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26)
지옥에서 독식-326화(326/346)
326화. LIFE 0 (1)
가장 먼저 깨어난 감각은 후각이었다.
매캐한 미세먼지가 폐를 가득 채우면서 몸 안을 잔뜩 오염시켰다.
오염된 공기가 피에 녹아드는 것을 느끼며, 현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붉은 하늘과 그 위를 서성이는 정체를 모를 괴물들, 무수한 모기떼.
그리고 모래먼지에 뒤덮인, 이제는 흔적만 남은 사거리.
평범한 난이도: 지옥의 풍경이었다.
“흠.”
복장은 난이도: 보통에서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였다. 옷이라기보다 걸레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몸은 한 번도 다친 적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선생님에게 파괴당했을 눈도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현무는 마지막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선생님이 자신에게서 레니안을 빼앗아가려고 한 순간, 이지태가 선생님의 등짝에 죽창을 먹였다.
대체 왜 그랬는지, 어떤 인과관계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주 끝내줬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레니안이 거기에 찔려서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직후, 이지태의 공격에 자신도 휘말려 튕겨나갔다.
온몸을 에고 웨폰에 꿰여있던 현무는 만신창이가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담 폴트가 자신을 받아냈다. 지상에 내려왔던 것까지도 기억이 났다.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은 기억나지 않았다.
“살아있군.”
하지만 현무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아참, 레니안.”
이지태의 창에 꿰뚫렸던 모습이 떠오른 현무가 급히 레니안을 찾았다.
하지만 레니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레니안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레니안이 죽을 수 있는 존재인지조차도…….
“집사야.”
현무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시무룩한 표정의 레니안이 서있었다.
현무는 레니안이 그렇게 풀 죽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주인님은 별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지 않은가봐.”
“……음, 보통은 그렇지?”
“그러면 집사는 어때? 꿩 대신 닭이라고, 집사라도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세계 멸망은 나한테 너무 거창한 꿈같아서…… 나는 좀 더 소박한 삶이 좋거든.”
“으으음, 그러면 소박하게 10세 미만의 아동들은 모두 노예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죽여서 밭의 비료로 쓰자. 지식도 언어도 가르치지 말고 모두 거세해서 오직 우리를 위한 노예로 쓰는 거야. 그럼 느리겠지만 언젠가는 집사의 종족도 멸망하겠지?”
“그 점에 대해서는 좀 더 나중에 건설적인 대화를 해보자고.”
현무는 일단 레니안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다른 것도 확인해보기 위해 귀환석을 찾았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응?”
귀환석이 없었다.
현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여행지에서 핸드폰과 지갑, 여권을 동시에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목욕하거나 잘 때도 빼놓지 않던 귀환석이었다. 싸우다 잃어버렸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 집사야?”
“귀환석이 없어. 아…… 설마.”
현무는 문득 짚히는 데가 있었다.
현무가 ‘약속’을 성취하고 별이 되었을 때, ‘남은 부활 횟수: 1’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현무가 살아난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선생님한테 배짱을 부리던 것도 그걸 믿고 있던 것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귀환석 자체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귀환석이 뒤돌아선 별 그 자체라고 하지 않았나?’
현무는 문득 의아함이 스쳐지나갔다.
부서지는 별, 가울은 귀환석이 뒤돌아선 별이라고 했다. 되돌아선 별은 선생님이 가진 회귀 능력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 말은 이제 선생님이 회귀 능력을 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현무도 난이도: 보통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었지만.
바람이 불어왔다.
유독한 미세먼지와 나뭇잎도 잘라내는 칼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레니안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운 채 물었다.
“그럼 집사도 이제 진짜 ‘우리 집’의 제대로 된 식구가 된 건가?”
현무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난이도: 지옥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정들기까지 한 곳이지만, 살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뭐, 살다 보면 이곳도 꽤 괜찮아, 집사야. 황량하고, 척박하고, 다들 서로를 죽이려고 눈이 벌게진 놈들밖에 없고, 생명이 태어날 가능성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지. 맛있는 음식도, 맑은 공기도 없어.”
“지금 그 목록 중 대체 어디가 괜찮은데?”
“집사가 아무리 긍정적이고 희망찬 사람이라도 이런 곳에서 살다보면 분명 언젠가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어질 거란 점이지.”
현무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세상을 멸망시키고 다음 생애를 기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무는 그렇게 쉽게 생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방법을 좀 찾아보고…….”
그때 현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모래 언덕 위에 조그맣게 튀어나와있는 카메라였다.
현무는 재빨리 달려들어 모래 속에 숨어있는 그것을 낚아챘다.
게 모양의 하급 골렘이었다.
부서지는 별, 가울이 정찰용으로 쓰는 녀석.
현무의 손을 난폭하게 내려치는 녀석의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현무가 입을 열었다.
“대화 좀 하자. 가울. 아니, 마리아 켈러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좀 만나자고.”
