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
지옥에서 독식-3화(3/346)
3화. 지옥에서의 첫날 밤 (2)
【난이도: 지옥
종말의 별에 진입합니다.】
현무는 눈을 떴다.
“……꿈?”
현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 여전히 붉게 타오르는 지옥이 보였다.
분명 방금 죽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럼에도 현무는 여전히 지옥에 있었다.
아니, 방금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던 것이, 잠에서 깬 듯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몸을 후벼 팠던 그 통증은 아직도 생생히 떠올랐다.
폐부에 면도날이 들어간 듯한 통증과 식도를 타고 꾸역꾸역 흘러나오던 핏물, 타는 듯한 냄새까지.
난이도: 지옥? 미세먼지?
죽었던 게 아니었다면,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꿈? 제발 누군가 자기 뺨을 때려서라도 깨워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낯익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퀘스트 발생!] [‘지옥에서의 첫날 밤’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동이 틀 때까지 살아남으십시오.]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현무는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면 이 안개 같은 먼지에서 벗어날 수 있기라도 한 듯.
하지만 그의 시도는 무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무는 식도에서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의 눈에 붉게 핏발이 터지고, 울컥 피를 토해 냈다. 현무는 피 묻은 손으로 귀환석을 꽉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아버지는 대체 나한테 뭘 준 거야!’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0시간 05분 22초.]***
3회 차.
[레벨 업!]낯선 메시지가 들려왔다.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해석해보려고 현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마치 게임 같다는 것을 떠올렸다.
현실에도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물론 현무처럼 몇 번이나 죽었다 되살아나지는 않지만, 게임처럼 레벨을 올리고 능력치를 올리며 강해지는 사람들. 그들을 능력자라고 부른다.
‘이거 꼭…… 능력자가 된 것 같잖아?’
그런데 현무 혼자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에 떨어져서, 몇 번이고 리스타트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능력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몸부림치다 죽어 가는 꼴이 되는 건 아니지!’
현무는 오래전 했던 한 게임을 떠올렸다. 최종 보스를 잡고, 그다음 보스도 잡고, DLC에 확장팩까지 모조리 깬 다음 그저 무작정 난이도를 올려 가며 단계를 상승시키던 게임.
거의 끝판 콘텐츠라고 할 수 있던 지옥 난이도에 이르러선 일반 난이도의 최종 보스 따위는 파리처럼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현무는 그런 지옥 난이도에 떨어진 1레벨짜리 뉴비 같았다.
당연하게도 날파리, 아니 미세먼지보다 못한 목숨이었다.
“망하아아아알!”
현무는 피거품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이 현무가 내지른 마지막 고함이었다. 미세먼지들이 그의 식도를 가르면서 피가 울컥울컥 솟구쳐 나왔다. 현무는 다시 또 바닥에 쓰러져 버르적거렸다.
이번에도 양상은 처음과 비슷했다. 현무는 마스크 대신 옷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그를 비웃듯 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현무는 온몸이 난자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죽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0시간 06분 17초.]***
5회 차.
현무는 이번에는 아예 숨을 참아 보기로 했다. 난이도: 지옥에 떨어졌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현무는 입을 틀어막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이번에는 고통이 조금 늦게 찾아오는 것 같았다. 노출되는 피부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피를 토하며 죽어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그리고 현무가 질식사하기 전에 산소를 요구한 몸이 강제로 숨을 들이켰다. 기다렸다는 듯 밀고 들어온 미세먼지가 순식간에 그의 폐를 도려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0시간 08분 41초.]***
8회 차.
[통곡하는 별, 베르드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언제부터였을까, 그런 알림이 들려오곤 했다. 하지만 대체 지켜보는 변태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현무를 돕거나 구해 주진 않았다.
처음에는 현무도 그게 신적인 무언가가 아닐까 믿고 온갖 방법을 써 보았다.
정말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어렸을 때 교회에 가서 배웠던 어설픈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고, 바닥을 벅벅 긁어 십자가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경 구절 아무거나 암송해 보기도 했다. 그래 봤자 나무아미타불 수준이었지만.
그다음에는 무작정 아무에게나 대고 용서를 빌었다. 자기가 저질렀던 사소한 죄부터 조상님의 죄, 한국인들이 저지른 죄, 인류가 저지른 죄까지 모조리 빌었다.
당연하게도 현무의 모든 시도는 무의미했다.
현무는 참회가 무용해지자 이번에는 반대로 피를 토하면서 모든 것을 저주했다. 특히 미세먼지와 아버지를 저주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0시간 11분 13초.]***
11회 차.
현무는 죽었다가 부활할 때마다 모든 피로와 신체적 부상이 치료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한 번도 자지 못했음에도 정신은 또렷하고, 고통 때문에 자해하더라도 흉 하나 지지 않았다.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늘 새로운 기분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차츰차츰 죽어 간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현무는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도,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현무는 자신에게 엿 먹이려는 모든 것은 어떻게 해서든 엿을 먹이고 싶어 했다. 해일이 덮친다면 그에 대한 보복으로 바다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이 현무다운 짓이었다.
물론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이렇게 된 이상 먹어서 없애 주마.’
