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11)
지옥에서 독식-311화(311/346)
311화. 아수라장 (3)
단순히 표적을 놓치고 힘이 다해 돌아오는 것이 아닌, 강한 주인의 손에 의해 내던져진 에고 웨폰.
당연히 그 파괴력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맹포하게 쏘아져나가는 에고 웨폰의 모습에 헬렌은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저 강현무가 제 무기에 꿰여죽는다니, 얼마나 통쾌한 장면일 것인가.
그러나 창이 손끝을 떠난 순간, 헬렌은 휘청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묵직한 무언가가 그녀의 검은 오러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금은보화가 에고 웨폰의 뒤꽁무니에 매달려 끌려 나오고 있었다.
“이, 이건 무슨?!”
헬렌의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창고지기’ 스킬은 무슨 물건이든 넣고 뺄 수 있지만, 넣은 물건을 ‘대출’할 때에는 굶주리는 별로부터 이자가 계산된다.
대신 막강한 위력의 아이템도 빌릴 수 있지만, 그 대가의 위험을 아는 헬렌은 오직 ‘수납’할 때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고 웨폰의 속도는 헬렌이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고, 쏟아져 나오는 보물의 양 또한 막대했다.
잡동사니부터 단순한 보화, 심지어는 가치를 따지기 힘든 장비며 아이템까지도 그녀의 손끝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에고 웨폰은 현무를 찌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날아가다가 결국 보물 때문에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현무는 간단하게 에고 웨폰을 낚아챘다.
현무는 에고 웨폰을 바스러뜨리고는 헬렌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헬렌은 현무가 손을 쥐고 있는 모습이 묵직한 그물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물이 존재했다.
그림자 거미줄로 만들어낸 그물이.
현무는 그걸 에고 웨폰에 엮어서 헬렌의 ‘창고’ 안으로 던져 넣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가 거미줄에 끈끈하게 들러붙은 굶주리는 별의 보물들이었다.
하지만 현무가 그물로 노리고 있던 것은 고작 안에 있던 보물 따위가 아니었다.
현무는 헬렌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재빨리 손을 확 한 번 더 끌어당겼다.
헬렌이 휘청거린 순간, 그녀는 스걱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오른팔이 허공에 떠오른 것을 보았다.
아직도 검은 오러에 휘감겨 있는 오른팔은 보물들과 함께 현무의 손으로 끌려갔다.
“월척이군.”
“아, 아아아, 아아!”
헬렌은 창백한 표정이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저기서 쏟아져 나온 보물들은 실시간으로 굶주리는 별에게 이자 계산이 된다.
서둘러 다시 집어넣지 않으면 참혹한 대가를 치룰 수도 있었다.
“이 개자식, 내 팔을 내놔!”
쿵.
헬렌은 순식간에 현무를 압박해 들어왔다. 하지만 현무는 이제 헬렌이 ‘창고지기’ 스킬을 예전처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취하는 동작들을 유심히 지켜본 덕분이었다.
‘수납’의 기능을 가진 것은 오른팔이다. 반면, ‘대출’의 기능을 가진 것은 왼팔이었다.
지금 오른팔은 현무의 손에 있으니 이전처럼 모든 것을 도려내어 버리듯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현무의 방심이었다.
헬렌에게는 여전히 ‘대출’의 기능을 가진 왼팔이 있었다.
짧은 순간 수차례 공방을 나눈 현무는 싸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수십 중의 디버프가 걸려있다 해도 몸 좌우 균형도 맞추기 힘든 외팔이를 상대로 밀릴 현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헬렌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내 팔 내놔!”
헬렌의 왼팔에서 기이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막 헬렌의 왼팔을 치려했던 현무는 배와 가슴이 꿰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황금처럼 빛나는 거대한 뱀이 현무의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
뱀은 현무를 문 채 바닥에 갈아버리다시피 하며 끌고 갔다. 현무는 뱀을 마구 내려쳤지만 비늘조차 까지지 않았다.
“큭, 이 뱀새끼가!”
“내 팔!”
헬렌은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뱀에게 끌려가는 현무를 쫓아갔다.
