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04)
지옥에서 독식-304화(304/346)
304화. 개와 늑대의 시간 (3)
현무는 휘청거리면서도 간신히 일어섰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난이도: 지옥에서 온갖 괴물, 대리인, 이형의 존재들을 마주하면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무언가 스킬을 쓰고 있는 건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자극을 주는 어떤 수작을 거는 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저 자를 보기만 해도 살의가 들끓는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웃고 있었다. 가면 아래 가려져 있어도 알 수 있었다.
현무는 그 웃음을, 그 조소를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강현무!”
순간 이지태가 어깨를 붙잡지 않았다면 현무는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지태는 현무가 튀어나가지 못하게 꽉 붙잡은 채 당황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강현무의 첫 대면 순간이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시작 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현무의 이런 격렬한 모습은 생각도 못했다.
“왜 이러는 거냐! 네가 이성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놈으로 알았는데!”
“놔라.”
현무는 선생님에 대한 적의 때문에 이지태를 뿌리치고 달려간다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지태는 현무의 어깨를 더욱 꽉 움켜쥐며 속삭였다.
“지금 가면 네가 죽어.”
그 말에 현무는 가까스로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살의에 대한 민감한 반응, 그리고 위험에 대한 본능적인 예감.
이 두 가지는 현무가 난이도: 지옥에서 수없이 많은 목숨을 갈아가며 학습한 것들이었다.
약간 머리를 싸늘하게 하고 보니 선생님의 주변에는 헤아릴 수도 없는 살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현무는 그 살의들 속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살해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지태가 막지 않았다면 죽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이지태. 말려줘서 고맙군.”
이지태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태는 그의 특수한 능력인 예지안으로 현무가 살해당하는 수백 가지의 미래를 관측했다. 불과 수 초 후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강현무가 선생님에 대해 품고 있는 강렬한 살의와 혐오감만큼이나, 선생님도 현무에게 대등한 수준의 혐오감과 살의를 품고 있다는 것.
다만 선생님쪽이 좀 더 절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
선생님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이지태는 선생님이 품고 있던 살의들이 씻겨나가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 속 깊은 곳에 갈무리하듯 감춘 것뿐이었다.
“강현무, 너도 고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하면 충분할 것 같군.”
“너도 고생했어. 하지만 네 목숨은 오늘까지로 충분할 것 같은데?”
“하하, 그럴지도. 하지만 그건 네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냐. 내가 죽을 날은 이미 정해져있거든. 오늘은 아니야. 아직 한참 멀었지.”
선생님은 아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성큼 한걸음 내딛었다.
사박, 하고 젖은 모래가 부서지는 소리가 유독 요란하게 들려왔다. 거세진 빗줄기가 시야를 가렸다.
그때 이지태가 현무의 앞에 섰다.
“선생님.”
“이지태. 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군. 비광이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존경하는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차피 비광이라는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닌데,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보다…….”
이지태는 심호흡하고 말했다.
“강현무를 해치울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솨아아아아.
빗줄기가 침묵을 유독 길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이지태를 주시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향해 짖는 애완견을 관찰하는 주인 같았다.
“이지태, 만약 ‘최선의 미래’로 가는 길에 강현무가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습니까. 강현무가 최선의 미래로 가는 길의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면서요.”
이지태의 반박에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지태, 이지태, 이지태. 미래는 도달점이 아니야. 과정이다. 최선의 미래에 도달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삶이 끝나면 얼마나 좋겠나.”
한걸음, 한걸음.
선생님은 이지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지. 우리는 끊임없이 돋아나는 가지에 가위질을 하고 정리해야해.”
선생님의 시선은 이지태 뒤쪽의 강현무에게로 향했다.
“그러다보면 반드시 필요했던 가지도 잘라내야만 하는 순간이 오지.”
