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08)
지옥에서 독식-308화(308/346)
308화. 개와 늑대의 시간 (7)
뚝.
마리아 켈러의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현무와 아담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무도 함께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잠시 뒤, 현무가 아담을 보며 물었다.
“죽일 거야?”
“안 죽여.”
아담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현무에게 폰을 떠넘겼다. 그녀의 표정은 대단히 심란해보였다.
겨우 어렵게 통화를 했지만, 아담이 들은 것은 그저 명령의 유지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대답을 예측하긴 했었다. 이미 그녀에게 벌어진 일만으로도 마리아의 단호함은 읽을 수 있었으니까.
강현무, 혹은 이지태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담은 크롬 요원들에게 사로잡히거나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켈러 교수에게 직접 명령을 들었다고 해서, 이제 와서 그 명령을 따를 이유는 없었다.
“……정말 너를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겠군.”
현무는 피식 웃으며 슬쩍 건물 밖을 보았다. 밖은 일식으로 인한 그림자 때문에 여전히 어두웠다.
아담은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 움직이고 있었다.
폭풍 지대에서는 벗어난 덕분에 비는 약해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구름은 제 덩치를 부풀리며 미 전역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전례 없이 거대한 태풍이 될 가능성이 보였다.
현재 현무와 아담이 있는 지역은 미 중부에 가까웠다.
통화가 되는 지역을 찾기 위해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의 핸드폰 정보를 탈취하기 위해 이런저런 과정이 필요했지만, 아담은 마리아의 모든 보안정보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현무는 그림자 외부에서 움직이는 인원으로 손쉽게 마리아에게 연락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핸드폰과 보안정보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켈러 교수님을 설득해서 상황을 타계해본다는 네 계획은 끝장난 것 같군. 다음 계획은 있나?”
“아, 걱정 마. 켈러 교수가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지?”
아담의 이어지는 질문에 현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담, 내가 너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설명할 거야. 개는 뭐다?”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문다.”
“손.”
착.
아담은 언짢은 표정으로 현무가 내리는 지시를 수행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쩌면 켈러 교수와 아담을 구하더라도 리바이어던 미션이 끝난 다음에 살해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현무가 리바이어던 미션이 끝나기 전에 죽는다고 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딱 예상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현무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아담에게도 말했지만, 그는 켈러 교수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켈러 교수와 통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트리거는 당겨졌고, 이제 격발 장치가 작동할 것이다.
남은 것은 총알이 발사될 때까지 버티는 것뿐.
현무는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보다 손님이 왔는걸. 아담.”
아담은 현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수십 대의 헬기와 수송기가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움직이는 그림자의 중심부를 쫓아온 다른 클랜의 헌터들이었다.
아담이 물었다.
“계획은?”
“물어.”
***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켈러 교수?”
마리아 켈러가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린 뒤, 회의장은 침묵으로 가득해졌다. 사람들은 통화 내용에 경악하고 있었다.
통화를 통해 들은 대화 내용은 이때까지 그들이 보고 받았던 내용과 완전히 반대였다.
“아담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 지시 내용은……!”
“미쳤군. 이때까지 모두 당신 지시로 벌어진 일이었어. 대체!”
“당장 다시 아담에게 연락을 취해. 켈러 교수는 수감하고, 그녀를 인질로 잡아서라도 아담을 멈추게 해라!”
의장의 명령에 회의장 밖에 있던 경비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감찰관들은 경비원들의 손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급히 마리아 켈러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마리아 켈러는 그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핸드폰을 단숨에 휠체어에 내려쳐 박살냈다.
“이런 빌어먹을…….”
데이터를 복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때였다.
경비들이 다가와 마리아의 팔을 붙잡아 비틀었다. 마리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비아냥거렸다.
“반신불구의 노약한 할머니도 이렇게 단체로 달려들지 않으면 제압 하지 못 하나?”
“닥쳐라, 이 마녀! 미친 소리를 하는 것도 봐줬는데 결국 이렇게 우리를 배신…….”
위원장이 마리아를 향해 호통을 치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총성이 위원장의 말을 끊었다.
마리아의 팔을 붙들었던 경비원이 이마에 구멍이 난 채 천천히 쓰러졌다.
감찰관 중 한명이 권총을 꺼내들고 있었다. 위원장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사무엘!”
탕, 탕. 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성을 듣고 급히 달려오던 경비원들의 머리에도 구멍이 생겼다.
뒤늦게 감찰관들이 권총을 꺼내들고 사무엘을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감찰관들도 유사시 능력자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기본적인 전투 교육은 받은 상태였다. 경력에 따라서는 특수부대원 수준의 전투기술을 갖춘 감찰관도 있었다.
요란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지며 회의장이 폭음과 총연으로 가득 찼다. 사무엘은 순식간에 온 몸이 구멍투성이가 되어 철퍽 의자 위로 쓰러졌다.
“이게 대체 무슨…….”
“마리아의 추종자겠지. 크롬 요원들은 전부 그녀한테 미쳐있으니까.”
위원장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감찰관 중 한명이 사무엘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총격을 퍼부었지만 만약을 위해 확인사살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총연을 헤치고 사무엘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감찰관은 멈칫했다. 그렇게 많은 총알이 쏟아졌는데 피 한 방울 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구멍투성이였던 사무엘의 얼굴에서 입이 뻐끔 열렸다.
“명령: 즉시회복, 탄창 무제한, 명중 보정.”
“살아 있…….”
탕.
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감찰관들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사무엘을 향해 총격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사무엘은 온 몸에 구멍이 뚫리면서도 차근차근 한 발씩 감찰관들의 미간을 명중시켰다.
상황이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위원장은 급히 경보를 울리고 후퇴를 지시하려 했다. 그러나 사무엘의 입이 먼저 열렸다.
