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68)
지옥에서 독식-268화(268/346)
268화. 천루 (5)
마리아의 말에 아담은 천천히 무릎을 바닥에 댔다. 그리곤 휠체어에 앉아있는 마리아의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댔다.
마리아는 조용히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아담, 다른 모든 별들은 다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 하지만 너만은 달라.”
마리아의 시선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야경에서 하늘로 향했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별들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별들 사이에서 서늘한 열기를 느꼈다.
“권속을 들이지 않는 유일한 별, 오거스트로가 너를 선택했다는 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희망이다. 너는 짐승이 되어선 안 된다. 인류를 지킬 파수견이 되어야만 해.”
“물론입니다. 마리아 켈러 교수님.”
아담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미 몇 백 번, 몇 천 번을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러했듯, 아담은 늘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저는 당신의 목줄에 매인 개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 뜻대로 될 겁니다.”
다른 별과 아담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담은 인간인 마리아에게 순응하는 별이라는 점이다.
괴물들의 별, 오거스트로가 아담의 무엇을 보고 그녀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권속을 들이지도 들일 필요도 없는 강력한 별이 인간에게 구속된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자신에게 순종하는 아담을 보면서 마리아는 안도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아담에게 인간의 감정과 소중함을 가르치려고 수십 년간 노력해왔다.
피 흘리는 노력으로 아담은 마리아의 의도를 잘 따라와 주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흉내’를 낼 뿐이었다.
아담이 자신에게 목줄이 메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사라진다면?
그때에도 아담은 인류에게 충성을 보일까?
마리아는 그 질문을 차마 던지지 못했다. 아담 역시 그녀의 의중을 알면서도 입에 발린 말은 담지 않았다.
마리아 켈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그 날이 바로 인류가 멸망하는 날일지도 모른다.
“밤이 늦었습니다, 교수님. 잠자리에 들도록 하지요.”
“음.”
마리아는 짧게 대답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어째선지 오랫동안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어쩐지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기 힘들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나하나 별을 헤아리려던 마리아는 문득, 아까 보이던 별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날 뻔 했다.
물론 그녀의 하반신은 오래전에 망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주춤 휠체어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담이 재빨리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
“별이.”
마리아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별이 사라지고 있다.”
***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도심 시가지 펍.
시가지는 남중국 연합에서 온 능력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남중국 정부의 왕신량 총리는 밤 비행기로라도 떠났지만, 능력자들 상당수는 여기에 남도록 명령받았다.
이곳에 온 남중국 능력자들은 국가 전체를 따져도 1진에 속하는 최고급 헌터들이었다.
어차피 만민전선에 합류한 이상 러시아와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도록 헌터들을 물리지 않았던 것이다.
“메이륜하이, 레벨 55.”
“으악, 5성급이요? 세상에…….”
“린후이민, 레벨 62.”
“예? 6성급? 헐, 역시 중국 애들 쪽수가 많아서 그런가 골 때리는 애들이…….”
현무와 송여운은 펍 구석에 앉아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현무가 이름과 레벨을 부르면 송여운이 이서연이 넘겨에게 넘겨받은 남중국 정부 요인들에 대한 정보로 확인하는 식이었다.
어차피 남중국 정부의 헌터들은 전부 손볼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리스트로 정리되자 적어도 저들 중 누가 ‘진짜로’ 높은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다.
‘레벨이 높다고 직위가 높은 건 아니군. 하긴, 당연하지.’
별들은 욕망을 부추기고, 자신과 가장 닮은 자를 사랑한다.
별들은 권속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들의 욕망과 가장 닮은 욕망을 가진 자를 사랑한다.
남중국 연합의 헌터들 중에는 레벨 50대 헌터들이 8명, 60대 헌터들도 3명이 있었다.
그중 사도는 메이륜하이와 린후이민, 둘이었다.
‘그래봤자 카와로, 이트왈로와 비슷한 수준이군.’
레벨보다는 가진 능력이 더 중요하겠지만, 그마저도 레벨이 10 이상 차이나면 의미가 적어진다.
6성급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회의장에서도 몇 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5성급의 존재도 공공연해진 상황이니, 최상위권에 6성급 헌터가 있다고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저들 중에는 굶주리는 별의 권속이 되어 힘이 강화된 헌터들도 있을 테니 6성급의 비율이 높은 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데 지부장님은 이런 정보들은 어떻게 다 아세요?”
