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27)
지옥에서 독식-327화(327/346)
327화. LIFE 0 (2)
“그녀의 말이 맞습니다. 강현무 씨.”
이사야 렌은 몸을 기울여 현무에게 말했다.
“뒤돌아선 별이 나타난 것은 대단한 우연이 중첩된 결과입니다. 혹은 인간 의지의 승리이죠.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게다가 이제 와서는…….”
[인류의 미래라는 희망 하나로 단합했던 사람들은 다 죽고 없다. 남은 건 서로 잡아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미친놈들뿐이고.]이사야 렌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현무는 유독 허전하게 느껴지는 가슴께를 더듬어보았다. 늘 이쯤에서 덜그럭거리던 감촉이 사라지자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생각하던 현무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네?”
이사야 렌과 마리아가 동시에 현무를 바라보았다.
이사야 렌은 약간 미안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마리아는 유달리 번잡스럽게 수정들을 움직였다.
“뒤돌아선 별을 아무나 만들고, 아무나 쓸 수 있었다면 대리인들은 이미 평행세계로 이동했을 겁니다. 하다못해 당신으로부터 귀환석을 탈취하려고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관심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귀환석은 수많은 의지가 단 하나로, 엄격한 제한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렌은 몸을 기울여 진중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희망고문하지 마라. 이사야.]“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아야지요. 마리아.”
마리아는 불만스럽다는 듯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강현무 씨, 뒤돌아선 별이 극히 드물게 등장하는 이유는 온갖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별들의 파편, 그리고 강력한 존재들의 의지, 별들의 동의, 그리고 사제의 찬성, 특수한 힘을 가진 존재의 조력까지. 이 경우에는 부서지는 별이 되겠군요.”
현무는 이사야 렌이 나열한 것들은 찬찬히 돌이켜보았다.
과연 까다롭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조건이었다.
그 조건이라면 차라리 별들을 정복하고 통일하는 편이 더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사제들이 ‘뒤돌아선 별’이 등장하는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왜냐면 자신들이 동의할 리가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미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과거의 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난이도: 지옥의 사제들은 동의했나보지?”
현무의 말에 이사야 렌이 미소 지었다. 마리아는 현무를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난이도: 지옥에는 사제가 이사야 렌,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다 죽었지.]“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뒤돌아선 별을 만들려면 사제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찬성하는 건 저 하나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사제들의 찬성표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과연.
현무는 마리아가 이사야 렌에게 호의적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명백히 도움이 되면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동족혐오적인 성향인지, 아니면 자기파괴적인 성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부서지는 별의 조력과 사제들의 찬성은 그렇다 치죠. 그래도 가장 어려운 두 가지 조건은 해결한 셈이군요. 그럼 나머지는 별의 파편, 강력한 존재들의 의지, 별들의 동의인데…… 솔직히 강현무 씨가 가진 걸로는 상당히 어려워 보입니다.”
현무가 가진 별의 파편 수는 다른 대리인급에 비하면 간신히 별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수준에 불과했다.
난이도: 보통에서 몇몇 대리인과 사도를 처치하면서 파편을 습득하긴 했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강력한 존재들…… 그러니까 대리인 급, 적어도 다섯 이상이 의지를 모아야합니다. 하지만 지금 별들은 전부 서로를 씹어 먹으려 드는 상태이니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군요.”
이사야는 두 번째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많은 별들의 동의. 마찬가지로 강현무 씨는 상당수 별들과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이것도 힘들겠군요.”
“전부 다 죽여 버리고 내가 별의 파편을 끌어 모은다면?”
“그게 차라리 쉬울 겁니다.”
이사야 렌은 담담히 대답했지만 마리아는 비웃었다.
[대리인 하나라도 죽일 수 있으면 다행이겠군. 그게 가능하다 치자. 지금 이 대치상태가 얼마나 오래 이어져온 줄 아나? 너 혼자선 수십 년도 모자랄걸.]난이도: 지옥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현실의 시간도 흐른다. 이제는 부활도 불가능한데다, 곧 대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별의 파편을 모으기는커녕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수십 년이라.
현무는 수십 년 뒤에 자신의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상상해보려 했다.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난이도 상승은 어떻게 될 것이며, 차후 세계정세는 어떻게 바뀔지.
전능련이 그때까지 남아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때 이사야 렌이 입을 열었다.
“아주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5년 만에 원래 세계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요.”
“5년?”
“그 사람의 상황은 강현무 씨보다 더 척박했습니다. 어린애나 다름없는 몸에 가진 아이템이나 부활 능력, 권속도 없이 시작했지요.”