렌 제독의 외알안경이 없어도 이 뱀이 평범한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무언가라는 것은 현무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것을 불러내기 위해 헬렌이 치르고 있는 대가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헬렌은 이성을 잃었을지언정, 굶주리는 별이 선택한 탐욕 가득한 도박사였다.
그녀는 이자를 물리더라도 상대를 서둘러 압도하기 위해 판돈 자체를 올려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었지만, 헬렌은 도박을 선택했다.
“캬아아아아!”
그때 황금 뱀이 입을 쩍 벌리고 거칠게 몸부림쳤다. 헬렌은 현무의 몸을 꿰뚫었던 뱀의 송곳니가 녹아버린 것을 발견했다.
반면 현무는 언짢은 표정으로 뱀에게 물린 자리를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약간 새콤한 독이군.”
***
“너는 대체…….”
헬렌은 다시 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무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헬렌은 빠르게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현무를 사로잡고 있던 디버프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뭐하고 있…….”
헬렌은 헌터들에게 호통을 치려다 그제야 주변을 살폈다. 언덕 위의 헌터들이 몬스터의 실루엣을 가진 무언가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었다.
“내 팔 내놔.”
헬렌이 한 말이 아니었다.
현무가 헬렌의 나머지 팔 한쪽에 눈을 희번뜩거리며 욕심내며 한 말이었다.
헬렌은 등골이 오싹하게 소름이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굳은 결심을 했다.
쾅, 굉음을 내며 헬렌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빠르게 왼손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현무는 또?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헬렌이 이번에 꺼내든 것은 주변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연한 푸른빛이 감도는 창이었다.
아니, 창이라기보다 거대한 침 같은 모습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팔 내놔!”
단순한 공갈이 아니었다.
이건 무리다.
현무는 직감했다. 헬렌이 꺼내든 창에서 풍겨오는 기세만으로도 현무의 직감이 죽는다고 요동치고 있었다.
난이도: 지옥에서 현무가 만든 아이템 중에서도 저런 건 없었다.
아주 가끔 보이던 ‘외적인’ 존재에 가까운 무기였다.
헬렌은 자신을 죽이려고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헬렌 스스로에게도 치명적인 무기였다. 저게 뭔지는 몰라도 헬렌이 치룰 대가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진정하고 우리 대화로 해결할까?”
현무가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헬렌 역시 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는 건지 움켜쥐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서 버르적거리며 요동치던 황금뱀이, 갑자기 벌떡 몸을 세우더니 헬렌을 덮쳤다.
“아니, 이게 무슨, 아, 빌어먹을!”
헬렌은 무기를 던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뱀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뱀의 목구멍 안에서 꿀렁거리며 끌려 들어가는 덩어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못했지만, 현무는 헬렌이 써서는 안 될 무기를 쓰려고 했고, 누군가가 그걸 저지하려 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갑작스레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풍 때문에 울려 퍼지는 천둥번개와는 격이 달랐다.
눈앞에 섬광이 스쳐간 순간, 현무는 그 자리에서 튕겨나갔다. 간신히 고개를 들자 앞에 시커먼 잿덩이가 되어버린 황금 뱀이 보였다.
콰직, 콱. 그 숯덩이를 박살내며 힘겹게 헬렌이 고개를 내밀었다. 황금 뱀은 속까지 완전히 숯덩이가 되어있었다.
위액에 절어있는 그녀는 힘겨운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빠져 나왔다.
현무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달려가 몸도 가누기 힘든 부상자의 얼굴을 단숨에 후려갈겼다.
턱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호쾌하게 울려 퍼졌다.
헬렌은 숯덩이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축 처졌다.
“그거 어딨어, 그거?”
현무는 곧 뱀의 뱃속에서 이름도 모를 무기를 찾아냈다. 색이 약간 바래있긴 했지만 그걸 보자마자 현무는 뒤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헬렌의 오른팔로 창고 안에 넣어버렸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세상에는 건드려도 될 물건이 있고, 아닌 물건이 있으니까.
“후우…….”
겨우 숨을 돌린 현무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언덕 위의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헬렌이 당한 이상 굶주리는 별의 세력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이제 현무가 헬렌을 쫓았던 이유 중 하나를 되새길 때였다.
현무의 시선이 기절해있는 헬렌의 왼팔로 향했다.
***
“이지태. 준비됐나?”
