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340)
지옥에서 독식-340화(340/346)
외전 2화.
짐승에서 인간으로 (2)
“……저게 우리가 정체를 밝혀내야 할 물건이냐?”
마리아는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아직은 푸른 밤하늘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달빛은 제법 밝았다.
언뜻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사람의 팔다리와 부서지고 구겨진 총기, 머리카락 따위가 난잡하게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구역질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건 그냥 공깃돌입니다. ‘진짜’는 더 들어가야 보여요.”
“공깃돌?”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저런 건 들어가면서 얼마든지 보일 겁니다.”
‘얼마든지’라니.
마리아는 입을 다물고 사무엘의 뒤를 따랐다.
처음 사무엘을 만났을 때 그가 왜 그렇게 설명하기 어려워했는지 이제야 그녀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무엘의 말대로, 협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보이는 광경은 점입가경이었다.
처음 봤던 거대한 ‘공깃돌’만큼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뭉쳐있었다.
어떤 것은 수십 명이 곤죽이 되어 뭉쳐있기도 했지만, 어떤 것은 한 사람으로만 만들어져 있었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있었다.
소련인도 있었고, 아랍인도 있었다.
짐승이나 바위, 총기, 심지어 탱크가 뭉쳐진 것도 보였다.
자연 현상은 확실히 아니었다. 던전에 관련된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수도 없이 던전을 드나들었음에도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기괴한 취미를 가진 몬스터가 유출됐다거나, 이때까지 알지 못했던 괴이한 현상이 던전 밖에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던전 내부의 일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많으니까.
“멈추세요.”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걷던 마리아를, 갑자기 사무엘이 멈춰 세웠다.
마리아는 퍼뜩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협곡 끝에 유독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달빛이 드리워진 자리에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이 주변에서 보기 드문 꽃과 정성껏 짰을 천, 그리고 희귀한 금은보화 장신구들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단으로 누비고, 금실로 치장한 베개 위에 엎드린 채 잠들어있었다.
주변에는 촛불 여러 개가 놓여있었지만 대부분은 꺼져있었다.
“저건…… 제단인가?”
마리아는 소녀 주변에 놓인 촛불과 금실의 패턴들이 이 지역의 숭배의식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음식이며 과일 역시도 제물로 흔하게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소녀는 숭배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이 지역 현지인들로부터.
그리고 그녀 주변에 이때까지 봤던 ‘공깃돌’들이 느리게 빙글빙글 굴러가고 있었다.
공깃돌이 바닥에 남긴 체액이 둥근 궤적을 만들어냈다.
마리아는 소녀를 주시하다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 순간 사무엘이 재빨리 그녀를 잡아챘다.
“미쳤습니까!”
“어? 뭐? 왜?”
“저 시체들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습니까? 당신도 저렇게 될 수 있어요.”
사무엘의 새파랗게 질린 표정은 이미 누군가가 ‘저렇게’ 되는 과정을 봤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무엘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그어진 선을 발로 직직 그었다.
“이 선 안쪽으로 들어가면 ‘저것’이 반응합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안쪽에 머물러 있어요.”
‘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실험이라도 한 듯이 거무죽죽한 궤적들이 수십 개에 걸쳐서 그어져 있었다.
피와 살점, 내장조각들로 이루어진 궤적들이었다.
마리아는 어렸을 때 책상 위 개미를 죽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개미를 꾹 눌러서 죽이기는 찝찝하니 손끝을 대고 마구 비벼버리는 것이다. 그럼 개미는 순식간에 뭉개져버린다.
바로 이 협곡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저걸 왜 공깃돌이라고 부르는 거냐?”
“……현지인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소녀가 깨어있을 때는 저 덩어리들을 가지고 놀거든요.”
마리아는 이 시체덩어리들이 공깃돌처럼 허공에서 튕겨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속이 안 좋아졌지만, 동시에 메마른 갈증을 느꼈다. 그녀의 욕망이 지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조금만 가보자. 응? 자고 있잖아.”
“수면 시간은 상관없어요. ‘저건’ 자면서도 사람을 뭉갰어요. 애초에 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빌어먹을. 자든 깨든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할 거면 대체 여긴 왜 데려왔어? 신기한 거 있으니까 구경하라고?”
“꼭 불에 손을 넣어봐야 뜨거운 걸 압니까?”