***
가울의 대리인인 마리아 켈러는 의외로 순순히 현무에게 어떤 위치를 알려줬다.
현무는 그곳을 찾아가며 난이도: 지옥의 아담 폴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리아 켈러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약속’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서지는 별과 계약했다고 했다.
뒤돌아선 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분열’의 능력을 가진 별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만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귀환석을 만들려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은 같았다.
현무가 도착한 곳은 사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옛날에는 꽤 번화가였을 법한 곳이었다.
이곳만큼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사람이 없고 곳곳에 수정이끼가 수풀처럼 자라고 있다는 점 외에는 부서진 곳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외진 골목 안쪽에서 ‘Cafe Alpha’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오직 그곳만이 어디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건지 홀로 불이 들어와 있었다.
현무는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외관처럼 내부도 먼지만 약간 쌓여있을 뿐,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세상이 멸망해가는 와중에도 이곳만큼은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마리아를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마리아도 현무를 부를 필요 없었다. 사람이 많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예상했던 숫자보다는 많았다.
카페 안에는 마리아 켈러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반갑습니다. 강현무 씨.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나지요?”
강현무가 별이 된 이후, 귀환석을 사용했을 때 만났던 난이도: 지옥의 사제가 마리아 켈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었다.
새하얀 정장 차림의 남자 사제는 싱긋 웃으면서 옆자리를 비워주었다.
현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리아 켈러를 바라보았다.
저 기분 나쁜 사제의 옆에 앉느니 마리아 켈러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마리아의 상태 역시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리아는 전에 봤던 것처럼 끊임없이 부서지는 수정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뾰족한 수정들을 쉬지 않고 정신 사납게 사방팔방에 뿜어내며 자신이 앉은 의자에 구멍을 뚫어댔다.
현무는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기분 나쁜 사제의 옆에 앉기로 했다. 괜히 옆구리에 구멍이 나고 싶진 않았으니까.
“넌 뭐야? 나는 마리아 켈러를 만나러 왔을 뿐인데.”
사제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밝혀도 되겠군요. 제 이름은 이사야 렌입니다. 렌 제독이라고 하면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스스로를 렌 제독이라고 밝힌 사제는 자신의 오른쪽 눈 근처를 톡톡 두드렸다.
현무가 눈에 ‘렌 제독의 외알 안경’을 심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현무는 눈앞의 상대가 이때까지 발견한 아이템이나 스킬, 몬스터에 대한 설명에 달린 ‘주석’을 적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상당히 최근까지의 기록까지 있었기 때문에 누굴까 했는데 설마 사제 중 한 명 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제야말로 객관적인 위치에서 관측이 가능한 사람일 테니까.
“마리아는 저와 선약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꽤 친한 사이거든요.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데, 같은 자리에 불러도 되냐고 묻더군요.”
“친하다라…… 켈러 교수, 당신이 사제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하지만 친하기까지 한 줄은 몰랐는데.”
마리아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단순히 인류의 수준을 넘었고, 통제자로서 움직이려는 의도도 확연하게 보였다. 사제들의 존재를 안다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이사야 렌은 변명하듯 말했다.
“아,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저희는 순수한 우정 관계지요. 마리아는 저 외에 다른 사제들을 모두 증오합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저도 마리아와 같은 입장이지요.”
“켈러 교수가 우정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인가?”
“뭐,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으니까요.”
마리아 켈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카페에 들어온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당히 서먹한 사이 같은데.”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라야 진짜 친한 사이입니다.”
현무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현무가 대화하고 싶은 상대는 가울의 대리인인 마리아였지, 사제가 아니었다.
사제는 사실 별로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방해라면 모를까.
그 순간 테이블 위로 갑작스럽게 돋아난 수정이 현무의 손을 꽉 구속했다.
현무의 손끝에는 종말의 힘이 담긴 오러가 감돌고 있었다.
이사야 렌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약간 물러섰다.
“이제 마리아가 적어도 제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시겠지요?”
“그런 것 같군.”
현무는 수정을 부수며 손을 다시 꺼냈다.
정말로 이사야 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협박을 할 생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마리아가 그를 보호하고 있다면 쉽게 죽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진짜 용무는 언제 꺼낼 수 있는 거지? 나는 잡담이나 떨자고 카페에 온 게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에 오는 이유가 그거라지만.”
“우선, 음. 저희 사제들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중요한 거야?”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이런 도박판을 벌이고, 무엇을 찾아다니는지는 궁금하지 않나요?”
“중요하지 않으면 됐어.”
시나리오 작가들이라면 피눈물을 흘릴 이야기지만, 강현무는 게임을 하면서도 뒷배경이나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보다는 캐릭터나 아이템의 능력치에 더 관심이 많으면 많았지.
반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하게 설정을 수집할 법한 사람인 이사야 렌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들어.]그때 마리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몇 개의 목소리가 중첩되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였다.
[네가 듣지 않으면 렌은 더 이상 전할 사람이 없으니까.]“아, 젠장. 그래. 말해봐. 최대한 짧게.”
