칫했다. 거기에 그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박규는 강현무가 자신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찾아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것이 현무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는지 깨달았다.
“대, 대통령 각하? 대체 왜 여기에?”
김시후 대통령이 책상 옆에 서있었다. 그는 마치 책상 위에 시건방진 자세로 앉아있는 현무의 비서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박규는 공포심도 잊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이 근본 없는 새끼, 감히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취급하는 거냐!”
박규는 벌떡 일어나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아보았다.
집무실 한쪽에는 분명 대통령을 인솔해 안전가옥으로 옮겼어야 했던 경호실장이 그를 외면하며 서 있었다.
경호실장을 본 박규는 속이 또 한 번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이 멍청한 자식, 설마 대통령을 팔아넘긴 거냐?”
“그만하시죠. 박규 비서실장.”
대통령 김시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긴 제 발로 온 겁니다. 경호실장은 제가 설득했습니다.”
“예? 아니, 하지만…….”
박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김시후와 강현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대통령이 자신을 버린 것이다.
아니, 팔아넘긴 것이다.
김시후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악행은 여기서 끝입니다. 저를 전면에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고 뒤로는 이득을 챙겼지요. 이미 당신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명령이 떨어졌고, 측근들도 체포중입니다. 당신의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체포라고? 대통령 각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김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 국가를 위해 성심껏 봉사해준 강현무 씨의 사유 재산을 침해했지요. 아무 죄도 없는 강현무 씨에게 반역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뒤집어 씌워 나라의 영웅을 살해하려 했습니다. 거기다 국가의 중요 자산인 능력자들을 해외로 빼돌리고 이를 덮기 위해 포섭되지 않은 무수한 능력자들을 살해했지요. 이번에 비상계엄을 내린 것 또한 내란 음모죄에 포함되겠지요.”
박규는 입을 쩍 벌렸다.
그가 항의하려는 듯 입을 연 순간, 경호실장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소리쳤다.
“각하, 조심하십시오!”
그는 민첩하게 총을 빼들더니 순식간에 박규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총성이 울려 퍼졌다. 박규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잠시 흠칫거리던 박규는 겁에 질린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귓전에 대고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의 머리는 멀쩡했다. 대신 집무실 천장에 총알이 박혀있었다.
김시후는 당황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경호실장은 갑자기 위로 치솟은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현무가 입을 열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이려는 거지?”
“……강현무 헌터?”
김시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현무는 그를 무시하고 박규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엎드려있던 박규는 강현무가 다가오자 움찔했다.
“맞아. 대통령이 널 팔았다.”
박규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방금 전 자신은 확실하게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를 구해준 것은 강현무였다.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스치고 지나가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게 작작해먹지 그랬냐. 대통령 입장에서 고생한 건 자신이고, 당선된 것도 자신인데 앞에서 나대는 놈이 얼마나 눈꼴 시리겠어. 그러니까 이 김에 너한테 다 덮어씌우려던 거지.”
“강현무 씨, 지금 무슨 말을!”
강현무의 말에 김시후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현무는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하지만 적어도 너보다는 똑똑하군. 누가 대세인지 알아보는 눈치가 있거든. 네가 믿는 뒷 배경이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 이 결과를 보아하니 썩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개소리.”
박규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열어 달싹였다.
“네놈이…… 박도령을 죽이고, 이지태를 공격했잖냐!”
“오호라.”
박규의 외침에 현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군. 네 배후에 있는 놈이 누군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대체 누구지? 그때 평양에서 살아있던 놈이 있었나? 그걸 또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현무는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바라보았다.
둘 다 놀란 얼굴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처음 들은 눈치였다.
경호실장은 눈이 마주치자 뭐라 말하려했다. 그 순간 그는 자기 미간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경호실장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현무의 눈이 둥글어지면서 김시후 쪽으로 향했다.
김시후는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쳐 현무에게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박규가 와락 대통령 앞으로 달려들었다.
“작작해, 이 개자식아!”
현무는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듯 앞을 가로막은 박규를 보며 즐거운 표정을 했다.