어차피 죽어도 모든 피로와 상처가 회복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생각이 이렇게 흐르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숨 쉬는 것만으로도 육지에 올라온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다 죽기를 열 번 정도 반복하면 누구라도 그럴지도 모른다.
현무는 지옥에 떨어지자마자 아예 대놓고 숨을 크고 빠르게 쉬어 댔다. 이게 제정신이 아니란 것은 현무도 알고 있었다. 폐를 필터로 삼아 공기 정화기가 되는 꼴이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몸 안에 독이 누적되었습니다.] [굶주리는 별, 요굴렘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숨을 많이 쉬어 댄 까닭인지 알림음도 조금 더 자주 떴다. 드물게 독이 누적되었다는 메시지도 떴다. 이게 긍정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현무는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복수하기 위해 이 짓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현무는 마구마구 숨을 쉬어 대면서 미세먼지에게 보복했다.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렇게 건강에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0시간 24분 55초.]***
14회 차.
현무는 ‘필터 계획’이라고 이름 붙인 ‘미세먼지 마구 먹어서 없애 버리기’를 포기했다.
무가치하게 느껴져서가 아니라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호흡법이었다.
처음 죽었던 날, 자신도 모르게 했던 그 기묘한 호흡법이 그나마 현무의 몸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미세먼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미루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걸 심법이라고 하던가?’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알림음은 여전했지만,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레벨 업!]이 호흡법을 시작한 뒤로 레벨 업이라는 메시지가 또 한 번 뜬 것이다.
정말 게임이나 헌터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뭐가 상승했느니 마느니 하는 메시지는 수두룩하게 받아 봤으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걸로 생존 시간도 비약적으로 늘고 있었다. 몸도 일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움직일 여유는 생겨서, 호흡법을 하기 좋은 가부좌 자세를 틀고 앉을 수 있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몸 안의 미세먼지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공기가 폐와 배 속에서 머물다 녹아내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며드는 것 또한 느껴졌다. 하지만 현무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낼 겨를이 없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걸 깨달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무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인세는 고통뿐이요, 수행만이 번뇌를 벗어날 길이라.’ 하며 고행하시는 도인이냐 묻는다면, 당장 그 죽빵을 날려 속세의 고통이 뭔지 알려 주리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현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현무는 목격자도 없는 곳에서 죽어 갔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총 생존 시간: 00일 01시간 41분 21초.]***
28회 차.
‘슬슬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현무는 ‘달관’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제는 호흡법을 하며 명상을 하고 있으면 몸의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고통이며 살려는 발버둥, 미세먼지에 대한 증오가 다 뭐냐 싶어졌다. 이쯤 되자 현무는 자신의 몸의 고통을 인위적으로 끊는 것까지 가능해진 것 같았다. 혹은 너무 아파서 아픈 것까지 잊어버렸거나.
[독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마비에 대한 내성이 소량 상승합니다.] [몸 안에 독이 누적되었습니다.]그래. 이 메시지도 다 무어냐 싶어졌다. 확실히 버티는 시간도 상당히 늘었고, 몸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젠 일어나서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괜히 집중을 깨서 고통 속에서 죽고 싶진 않았다.
[레벨 업!]이제는 레벨 3이었다.
‘오랜만에 듣는군.’
모든 게 끔찍한 이 지옥에서도 그나마 달콤한 게 있다면 이 알림음이었다. 어쨌거나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이 내레이터 음뿐이니까.
만약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현무는 그럭저럭 초심자 티를 벗은 정도의 레벨이었다.
물론 3성 던전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5성 던전도 넘보는 이지태 같은 톱클래스들은 레벨 50에 도달했다.
이미 그들은 취업 시장이 아니라 국가 중요 자원으로서 취급되고 있을 정도니 논외로 쳐야 했다.
하지만 능력자 등급에 따라 대우는 천지 차이다. 1성급 헌터는 레벨 한계가 20이다. 이후 2성급이 30, 3성급이 40 순으로 10레벨씩 한계 레벨이 확장되지만 결국 천장은 뚜렷했다.
그중에서도 4성급 능력자는 전 세계에 70명 내외 정도고, 그중에서 헌터로 활약하는 자들은 더더욱 적다. 모든 능력자가 싸울 수 있는 상태거나, 싸움을 즐기는 것은 아니니까.
그만큼 레벨이 높은 헌터는 취급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레벨 40 이상은 중요 자원으로 취급하고, 50 이상은 아예 국보급 대우를 받았다. 어딜 가도 온갖 특혜와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치들이 여기 떨어지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군.’
현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5성 던전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곳에도 이렇게 미쳐 버린 미세먼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었다.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일반인이 드나든 적도 있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제아무리 이지태라도 이곳에 발을 딛자마자 창백한 모습으로 꺽꺽거리며 죽어가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스럽게도 현무는 점점 살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한 1년 정도 지내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 여기도 나름의 생활 공간이 될지도 모르지. 끔찍해 보이지만, 어디든 적응하면 살 만해진다. 등 붙이고 잘 수 있으면 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무는 문득 가부좌를 튼 다리가 저려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세를 바꾸다가 문득 이번에는 유독 오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레이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레벨 업인가?’
아니었다.
[체내의 독이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희귀 스킬: 독혈을 습득하셨습니다.] [더 이상 중독 대미지를 입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