“명령: 무소음.”
그 순간 귀신같이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고함과 비명, 총성까지 묻히고 연기와 총에서 튀는 불꽃만이 선명하게 비쳤다.
“명령: 잠금.”
감찰관들은 도무지 죽질 않는 사무엘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의실 밖으로 도망치려던 순간 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으로 부딪치고 총으로 쏴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엘은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눴다.
비명은 없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벽과 문에 핏자국이 새겨졌다.
무수한 시체들이 출입구에 산처럼 쌓였다.
조금 뒤, 피어오른 연기 때문에 뒤늦게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총연을 씻어내렸다.
하지만 물줄기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무엘은 천천히 시체들 사이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령: 불사 상태’ 제외 모든 명령 해제.”
촤아아아아아.
이제야 스프링클러 소리가 말문이 트인 듯 터져 나왔다.
화재 경보 알람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무엘은 천천히 회의장 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 총격전을 피해 엎드려 있던 마리아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던 건지 왼쪽 가슴 위쪽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파 보이는걸, 마리아.”
“……죽일 테면 죽여.”
“그럴 수는 없지.”
사무엘은 마리아의 상처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총알을 꺼냈다.
마리아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탄두를 손가락으로 튕겨낸 사무엘은 마리아의 멱살을 쥐고 일으켜 세워 다시 휠체어에 앉혔다.
심호흡하는 그녀에게 사무엘은 포션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치명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상태는 금방 좋아졌다. 그녀는 주변의 참상을 둘러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살해당한 감찰관들은 오랜 시간동안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초국가적 요인들이었다.
“크롬의 기능이 마비될까봐 걱정되나? 걱정 마. 리바이어던이 끝나더라도 수습 할 때까지 시간은 벌어줄 테니까. 어차피 리바이어던 이후의 세계에는 그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 없을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화재경보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온 것 같았다.
사무엘은 시체들을 질질 끌어 옆으로 치우고 문을 열었다. 밖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보안담당관이 서있었다.
“끝?”
“끝.”
간단한 문답을 나눈 뒤, 보안담당관은 뒤쪽에 손짓을 보냈다.
보안 요원들이 우르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무수한 시체들을 보고서도 별 감흥 없이, 심지어 밟고 넘어서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보안 담당관이 말했다.
“시체 치워야 해.”
“뭐야, 설마 미개하게 손으로 치우라고?”
“인간이라서 명령어가 안 통해. 당분간 이 자들의 얼굴로 활동해야 할 거 아냐?”
사제들이 관리자로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던전 수준으로 마나 밀도가 높은 공간뿐이다. 그 외의 공간에서는 일반인 수준에 불과했다.
때문에 사제들은 줄곧 명령어가 통하는 던전에서만 만남을 유지해왔다.
지금 특수감찰부 본부 역시 극도로 안정적인 봉쇄 던전의 바로 위에 지어진 곳이었다.
특수감찰부 본부 설립과정부터 사제와 마리아 켈러가 개입해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원들이 투덜거리며 얼굴을 문지르자 하얗게 표백되며 뭉개졌다. 사무엘이 원래의 얼굴을 드러낼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곧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주무르며 시체의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체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전부 사제들인가?”
“그래. 이렇게 많은 사제들은 처음보지?”
그의 말대로 마리아는 사제들을 하나, 많아야 둘 정도 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는 밖에 이 소란이 전해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안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 거지?”
“침투라니, 우리한테 그런 게 필요해보이나?”
사무엘은 언짢은 투로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이 상황은 별들과의 계약을 어기는 짓이야. 우리는 어디까지나 관리자로서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하는 입장이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제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별이나, 던전 외부에서 명령어를 쓸 수 없게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안전하지도 못하다.
때문에 그들은 기본적인 진행을 위해서 인류 내부의 협조자를 두는 것 외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었다.
사무엘은 회의장 벽에 붙어있는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참 아담 폴트와 강현무의 의문스러운 관계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도 안전한 울타리 너머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그리고 그 기회를 마리아가 바로 제공한 것이었다.
“……너희들은 좀 더 비밀스러운 단체인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군.”
“하하, 마리아 켈러. 우리도 그냥 너희 크롬 같은 단체야. 다만 그 스케일이 조금 큰 거지. 우리의 목적과 별들의 이득이 맞아 떨어져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뿐이고.”
사무엘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마리아의 어깨를 주물렀다. 마리아에게는 괜히 친한 척하는 동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친한 척이라기보다 사실 그녀가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압박하는 것에 가까웠다.
사무엘은 마리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는 많은 별들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사람을 스카우트하기도 해. 실제로 같은 행성 출신이 별로 없지. 너는 상당한 능력을 보여줬어. 만약 리바이어던을 통해 오류만 무사히 제거된다면 너를 견습사제로 추천할 수도 있어. 물론 더 이상은 게임에 참가하지 못하겠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마리아는 경멸스레 쏘아붙였다.
“네 놈들이랑 한 통속이 되려고 아담을 희생시킨 게 아니다. 인류를 위한 가장 나은 길을 선택한 거지. 일이나 얼른 마무리 지어. 그리고 약속은 꼭 지켜라.”
“걱정마라. 만족할 보상이 있을 테니까.”
사무엘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는 마리아에게 보상을 약속하면서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비단 내 제안이 아니더라도 같은 편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거야. 마리아. 지금은 황혼의 시간이야. 새로운 밤이 시작되고 있다고.”
“내게 아직도 너희에게 대들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나?”
“모르지. 이런 때에는 누구나 시야가 흐려지기 마련이거든. 죽고 싶지 않다면 저 저녁노을 속에 나타난 저 그림자가 개인지 늑대인지 눈을 똑바로 뜨고 가늠해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