이지태는 고개를 돌렸다. 구름이 발아래로 흐를 정도로 높은 산 절벽 가에 박도령이 서있었다.
한때 그의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적이었다가, 다시 동료가 된 남자였다.
박도령에게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극단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이지태는 지난 수년 간 그가 수면 위로 나서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아왔다.
하지만 결국 와서는 미래를 앞두고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준비가 된 모양이군요.”
이지태만이 아니었다. 산 위에는 수많은 동맹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손을 잡을 수도, 잡아서도 안 되는 각기 다른 별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어느 나라의 군벌, 어느 나라의 클랜 대표, 어느 나라의 헌터, 심지어는 사도, 대리인 급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국적, 정치, 역사, 그 모든 문제를 억누르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밖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소한 갈등과 대립은 있을지언정, 목적은 같았다.
‘최선의 미래…….’
그리고 그 모두가 ‘최선의 미래’라는 목표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들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남자였다.
선생님은 절벽 끝에 서서 구름에 뒤덮인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름이 거칠게 몸을 뒤틀고 천둥 번개가 번뜩이는 지상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구체처럼 보여서, 앞으로 다가올 지옥을 예고하는 듯 섬뜩했다.
이지태는 선생님을 부르기 위해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선생님은 이미 절벽 끝에서 돌아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이지태는 놀라지 않았다. 늘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지태는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맨발, 청바지에 흰 티셔츠라는 평소처럼 단출한 차림새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테이프로 붙인 깨진 가면엔 백발이 성성했다.
선생님은 다양한 모습을 취해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왜 이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굳이 이런 노년의 모습을 취한 걸까.
“걱정마라. 이지태.”
이지태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현실은 선생님이 ‘고른’ 미래다. 실수가 있을 리가 없다.
선생님은 동맹원들 앞에 서서 죽 둘러보았다.
“안녕, 여러분. 오늘 같은 날 이렇게 내 부름에 답해줘서 고마워. 알다시피, 오늘은 무척 중요한 날이야.”
동맹원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선생님은 그 시선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근래 조금 헷갈리는 일들이 많았지? 정말 나를 따라도 좋은 걸까, 아니면 어차피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있다면 내가 굳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저게 정말 바른 방향으로 가는 역사가 맞는가? 이런 질문들.”
선생님은 천천히 걸으며 주머니 속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질문을 반복하다가 결국 돌아선 자도 있고, 나를 외면하기로 한 사람도 있어. 하지만 굳이 그들을 탓하진 않아. 이해하니까.”
이지태는 박휘소를 떠올렸다. 자신을 동맹에 끌어들였지만, 정작 그 본인은 강현무에게 붙은 사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선생님은 박휘소를 탓하지도,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았다.
“원래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면 위에 떠있는 사람들은 즉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후대에 이르러서야 ‘아 그때 이래서 이랬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구나!’하고 이해하는 법이거든.”
팅, 팅. 동전은 허공을 튕기다가 탁 이지태를 향해 날아갔다.
이지태는 능숙하게 동전을 잡아챘다. 선생님은 손바닥을 펴보라고 하지도, 뭐가 나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동전이 앞면인 미래를 선택했어.”
선생님은 무표정하게 동맹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뒷면이 나온 미래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지웠다. 이미 동전의 면이 나온 세계를 본 내게, 지금 이 순간은 과거일 뿐이야.”
이것이 동맹원들이 선생님을 따르는 이유였다.
선생님은 미래를 선택한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미래.
최선의 미래.
나쁜 가지는 잘라내고, 좋은 가지만을 타고 올라간다.
“내게 미래는 불확실한 게 아니다. 우리는, 더더욱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선생님이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동맹원들도 함께 힘껏 손을 들어올렸다.
자신의 신념과 이념을 접어두고 인류라는 대의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지태는 그들이 그리는 ‘최선의 미래’가 각기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들을 ‘인류를 위한’ 최선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왔다. 만약 세계가 지옥으로 치닫는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 막아낼 사람들.
선생님이라면 그들을 모두 만족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최선을 선물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우리는 절망을 극복하는 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지태 역시 힘껏 동전을 쥔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올렸다. 선생님은 모두를 향해 힘껏 웅변했다.
“우리는, 최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