현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건?”
“가진 건 없는데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 적들을 다 잡아 죽이느라 5년이 걸렸지 더 빠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워낙에 비범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인상에 남는 기억이긴 하군요.”
“뭐야, 그건. 괴물인가?”
“다시없을 이변이긴 했습니다. 사제들이 그때 찬성했던 것도 사실상 얼른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래도 강현무 씨도 상당히 재능이 있는 편이니, 한 10년 정도 노력하면 어떻게든…….”
그때 현무는 이사야 렌의 말에서 무언가 영감을 얻었다. 씩 입꼬리가 올라간 현무가 대답했다.
“5년.”
“예?”
“나도 5년 안에 돌아간다. 찬성표나 준비하고 있으라고. 사제.”
***
쉘터로 돌아가는 길.
현무는 이사야 렌이 했던 말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그가 5년을 잡은 것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5년 만에 돌아갔다고 하니까 도전 의욕을 불태워 본 것뿐이었다.
현무는 목표를 약간 타이트하게 잡는 것을 좋아했다.
설령,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누가 추궁이나 하겠는가. 약간 부끄럽고 말겠지.
‘아니, 그래도 5년 안에 돌아간다.’
현무는 확신에 가까운 의욕을 다졌다.
그보다 더 길어지면 곤란하다.
난이도: 보통에서 기다리고 있을 유민과 전능련 식구들,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을 생각해도 그랬다.
그 무엇보다 이 삭막하고 끔찍한 풍경 속에서 5년 이상을 버티라고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5년이라고 기한을 설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
난이도: 지옥의 세계에서 원래 역사의 흐름대로라면, 난이도: 보통에서부터 악몽, 그리고 지옥 직전까지 치달은 시간이 5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선생님은 난이도: 보통에서 5년쯤을 전후해 귀환석을 얻게 되었다.
‘그 자식보다 오래 머물 수는 없지.’
지루한 시간이 되겠지만 현무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군 입대를 대신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선임도 없지만 후임도 없는 5년짜리 군 생활이라니. 하지만 이 일정을 소화하려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은 분명했다.
“보자,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한다…….”
그때 현무는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평범하게 폐허가 된 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무를 자극한 생존 본능은 그것을 절대로 평범하게 보지 않았다.
현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방금 전까지 카페에서 정상인처럼 대화하다보니 여기가 난이도: 지옥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용건이 있으면 그냥 평범하게 나와서 내 이름을 불러. 괜히 길 한복판에서 아가리 쩍 벌리고 있지 말고.”
현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변의 풍경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분 나쁜 점액질로 가득한, 붉은 내장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스며들어오는 핏빛덕분에 어둡지는 않았다.
“뭍초롱아귀로군. 굶주리는 별이냐?”
그 말에 응답하듯, 점액질 속에서 스르륵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솔직히 생명체라기보단 살점에 돋아난 종양이나 여드름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 현 무.”
“와, 아직도 그 짜증나는 말투 못 고쳤냐? 굶주리는 별이 너 발음 좀 똑바로 하려고 할 때마다 턱주가리를 빠개버리든?”
“빚 을 갚 을 때 가 됐 다.”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 난이도: 보통에서는 헬렌이 그 대리인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확신이 없었다.
워낙에 맛이 간 외형이라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무는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뭍초롱아귀의 내부는 좁고 냄새나고 출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환각이 내부인에게 완벽하게 작용하는 것이리라.
“빚 을 잊 고 있 지 는 않 겠 지.”
“아, 알아. 안다고.”
현무가 동시에 사도들의 침공을 당했을 때. 굶주리는 별과 통곡하는 별, 그리고 정복하는 별의 사도들까지 현무의 쉘터에 쳐들어왔었다.
현무는 그 막바지에 간신히 타협을 보고 굶주리는 별의 도움을 얻어 별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별의 파편을 빚졌으니, 나름 큰 빚을 졌다 할 수 있었다.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만족스러운 듯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굶 주 리 는 별 의 이 자 는 결 코 싸 지 않 다.”
“어쩐지 잠잠하다 했더니 이자놀이를 하려던 거였냐?”
사채업자들이 흔히 쓰는 수작이었다.
상대가 쉽게 갚지 못하도록 연락을 피해 다니다가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압박하는 것.
평범한 세계라면 상식적이지만 난이도: 지옥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보통은 그냥 다 빼앗으려 들 텐데 말이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굶주리는 별 나름의 규칙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뭘 해서 갚아주길 원하는데?”