그러나 그 순간 선생님의 눈꼬리가 둥글어졌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너를 좋아한단다. 이지태. 너를 밀쳐내면서까지 강현무를 잘라낼 생각은 없어. 당장은 말야.”
***
“하. 비켜, 이지태.”
현무는 이지태를 밀쳐내며 한걸음 다가갔다. 이지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무는 솔직히 선생님이라는 자가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가 자신보다 월등하게 강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난이도: 지옥에서 단련한 자신보다 강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강현무. 여기는 지옥이 아닐 텐데?”
그가 언급한 ‘지옥’이 철학적 의미에서의 지옥은 아닐 것이다.
현무는 선생님이 난이도: 지옥을 뻔뻔하게 언급하는 모습에서 현무는 그가 자신과 같은 곳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미 목숨 무제한의 혜택이 사라졌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의 정체가 무엇이냐였다.
현무는 그에게서 정체를 추정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고, ‘님’자를 붙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현무는 조금 비린내 나는 호칭을 선택했다.
“야, 생선놈. 너 정체가 뭐냐?”
“생선놈…… 이건 또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한 호칭이군. 첫 질문치고는 의외인데. 그게 중요한가?”
“아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
현무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네놈을 죽여버린 다음 그 가면을 벗겨내면 될 일이니까…….”
“아, 가면쯤이야.”
선생님은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 가볍게 가면을 벗어버렸다.
현무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가면 아래 드러난 얼굴을 본 순간, 현무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정체에 숨을 멈춰버렸다.
“너…… 너는…….”
“그래.”
선생님은 씩 웃어보였다. 현무는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놈이잖아.”
“처음 뵙겠습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중년 대머리 남성의 얼굴을 한 선생님은 정중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현무의 어이없는 시선이 이지태에게로 향했다. 이지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셔야겠습니까. 선생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장난이었지.”
선생님은 웃으며 다시 그의 얼굴을 만졌다.
순간 다시 또 가면이 벗겨지는 것처럼 중년 대머리 남성의 얼굴이 사라지고 새 얼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김시후 대통령의 얼굴이었다. 다시 또 얼굴을 만지자 박규 전 비서실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다시 또, 다시 또.
“어떤 얼굴을 기대했나. 강현무? 내가 누구일줄 알았지?”
선생님은 마치 경극 배우처럼 순식간에 얼굴을 갈아치워갔다. 현무는 저것이 그의 ‘가면’의 능력임을 알아차렸다.
현무가 가진 가면과 같은.
그 사이에도 선생님은 얼굴을 바꿨다.
오대성의 얼굴로 바뀌었다가 이지태의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이런 얼굴을 기대했나? 이런?”
“작작 좀…….”
“아니면 이런 얼굴?”
스윽.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손이 멈춰선 그 자리에 나타난 얼굴은 현무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낯이 익었다.
당연했다. 지금의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이었으니까.
다만 좀 더 찡그린 인상에 한쪽 눈이 일그러져 있었다.
현무는 바로 그 정체를 알아차리고 쌍욕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제 아비 얼굴은 알아보는구나. 강현무.”
말릴 틈도 없이 현무의 몸이 튀어나갔다.
현무는 인생을 통틀어 지금 이 순간만큼 집중해서 주먹을 뻗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가면을 박살내는가 싶던 순간, 선생님은 이미 한참 물러나 있었다.
선생님은 처음처럼 무표정한 흑백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처음 선생님이 나타났을 때처럼, 비가 거세게 오고 있었다.
현무는 이지태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이지태가 도착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눈을 뜨고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현무와 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은 느긋하게 선 채 입을 열었다.
“네가 뭘 기대했는지 안다. 강현무. 내가 네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그럼 내 손으로 죽여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네 소원을 망쳐서 미안한데,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야.”
선생님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 아빠는 내가 죽여버렸거든. 아니, 자살시켰다고 해야 하나? 내가 첫 번째로 귀환석을 쥐여준 사람이 그 새끼였어.”
