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37)
지옥에서 독식-337화 (에필로그 1)(337/346)
337화. 에필로그 (1)
침대에 닿기 전에, 현무는 바닥에서 유리조각 하나를 먼저 주워들었다.
손에 쥐기 좋고, 끝도 나이프처럼 날카로운 말 그대로 적당한 크기의 유리 조각이었다.
현무는 유리조각 끝으로 천천히 침대보를 긁으며 걷다가 선생님의 머리맡에 섰다.
“흐음, 이렇게 무력하고, 불쌍하고, 하찮고, 나약한 모습으로 누워있는걸 보니, 처음으로 존경심과 동정심을 표할 생각이 드는군요. 선생님.”
현무에게 있어 ‘적이더라도 존경할 수 있는 상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대일 때뿐이었다.
“나름대로 최종 결전을 상상해보긴 했지만, 이건…….”
현무는 약간 슬프다는 듯,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최종 결전이야.”
현무는 유리조각 끝을 선생님의 팔 언저리에 가져다댔다. 살짝 긋자 붉은 자국을 따라 느리게 피가 흘러내렸다.
현무는 흘러내리는 피를 살짝 찍어 혀에 가져다댔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무는 인벤토리에서 탐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주저 없이 선생님의 복부에 콱 찔러 넣었다.
선생님은 배가 찔려도 가볍게 경련할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탐의 검신을 따라 현무의 피가 흘러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선생님의 몸이 순간적으로 덜컥 뛰었다. 동공이 크게 확장되고, 고통으로 인한 비명과 신음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현무를 노려보았다.
현무는 미소 지으며 그 증오어린 눈동자를 마주했다.
선생님은 이를 악물며 무언가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얼굴에 곧 당혹감이 담겼다.
“왜, 회귀가 안 돼?”
현무가 히죽거리며 속삭였다.
선생님은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망가진 목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현무는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탐을 뽑아내고, 선생님의 구멍 난 뱃속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솔직히 우리가 작별 선물을 주고받고 그런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맨손으로 보내드리기에는 내 맘이 안 좋네.”
현무가 난이도: 지옥에서 탈출할 때 받았던 바로 그 귀환석이었다.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고 뭐라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 불분명한 말도 현무에게는 끝까지 닿지 못했다.
소리도, 빛도, 일렁이는 연기나 공간 왜곡 같은 효과도 한번 없이 선생님은 사라져버렸다.
현무는 그 심심한 모습이 살짝 아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부활 특전이나 약속의 증표, 회귀 능력, 멀쩡한 사지와 건강,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난이도: 지옥에 떨어진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낯선 장소는 아니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할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
【난이도: 지옥
종말의 별에 진입합니다.】
“끄헉, 억, 허어억……!”
선생님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 질렀다.
현무가 주입한 피는 그를 딱 의식이 들 정도로만 치유했을 뿐이었다. 아직도 사지는 온전하지 못했고, 온몸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수년간 박도령이 주입해온 거짓 약물이 내장을 난자했고, 어설픈 피막에 덮인 상처는 다시 터져 고름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현무가 왜 자기 피까지 쏟아 치유했는지 깨달았다.
그를 더욱 고통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조용히 잠들듯이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허윽, 허억……!”
선생님은 힘겹게 호흡하며 눈을 떠보려 했다. 하지만 붉은 무언가가 각막을 뒤덮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고통은 전신에서 전해져왔다.
피부와 환부만이 아니라, 혈관, 신경, 내장,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짐승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비명을 듣고서야 선생님은 그 비명이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까지 그가 귀환석을 줬던 자들이 내뱉던 단말마였다.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길거리의 노숙자가, 미래에 자신을 배신할 예정인 동맹원이 내질렀던 바로 그 비명이었다.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 차라리 죽음으로 도망쳤던 자들이 내질렀던 단말마였다.
그제야 선생님은 자신이 어디에 왔는지 알아차렸다.
이곳은 난이도: 지옥.
그가 그토록 피하려 했던 지옥이었다.
“헉, 허윽, 말, 말도 안…….”
선생님은 허겁지겁 강현무가 자신의 배 아래 쑤셔 넣은 귀환석을 찾으려 했다.
그가 알기로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그걸 사용하면 돌아갈 수 있다.
선생님은 직접 자기 환부를 찢고 벌려 귀환석을 찾으려 했다.
제대로 된 팔이라곤 왼팔 하나, 그것도 손가락이 몇 개 없을 정도였지만 어기적어기적 선생님은 제 뱃속을 뒤졌다.
다행인 점은, 다른 고통이 너무 심해서 뱃속을 쑤시는 고통 정도는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귀환석은 보이지 않았다.
“어, 어째서…….”
선생님은 파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고통에 몸이 마비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고통이 끝날 수 있다면.
‘아니, 말도 안 되지.’
순간 마음을 약하게 먹었던 선생님은 이를 아득 물었다.
이곳이 난이도: 지옥이라 해도, 그 자신은 난이도: 악몽까지 버티다가 세상의 끝을 목도하고 회귀했다.
난이도: 악몽에서부터 미세먼지의 독성은 심해지고 있었다.