“나는 모르는 게 없단다.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도 알 수 있지.”
현무는 대충 대답하며 나머지 인원들을 살펴보았다.
사도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별 하나당 사도는 많아봐야 다섯이라고 했으니, 카와로와 이트왈로가 죽자마자 충원된 게 아니라면 남은 대부분이 여기에 모였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사도와 권속을 구분하는 법은 단순하다.
사도는 이름이 고유명사로 표기되지만, 권속은 종족명으로 표시된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저들 중 누군가는 대리인일수도 있겠지만, 레벨만 봤을 때는 상대가 될 적수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왁자하게 웃으며 잔을 나누던 남중국 측 헌터 중 한 명이 현무와 눈이 마주쳤다.
“어? 저 새끼, 회의장에 있던 그 새끼 아니야?”
남중국 헌터들의 시선이 현무에게로 쏠렸다. 현무는 당황하는 대신 그들을 향해 씩 미소지어주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남중국 헌터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그 모자라게 생긴 대통령이 헛소리 할 때 뒤에서 지키고 있던 헌터?”
“뭐라고 했지? 러시아랑 중국이 사이좋게 망하길 바란다고?”
현무는 북중국의 마무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어차피 북중국은 데리고 있던 4성급 헌터들이 샤오지에 때문에 떼몰살을 당하면서 졸지에 능력자 약소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나마 데리고 있던 4성급 헌터도 대부분 남중국 연합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이젠 병합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남중국 연합의 헌터들이 어슬렁거리며 현무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송여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두터운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먼저 때리면 때렸지 명분을 위해 선공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그만.”
그때였다. 누군가 남중국 연합의 헌터들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에 앉아있던 린후이민과 메이륜하이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귀인이시다. 돌아가라.”
남중국 연합의 헌터들은 김빠진 듯 투덜거리면서도 꾸벅 고개 숙이며 돌아갔다.
린후이민은 동의도 받지 않고 의자를 끌고 와 현무의 테이블 옆자리에 앉았다.
“젊은이들 혈기가 지나치…….”
“나한테 빚을 졌군. 린후이민.”
대뜸 현무가 한 말에 린후이민과 메이륜하이는 뭔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오늘 현무를 처음 봤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관으로부터 강현무를 주의하라는 말을 이미 들은 상태였다. 그런데 대뜸 빚이라니?
“무슨 말이오?”
“나는 방금 나한테 시비를 걸려던 놈들의 양쪽 다리를 다 뭉개놓으려고 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나서는 바람에 그만뒀으니, 네가 나한테 빚을 진거지. 고맙게 여겨도 좋아. 별 거 아니었으니까.”
태도는 점잖았지만 린후이민의 귀에는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메이륜하이는 이 미친 소리를 계속 들어야하느냐는 얼굴로 린후이민을 바라보았다.
“자신감이 과하시군.”
“그래서, 빚이 없던 걸로 하자?”
하지만 린후이민은 미소를 띠었다.
“그럴 리가. 비록 귀인께서 내가 바가지를 씌우려 하셨지만,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소.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내가 빚도 갚을 겸, 술 한 잔을 따라드리겠소.”
린후이민은 현무의 괜한 시비를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어른스러운 대응이었다.
린후이민은 웃으며 술 한 병을 주문했다. 펍에서 파는 술 중에서 가장 비싸면서도 가장 독한 술이었다.
“러시아 백돼지들은 술을 만드는 법은 알더군. 하지만 술 맛은 모르는 것 같소.”
“술 맛?”
“자고로 술이란 그저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좋은 경치, 좋은 안주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졌을 때 그 맛이 살아나는 법 아니겠소. 오늘 이렇게 귀인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린후이민은 술병을 따 현무의 앞에 놓인 맥주잔에 따라주기 시작했다.
독하기 그지없는 술이었지만 린후이민은 현무의 맥주잔이 가득 찰 때까지 술을 부었다. 술이 잔 위로 살짝 솟아 아슬아슬하게 찰랑일 정도였다.
그대로 마시려면 고개를 숙여 입술을 대거나, 빨대라도 가져와야 할 판이었다.