***
현무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말하고도 약간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느낀 듯, 천천히 진흙탕 위를 걸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 걱정하지 마. 원래 네게 상냥하고 인자한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을 빼앗아 간 건 아니야. 내가 네 아빠를 죽여버린 이유는 그 새끼가 정말 답이 없는 쓰레기여서 그런 거니까.”
“……답이 없는 쓰레기?”
“응. 네 엄마가 겨우 모았던 낙태수술비를 쥐고 도망쳤다가, 도박장에서 탕진한 놈이었거든. 아, 그뿐만이 아니야. 좀 더 들어볼래? 네가 가지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혐오를 좀 더 진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이미 충분하니까 필요 없어. 그런데 그런 쓰레기한테 귀환석을 줬다고?”
“그래. 당연하지.”
선생님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 말했다.
“그런 놈이 지옥을 가야지, 그럼 누가 지옥을 가는데? 다행인건 사후에 저승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난이도: 지옥은 확실하게 있다는 거지.”
하하하, 선생님은 큰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유쾌하게 여겨지는 듯 했다.
“놈에게 난이도: 지옥을 버틸 정신력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역시나 돌아오자마자 또 거기로 끌려갈까봐 벌벌 떨다가 자살하더라고. 너무 일찍 끝났지만 지옥이 실존한다면 어차피 그 인간이 갈 곳도 정해져 있겠지.”
현무는 피가 싸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처참한 자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죽은 게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피를 식게 만든 것은 ‘귀환석’을 취급하는 선생님의 태도였다.
선생님은 ‘약속’ 때문에 난이도: 지옥에서 현재로 넘어온 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귀환석을 다루는 태도는 마치 장난감을 다루는 듯 했다.
이런 작자를 믿고, 난이도: 지옥의 아담 폴트가, 켈러 교수가, 유민이,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다.
“너는 ‘약속’의 사명을 받고 난이도: 지옥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게 아니었나?”
“아, 약속에 대해 이미 아는 모양이네. 맞아.”
“……그러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냈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왜 그런 쓰레기를 보내?”
“그러게, 왜일까?”
선생님은 장난기가 어린 목소리로 현무를 향해 대답했다.
“그건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대답 같은데, 강현무. 비단 못된 놈한테 벌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일은 아니야. 나는 네가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네 입으로 스스로 말해보면 좋겠는데.”
만약 난이도: 지옥에서 자신이 충분히 단련하고 졸업했다고 쳐보자.
그래서 귀환석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줬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가정한 순간, 현무의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대답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유치하고 경멸스러운 답에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혹시라도 그 놈이 나보다 세져서 돌아오면 안 되니까.’
모처럼 인류의 목숨을 전부 갈아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는데, 어처구니없는 놈한테 봉변을 당하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가능성이 있는 녀석 대신 쓰레기를 보냈다.
현무는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머리가 아득해지며 이지태를 떠올렸다.
이지태는 현무가 만나본 사람 중 제일 이상론자이며 올바른 신념을 가진 선인이다.
만약 단 하나의 별이 세계를 정복하고 그 규칙대로 돌아간다면, 그 후보로 이지태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지태가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무슨 생각인거냐, 이지태…….”
“이지태를 탓하지 마라, 강현무. 내 인성과 성과는 별개야. 실제로, 나는 그들에게 존경받을만한 일들을 많이 했거든.”
선생님은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온갖 끔찍한 미래 가운데서도, 나는 인류에게 최선의 선택지만을 고르며 여기에 도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야. 이지태라고 별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냐?”
선생님은 쓰러져 있는 아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아담 폴트가 있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더더욱 쉬워질 거야. 하지만 강현무, 어느 시점이 오면 너는 그 미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미래가 더더욱 곧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
“언제는 내가 최선의 미래라며?”
“그래.”
현무는 선생님의 대답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차분하고 정제된 시선으로 현무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랬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