그는 온갖 못 볼 꼴을 다 봤다.
난이도: 튜토리얼 수준의 나약한 세계에서 뒹굴다가 지옥을 마주하고 자살했던 쓰레기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선생님은 눈을 부릅뜨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고통이 심하다 뿐이지, 애초에 그의 피에는 짐승의 피가 흐른다. 단순히 수십 년 동안 맛보지 않았던 고통이라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선생님은 간신히 시야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흐, 흐하하, 하하하…….”
강현무는 자신이 고통받으며 죽어가리라고 기대하며 이 세계에 던져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극복했다.
구더기 같은 꼴의 모습이 복구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은 작은 승리였다.
다시 발돋움 할 기회.
선생님은 강현무가 자신을 어중간하게 살려놓은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네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선생님은 꿈틀 바닥을 기어가며 중얼거렸다.
비록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스킬은 건재하다.
회귀 능력이 없다 해도 다시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기어오르고 올라서, 다시 별을 움켜쥐는 것이다.
내 손안의 담기는 작고 작은 최선의 미래.
나만의 별.
“네가 이겨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선생님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언덕을 기어올랐다. 우선 여기가 어디고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했다.
그러나 그가 언덕 위에 닿았을 때 마주한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더 작아졌구나, 자기.”
선생님은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서연?”
이서연이 바로 언덕 위에 서있었다.
선생님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가 곧 안도했다. 수십 년 전의 기억이니 흐릿하긴 했지만 이서연이라면 그의 편이었다. 단순히 같은 편을 넘어 운명공동체에 속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도 종말의 별이 되면서 끝장나긴 했지만.
“잘됐다. 이서연, 나 좀 도와줘. 지금 내가…….”
그러나 이서연은 손도 잡아주지 않은 채로 차가운 눈으로 슥 선생님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연민과 실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게 뭐야.”
“……이서연?”
“왜 이런 꼴이 되어서 돌아온 거야……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겠다느니, 세상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느니 하더니 더 바닥을 파고 들어가 버렸잖아.”
“잠깐일 뿐이야. 몸은 금방 고칠 수 있어.”
선생님은 이를 아득 물면서 이서연에게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딛고 일어설 기회야. 강현무가 지나쳐 온 길이라면, 나도 걸을 수 있어. 아니! 더 나을 수 있어.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최선의 미래를…….”
하지만 선생님은 말을 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선생님은 숨을 헐떡이면서 이서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 도와줄 거지?”
이서연은 도움이 되지 않는 자를 돌볼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 무슨 인연이었건 상관없다.
감정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지 몰라도,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선생님의 존재는 짐짝에 가까웠다.
“맞아. 그런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야.”
이서연은 쪼그려 앉아 선생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선생님의 양 손을 쥐고 조용히 끌어당겼다.
“현무 씨, 이렇게 부르려니까 뭔가 어색하네. 솔직하게 말할게. 당신은 아무런 희망도 품지 못하고, 절망에 젖어있을 때 더 멋있었어. 세상 그 누구도 당신만큼 고독하지 않았고, 세상 그 누구도 당신만큼 절망하진 않았지.”
선생님은 욕설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다가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그 절망의 크기를 부풀린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이서연, 그리고 속삭이는 별이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실망스럽고, 비천하고, 매력 없는 존재일 뿐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실망스럽고 쓸모없다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이해한다는 듯 이서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 욕심과 별개로, 속삭이는 별이 이 이길 가능성 없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던 것은 바로 당신 때문이야.”
“뭐?”
“비록 더럽혀졌을지언정 당신은 몽스트릴의 연인이었다는 뜻이야. 속삭이는 별의 하렘으로 가자. 몽스트릴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의 진열장에 놓인 109,843번째 박제된 연인이 되는 거야.”
선생님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눈앞의 상대는 이서연이 아니다.
‘몽스트릴의 대리인’이었다.
이서연의 자아는 거의 소실되었고, 몽스트릴은 이제 자신의 진열장에 놓을 컬렉션을 가지러 온 것이다.
‘지구, 종말의 별, 절망, 고독한 남자’ 태그가 붙어있는 피규어로서.
“이런, 개, 같은! 망할! 꺼져!”
선생님은 몸부림치며 이서연의 손으로부터 빠져나가려 애썼다. 하지만 이서연의 힘은 중환자나 다름없는 선생님보다는 나았다.
선생님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또? 또 그런 꼴을 당한다고?
수많은 연인 중 하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장식이 되어 영원히 살게 된다고?
“안 돼!”
선생님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진 순간, 쾅 소리와 함께 이서연이 튕겨나갔다.
선생님은 멍한 표정으로 이서연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튕겨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카가가가각.
단단한 것이 대패로 갈려나가는 듯한 기이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돌과 바위, 철근 따위가 연필깎이에 들어간 것처럼 곱게 갈려나가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쪼개고 부수며, 형체 모를 것이 온몸을 뒤틀며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고, 세상 모든 것을 닮은 것이기도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뇌가 쥐어짜내어 지는 것 같은 기이한 형상에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것’, 아니. 아담 폴트가 입을 열었다.
[대화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