“네 가 벌 인 일 을 수 습 해 라.”
“내가 벌인 일?”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언짢은 표정으로 현무를 바라보았다. 같잖은 수작을 부린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그가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 금 내 권 속 들 은 너 때 문 에 난 장 판 이 벌 어 진 상 태 다. 대 체 놈 들 에 게 무 슨 망 상 을 심 어 놓 은 거 지?”
“망상? 아…….”
혁명.
현무가 권속들을 통해 뿌려놓은 죽창 혁명의 씨앗이 이제 막 발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난이도: 지옥에서 가장 욕심 많고 소유한 것이 많은 별의 권속들 사이에서 가장 빨리 두각을 드러낸 듯싶었다.
욕심이 많은 자는 질투도 많다.
굶주리는 별은 나눌 줄 모르는데 그의 권속들은 늘 욕망에 허덕이는 존재들이니 당연했다.
그 와중에 현무가 ‘별과 대리인과 사도와 권속이 대등한’ 관계를 들고 나오니,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지옥에는 지옥에 걸맞은 방법이 있는 것뿐이지.”
“당 장 수 습 해 라.”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되 도 않 는 요 구 때 문 에 머 리 가 터 질 지 경 이 다. 게 으 른 놈 들. 정 당 히 일해 서 얻 을 줄 모 르 고 가 당 찮 게 공 정 분 배 니 휴 일 제 따 위 를 요 구 하 다 니.”
“그 정도면 되게 온건한 거 아냐?”
현무의 말에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기이한 것을 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 기 는 지 옥 이 다. 무 엇 을 기 대 하 는 거 지?”
그렇군. 여기는 난이도: 지옥이다.
그럼 지옥에 걸맞은 방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굶주리는 별이 그 사실에 동의하니 현무도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현무는 손을 들어 가슴을 쿵쿵 쳤다.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이 뭐하냐는 듯 바라보자, 현무가 입을 열었다.
“레니안, 여기 빠르고 강력한 죽창이 필요하다. 깔끔한 종말 혁명 한번 해보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현무의 전신에서 먹물 같은 형상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덩어리진 심연이었다.
***
조금 뒤.
평범한 대로 한복판의 허공이 쫙 갈라지면서 핏물이 사방에 번져 나왔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시커먼 종말의 짐승이 살덩어리 같은 무언가를 꿴 채 밖으로 나왔다.
종말의 짐승은 몸 곳곳이 녹아내리고 상처가 심각했지만, 상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는 몸 곳곳을 짐승의 발톱에 관통당한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 떻 게 그 사 이 에.”
“방심했나보군. 아직도 날 그때 그 수준인줄 알았던 모양이지?”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강현무가 막 별이 되었을 때 수준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그때 현무는 사도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으니, 혼자만으로도 가볍게 농락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현무는 선생님과의 전투를 통해 현무 본인조차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성장한 상태였다.
“너 는 내 게 빚 이 있 을 텐 데.”
“이자는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수단일 뿐이다.”
“그 래. 네 놈 의 뜻 은 잘 알 겠 군.”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투였다.
죽음 앞에서도 태연한 게 아니었다. 이 살덩어리 자체가 카와로의 턱을 찢고 나타났던 것처럼 분신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 럼 너 도 지 렁 이 처 럼 짓 밟 아 주 지.”
“아니, 아니, 아니. 우리는 그럴 필요 없어. 요굴렘.”
현무는 발톱으로 살덩어리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빚을 갚을 생각이 있다고. 이래봬도 신뢰와 성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몸이라서 말이지.”
“무 슨 헛 소 리 를 하 고 싶 은 거 냐.”
현무는 살덩어리를 내려놓고, 종말의 짐승을 해제했다.
수정이끼들이 부서져 내리는 잔해 속에서 현무는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을 향해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협업하자. 요굴렘. 네 아랫것들의 같잖은 민중봉기를 분쇄해줄게. 깔끔하게.”
“뭐.”
“가암히 아랫것들이 난이도: 지옥에서 공정분배니 휴무일이니 하는 걸 요구하다니, 같잖잖아? 조금만 더 있으면 노조도 만들겠다고 하겠어?”
굶주리는 별의 대리인은 현무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자 당황했다.
애초부터 받아들일 거였다면 왜 죽자고 덤벼든 거지?
그러나 그가 질문하기 전에 현무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
“대신 너도 나한테 좀 협력하자. 딱 5년만. 갑을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에서 윈윈 하자는 거지.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종말의 짐승을 부릴 수 있는 동업자 하나 있으면 엄청 편하겠지? 이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