현무는 마리아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온 입장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는 힘든 일도 아니니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이사야 렌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전에 엠바고를 해제해야겠군요.”
끼기기긱.
현무의 귓가에 쇠를 긁는 것 같은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머리가 약간 더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가시왕관회의 사제들입니다.”
“가시왕관회?”
“지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가시나무 사제라고도 불립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다른 가시나무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아홉 머리의 용입니다. 그중에서도 조금 특수한 머리죠.”
“아홉 머리의 용? 아홉 머리의 쥐 같은 건가?”
현무는 문득 랫맨들이 떠들던 전설이 생각났다. 똑같이 머리가 아홉인걸 보면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사야 렌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이름은 다르지만 사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일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사실 ‘용’은 세상의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닮지 않았으니까요. 랫맨들은 ‘용’이 쥐를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무엇도 닮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상상 속의 생명체인 ‘용’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사야 렌은 빈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그 용의 머리 중 ‘피 흘리는 머리’를 찾고 있습니다. 아홉 머리의 용 중 잘려나가 홀로 우주를 방랑하는 머리. 아홉 머리의 용 가운데 유일하게 각성한 머리로, 온 우주에 피 흘리는 순례를 멈추지 않는 자. 그 피가 닿은 땅마다 멸망이 꽃 핀다는 머리. 혹은 로■문데 아■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토막 난 신. 완전한 이름을 들려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양해 부탁드립니다. 함부로 발음하면 온 우주의 괴물들이 몰려올 수도 있거든요.”
“와, 진짜 설정 덕후질 오졌다. 정말. 온갖 있어 보이는 표현은 다 갖다 붙였네. 정말 그렇게 다 일일이 설명해야겠어?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거냐?”
[듣기 싫으면 듣는 척이라도 해라. 강현무. 네가 듣거나 말거나 렌은 이야기를 전할 자격이 있으니까.]현무의 대답에 마리아 켈러가 짜증난 듯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사야 렌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설정집이라도 정리해서 주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 뭣보다 일단 들어야 당신이 궁금했는지 아닌지 알 것 아닙니까? 당신이 살던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목적으로 행동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현무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그래서 그걸 찾으면 뭘 할 건데? 세계 정복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글쎄요. 만나본적은 없지만 피 흘리는 머리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겁니다. 저희가 부탁한다고 해도 들을 리도 없구요.”
이사야 렌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용과 사제들의 관계라는 것은, 소 등에 붙어 사는 빈대에 가깝다고 할까요. 빈대는 소를 찬양할지도 모르겠지만, 소는 빈대의 존재 자체를 모르겠지요. 오히려 귀찮아할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속한 집단과 목적을 비하하면서도, 그는 씁쓸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위대하고 강인한 존재에게 무언가 뜻이 있고, 그 힘에 자신을 의탁하고 싶은 게 작은 존재들의 마음인지도 모르지요.”
“가시 어쩌구 사제들이 그렇게 짜증나는 곳이면, 너는 왜 붙어 있는 건데?”
“저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제 고향은 ‘종말’했거든요. 사제들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많습니다.”
이사야 렌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 끝에 완전히 먼지가 되어 멸망하고 나서, 또 다른 세계를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집단에 몸을 담은 사람이 바라보는 풍경은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제들도 저마다 욕망하는 게 있지요. 고향을 돌려받는다거나, 머리에게 복수한다던가. 그저 섬기는 것 자체가 목적인 자도 있지만요.”
“잠깐만. 그러면 그걸 찾기 위해 게임을 벌였다는 건…….”
“네. 게임은 별 전체에서 피 흘리는 머리를 찾아내기 위해 걸러내는 일종의 거대한 필터였던 겁니다. 피 흘리는 머리 본인이거나, 그 잔해이거나 커다란 채 위에 넣고 흔들면 결국 커다란 알맹이만 남을 테니까요. 별들은 그 과정에서 영토를 넓힐 수도 있구요. 서로의 목적이 맞아 떨어졌죠.”
“그래서 그 피 흘리는 머리인지 목인지, 그건 찾았나?”
현무의 말에 이사야 렌은 멋쩍은 표정을 했다.
“당신에게서 가능성은 봤습니다만, 역시나 허탕이었습니다. 새삼 실망스러울 건 없죠. 지난 수 천 년 간 우리는 짐승의 팔, 발톱, 그리고 이곳에서 피까지 발견했습니다만, 결국 피 흘리는 머리가 떨어뜨린 잔해일 뿐입니다.”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는 말에 현무는 솔깃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현무의 감상은 처음과 동일했다.
“역시 들어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잖아!”
“뭐…… 그렇죠. 결국 우리가 찾던 것은 여기에 없었다는 거니까.”
“시간 낭비 했군.”
[왜 시간 낭비 타령을 하는지 모르겠군. 강현무.]마리아가 무겁게 중얼거렸다.
[넌 어차피 이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이곳에서 살게 될 거야. 삶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시간 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