“자, 쭉 들이키시오. 내 귀인을 오늘 처음 보았으나 남 같지가 않으니, 이 기회에 형제의 연을 맺는 것은 어떨까 싶소. 비록 동생과의 첫 인연은 흥미로웠으나, 이렇게 연을 쌓아가다 보면…….”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쿠쿵 하는 굉음이 어디선가 울려 퍼졌다. 그 진동에 펍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린후이민과 메이륜하이는 흠칫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륜하이, 무슨 일인지 확인해라.”
“존명.”
메이륜하이는 가볍게 포권하며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린후이민이 현무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테이블 위에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따라놓았던 술이 진동 때문에 넘쳐, 현무의 손을 적신 것을 발견했다.
현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것은 확실한 시비로군.”
“응?”
“날 동생이라고 부르고, 내 몸에 술까지 끼얹었다 이거지. 빚을 술 한 잔으로 땡치려고 한 것도 봐줬는데, 이런 모욕적인 시비까지 당하다니 믿을 수 없군. 송여운, 그렇지?”
“충격적이네요. 대국이라면 소국을 동생으로 불러도 된다 이건가?”
“아니, 그냥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까…….”
린후이민의 변명에도, 현무는 맥주잔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린후이민은 재빨리 맥주잔을 잡아챘지만, 그 안에 채워진 술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졸지에 린후이민은 도수가 높은 술을 흠뻑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린후이민은 지금 제정신이냐고, 방금 전 도시를 뒤흔든 진동이나 사람들의 비명은 신경도 쓰이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송여운이 성냥을 꺼내기 전까지는.
“언제나 클래식한 게 무난하죠.”
불이 붙은 성냥이 던져지던 순간, 린후이민은 자리를 박차고 뒤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전에 현무가 뒷다리를 거는 것이 빨랐다.
린후이민의 몸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크아아아아앗!”
린후이민은 바닥을 뒹굴며 불을 껐다. 비명과 진동 때문에 밖에 나가려던 헌터들은 갑자기 불덩이가 된 린후이민의 모습에 서둘러 돌아왔다.
소화기의 분무가 몸에 끼얹어지고, 겨우 불이 꺼졌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온몸 곳곳이 그을린, 꼴사나운 모습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 이 빌어먹을 자식, 기껏 정중하게 대하려 했더니!”
린후이민은 서둘러 강현무와 송여운을 찾았지만 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때 창백한 표정으로 메이륜하이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륜하이, 당장 강현무를……!”
“지금 강현무 따위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메이륜하이는 린후이민의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사안의 경중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했다.
“천루가…… 천루가 지금 이 도시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리아 켈러는 핸드폰을 붙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크롬의 요원들을 통해 천루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회의를 끝마쳤을 때만해도 분명히 천루가 카자흐스탄 동부의 인적 없는 고원지대를 느리게 지나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상트 페테르부르크 상공에 나타나다니?
[여긴…… 직…… 분명…… 뭔가 착…….]하지만 핸드폰 너머에서는 불분명한 목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나마도 통화는 오래 지나지 않아 완전히 두절되었다.
마리아 켈러는 어느새 도시 상공을 거의 뒤덮인 천루의 모습을 보며 입을 꽉 다물었다.
천루의 모습을 감시하고 있던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EU, 천루에 관심을 가진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끊임없이 추적하고 감시 중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경고하거나 대비하는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별이 사라지고, 달도 가려졌다. 하늘은 짙은 검은색이었다.
도시의 가로등 불빛에 은은하게 축 늘어뜨려 내려진 촉수 다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촉수들이 도시에 꽂힐 때마다 진동이 느껴졌다. 촉수들은 앵커처럼 고정되어 천루를 지상에 붙들어 맸다.
“교수님, 유선은 연결이 됐었습니다만, 상황 파악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지도부급은 탈출 중입니다. 교수님도 탈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담 폴트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마리아 켈러는 천루가 어떻게 도시를 점거하고 인명을 학살했는지 깨닫고 오한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기동력과 위장능력, 무선 통신 수단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거대한 체구, 그리고 그렇게 고립되고 나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려 완전 점거한다.
완벽한 점령전이었다.
마리아 켈러는 굳은 표정으로 아담을 향해 말했다.
“아담, 체페슈 케이스를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