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294)
지옥에서 독식-294화(294/346)
294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 (3)
“튀어나와!”
“그 개자식을 끌어내!”
저택 주변을 둘러싼 군중들이 성난 목소리를 토해내며 다그쳤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들고 온 랜턴과 찾아온 방송사 차량의 조명 불빛 때문에 전혀 어둡지 않았다.
심지어는 횃불을 든 사람까지 있었다.
경찰들은 몰려드는 군중들을 제어하려 애썼지만 흥분해 몰려드는 군중들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독수리, 독수리, 여긴 여명이다. 지금 저지선이 뚫리기 직전이다. 빨리…….”
갑자기 군중 속에서 와 하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경찰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저택 담벼락 안쪽이 확 밝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누군가 담벼락 안쪽으로 넘어 들어가 저택에 불을 지른 것을 알았다.
망연자실한 경찰들을 밀어내며 군중들이 이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더 이상 저지할 방법이 없어진 경찰들은 그저 뒤로 물러났다.
지휘관만이 막으라고 소리쳤지만, 사실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군중들을 막고 싶은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싹 다 태워버려! 나오지 않으면 타죽게!”
군중들은 불타는 저택을 에워싼 채 치솟는 불길로 부족하다는 여기저기 불을 옮겨 붙였다.
석조 주택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설마 도망친 건가, 하고 염려하던 군중들은 이내 집 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에 안도했다.
불타는 저택 안에서 한 대머리 남자가 뛰쳐나왔다.
“이 폭도 새끼들, 내가 누군 줄 알고! 당장 다 죽여버리겠…….”
대머리 남자가 말을 끝까지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그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갈겼다.
남자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눈을 까뒤집었다. 하지만 이미 흥분에 사로잡힌 군중들은 죄의식도 느끼지 못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질과 몽둥이세례가 이어졌다.
대머리 남자의 숨이 끊어진 뒤에도 폭행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군중들은 다른 사람들도 보란 듯이 대머리 남자를 질질 끌고나갔다.
누군가 그의 반들반들한 머리에 욕설과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군중들은 환호하고 고함을 내지르며 대머리 남자의 시신을 대로변에 내팽개쳤다.
경찰들은 외면했고, 기자들은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정의가 실현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을 죽였다!”
***
그리고 청와대.
벙커에서 현 대한민국 계엄사령관 민소하는 어려운 상대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미 현무의 꼭두각시가 된 대통령은 그저 얼굴을 비치고 방긋 웃기만하면 되는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해있었다. 때문에 실질 대한민국을 끌어가는 사람은 계엄사령관 민소하였다.
함께 TV를 보던 남자─주한민군 사령관 배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민을 총칼로 공격했던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군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민소하의 말에 배너는 의아해하는 얼굴을 했다.
“의외군요.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군 출신 선배라 그렇습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육사에 발도 안 디뎌봤습니다. 확실히 저건 독재자의 모범적인 최후긴 하지만, 상황 때문에 억지로 저렇게 된 것이다 보니…… 이렇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진작에 민중의 손으로 저런 최후를 맞이했어야 했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민중의 총의와 열의에 의해서 일어났어야 했다.
그 과정이 법적으로 처리된다면 더 좋았겠지만, 애초에 저 독재자가 풀려난 것도 법에 의해서였다.
차선이긴 해도 저 독재자에겐 적절한 최후일 것이다.
그러나 민소하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배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자를 죽였다고 ‘리바이어던’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도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알게 될 겁니다. 초기에는 정의감으로 움직였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공포가 그들을 잠식하겠죠.”
배너는 민소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추겠지요. 저 독재자처럼 사회적으로 유명한 악인들이 먼저 공격당하겠지만, 결국 대혼란이 벌어질 겁니다. 교도소를 습격하거나, 혹은 정치나 종교적 이유로 학살을 벌이게 될 지도 모르지요.”
“그럴지도 모르죠.”
배너의 은근한 회유에도 민소하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무고한 이를 공격할 이유가 되어선 안 됩니다.”
“무고하다라.”
배너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강현무는 ‘무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능구렁이 같은 태도에 민소하는 혀를 찼다.