사무엘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무엘의 손끝에는 시체들이 뭉쳐져 있는 덩어리들이 있었다.
마리아는 뭘 바라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참 그 시체들을 주시했지만 사무엘이 말하는 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뭐. 위험하기야 하겠지. 그런데 내가 몸 사릴 생각으로 소련군과 아프간 반군이 격전을 펼치는 국경지대에 온 것 같냐? 자식아. 뭐 하자는 건데? 야, 빅터. 한마디 해봐.”
사무엘은 대답하는 대신 인상을 쓰며 빅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리아는 그 표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빅터는 자신의 호위 겸 안내역에 불과했다. 조금 권위를 더 부여하자면 유사시 경호 총책임자가 될 수야 있겠지만 그래봤자 경호에 불과한 것 아닌가. 연구 해보라고 부추기지는 못할망정 말릴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빅터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때 보입니까, 마리아? 저 애가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의 일종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특수한 현상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순간 마리아는 머리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증거가 있다기보다는, 일종의 직감이었다.
빅터는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다.
CIA 파견 요원은 보이지 않고, 무장 게릴라가 협곡을 장악중이며, 소련군이 짓뭉개져 공깃돌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도출해낸 결론은 한 가지 뿐이었다.
“조사를 위해 부른 게 아니군.”
“조사를 위해 부른 게 맞습니다.”
빅터는 바로 마리아의 말을 바로 정정했다. 그의 시선이 협곡을 주변을 훑었다
마리아는 빅터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금방 눈치챘다.
이곳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을 무장게릴라들.
상황은 알기 쉬웠다. 하지만 처음 빅터가 설명했던 것처럼 단순한 것 같지는 않았다.
***
“빌어먹을 자식들.”
마리아와 빅터, 사무엘은 다시 게릴라의 안내를 받아 협곡 바깥쪽의 토굴로 돌아갔다. 사무엘이 머무는 토굴이었다.
마리아는 아까 그 상황을 돌이켜보며 신경질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 사무엘은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리아,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길게 고민할 일도 아니에요.”
“CIA와 그 극단주의자 새끼들, 그리고 소련 놈들까지. 전부 그 여자애를 원하는 거겠지. 그래서 우리가 그 애를 길들일 수 있는지 보려는 거고!”
처음 소녀를 발견한 것은 현지인들이었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신과 같은 힘을 가진 여자애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을 터이고, 그 다음으로는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숭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소녀를 발견한 것은 소련군이었을 것이다. 소련군은 소녀에게 경악하고, 제거하려 했거나 아니면 데려가려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현지인들을 이용했겠지. 결과적으로 그들의 최후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다음으로 온 것은 이곳의 무장 반군을 지휘 중이던 CIA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CIA의 상황 역시 안 좋았던 것 같다.
상황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사무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을 지배중인 게릴라 집단은 알 카에다라고 불립니다. 아까 그 노인은 사우디 출신의 부호인데, 완전 미친놈이에요. CIA가 이대로 계속 극단주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면 나중에 큰일 날겁니다.”
“그건 랭글리의 높으신 분들이 판단할 일이구요.”
빅터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사무엘은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파견되어있던 CIA요원들은 다 사라졌어요. 돌아갔다고 말은 했지만 보나마나 살해당했을 겁니다. 소련군을 전멸시킨 ‘저것’을 본 순간 여기 사막 광신도들도 눈이 돌아버린 겁니다. 그 엄청난 힘에! 저 힘을 갖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라고!”
사무엘은 성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서 소리쳤다.
빅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저걸 손에 넣게 된다고 상상하면 외교나 채무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 법했다.
마리아와 사무엘을 남겨둔 이유도, 아직까지 ‘저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전문가의 손에 맡겨보는 것이다.
사무엘은 빅터를 설득하는 대신, 진짜 결정권자나 다름없는 마리아를 향해 애걸했다.
“마리아, 당신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머저리들은 아니에요. ‘저것’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너는 저걸 없애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나보군.”
“저게 아까 그 원리주의 광신도들 손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소련군 대대급.
아니, 협곡에 남은 흔적을 보면 실제 투입되었을 전력은 그 이상이다.