“박규. 아까도 느꼈던 거지만, 네가 그렇게 충성심 강한 타입인 줄은 몰랐는데.”
“충성심이 아니라 당연한 거다, 이 빌어먹을 자식.”
“비, 비서실장…….”
“이 새끼는 멍청한 새끼지만 그래도 국민이 선출한 정당한 권력이다! 끌어내려도 네가 아니라 법에 근거해서 국민이 끌어내려야 해! 그냥 힘 좀 센 미친놈이 멋대로 할 게 아니라!”
박규는 필사적으로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이제 믿을 배경이 대통령 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은 현무도 느낄 수 있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라.”
현무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선출된 권력이 능력자들을 빼돌려 한몫 챙겨서 남중국으로 망명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박규는 현무의 말에 움찔했다.
“너는 네가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대통령은 너를 방패삼아서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었거든. 게다가 널 팔아넘기기까지 했지.”
“거짓말! 거짓말이다!”
김시후가 발작처럼 소리쳤다. 현무는 유민의 보고서 한 장을 꺼내 명단을 쭉 훑어 내리며 말했다.
“여당, 야당, 사법부, 행정부, 입법 할 거 없이 한번 찾아가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국정원 발 보고서지만 여당 중진들도 포함된걸 보니 꽤나 중립적으로 조사를 잘 했단 말이지. 심지어 대통령 이름까지 적혀있을 줄이야.”
거기서 현무는 놀랍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놀라운 건 박규, 네 이름이 여기 없었다는 거야. 난 대통령 이름이 있는 것보다 네 이름이 없다는 것에 더 놀랐어.”
김시후는 필사적으로 박규의 어깨를 붙잡은 채 소리쳤다.
“비서실장, 저 작자가 거짓말을 하는 걸세. 나는 그런 짓 한 적 없…….”
“닥쳐! 빌어먹을, 알고 있었어. 설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박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김시후를 노려보았다.
김시후는 그 시선에 얼어붙었다.
박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현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알고 있었어! 그 국정원 보고서가 누구 지시로 작성됐을 것 같냐? 하지만 이 멍청한 자식보다 네놈이 더 큰 위험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대통령은, 빌어먹을. 아무리 멍청해도 내가 통제할 수 있어. 하지만 네놈은 아니야.”
박규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네놈은 악마와 계약해서라도 쫓아내야 할 놈이다. 네놈이 평양에서 저지른 일들, 그리고 한국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짓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지. 힘이 절박했으니까!”
“흐음. 악마와 계약해서라도 그래야 했다라.”
현무는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악마를 찾아봤어야지.”
그 순간 현무의 몸이 움직였다. 박규가 움찔 했지만, 현무는 그대로 푹 손을 찔러 넣었다.
박규는 움찔하며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기다렸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등 뒤에서 뜨거운 액체가 자신의 옷을 적셔오는 것을 느꼈다.
김시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움찔거리는 심장이 보였다.
“대통령 각하!”
박규는 김시후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박규는 현무를 보며 발작하듯 외쳤다.
“국민들이 투표로 뽑은 민주정부의 수장이다! 어떻게!”
“맞아. 듣고 보니 그렇네.”
현무는 대통령의 외투로 자신의 손을 닦으며 말했다.
“합법적으로 뽑은 민주정부의 수장이, 합법적으로 절대 권력이 보장되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상황에서 힘만 센 미친놈의 권속이 되어버렸네. 한국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이 막장극은 대체 어떻게 끝날까?”
그리고 현무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박규는 현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있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물었다.
“설마 계속 나를 살려두면서 이용해먹을 생각이냐?”
“아니.”
현무는 짧게 대답했다.
“한 사람에게 기회를 두 번이나 주는 건 너무 많지.”
그때 박규는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김시후의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느꼈다.
현무는 핸드폰 동영상 촬영 모드를 켜고 권속이 된 김시후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사를 외칠 것인지도.
현무는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가라, 대통령! 몸통 박치기!”
“대통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