이놈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북한이 멸망하고 중국과 거대한 단절이 마련된 시점에서 미군이 한국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온갖 이유를 핑계로 전세계에 군사기지를 유지했던 미국답게, 정보와 협박을 사용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죄가 좀 있다 해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 걸로 압니다. 그 친구를 내가 좀 알거든요.”
민소하는 배너 사령관을 달래듯이 말했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압니다. 옆에 여자친구가 은근히 고삐를 잘 잡고 있어서.”
“과연.”
배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강현무는 이번 ‘망치 계획’의 꽤 상위 리스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미 소식을 들어 아시겠지만 이미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있어요.”
그 사실은 민소하도 들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민소하는 배너 사령관이 적어도 양해라도 구하러 왔다는 것에 놀랄 지경이었다.
“최상위 100인을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 100인, 그리고 또 그 다음 100인을 제거할겁니다. 설령 한국이 승인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죠.”
“그럼 하십쇼.”
민소하는 태연하게 말했다.
“왜 굳이 저한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겁니까? 그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절단 내든, 현지군과 전투를 벌이든 말든 상관없이 타겟을 제거해야 한다면 사후 승인을 받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외교관계가 절단나면 아쉬운 것은 무조건 한국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미국을 도와 현무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배너는 한국에서 강현무의 지배력이 상당히 뿌리 깊은 것 같다고 느꼈다.
혹은 강현무를 도저히 배제할 수 없는 강력한 우군으로 보고 있거나.
“그럼 저희 공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나 해주시죠.”
“아, 무슨 소릴. 우리 영토 안에서 무기를 사용하시면 당연히 한국군이 개입할겁니다. 꿈도 꾸지 마십쇼.”
진심인가. 미군을 향해 포문을 돌릴 수도 있다고?
배너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민소하를 바라보았다.
이게 배짱인지, 아니면 현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배너가 아는 민소하는 무섭다고 상대에게 굴복할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다 강현무보다 미군이 덜 두렵게 느껴진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배너는 슬쩍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군요.”
“드디어 포기 한 겁니까?”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사후승인이 낫다고.”
민소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미 미군은 15분 전부터 유령 저택에 폭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머리 독재자의 집에 불이 났을 때쯤이니, 지금이면 결판이 낫겠군요.”
주한미군 사령관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해서 설득하려던 것은, 사실 그녀가 이 사태에 대해 보고받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민소하가 성난 외침을 토해내기 전에 배너는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현무의 시신을 본 뒤에도 과연 허락할 수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지 궁금하군요.”
***
날카로운 고음이 상공에 울려 퍼졌다.
어둠에 휩싸여있던 산자락이 순식간에 번쩍 밝아졌다.
미사일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고고하게 지켜왔던 유령 저택을 직격하면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유령저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을 비행하는 전투기들은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쾅, 콰쾅.
유령저택만이 아니라 산자락을 두들기는 폭탄들이 거대한 불바다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저기서 불에 달궈진 크레모어들이 터져나갔다.
서울 남부의 시민들은 공포에 떨며 산 정상에서 시작된 전쟁을 그저 지켜보았다.
“빌어먹을, 엄청 가까이서 두들기네.”
“저거 한 발 한 발이 네 목숨을 살릴 수도 있는 거야. 강현무인가 뭔가 하는 그 자식이 산 속에 별 해괴한 함정들을 다 깔아놨다더라고.”
산자락 밑.
유령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을 차단하며 대기하던 미군 분대는 긴장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타겟이 있는 유령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단 두 명.
타겟인 강현무와 유민이라는 여성뿐이었다.
단 두 명에게 이만큼이나 폭탄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 싶긴 했지만, 어쨌든 강대한 능력자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들 옆으로 묵색의 장비들을 걸친 군인들이 걸어갔다.
그 군인들은 총과 수류탄, 군사용 장비들은 물론, 헌터들이 들고 다니는 각양각색의 아이템까지 장비하고 있었다.
어깨에 붙어있는 검은 망치모양 패치가 눈에 띄었다.
“저게 그 빅터 장군 직속에서 움직인다던…….”
미군은 저들이 말로만 듣던 그 특수부대임을 깨달았다.
헌터로서, 군인으로서 장비와 기술, 경험 모두가 풍부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 부대였다.