못해도 연대급. 그런 전력을 상처 하나 없이 궤멸시킬 수 있는 존재가, 그것도 무해해 보이는 소녀의 형태로 적국의 수도 한가운데 떨어진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크게 뒤바뀔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모든 것이 그닥 놀랍지 않았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
던전과 능력자들이 나타난 시점부터 마리아는 그런 상황을 이미 예측했었다.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는 아직 저런 존재의 등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빅터는 너무 사무엘의 의견에 무게가 실리지 않게끔 마리아를 향해 말했다.
“마리아 교수님, 교수님 임무는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당신은 ‘저것’의 정체가 뭐고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별해주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다음의 ‘정리’는 너한테 달려있겠지. 저 소녀를 어떻게 할지 간을 보면서 말야. 지금도 상공에 폭격기가 대기 중인가? 언제든 이 협곡을 지워버릴 폭탄을 실은 채 말이야.”
빅터는 대답하지 않고 웃어 보일 뿐이었다.
마리아에게는 충분한 답변이었다.
미국은 바보가 아니다.
‘저것’이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이미 확인했고,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할 수단도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마지막 트리거를 마리아에게 맡긴 것이었다.
“마리아. 저건 통제할 수 없는 힘입니다. 만약 통제할 수 있다하더라도, 누군가가 쥐기에는 너무 위험한 힘이에요! 없애야 합니다!”
“부담 갖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까진 없다고 말씀하시면, 바로 여길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은 높으신 분들이 모두 알아서 할 겁니다.”
사무엘은 애걸하다시피하며 말했다. 반면 빅터는 좀 더 차분한 결정을 권했지만, 그 역시도 사무엘의 판단 쪽에 마음이 쏠린 것 같았다.
저 소녀는 천상 군인인 그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존재일 테니까.
군인인 그는 병기와 파괴를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빅터는 ‘저것’을 다룰 수 없는 ‘파괴’로 규정한 듯싶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당최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예?”
“저게 다른 놈들에게 휩쓸릴 만한 녀석으로 보이냐? 너희들 눈에는 저게 미친놈 손에 쥐어지는 총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보이나 보지?”
사무엘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공포와 아집으로 가득 찬 그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평온을 가장한 빅터의 교만 역시도.
빅터는 마리아에게 물었다.
“그럼 교수님 눈에는 뭐가 보이십니까?”
“애새끼.”
마리아는 잘라 말했다.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애새끼가 보인다. 그런데 원래 그 나잇대 애들은 다 그 모양이야.”
“저걸 그냥 애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까?”
“나는 결혼 안 했지만 조카가 하나 있지. 시체들을 짓뭉개놓은 꼴이 딱 그 나잇대 애새끼들이 할 법한 짓이더군. 누구나 그 나이에는 개미를 뭉개며 놀지 않나?”
“죽은 사람들은 개미가 아니라 인간……!”
“그 애한테는 별로 다를 거 없어. 그리고 나한테도 그래.”
사무엘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놈들은 애들이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치워버리려 하지. 아주 볼썽사납고 해괴망측한 일이다. 어른이 애를 안 가르치면 누가 가르친단 말이냐? 애새끼가 버릇을 못 배워 처먹었다고 죽이거나 치워버리려는 건 어른이 할 일이 아니야.”
마리아는 전투적인 호기심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애한테는 예절을 가르쳐 줄 어른이 필요하다. 내가 저 짐승 같은 애새끼를 인간으로 만들어놓으마.”
***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푸른빛이 협곡을 물들이면서 창백한 색감을 만들어냈다. 본디 하얀 낯이었던 협곡은 어린 아이 스케치북 같은 꼴이었다.
엉망진창으로 흩뿌려진 피 때문이었다.
시야가 밝아오기 시작하자 협곡의 풍경은 한층 더 구역질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냄새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마리아는 길게 심호흡했다.
자신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꽤 마음에 들었다.
‘사무엘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리아는 소녀를 단순히 가르칠 생각 없었다.
저런 힘을 가진 존재를, 지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키운다?
그것은 소녀에게도 인류에게도 무책임한 짓이다.
맹견에게는 목줄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안락사를 시키거나.
마리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인간을 위해서 신, 괴물, 악마로 취급당하는 존재에게 목줄을 맨다는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마리아는 사무엘이 그었던 선을 성큼 넘어갔다.
그리고 소녀가 눈을 떴다.