일명 워해머(Warhammer).
극소수만이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미군조차도 그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워해머 요원들의 묵색 헬멧 안에서는 기이한 주홍빛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폭격이 쏟아지고 있는, 불길이 치솟는 산 속으로 태연하게 발을 딛고 들어갔다.
그들은 열기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내 연기와 치솟는 불길들이 그들의 모습을 가렸다.
“젠장, 진짜 보통 일이 아닌가보네. 아무리 우리나라라지만 이렇게 막나가도 되는 줄 몰랐는데.”
“까라면 까야지. 아까 그거 못 봤어? 망할, 우리 고향 중 일부가 그런 지옥 같은 꼴이 될 줄 몰랐다고. 마음 약하게 먹다간 바로 너희 동네도 그렇게 되는 거야.”
양심의 가책과 혼란을 느끼는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눈앞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는 지옥도를 보았다.
그 상황에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고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이상,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콰콰콰쾅!
갑자기 산 위에서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워해머 요원들이 올라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미군 둘은 움찔하며 산 위를 올려다보았다.
“폭격은 멈춘 것 같은데…… 아까 그 워해머 아저씨들이겠군. 요란하게도 하는데.”
“뼈도 남기지 않을 생각인가보지?”
쾅, 콰쾅. 하지만 금방 멎을 거라고 생각했던 폭음은 쉽게 멎지 않았다.
미군들은 상황이 점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명령은 요원들이 처리하는 동안 포위망을 구성한 채 대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
한국군용 트럭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도로를 타고 접근해왔다.
유령저택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급히 차를 멈춰 세웠다.
차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들려온 것은 발랄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미군 아저씨들, 한국어 할 줄 알아요?”
여군? 미군들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 통역병 한 명이 나섰다.
“제가 할 줄 압니다. 여긴 미군 작전 지역입니다. 한국군은 관계가 없으니 물러나십시오.”
“예? 그럴 리가요. 여긴 저희 작전지역인데요?”
여군은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작전 명령서 같은 것인가 했던 미군은 종이를 받아들고 멍한 얼굴을 했다.
종이에는 단 한 줄의 명령만이 적혀있었다.
[오면서 걸리는 건 다 조져도 됨.]“이건 대체…….”
“딱 맞춰 왔다. 송여운.”
갑자기 미군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군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 순간 송여운이라 불린 여군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아아, 여러분! 함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차량에서 한국군이 줄지어 내리며 총을 겨눴다.
작전에 참가한 미군은 은밀함을 위해 백여 명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아직도 도로에서 줄지어 오고 있는 트럭의 숫자만 헤아려도 미군의 숫자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미군이라도 이 숫자를 어쩔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총격전이 시작될 것 같던 순간, 현무가 태연하게 무언가를 휙 던졌다.
미군 장교는 엉겁결에 그걸 받아들었다. 워해머 패치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남자의 머리통이었다.
미군 장교는 멍하니 요원의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미 최정예부대의 최상위 헌터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고?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현무는 그쪽에 신경도 쓰지 않고 송여운을 향해 말했다.
“몇 명인지 물어보고 도망치던 놈 확인하려고 패치 모으다가 늦었다.”
“유민 씨는요?”
“연구실 정리중이야. 흔들리는 바람에 의자 몇 개가 넘어져서.”
현무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미군 장교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우리 집은 편집증 환자가 진지하게 핵공격에 대비해 만든 귀신 나오는 저택이야. 미사일이 아니라 벙커버스터 정도는 가져왔어야지.”
***
“하하하하하!.”
민소하가 크게 터뜨린 웃음에 배너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가 우습지요. 민소하 사령관?”
“하, 큭, 크큭. 후우. 아, 당신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웃겨서 그렇습니다.”
“착각이라면?”
민소하는 웃겨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가린 채 말했다.
“당신은 제가 한국군을 움직일까봐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거죠? 제가 계엄사령관이고 국군통수권자라서? 하지만 틀렸어. 국군통수권자는 대통령이고, 강현무는 그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부려먹는 놈이야.”
배너는 표정이 굳어졌다. 민소하는 마지막에 와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네놈 부하들 대가리에 구멍 송송 뚫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거기서 꺼지는 게 좋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